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교정 39. 공설운동장
어느 날 느닷없이 원동초등학교 운동장엔 보지 못하던 야구부가 연습하고 있었다. 첨보는 코치가 공을 띄우고 망망이로 때리면 선수들이 받는 연습이었다. 땅볼을 고루고루 주기도 하고 공중하이볼을 주기도 했다. 날아오는 공을 막아주는 방탄망도 설치하지 않고 급조한 팀웍이었다. 아마 학교별로 무슨 체육종목 하나씩을 육성하라고 교육청에서 배당됐나보다. 이리 급조된 야구팀은 얼마 되지 않아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시합이 열린다하여 우리 학년전체가 응원하러 줄지어 갔다.
그 팀에는 유성온천에 갔다 나오다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공군으로 간 이상준이 야구부 선발이었고 연세대로 해서 대우로 간 이규현이도, 한일은행으로 간 강병구도 이날 시합에 출전했다. 우리들은 열심히 소리 지르며 응원하였다. 우리 팀이 수비 차례였다. 상대팀이 3루타성 타구를 날렸다. 외야수 이규현이 쫓아가 잡으며 넘어졌다. 우린 모두가 애석해했다. 이규현이가 일어나며 글러브 속에서 흰 공을 꺼내 높이 들었다. 와 - ! 하는 탄성과 환호가 일었다. 이날을 계기로 규현이는 당시 우리들의 스타가 되었다.
공설운동장은 우리들과 인연이 깊었다. 먼저 근수가 공설운동장까지 가져온 아동용 일제 자전거를 뒤에서 붙들고 폐달을 밟도록 밀어주고 균형을 유지하게 잡아주고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에 나를 자전거 운전교육을 이수시켰다. 그리고 본부석 아래 그늘에서 쉬고 있던 전국체전에 나가려 사이클 연습 중인 선수 형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제41회 전국체전이 대전에서 열렸다. 축하행사로 누나들은 하얀 머리띠를 매고 짧은 하얀 스커트 차림에 끈을 매는 하얀 헝겊 덧신을 신고 단체 율동 매스게임(mass game)을 하였다.
청양중학교 배구팀이 네트 앞에서 여러 명이 일시에 뛰어올라 상대팀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혼을 빼놓는 사이에 에이-퀵, 비-퀵(A-quick, B-quick)을 성공시키는 전법을 신기해서 얼이 빠져 구경하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에이-퀵, 비-퀵인지 당연히 몰랐다.
그리고 권투 종목에서 경기가 열리는 사각 링 가까이 서서 생생하게 실감을 느끼며 보았다. 상대의 턱을 향해 날리는 라이트 펀치(right punch)를 얼굴을 돌려 피하는데 휘두르는 라이트 주먹에서 이는 바람소리가 들렸다. 아마 그 주먹에 맞았더라면 쓰러질만한 파워라고 생각됐다.
동생하고 나는 야구장 스탠드에 중간쯤에 앉아 대전고 야구팀의 경기를 보았다. 대전고 투수가 심판에게 눈이 부시다고 말해 본부석은 반사하는 색안경이나 모자를 벗어달라고 안내방송을 하였다. 게임은 끝났다. 승패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어른 둘이서 화를 내며 스탠드를 올라오다가 동생하고 앉아 구경하는 나의 정강이를 구둣발로 조인트를 깠다. 너무 아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날벼락이었다. 새나라의 어린이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분풀이로 구둣발로 차 고통을 주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참 인성이 나쁜 인간이었다. 앞으로 더 큰 사고를 낼 우려가 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영어로는 조인트(joint)가 이음매, 관절이라는 의미인데 어쩌다 ' 정강이를 까다 ' 로 만들어 졌나 그건 모르겠다.
대전공설운동장에서는 국제축구대회도 열렸다.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정문을 열어놓아 입장 표 없이도 들어가 진행 중인 축구경기를 볼 수 있었다. 머리에 부상을 입었는지 붕대를 감은 한 선수가 마이너스 킥을 차는 걸 보고 감동하였다.
아버지께서는 한약방을 은행동에서 보문산 아래 부사동으로 옮기셨다. 바로 공설운동장 뒤편이었다. 마침 그곳에서 모심기를 시작하고 있어 나도 맨발로 논에 들어가 어른들 사이에 끼어 모심기라는 것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그리고 그 동네 인근 가까이에는 중학교 같은 반 전낙인, 오성균, 손형식, 남명헌, 이규환, 황순병 등등 아이들이 있어 좋았다.
나는 여름방학 새벽에 일어나 신문배달을 하고 끝나면 산동네 아이들에게 새 신문을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한자가 많이 들어있는 신문을 읽어주는 것에 감동하였다. 어느 날 비가 그치고 식장산에서 날아온 잠자리를 닮은 미군 헬리콥터가 공설운동장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동네 주변에 울려퍼지는 헬리콥터 소리가 꽤 요란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헬기가 고장인가 하고 궁굼하여 공설운동장으로 뛰어왔다. 그때는 운동장이 담장도 없었고 스탠드도 없이 흙 두덕이어서 모두 그리로 올라서 내려다 보았다. 모두가 프로펠러가 도는 헬기만을 쳐다보았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 미군에게 왜 운동장에 내려앉았느냐고 물었다. 미군은 하늘을 가리키며 검은 구름에 시야가 가려 내려왔다고 했다. 구름이 걷히길 잠시 기다렸다가 유성 K5 공군기지에 가겠다고 했다.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고장이 아니고 구름이 낮게 많이 끼어 조금 기다렸다가 유성공군기지로 갈 거라고 설명해주고 집으로 서둘러 왔다. 미군이 자꾸 말을 시키는데 더는 복잡한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머리 아파 얼른 피해왔다. 그래도 대단하다. 어떻게 미군에게 말을 걸 수가 있었을까. 사실 나는 내가 묻고 싶은 말을 속으로 여러 번 연습하였었다.
공설운동장 주경기장에는 박정희가 와서 선거 유세를 하고 가고 윤보선과 유진오박사는 작은 야구장에서 선거 유세를 하였다. 왜 그랬을까. 큰 경기장은 임차료가 비쌌나? 돈을 냈을까? 아니면 사용허가 때문이었나? 박정희는 감색상의를 입고 왔고 윤보선과 유진오는 추운나라 소련식 털모자를 품위 있게 쓰고 나타났다.
앞집의 강정구는 나보다 3살이 많았다. 학교도 종종 빼먹고 동네 건달 형들의 심부름을 하였다. 그게 힘쓰는 어덕인 양 어깨를 펴고 우리 형에게 압력을 넣어 형이 기가 죽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20대의 건달 형이 “ 너 조심해라.” 고 말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얼마 후에 산업박람회가 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나는 저녁에 박람회를 구경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형식이네집 뒷길 정도 되겠다. 모르는 웬 아이들이 영화처럼 뺑 둘러쌌다. 아, 영화처럼 꼼짝 못하고 맞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 오늘은 맞고 가겠다. 그렇지만 정구네 집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망치로 다 깨놓겠다.” 고 소리쳤다.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 야 그냥 보내.” 이래저래 맞는 거 뻥친 덕분에 한 대도 맞지 않고 집으로 왔다.
이런저런 사연이 많아 정이 깃든 보문산 아래 운동장, 담장도 없던, 스탠드 공사도 못했던 흙 두덩 공설운동장에 옛 추억이 서려있었다. 지금은 주경기장과 야구장에 나이터 시설도 하여 각종 행사도 하고 야간 축구경기도 하고 실내체육관도 갖추고 야간 야구경기도 하는 거대한 한밭종합운동장으로 변모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