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그림 - 민화
등용문(登龍門)
파닥거리는 백성들의 욕망
원래는 도교적 성격이 강한 그림
알고 보면 무서운 그림
“등용문은 팔자와 운명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담긴 그림이다. 잉어가 용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사람도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그럼에도 등용문그림이 유행한 것은 사회가 새로운 세상을 욕망했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사회를 향한 무언의 외침이 담겨있다.”
등용문(登龍門)
등용문은 출세를 뜻한다. ‘등용문’이란 이름의 입시학원이 널려있고, 고시생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치고 ‘등용문’의 뜻을 모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심지어는 ‘등용문’을 의미하는 여러 형태의 그림들을 부적처럼 이부자리에 깔고 자거나 지갑에 넣어 다니는 사람도 많다. ‘등용문’에 관한 그림이나 부적은 한국, 일본, 중국(대만) 같이 입시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유행한다.
출세는 원래 ‘세상에 나간다’라는 뜻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조정, 정부, 관직, 임금의 부름’을 뜻한다. 그러니까 출세는 정부의 관리가 되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출세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특채를 통해 관직을 얻는 ‘음서(蔭敍)제도’와 과거시험제도가 있었다.
선비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다. 조선은 주자성리학이라는 학문을 지배사상으로 건국되고 발전한 나라이다. 그러니까 학문이 곧 정치인 셈이다. 선비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자 문인이고 철학가이며 정치인이다. 이런 선비가 출세를 한다는 것은 학문을 통해 이상적 가치를 구현하는 일이다.
원래는 도교적 성격이 강한 그림
등용문이 출세를 의미하게 된 것은 중국 황하의 거친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잉어의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잉어가 뛰어 오르는 지점에 용문(龍門)이란 이름을 가진 문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과 연관시켜 잉어가 용으로 변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꼭 용문을 그리지 않더라도 잉어를 그리면 비슷한 내용으로 수용했다. 잉어가 뛰어 오른다는 의미의 약리도(躍鯉圖), 연꽃과 함께 그린 연리도(蓮鯉圖)도 모두 등용문 그림의 한 종류이다.
「어변성룡도」는 「등용문」, 「약리도」 따위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거센 물살과 잉어의 표현은 거의 동일하지만 경우에 따라 여의주, 아침 해, 괴석, 모란, 연꽃과 함께 그려진다. 여의주를 그린 것은 용이 된다는 의미이고, 아침 해를 그린 것은 아침 ‘조(朝)’와 정부를 뜻하는 ‘조정(朝廷)’의 ‘조’와 글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출세를 뜻한다. 모란을 함께 그리면 ‘출세를 하여 부귀를 얻는다.’라는 뜻이 된다. 또한 두 송이의 연꽃과 두 마리의 잉어그림은 과거시험인 향시와 전시를 연달아 붙어 관직에 나간다는 의미이다. 초기의 등용문 그림은 고사에 충실했으나 점차 해와 모란, 연꽃이 결합하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주되었다.
등용문 그림의 뿌리는 중국에 있다. 거친 황하의 물살을 헤엄쳐 오르는 잉어의 생태적 특징과 도교적 요소가 결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황하의 거친 물살을 헤치고 올라가는 잉어의 모습은 마치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인간의 삶과 닮았기 때문이다. 실제 잉어가 상상의 동물인 용으로 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냥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런 그림을 붙여놓으면 원하는 출세가 금방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은 정서적 효과를 만들어 내었다. 인간의 욕망이 투영되어 잉어는 졸지에 고관대작이나 부귀영화의 상징이 되는 호사를 누린다.
등용문 그림은 원래 권력과 재물을 모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도교적 성격이 강한 백성들의 그림이었다. 하지만 선비들의 출세 욕망을 숨기고 염치를 살린 수묵화로 그려지기도 했다.
