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타임지 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반온스의 금
7세기경 지금의 시리아지방에서 기독교인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지불했어야 하는 금액이다. 지난 이월경 북시리아에 라카라는 곳에서도 똑같은 조건이 제시 되었다. 이번에는 $650 이었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남아있는 소수의 교인들에게 지불할 것을 촉구했다. “그들은 우리를 말로서 공포에 사로잡히게 한다. 그들은 나의 종교를 경멸하며 거짓된 것으로 여긴다.”라고 한 교인은 말한다.
이라크의 사담이나 이집트의 무바라크 그리고 시리아의 아싸드는 비교적 기독교인들을 보호하는 입장이었는데 혁명이나 전쟁을 통해 사정이 바뀌면서 기독교인들은 수니파와 그외의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들로 부터 끊임없는 폭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
새로운 출애굽
1914년에 중동인구의 25%이던 기독교인이 이제는 5%로 줄었다. 지금 현재 120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다시 2020년경에는 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시리아에서는 ¼이 이미 탈출을 했고 이집트에서는 2011 혁명이후 93000명이 도망을 했다.
악마와의 타협
지난 7월 3일 이집트에서 알씨씨 장군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르시를 축출한다고 선언했을때 그의 옆에는 이집트 기독교 교황이 옆에 서있었다. 알씨씨를 구세주와 같이도 환영을 했지만 수일내로 이슬람 주의자들의 분노가 63개의 교회를 파괴했고 기독교계의 고아원이 습격을 받았으며 한 결혼잔치도 총격으로 4명이 죽었다. 단기적인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했던 선택이 올바른 역사의 반대편으로 가는 결과가 되었던 셈이다. 무싸라는 크리스챤 언론인은 말한다. “우리의 힘은 오로지 기독교인이건 이슬람교인이건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상태에서만 나온다.’
역사의 파괴
기독교인이 중동에 살아남을 길은 세속적인 정부가 들어설 경우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이 독재자이냐 아니면 이슬람 신정국가이냐가 되면 설 땅이 없어지게 된다. 이집트에서는 아직 크리스챤들이 모든 약자들의 편에 서고 올바른 민권을 선택할 기회가 남아있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듯 보인다. 어떤 예수회 수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압박 받고 짓밟히며 가난에 찌든 민중의 편에 서지 않는다면 100년후에 이 중동지방에 기독교인이 남아 있을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P.S. 기독교의 역사는 정의와 부정의를 반복한 역사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16세기에 독일에서 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당연히 도와줄줄 알았던 저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오히려 무참히 처형하는 영주의 편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지금의 프란시스 교황도 아르헨티나에서 독재정권이 무자비한 탄합을 할때 보다 적극적으로 약자의 편을 못들어 준것을 뼈아프게 후회한답니다.
우리가 죄없이 죽어간 아이들을 대변하고, 비겁하게 자신의 목숨을 구하여 진정으로 죽어버린 선장을 추궁하며,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는 것도 한번 죽는 것도 한번입니다. 나 자신에게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비겁한 두번의 죽음보다는 정직한 한번의 죽음을 택할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04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