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미상(플로리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2020)
예쁜 소녀가 5살 어린조카를 데리고 '37년 드레스덴 퇴폐미술전을 관람한다
고압적인 도슨트가 전시된 키르히너, 그로스, 칸딘스키, 베크만 등의 작품을 가리키며 독일 여성을 창녀로,용감한 군인들을 살인자로 묘사한 이들은 예술가가 아니라 정신병자들이며 위대한 국가는 이런 류의 질병이 후대로 전해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영화는'생존하는 이들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가'라는 포스트 모든 특성을 다양한 언어로, 공시적으로 드러낸다는 동독 출신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의 전기적 내용이다
소녀는 피아노의 한 음 만으로도 한결같이 실재하며 모두 연결돼 있는 세상의 이치를 느끼는 지나치게 예민한 감성을 지녔다. 진실한 것은 일관된 아름다움이 있다며 어린 조카에게 어떤 경우에도, 보고싶지 않더라도, 억지로 못보게 하더라도 결코 눈 돌리지 마라(영어원제 never look away)고 속삭인다
인종개량법을 통과시킨 나찌 독일 부상병을 위한 병상이 모자라지 않게 독일인이라도 무가치한 생명-다운증후군,정신병자,기형아 들-을 가스실로 보낸다.
조현병으로 수감됐던 이모도 그렇게.
전쟁에 지고 처참히 파괴된 드레스덴으로 소련군이 진주한다.
전쟁 중 삼촌들은 전사하고 사는 데 자산이 될것이라 믿어 나찌당원이 됐던 교사 아버지는 바뀐 정권 하에서 계단 닦는 일밖에 할 수 없게 되자 목메달아 자살하고 그 와중에도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소년은 미대를 다니고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고 인정받는 화가로 성장했다
공산주의를 위한 선전 선동 대형 벽화만 그려야 하는 곳에서 나를 찾아 조용히 아내와 함께 '61년 서독으로 탈출한다.
뒤셀도르프 현대미술대학에서 다양한 사조들을 접한다.
바닥에 물감을 흩뿌리는 잭슨 플록, 캔버스를 찢는 폰타나, 자신만의 불루를 만드는 이브 클랑 등을 모방하는 학생에게 우리의 백남준과 늘 함께 거론되는(영화에선 언급이 없다)플랙서스의 요셉 보이스가 전쟁 중 크림반도에서 격추 당해 죽을 뻔했다가 타타르인의 지방과 펠트로 치료 받아 살아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거짓 없이 말할 수 있는 진정한 너의 경험이 뭔지 자문해 보라 가르쳐 준다.
목판에 빽빽하게 못질하는 옆방 작업실의 귄터 위커는 고심하는 친구에게 회화는 이제 죽었다며 다른 걸 해보라 충고하지만
우연히 또한 필연적으로 신문에 실린 나찌전범자 사진을 캔버스에 재현했다가 마침내! 자신의 삶을 본다.
이모와 함께 찍은 어릴적 사진을 캔버스에 확대해 그렸다가 초점이 나간 듯 윤곽을 흐리는데 기억은 선명할 수 없어서 일까
그림을 보는 이는 각자 자신만의 희미할 수 밖에 없는 추억을 떠올릴 것이기에 일까.
리히터는 스승의 가르침인 자전적 접근과도 결별한 것이다.
옛 사진에서 지금 여기에서의 계단을 내려오는 아름다운 아내 누드 사진(뒤샹에 대한 오마주 란다)까지 확장한 작품들로
전시장을 가득 채운 젊은 예술가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나는 어떤 목표도, 체계도,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 무제약적인 것,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작가의 주관성, 개성을 지움으로써 관람자를 자발적, 능동적 질문자로 만드는(영화 제목이 작가 미상 werk ohne autor 인 이유) 그는 오늘날 카멜레온으로 불리며 늘 새롭게 나타남으로써 주위를 놀래킨단다.
작가의 영향력을 최대한 지움으로써 더 광대한 가능성을 도모한다네.
올 봄 서울 루이 비통 전시실에 원색의 정사각형 수천개의 조합인 그의 <4900가지 색채>가 걸렸었다네.
사진 보니 전시장도 작품도 큰 스케일에 빛과 어우러지는 색채가 자아내는 역동적 풍경이 화려하기 그지없구나.
3시간도 넘는 런닝 타임인데 그림들이 나오는 장면은 몇번씩 되돌아 보고 또 보며 추석에 애들 다녀간 다음 날 하루 온종일 영화에 빠져 지냈다.
감독도 들추어내고 싶지 않을 조국의 치부들을 숨김없이 거울에 비추듯 보여준다.
부끄러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선조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주었다.
감독 검색해 보니 전에 내가 여기 리뷰를 썼던 '타인의 삶'도 연출한 사람이네!
< 여고 동기 카페에서 퍼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