수묵화로 그린 등용문 그림 중에는 잉어와 갈대를 함께 그린 작품도 있다. 등용문 그림에 갑자기 갈대가 등장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참게를 갈대로 묶은 출세그림이 있는데, 화제를 전로(傳蘆)라고 한다. 전로는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왕이 내리는 음식을 뜻하는 전려(傳臚)와 발음이 같다. 그래서 잉어와 갈대를 함께 그려 출세의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연꽃과 잉어를 함께 그린 연리도도 마찬가지이다. 연꽃은 과거시험의 소과와 대과를 연달아 급제하라는 의미이니까 잉어와 결합하면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기를 기원한다는 뜻이 된다.
잉어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그림에 여의주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선비들에게 여의주는 도교적 냄새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여의주 대신 아침해를 그리는 경우도 있었다. 아침해는 한자로 조정(朝廷)을 뜻하고, 조정은 관직을 얻어 정치를 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출세와 잘 맞는다.
아가미 쪽 지느러미를 날개모양으로 변형시켰다. 이런 발상은 잉어가 곧 하늘을 나는 용이 될 것이라는 시각적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주변의 바위나 용문 따위는 모두 생략했다. 오히려 잉어와 여의주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잡다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좋다.
조선시대의 ‘출세’는 관리가 되어 자신의 꿈과 이상을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그림에는 선비의 출세 욕망을 표현한 것이 많다.
‘연화도, 송학도, 백록도, 게와 갈대그림, 쏘가리그림’ 따위는 모두 출세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출세그림이 유행한 이유는 선비들의 출세욕구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관직의 숫자에 비해 선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정된 관직을 놓고 수많은 선비들이 다퉈야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었던 선비들은 출세그림을 마치 주술적 능력을 가진 부적처럼 책갈피에 끼우거나 접어서 옷에 넣고 다니기도 했다.
알고 보면 무서운 그림
하지만 일반백성들의 경우에는 과거시험을 통한 출세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세는 관직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의미로 바뀐다.
또는 백성들의 욕망에 맞게 재해석되기도 한다. 어차피 등용문의 고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기도 했다. 화공은 남자들끼리 모여 있는 곳에 그림을 펼쳐놓고 힘차게 뛰어 오르는 잉어와 아침해를 연결시켜 성적인 내용으로 풀어내었다. 잉어는 굵고 둥글고 아가미가 있기 때문에 남성의 성기와 닮아있다. 또한 건장한 남성이라면 아침에 발기하는 생체적 특징도 있다.
거친 물살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거나 파닥거리는 잉어의 모습을 보며 건장한 사내들은 낄낄거리며 맞장구를 쳤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민화에서 등용문 그림은 왕성한 생식력을 뜻하거나 다산을 의미하는 그림이 되기도 한다.
이것뿐만 아니다. 잉어의 부귀와 눈을 뜨고 자는 생태적 특성이 결합하여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자물쇠의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문자유희에 의해 졸지에 복(福)의 상징이 된 박쥐와 함께 잉어는 장롱과 같은 가구를 장식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된다. 사실 민화에서 원화를 기반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다양하게 변주하는 일은 허다하다. 또한 잉어라는 물고기의 생태적 상징을 이용하거나 다른 요소를 결합하여 복합적인 의미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어떤 민화이론가는 원형으로부터 변형된 것은 모두 무식의 소치이거나 낮은 수준이라고 일갈하지만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이 더욱 문제라고 생각한다. 민화의 원형이 중국에서 왔던 아니면 우리 고유의 전통에 의하든 관계없이 시대의 흐름과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하여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것만이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잉어가 용으로 변하거나 여의주를 들고 세상을 내 마음대로 바꾸는 일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운명이나 팔자를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등용문 그림이 일반백성들에게 널리 유행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꿈은 커진다. 개인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래서 미륵이나 정도령 같은 영웅이나 구세주의 출현을 바란다. 이들이 팍팍한 세상을 살맛나게 바꿔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등용문 그림에서 잉어는 백성이고 용은 영웅의 상징이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는 것은 백성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등용문, 알고 보면 무서운 그림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등용문(登龍門) - 파닥거리는 백성들의 욕망 (민화, 2015.09.07., 역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