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이 사다준 영화관 티켓이 일주일도 넘게 방에서 굴러다니고 있더니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집사람이 저녁 퇴근 후에 영화를 함께 보러 가자한다. 집사람이 선택한 영화는 <써니>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별 줄거리도 없는 것이 그냥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깔깔댄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과속 스캔들>의 몇 장면이 연상되었는데 역시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과속 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야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별것도 아닌 일상을 참 재미있게 얘기를 이끌어나가는 재주가 있는 감독이다.
현실은 누구나 항상 허덕이고 힘들 뿐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칠 공주 역시 그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여기에서 이 영화는 관중과 기본적 공감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고서 누구에게나 꿈 많고 찬란했을 여고시절로 되돌아가게 만들 때 우리 모두는 판타지의 마법에 걸려 공중 부양되는 최면에 걸려들게 마련이다.
영화 전편을 통해 수많은 욕이 난무하고, 여고생이 담배피고, 여고생이 술을 먹고, 여고생이 본드를 마시고, 여고생이 주먹을 휘두르고, 여고생이 패싸움을 벌이고, 면도칼로 혹은 술병을 깨서 상대를 위협한다. 이것이 정상인가? 이것이 재미있고 웃을 일인가? 그런데 난 분명히 영화를 보면서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이러한 일탈들이 그만큼 대단치도 않은 흔해빠진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 탓이었을까?
칠 공주 서클인 써니의 리더 춘화(진희경)는 사업에 성공하였지만 암에 걸린 시한부 인생이다. 그녀를 우연하게 만난 범생이 나미(유호정)는 남편의 사업인수 성공으로 부유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듯 보이지만 2% 부족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 나미는 춘화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소식도 모르고 잊혀진 채 살았던 다른 써니의 멤버들을 찾아 나서며 영화는 쉴 새 없는 플레시 백이 동원되어 현실과 여고시절을 오간다. 우리 모두도 어쩌면 매일 이러한 추억과 회상을 링거 주사마냥 맞아가며 살아나가고 견뎌나가는 나약한 존재들이 아닌가 모르겠다.
매달 실적을 못 채워서 쩔쩔매며 살아나가고 있는 보험판매원 장미(고수희),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고심하고 있는 욕쟁이 진희(홍진희), 미스코리아 되겠노라 새침 떨던 복희(김선경)는 몸 파는 여자가 되어있고, 금옥(이연경)은 시어머니 눈치 속에서 지지리 궁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고 있고, 예쁘고 신비적 베일에 싸여있던 인물 수지(윤정)는 사고 이후 끝끝내 의문 부호 하나만 남겨둔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이 성공이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일까? 무엇이 참된 것이고 무엇이 거짓된 것일까? 영화는 최악을 통해 순수를 지향하려 애를 쓴 흔적이 역역하다. 심각해야 할 부분에서 웃게 만들고 울게 만든다. 결국에는 백마 탄 왕자는 돈이라는 마지막 도입이 좀 부담스럽지만 그 돈도 순수와 애정이 밑바탕이 되면 용서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기부천사인 것이다. 돈으로 문제는 해결되고 그들 모두는 이제 행복할 수 있는 것일까?
2011.5.30

첫댓글 겉으로 보이는면과, 안보이는면이 같은사람이 어디있겠읍니까 ~~~~? 많은 사람이 보이지않는 사연을 안고 산다는거~ 공감이 가네요....!
복희의 슬픈 현실을 보고 차마 장미가 나서질 못하고 있자 나미가 선뜻 나서며 하는 말 “우리는 친구다.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참 남자들 보다 끈끈한 여자들의 우정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더라고요. 영화 친구에서는 남자 녀석들, 친구의 가슴에 칼을 꽂는데 말입니다. "네가 가라 하와이~"
지상의 여자들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모습을 종합선물세트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냥 가벼운 영화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많은 생각을 하셨네요. 저도 보고싶다는 생각이 막 듭니다.^^
써니가 캐리비언의 해적을 제칠 정도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