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1권 3-653 술회述懷 65 등하燈下 등잔 아래에서
1
등하다성인燈下茶聲咽 등 아래에서 차 끓는 소리 나는데
성성좌사주惺惺坐似株 똑똑히 앉았으니 나무그루와 같다.
차신여환말此身如幻沫 이 몸은 물거품과 같은데
차영경도호此影竟塗糊 이 그림자 끝내 멍청하여라.
야설고창랭夜雪敲窓冷 밤눈이 창을 두드려 냉랭한데
산운멱지무山雲冪地無 산 구름은 땅에 덮여 없어진다.
화명여신락花明餘燼落 꽃 밝더니 남은 불꽃이 떨어지고
돌난권구유堗暖卷氍毹 구들〔堗〕따뜻하여 담요[담욕毯褥]를 걷는다.
등잔 밑 화로엔 찻물 끓는 소리
나무그루터기처럼 꼼짝 않고 정좌하네.
몸뚱이는 원래 덧없이 사라지는 것
등잔아래 이 그림자도 끝내는 흐지부지 사라지고.
밤중에 눈이 내려 차갑게 창문을 때리고
산에서 구름이 일어 온 땅을 덮고 지워버리네.
등잔불을 끄자 심지불똥이 깜빡거려 꽃잎을 비추고
방구들이 뜨끈하여 담요를 걷어찬다네.
►다성茶聲 차를 끓일 때 나는 소리.
►‘목구멍 인, 삼킬 연, 목멜 열咽’ 목메어 욺. 목구멍. 목
►‘깨달을 성惺’ 깨달음, 고요함
►환말幻沫 허깨비와 물거품. 모든 실체實體가 덧없음을 이름
►‘마침내 경竟’ 끝. 마침내
►도호塗糊 호도糊塗. 흐지부지 덮어버림
►‘덮을 멱羃’ 덮다. 뒤집어쓰다
►‘불탄 끝 신燼’ 깜부기불(타다 남은 불꽃). 불똥
►‘굴뚝 돌堗’ 방구들. 굴뚝
►구유氍毹 털로 짠 융단(絨緞). 담요
2
남사승래후南寺僧來後 남쪽 절의 스님 온 뒤에
동산월상초東山月上初 동쪽 산의 저 달은 오르기 시작했네.
한심다방광閑心多放曠 한가한 마음 방탕하고 허술함 많은데
정의사거저靜意似蘧篨 고요한 뜻 병신과도 비슷하여라.
적설명림박積雪明林薄 쌓인 눈은 수풀까지 환히 비치고
한풍입장소寒風入帳疎 찬바람 휘장 안에 들어와서 엷어졌다.
가정상계영可庭霜桂影 뜰에 비친 서리 맞은 계수나무 그림자
분여이위거分與爾爲居 그대에게 나누어 주어 살게 하리라.
남사에서 스님이 찾아온 뒤에
동산에서 달이 뜨기는 처음이라네.
마음이 여유로워 거리낄 것 없고
차분히 안정을 찾으려 하나 내 마음 새가슴 같아 오만하기만 하네.
흰 눈이 쌓여 숲속이 희끄무레하고
찬바람은 장막 안으로 들이치네.
뜨락에는 서리 맞은 월계나무 그림자
그대 사는 곳에도 이런 정취를 나눠주고 싶다네.
►남사南寺 본산사찰本山寺刹아래의 말사末寺 가운에 하나
►방광放曠 언행에 거리낌이 없음
►정의靜意 마음의 안정. 정신적인 평화.
►거저籧篨 오만한 사람.
籧篨는 ‘새가슴’이란 뜻으로 몸을 굽히지 못하여 오만하게 고개를 뻣뻣이 든 사람.
‘패랭이꽃 거, 패랭이꽃 구蘧’ 패랭이꽃. 형태가 있는 모양
‘대자리 저篨’ 대자리. 새가슴
►‘소통할 소疏’ 소통疏通. 성기다
등잔 아래서
1
燈下茶聲咽 등 아래 차 따리는 소리
惺惺坐似株 말갛게 앉으니 나무 그루터기 같아
是身如幻沫 이 몸은 물거품 같고
此影竟塗糊 이 그림자는 끝내 멍청하구나
夜雪敲窓冷 밤눈이 차갑게 창문을 두드리고
山雲羃地無 산 구름은 땅을 덮어 없어지는구나
花明餘燼落 불꽃 밝더니 남은 재 떨어지고
堗暖卷氍毹 구둘 따뜻하여 담요를 걷어 부친다
2
南寺僧來後 남쪽 절에서 스님 온 뒤로
東山月上初 동산의 달이 떠오르기 처음이라
閑心多放曠 한가한 마음 자주 방탕 허술하여
靜意似籧篨 고요한 생각, 천상바라기 같아라
積雪明林薄 쌓인 눈은 나무숲 엷게 밝히고
寒風入帳疏 차가운 바람 성글게 휘장에 분다
可庭霜桂影 뜰에 서리 맞은 계수나무 그림자
分與爾爲居 그대에게 나누어 주어 살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