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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본다
» 일반인의 뇌(좌측)와 아인슈타인의 뇌(우측)를 비교한 그림. 빨간선이 후중심선, 녹색선이 실비우스열을 나타낸다. 출처/각주 [3]
아인슈타인 뇌의 여행 -3
하비는 1995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샌드라 위틀슨(Sandra Witelson) 교수에게 손으로 쓴 팩스 한 장을 보낸다.[1] 내용은 간단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뇌를 연구하고 싶나요?” 위틀슨 교수가 비록 아인슈타인의 뇌를 요청한 적은 없었지만, 매력적인 제안을 거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 역시 하비에게 짧은 답장을 팩스로 보냈다. “네.”
하비가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심을 보인 여러 학자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위틀슨 교수에게 연락했던 이유는 그의 ‘뇌 은행(brain bank)’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인지 기능과 건강 상태에 관한 정보가 일일이 담겨 있는 많은 뇌를 가지고 대규모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비는 여전히 천재 뇌의 비밀에 목말라 있었다. 그는 우물을 찾는 마음으로 낡은 자가용에 아인슈타인의 뇌가 담겨 있는 병을 싣고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연구 결과는 1999년 의학계의 유명 학술지인 <랜싯(The Lancet)>에 실렸다.[2] 당연히 하비도 논문에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연구진은 평균 지능지수(IQ)가 116인 남성 35명 및 여성 56명의 뇌를 아인슈타인의 뇌와 비교했다. 현미경으로 뇌의 조직을 비교했던 이전 연구들과 달리 위틀슨 교수의 연구는 뇌의 형태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다시 말해 이번에는 천재의 뇌 속이 아니라 겉이 살펴진 것이었다.
»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던 1921년의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연구진은 아인슈타인 뇌에서 몇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이를 살피기에 앞서 뇌의 구조를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인간의 뇌를 옆에서 보면 앞부분인 전두엽과 윗부분인 두정엽을 아래쪽의 측두엽과 나누면서 뻗어져 있는 실비우스열(Sylvian fissure)이란 큰 고랑이 있다. 또한 두정엽의 앞부분에는 위아래로 뻗어져 있는 후중심선(postcentral sulcus)이 위치한다. 일반적으로는 후중심선이 실비우스열의 뒷부분보다 앞에 존재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뇌에서는 실비우스열이 곧장 후중심선과 이어져 있었다. 즉 그의 뇌에서는 실비우스열의 뒷부분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더 앞쪽에 있었다. 또한 그의 뇌 무게는 1,230 그램으로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지만, 두정엽은 일반인보다 오히려 15 퍼센트 더 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그의 뇌에서는 두정엽의 아래 부분인 하두정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이 더욱 커져 있었다.[3] (맨위 그림 참조).
하두정소엽은 뇌로 들어온 시각, 청각, 체성감각(예. 촉감, 온도, 통증)이 서로 연합하는 곳으로 시공간 인지 기능과 수학적 사고 등을 담당한다. 연구진은 보통 사람과 구별되는 아인슈타인의 뛰어난 지능과 과학적 영감이 바로 크게 발달한 하두정소엽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독일의 천재 수학자 가우스(Gauss)의 뇌도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4] 이전의 연구들과 달리 비교군의 통제가 잘 이뤄진 이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한 논문 중 가장 많이 학계에서 언급되었다. 또한 천재성의 비밀이 밝혀졌다며 당연히 많은 언론이 앞다투어 소개했다.
서로 다른 관찰과 해석, 제 눈에 안경?
6개월 뒤 미국의 알버트 갈라버다(Albert Galaburda) 교수는 <랜싯(Lancet)>에 위틀슨 교수의 논문에 대해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5] 그가 보기에는 아인슈타인의 우측 뇌에서 실비우스열의 뒷부분이 끊기지 않은 채 올라가고 있었고, 좌측 뇌에서 위틀슨 교수가 발견하지 못했던 두정덮개(parietal operculum)라는 작은 주름이 ‘자신의 눈’에는 명확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그는 아인슈타인 뇌의 형태가 위틀슨 교수의 주장과 달리 흔한 편이라고 주장했다.
갈라버다 교수의 의견에 대해 위틀슨 교수는 자세한 해부학적 설명으로 응답했다. 그리고 갈라버다 교수가 좌측 두정덮개라고 생각하는 곳은 후중심회(postcentral gyrus)를 잘못 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위틀슨 교수의 자료를 다시 살핀 포크(Falk) 교수의 2009년 논문[6]에 따르면, 갈라버다 교수의 손을 들어줘야 할 듯 싶다.
