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집을 만들 땐, 설계도가 필요없다. 집짓기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눈대중으로 가늠하여 나무를 자르고 못질하면 그만이다. 주택을 지으려면 설계도는 필수다. 설계도 없이는 건축허가가 나지 않는 까닭이다. 수십 년, 길게는 백 년도 넘게 갈 건물은 꼼꼼한 설계가 필수다. 다복한 가족이 머물고 안락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주방이며, 방, 욕실과 베란다까지 꼼꼼하게 설계해야 한다. 건물이란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다. 건물의 기초골조가 중요한 것 만큼, 설계에 에너지를 쏟고 비용을 들여야 한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일회의 인생, 한 번 주어진 삶이다. 뭐, 대충 살아갈 수도 있다.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자 책임이고 몫이다. 인생도 지어져가는 일이다. 해서 설계없이 막가는 인생은 허비하기 쉬운 법. 쓸 데 없는 관심과 주변의 요구들에 번잡하게 이끌리다 보면, 어느새 인생은 잡다히 소비되고 의미없이 망실되기 쉬운 법이다. 자신의 고유한 인생을 살지 않는다면, 홍수의 부유물 처럼 떠도는 인생이 되기 쉽다. 고유한 인생을 지어가는 일은 설계가 있어야 하고, 방향이 잡혀야 하는 법이다. 심장을 뛰기 시작하면 멈출 때가지 쉬지 않는다.
여섯번째 시간이다. 아이들과 정이 들어간다. 일주일에 한 번,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책을 나누고 생각과 삶을 나누는 일은 내게도 보람있는 시간이다. 오늘 부터 몇 주간은 아이들의 꿈과 비전, 구체적인 인생 로드맵을 고민하도록 만들려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보다 구체적인 설계도를 쥐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오늘은 두 가지 작업을 했다. 하나는 무덤에 새겨질 글귀다. 가족과 친구, 이웃이 나의 인생에 대해서 뭐라 불러주면 좋을지 써도록 했다. 제일 어린 친구의 비문에는 "ㅇㅇ에 미친 남자, 이곳에 잠들다."라고 적었다. 제일 나이 많은 친구는 "파도를 사랑했던 남자, 이곳에 잠들다." 사실 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의 가치 아니겠는가? 직업은 바뀌지만 삶의 목적과 소명은 바뀌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다른 하나는, 30년 뒤에 자신의 모습을 스케치 하는 작업이다. 시간이 다소 걸렸다. 장난끼 있는 녀석은 대충 우스개로 꿈을 이야기한다. 소심하고 현실적인 친구는 용접사가 될 것이라 말한다. 술집을 차릴 것이라는 친구로부터 헤어디자이너와 모델, 서퍼와 석유왕까지 갖가지다. 글로 쓰게하고 그림까지 미래의 자신의 모습까지 그리게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그려진 그림에 담겨진 장면을 설명하도록 했고,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박수로 마무리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꿈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를 했지만, 좀 더 야물게 다듬어야 한다. 단단하고 구체적인 로드맵과 지도를 손에 쥘 때까지, 당분간 작업을 이어가야 할 듯 하다. 소극적이고 관심이 적으면 그만큼 효과도 떨어질 일인데, 한 두 명이라도 인생을 사랑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면 보람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끝 날 시간 즈음, 창 밖에는 번개로 번쩍거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폭우가 쏟아질 모양이다.
오늘 새로 들어온 신입이 있어 정선생님께서 치킨을 쏘셨다. 그것도 제일 맛나다고 소문난 '교촌치킨'을. 쉼터에 머무는 동안 아이들은 따뜻한 교감과 정서를 배워나간다. 관계를 배울 뿐 아니라, 꿈도 삶에 대한 의미도 쥐고 나갔으면 하는 소망도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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