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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창세기 제16강
이삭의 결혼
말씀 / 창세기24:1-67요절 / 창세기24:44 “그의 대답이 당신은 마시라. 내가 또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도 길으리라 하면 그 여자는 여호와께서 내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정하여 주신 자가 되리이다 하며”
오늘 말씀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역사를 계승할 이삭의 결혼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 기자는 계승역사를 위한 이삭의 결혼 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이는 믿음의 결혼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노아시대나 소돔과 고모라 시대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육체적인 쾌락만을 탐닉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부도덕한 성행위와 타락한 결혼관으로 인해 낙태율, 이혼율이 세계 탑 순위권이며 성매매, 혼전동거 등 죄악이 날로 더해 갑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사수해야 할 신자들마저도 결혼관이 타락하고 외모와 재물을 따라 자기중심적인 결혼을 합니다. 또 세계 곳곳에서는 동성애부부를 합법화하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UN도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도록 권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통해 믿음의 결혼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지 가르쳐 줍니다. 또한 믿음의 결혼을 이루는데 있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믿음의 결혼관을 정립하고 믿음의 결혼을 할 뿐만 아니라 가정을 믿음의 반석 위에 견고히 세워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아브라함의 결혼관 (1-9)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범사에 복을 주셔서 복된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일은 나이 40살이 된 아들 이삭의 결혼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인류구속역사를 이루어나가겠다고 한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이삭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삭의 후손들을 통해 인류구속역사가 이루어지려면 이삭이 결혼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기 전에 이삭에게 믿음의 배우자를 맺어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가 가장 신임하는 종을 불러 그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하게 했습니다. 이는 그만큼 그 종을 신뢰하여 믿고 맡길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아브라함이 왜 굳이 맹세까지 시켜가며 이렇게 하라고 할까요? 물론 가나안 땅에도 내노라 하는 집안의 딸들이나 예쁘고 똑똑한 자매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곳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으므로 결혼조건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사람들과 사돈 관계를 맺으면 이방 땅에서 외롭지 않고 그 땅에 더 쉽게 적응하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각종 우상을 숭배했고 그 생활이 음란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계승해야 할 이삭을 이런 자들의 딸과는 도저히 결혼시킬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매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권위를 부리고 큰소리를 치지만 결국에는 아내의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아담도 그러했고 심지어는 아브라함 자신도 사라가 하자는 대로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형제가 좀 부족해도 믿음 있는 자매과 결혼하면 그 영향으로 남편이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형제가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적이고 육신적인 자매와 결혼하면 그녀의 좋지 못한 영향을 받아 망하거나 쓸모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7:3,4에서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하셨습니다. 인간조건이 좋은 불신자와 결혼할 경우 처음에는 세상에서 재물도 얻고 사회적으로 출세하는데 유리한 고지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나 가장 중요한 신앙을 잃어버림으로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게 됩니다. 솔로몬도 처음에는 아버지 다윗의 믿음을 따라 믿음 중심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젊고 아름다우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인 후에는 영적 분별력을 잃고 이방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가 우상 숭배하는 죄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창세기 6장에서도 노아 시대의 타락의 원인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외모만을 보고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가정이 타락하고 그 사회가 타락하여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고린도후서6:14에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자기 친척들을 찾아 거기서 이삭의 신부감을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아들의 결혼이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의 당부를 듣고 맹세하기는 했지만 난감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신랑 될 사람을 보지도 않고 종의 말만 듣고 그 멀리까지 따라오겠습니까? 당시에는 사진도 없고 인생소감도 없었으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은 만일 여자가 오고자 하지 않으면 이삭을 데리고 가서 선을 보이면서 교섭을 해도 좋으냐고 물었습니다(5). 그러나 아브라함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고 잘라 말합니다(6). 오히려 확신 있게 종을 보냅니다. 왜입니까?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그는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을 자기의 친척과 아버지 집에서 떠나게 하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의 나이 100세에 기적의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해서 드렸더니 기뻐하시고 도로 주셨습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수풀 사이에 숫양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처럼 지금까지 그의 인생을 섬세하게 인도해 오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아들의 신부감도 완벽하게 예비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앞서 보내셔서 가장 합당한 신부를 만나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사실 어찌 보면 결혼만큼 위험한 모험이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 수십억의 남녀가 살고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을 선택해서 일생동안 사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처럼 위험한 모험을 어떻게 함부로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모든 자매들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물어보고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 살아보고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 내 인생을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 나를 지으시고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 나의 체질을 아시는 하나님, 나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신 하나님, 내 인생을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가장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미 가정을 이루신 분들은 내게 가장 좋은 배우자를 주셨음을 믿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교회를 세워가며 서로 사랑과 존경으로 섬기고자 힘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II. 아브라함의 종의 충성 (10-56)