아인슈타인 뇌에 대한 형태학적 논쟁은 신경해부학 영역에서 단순해 보이는 내용조차 의견 일치에 이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7] 갈라버다 교수가 언급했듯이 두정엽을 포함한 인간의 뇌는 많은 주름을 갖고 있고, 밖으로 솟아오른 부분인 회(回; gyrus)와 안으로 접혀 들어간 부분인 구(溝; sulcus)가 다양한 형태를 띄기 때문에 육안으로 접근하고 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 미의 주관성을 표현한 영어 속담을 조금 비틀어 이런 상황을 표현해 보면, ‘뇌는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Brain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라고 할 수 있겠다.
» 2012 런던 하계 올림픽 공식 로고. 출처/ Wikimedia commons 한 예로 2012년 영국 하계 올림픽 로고를 떠 올려보자.[8] 당시 이란은 로고를 변경하지 않으면 올림픽 참가를 거부하겠다면서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로고가 성경에서 예루살렘을 뜻하는 ‘시온(Zion)’이라는 단어를 표현하고 있고, 그 배경에는 친이스라엘 음모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란의 주장이었다. 정말 로고에 인류 화합을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할 수도 있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었을까?
사실 런던 올림픽 로고는 올림픽이 열린 해였던 “2012”를 상징했다. 이란 측의 주장을 최대한 반영해 로고를 살펴보면 2를 Z로, 1을 I로, 0을 O로 볼 수도 있겠지만, N은 아무리 봐도 무리인 듯싶다. 오히려 로고가 독일 나치당의 만(卍) 무늬 혹은 남녀의 성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일각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적 마음에 안 들던 친구에게 회심의 일격으로 ‘똥침’을 날렸던 장면이 떠 오르지만.
이처럼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을 갖고 있다. 동기가 시지각(視知覺; visual perception)에 끼치는 영향을 살핀 연구에서 드러났듯이, 우리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 내면의 주관적 동기에 따라 이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9] 혹 위틀슨 교수 역시 아인슈타인 뇌의 복잡한 형태를 살필 때 천재성을 확인하고 싶은 내면의 바람이 해부학적 해석에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인슈타인 뇌의 여행 -4
1997년 당시 뉴저지 주에 살던 하비는 자신을 찾아온 마이클 패터니티(Michael Paterniti)라는 이름의 작가를 만났다.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하던 젊은 작가와 오랫동안 보관해 온 아인슈타인의 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던 늙은 의사는 이내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몇몇 과학자들, 친구들, 그리고 천재의 손녀 에블린 아인슈타인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두 남자는 2월 17일 아인슈타인의 뇌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원통형 가방에 담아 자동차에 싣고 미국 대륙을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여정의 발걸음을 내디뎠다.[10]
기묘한 조합의 두 남자는 여행의 중간중간 아인슈타인의 흔적이 깃든 곳을 들른 뒤 최종 목적지였던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에블린의 집에 2월 27일에 도착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뇌의 소유자였던 아인슈타인의 손녀와의 만남이기 때문이었을까? 자리에 앉으라는 에블린의 권유를 네 번이나 받을 정도로 하비는 어색하고 엉거주춤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뇌를 꺼내 설명할 때만 잠깐 활기를 띠었을 뿐 한 시간 반 만에 만남을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 근처에 사는 자신의 사촌과의 만남이 이유였다.
에블린의 집을 떠나면서 하비는 여행 기간 내내, 아니 그의 인생 내내 품고 있었던 아인슈타인의 뇌를 챙기지 않았다. 임의로 소유했던 아인슈타인의 뇌를 유족에게 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반환이 목적이었다면 11일간의 여행 대신 우체국 소포를 선택하는 편이 더 쉽고 빨랐을 것이다. 어쩌면 하비는 자유로워지길 원했을 지 모른다. 아인슈타인의 뇌를 소유한 대가로 직장, 경력, 결혼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호언장담과 달리 천재성의 비밀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재의 뇌는 하비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아니라 저주받은 유물에 지나지 않았다.[11]
하지만 에블린 역시 원하지 않았기에 아인슈타인의 뇌는 다시 하비에게 돌아왔다. 결국 이듬해인 1998년 하비는 40년 넘게 갖고 있었던 아인슈타인의 뇌를 과거 근무했던 프린스턴 대학병원에 기증했다(일부 자료에서는 몇 년 뒤인 2000년 초반에 기증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뇌를 건넨 후 집에 돌아오던 그의 심정은 말 그대로 ‘시원섭섭’하지 않았을까? 이후 그의 행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아인슈타인 서거 50주기인 2005년에는 몇몇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던 그는 2007년 숨을 거두었다.
