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으로 자란 마르그리트 Margarite de Valois 공주는 개신교 신랑 앙리와 정략결혼을 한다. 종교전쟁에 지친 사람들은 이 결혼으로 평화가 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신랑 쪽 하객이 몰살당하는 ‘피의 결혼식’이 되고 말았다. 바르톨로메오Saint Bartholomew 축일 전날 밤부터 가톨릭 세력이 개신교도들을 학살했다. 1572년 8월 23일 일어난, 악명 높은 ‘바르톨로메오의 밤’이다. 학살의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은 모후 카트린, 다름 아닌 마르그리트의 어머니였다.
갈등은 계속됐다. 15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싸움은 ‘세 앙리의 전쟁’이라 불렸다. 첫 번째 앙리는 가톨릭 강경파의 수장이자 공주의 내연남이던 기즈 공작으로, 암살당했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인기 없던 임금으로, 공주의 오라비였던 앙리 3세, 이 두 번째 앙리도 암살당했다. 프랑스를 차지한 세 번째 앙리는 마르그리트의 남편이다. 이 사람이 유명한 앙리 4세다.
발루아 왕조가 무너지고 부르봉 왕조가 들어섰다. 일찍이 학살의 때에 공주는 남편을 구해주었지만, 이제는 몰락한 왕가의 생존자일 뿐. 마르그리트는 결국 앙리와 이혼한다. 왕후의 칭호는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영화 <여왕 마고Queen Margot>(1994)에서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한 사람이 왕후 마르그리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