이삭의 결혼은 충성스러운 종의 섬김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결혼을 전적으로 아브라함의 종에게 일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 결혼역사를 어떻게 섬깁니까? 자기에게 전권이 부여되었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자기 스타일대로 합니까?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로 섬깁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21절에도 보면,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합니다. 26,27절에 보면, 리브가를 만난 뒤에도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그는 결혼역사를 시작하면서도, 그리고 과정 속에서도, 모든 일이 잘 끝난 뒤에도 항상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이를 볼 때 아름다운 믿음의 결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기도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결혼 당사자들도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옆에서 돕는 분들도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기보다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은 house church, 가정교회가 탄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이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여러모로 방해합니다. 이처럼 사탄의 방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써 기도해야만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하되 아주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14절에 보면, 우물가에서 한 소녀에게 물 좀 달라고 할 터인데 그 말에 응할 뿐만 아니라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도록 배려하는 여인이면 베스트의 신부감인 줄 알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신부 후보로 외적조건을 보지 않았습니다. 키가 얼마나 되고, 얼굴이 얼마나 예쁘고, 학교는 어디 나왔고, 집안 배경은 얼마나 좋은지, 열쇠는 몇 개나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이런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섬김의 내면성이었습니다. 낯선 나그네에게도 자비를 베풀 뿐 아니라 말 못하는 짐승에게도 은혜를 베풀 만큼 품성이 곱고 사랑이 풍성한 여인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야 천하 만민을 품고 섬기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로서 사라의 뒤를 이어 계승역사를 섬길 것이 아닙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무엇을 결혼의 조건으로 봅니까? 외모를 중요시 여깁니다. 외적인 타이틀과 경제적 요건을 중요시합니다. 특히 feeling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feel이 꽂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feel만큼 헷갈리고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것이 feeling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 내면 깊은 곳 속에 감춰진 성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섬기는 마인드, 이것이 숨은 보배요 진주입니다. 잠언31:30절에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여인, 영적인 것을 귀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길 줄 아는 여인, 그런 사람이 최고의 신부감입니다.
종교개혁가 루터의 아내는 원래 수녀였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수도원에 있는 수녀들을 다 중매해 결혼시켰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 루터의 아내가 된 폰 보라였습니다. 외모가 안 받쳐 주니 아무도 결혼하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록에 보면, 그녀는 길다란 얼굴에 툭 튀어 나온 이마, 불품 없이 긴 코, 고집이 세 보이는 완고한 턱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비호감의 얼굴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루터가 결혼해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 폰 보라가 정말 숨은 진주였습니다. 루터의 수도원에는 방이 40개나 있었는데 항상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섬기는 일을 폰 보라가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루터는 또 잔병이 많았습니다. 통풍, 불면증, 치질, 변비, 결석, 현기증, 이명증 등 병주머니요 종합병원이었습니다. 그런 루터를 식이요법과 약초 마사지로 끈기 있게 간호한 사람이 폰 보라였습니다. 결정적으로 폰 보라는 기도의 여인이요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한번은 루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해 의기소침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폰 보라가 까만 소복을 입고 울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루터가 물었을 때 ‘내 남편 루터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아니 당신 남편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무슨 말이냐 물으니 내 남편 루터의 영이 죽어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루터가 크게 회개하고 열심히 기도해서 내면에 두려움과 영적 침체를 극복해 냈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처럼 영적이고 섬김이 풍성한 폰 보라를 깊이 사랑하고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후에 자신에게 프랑스나 베니스를 준다 해도 폰 보라와 바꾸지 않겠다 했다고 합니다. 결혼대상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은 외적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영성과 섬김의 내면성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15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종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나타났습니다. 그 소녀는 아브라함의 친척 브두엘의 딸로서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처녀였습니다. 종이 다가가 물 좀 달라고 하자 “네, 여기 있습니다”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기쁨으로 물을 주었습니다. 또 말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낙타에게도 물을 마시게 하겠다며 급히 물동이를 들고 우물을 왔다갔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낙타는 물을 많이 마십니다. 한 마리가 약 70리터를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낙타가 10마리나 있으니 700리터의 물을 길은 것입니다. 얼마나 부지런하고 헌신적입니까? 아브라함의 종은 묵묵히 이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정확하게 신부감을 예비하시고 평탄하게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머리를 숙여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그는 마음에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여인이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했고 하나님이 기도대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확신이 든 것입니다. 