하비의 죽음으로 아인슈타인 뇌의 연구는 막을 내린 듯 했다. 2009년에 포크 교수가 바이올린 연주에 능했던 아인슈타인의 음악적 재능을 설명할 수 있는 뇌 구조물을 규명했지만[6], 이 연구는 위틀슨 교수의 기존 자료를 다시 살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꺼져가나 싶던 관련 연구의 불길은 2010년 다시 타올랐다. 하비의 유족들이 아인슈타인 뇌의 미공개 사진과 표본을 국립의료박물관(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에 기증했기 때문이었다. 천재의 뇌 비밀을 추적하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 아인슈타인의 우측 뇌의 후중심회(postcentral gyrus)에서 두드러진 동그란 손잡이(knob) 모양의 구조물(K;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부분). 여러 연구에서 유사한 구조물이 음악적인 재능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각주[6],변형
새롭게 발견된 천재성의 비밀
2013년 미국의 포크 교수는 새롭게 공개된 사진 14장을 바탕으로 아인슈타인의 뇌를 살핀 결과를 발표했다.[12] 대부분의 사진들이 흔하지 않은 각도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그는 과거의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던 뇌 구조물들을 찾을 수 있었다. 85명의 일반인 뇌 사진과 비교를 해봤더니 아인슈타인의 뇌는 이전의 연구에서 많이 언급되었던 두정엽 외에도 전두엽(frontal lobe)과 후두엽(occipital lobe)의 여러 영역에서 주름이 많고 굴곡이 복잡하게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 다양한 각도에서 새롭게 분석이 이뤄진 아인슈타인의 뇌. 일반인의 뇌와 비교해 두드러지는 부분들은 노란색으로 표시됐다. 출처/각주[12]
뇌의 앞부분에서는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졌다. 전전두피질은 정보의 조직화, 집중의 유지, 작업 기억 등과 같은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에 관여하는 곳이다. 연구진은 이 곳이 많이 접혀 있는 특징 덕분에 아인슈타인이 한 줄기 빛을 타고 여행하거나 우주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s)’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론했다. 아울러 뇌의 뒷부분에 위치하는 시각 피질(visual cortex)의 안쪽 면에 발달한 많은 주름과 굴곡 역시 이런 능력에 기여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음 해인 2014년 포크 교수는 중국의 연구진과 함께 한 아인슈타인의 뇌에서 또 다른 특징을 찾아냈다.[13] 이들이 주목했던 것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corpus callosum)이란 구조물이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뇌량을 두 대조군 집단의 뇌량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 집단은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나이와 비슷한 평균 74세의 15명의 남성 노인들이었고, 다른 집단은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 브라운운동, 특수 상대성이론, 질량-에너지 동등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나이와 같은 평균 26세의 젊은 남성들이었다.
» 뇌량의 해부학적인 위치(빨간색 부분). 우측: 뇌량이 관찰되는 아인슈타인 뇌의 내측 사진. 출처/Wikimedia Commons & [13],변형
연구 결과, 아인슈타인의 뇌량은 노인 집단의 뇌량에 비해 두께, 길이 등 비교 항목 10개 중 9개의 항목에서 큰 것으로 나타났고, 젊은 집단과의 비교에서는 6개 항목에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아인슈타인의 뇌량이 두꺼운 것을 양쪽 반구(hemisphere)의 특정 영역 사이의 연결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것으로 해석했다. 아인슈타인 뇌의 이런 특징은 그의 천재성, 즉 뛰어난 지능뿐만 아니라 특별한 시공간 기술과 수학적인 재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천재가 괜히 천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뇌라는 신화
아인슈타인의 뇌에 관한 최근의 연구들은 이전의 연구들보다 정교하게 설계된 만큼 더 객관적인 결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뇌에 대한 신경과학적 신화(Neuromythology of Einstein’s brain)”라는 제목의 논문[7]에 따르면 답변은 안타깝게도 회의적이다. 논문의 저자 하인즈(Hines) 교수는 이전에도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을 밝힌 처음으로 밝힌 다이아몬드 교수의 1985년도 논문을 “심각한 결함이 있어 연구의 결론을 수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14]
하인즈 교수가 지적한 첫 번째 문제점은 ‘시간의 전후 관계를 인과 관계로 착각한 추론(post hoc ergo propter hoc reasoning)’이다. 아인슈타인은 생전에 자신의 사고는 심상(image)과 감정을 포함하고, 시각뿐만 아니라 근육도 포함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인슈타인 뇌의 특정 영역이 남다르게 확장되었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이는 시간 상 앞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를 원인으로 규정짓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트콤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에서 ‘논리적인’ 쉘든이 이미 이런 추론의 ‘비논리성’을 지적하지 않았던가.
