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지색 倾国之色 Fatally Beautiful Woman Causing the Downfall of a Country
북쪽에 미인이 있어, 세상에 나오지 않고 홀로 있는데, 한 번 돌아보면 성이 기울고, 다시 돌아보면 나라가 기운다[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음악의 관원인 이연년(李延年)은 한무제 앞에서 이런 노래를 불렀다. 황제 곁에 있던 누이 평양공주가 바로 저 노래를 하는 이연년의 동생 이연(李姸)이 천하미인이라고 알려주었다. 이리하여 창기였던 이연은 황제의 사랑을 받아 이부인이 되었고 여기서 유래한 이야기가 진황후(陳皇后)와의 갈등인 한무지련(漢武之戀)이다. 강대한 국가를 만든 한무제 유철(漢武帝 劉徹, BC 156 - BC 87)과 관련된 미녀에 관한 일화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가 국가가 기울 정도의 미인이라는 경국지색으로 [한서(漢書)] <외척전(外戚傳)>에 전한다.
경국지색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로 더욱 유명해졌다. 원래 당 현종((玄宗, 685 - 762, 재위 712 - 756)은 지혜롭고 영특한 황제였다. 713년에 연호를 개원(開元)으로 고치면서 <개원의 치>를 열었고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그런데 737년 어느날 현종은 양귀비를 보고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본명이 양옥환인 양귀비는 현종의 아들 이모(李瑁)의 아내였고 현종에게는 며느리였지만 황제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이후 현명했던 황제는 여색에 빠져 국사를 돌보지 않았고 국가가 기울 정도의 변란을 당한다. 반면 양귀비의 친척인 양국충(楊國忠)은 승상이 되어 권력을 독점했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 중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가 으뜸이다.
<장한가>에서 백거이는 ‘여산의 궁궐은 높이 솟아 구름 속에 있고, 신선의 음악은 바람타고 들려온다. 부드러운 노래와 느린 춤은 관현악에 어우러지고, 종일 양귀비를 바라보건만 부족하였다(驪宮高處入靑雲, 仙樂風飄處處聞. 緩歌慢舞凝絲竹, 盡日君王看不足).'라고 묘사했다. 이처럼 황제가 미인에게 취하여 국사를 돌보지 않는 사이에 북방의 절도사였던 안록산이 봉기했다. 대장군 안록산은 야심을 가진 인물이었는데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양귀비의 수양아들이 되었고 양귀비는 서역 혼혈인이자 늠름한 안록산을 사랑한다. 뛰어난 장수였던 안록산은 755년 양국충을 타도하겠다는 명목으로 난을 일으켰다. 난을 피해 장안을 떠난 황제 일행이 마외파(馬嵬坡)에 머물고 있을 때(756년) 군사들은 양귀비와 양씨 일족 참수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어쩔 수 없던 현종은 양귀비에게 자결을 명령하자 38세의 양귀비는 역관 옆 나무에 목을 매어 죽었다.
백거이의 <장한가>는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다루었는데, 그 첫번째 문장이 ‘한나라의 황제는 경국의 미녀를 찾았으나(漢皇重色思傾國)’이다. 아울러 ‘구름 같은 머리와 꽃 같은 얼굴과 금장식 흔들릴 때, 부용 휘장 안의 따뜻한 봄밤은 깊었다. 봄의 밤이 짧음을 괴로워하며 해가 떠 일어나니, 이로부터 황제는 아침 조회를 보지 않았다(雲鬢花顔金步搖, 芙蓉帳暖度春宵. 春宵苦短日高起, 從此君王不早朝).’고 서술했다. 천하의 황제가 미녀에게 취해서 국사를 돌보지 않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고 국가는 기울어 갔던 것이다. 한편 양귀비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이백은 <청평조(淸平調)>에서 ‘아름다운 꽃과 경국미인이 서로 기뻐할 때 왕은 미소를 머금고 바라본다(名花傾國兩相歡, 長得郡王帶笑看)’라고 읊었다.
경국지색은 경성지색, 절세미인(絶世美人), 무비일색 (無比一色), 천하일색(天下一色)과 유사한 말이며 전설적인 미녀들을 일컫는다. 가령 물고기가 숨었다는 침어(沈魚) 서시(西施), 기러기가 날다가 땅에 떨어졌다는 낙안(落雁) 왕소군(王昭君), 달도 부끄러워서 구름 속에 숨어 버렸다는 폐월(閉月) 초선(貂嬋),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는 수화(羞花) 양귀비(楊貴妃)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제비와 같이 날씬하다는 조비연(趙飛燕)을 비롯한 수많은 미녀들이 있었으나 대체로 경국지색은 역사적인 사건과 관계있는 경우가 많다. 경국과 반대되는 의미로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평국(平國)이 있으나 평국지색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충북대교수 김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