이제 리브가의 집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합니다. 리브가의 집에서는 중매쟁이가 왔다고 성심껏 대접했습니다. 맛있는 떡, 계란말이, 부침개, 우유, 버터, 치즈, 양고기 등등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렸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어떻게 말합니까?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종은 700km(부산~평양 거리)를 여행했기 때문에 심히 배가 고프고 피곤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적합한 자를 만나게 하셨기 때문에 이제 여유를 가지고 마음껏 먹고 쉬면서 천천히 일을 진행시켜도 됩니다. 그러나 그는 맡은 바 사명감이 투철한 종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종입니까? 그는 자신을 아브라함의 종이라고 소개합니다. 먼저 자신의 주인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고 노년에 어떻게 아들을 얻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자신이 주인의 명을 받들어 신부감을 구하러 왔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대로 기가 막히게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성경에 이처럼 자세히 기록했다면 실제로는 얼마나 더 자세하게 이야기했겠습니까? 아마 그의 말이 끝나고 났을 때는 음식이 다 식어 기름이 엉기고 딱딱하게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먹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감격적으로 간증을 했던지 듣고 있던 리브가의 집안사람들이 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50,5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중매쟁이가 감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인물이 어느 정도 되는지, 최진혁을 닮았는지, 이승기를 닮았는지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 물어 볼만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합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가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를 데리고 가시오.”
리브가의 가정도 얼마나 영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입니까? 이 가정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삭의 가정이나 리브가의 가정 모두 자신들의 뜻과 욕심을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앞세웠습니다. 정말 기도한대로 하나님이 앞서가셔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정확하게 인도하신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III. 믿음의 사람 이삭과 리브가 (57-67)
또한 본문의 결혼역사는 리브가와 이삭의 순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57,5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막상 부모가 승낙했지만 당사자가 노하면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어떻게 대답합니까? “Yes, I will go. 가겠나이다.” 리브가는 주저없이 ‘Yes’ 라고 대답했습니다. 리브가는 신랑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스쳐지나가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뭘 믿고 순종했을까요? 어떤 사람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는 말에, 또 아브라함의 집안이 거부라는 말에 순종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농담이고,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을 통해 이삭의 가정이 하나님께 택함 받은 가정이요, 믿음의 가정이라는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부름 받은 가정이라는 사실에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쓰임 받고자하는 소원이 있었기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이삭은 또 어떻습니까? 6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삭이 저물매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여기서 묵상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이삭은 자신의 결혼문제를 놓고 아버지와 종이 나서서 다 해버린다고 반발하거나 가나안 여인과 연애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영성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알고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모리아 산에서 자신을 번제물로 올려놓았을 때도 묵묵히 순종했는데 결혼을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순교는 할 수 있어도 결혼은 내 뜻대로 할랍니다.” 자기 고집과 생각을 굽히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잠언19:14에 보면,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했습니다. 물질은 부모에게 상속하고 경력은 자기 노력으로 쌓을 수 있어도 좋은 배우자는 자기 뜻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합니다. 이삭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들에서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종이 어디서 이상한 여자를 데려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67절에 보면,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아내를 삼고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장례 후에 위로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를 여의고 힘든 가운데 있었는데 리브가는 그 자리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이삭에게 모든 면에서 사랑스럽고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 모두 자기 꿈과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때 양가 부모는 물론이요, 당사자에게도 큰 기쁨이 되는 best의 배우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결혼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해야만 합니다. 나의 감정과 정욕에 기초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결혼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합당한 배우자를 순조롭게 만나게 해 주시도록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묵묵히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 때는 주저 없이 “가겠나이다”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 가정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풍성한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 여러 민족의 어머니, 천만인의 어머니로 귀하게 인류구속역사에 쓰십니다. 원수의 성문을 얻는 생명구원역사에 그 가정이 큰 대들보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 가운데 순종하는 결혼은 참 아름답습니다. 창세기2장에서도 하나님이 주관하신 결혼은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아름답고 복된 결혼이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믿음의 결혼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졌기에 너무나 아름답고 축복된 결혼이었습니다. 저희 가운데도 이처럼 귀한 믿음의 가정들이 많이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섬세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쓰시기 위해 믿음의 배우자를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섬세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결혼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필요를 잘 아시고 공급해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믿음의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