[빅뱅 이론 시즌 3의 1화의 시작 장면. 아래 '쉘든의 대사' 참조.]
쉘든: 안녕, 엄마. 아니요. 집에 도착하면 전화한다고 말했잖아요. 아직 집 아니에요. 네. 이제 집이에요. 북극 여행은 놀랄 정도로 성공적이었어요. 미래에 노벨상을 받을 거라고 거의 확신해요. 아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되지. 완전히 확신해요. 아니요. 엄마 교회의 기도 모임에서 제 안전을 위해 기도한 건 느끼지 못했어요. 제가 집에 안전하게 왔다는 사실이 기도가 효과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지는 못해요. 그건 ‘인과 설정의 오류’에요. 아니요. 에스키모 말로 말대꾸하는 것 아니에요.
하인즈 교수가 언급한 다른 문제점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주관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자들이 갖고 있던 ‘천재의 뇌는 뭔가 다를 것이다’란 바람이 자연스럽게 이를 확인하는 방향으로 이들을 이끌었던 것이다.
한 예로 뇌의 좌측 상하 전두회(superior and inferior frontal gyri)를 들 수 있다. 포크 교수는 2012년 논문에서 아인슈타인 뇌에서 확장된 이 영역들이 천재성을 설명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이 영역들은 2개 국어 구사자(bilingual)의 뇌에서도 발달하는 곳이다.[15] 주지하다시피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숨을 거둔 아인슈타인은 양쪽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2개 국어 구사 등의 다른 가능성은 배제한 채 아인슈타인 뇌의 특별한 점을 천재성과만 연결하려는 시도는 결국 주관성의 함정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적이 있다. 수 많은 로마인 중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유일하게 두 권에 걸쳐 묘사되는데, 로마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의 천재성을 고려하면 이런 배려(?)는 당연해 보인다. 그가 천재였던 이유를 그 자신의 문장으로 표현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 밖에는 보지 못하는’ 반면에 그는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오래 전 천재가 남긴 문장은 또 다른 천재 아인슈타인의 뇌를 둘러싼 이야기와 관련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의 연구자들이 비록 객관성의 함몰이란 이전 연구의 장애물을 극복하고자 보다 많은 대조군을 선정하고 정교한 통계 방법을 사용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인간의 기대 심리를 넘어서지는 못한 한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애초에 비교해야 할 천재의 뇌가 단 한 개라는 근본적인 약점 자체는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어쩌면 아인슈타인의 뇌를 보존한, 이 모든 상황의 시발점인 토마스 하비야말로 객관성의 결여와 기대 심리의 충족이란 굴레의 첫 희생양이지 않을까? 자신의 주관적 욕심에 고인의 뜻을 반하는 행동을 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뇌를 연구할 만한 객관적인 능력이 없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뇌를 맥주 냉각기 밑에 보관하고, 집 안 부엌에서 칼로 썰어 방문객에게 건네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다니는 등 전문가답지 못한 행동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인슈타인의 뇌에 매달리며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딴 책을 읽고, 학원에 가고, 우유를 마시며 우리 역시 사실은 천재가 되고 싶은 마음에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자신을 숭배하려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위해 조용한 장례와 화장을 원했던 그는 정작 이런 식으로 자신이 소비되는 것을 기뻐할 것 같지 않다. 비록 아무 때든 그의 뇌를 무터 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고 단돈 10달러면 디지털화된 형태로 다운받을 수 있는 것[16]이 현실이지만, 이제는 일반인이든 연구자든 주관적인 관심을 접고 아인슈타인의 뇌에게 진정한 자유를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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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로운 글을 잘 보고 갑니다.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