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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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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ktusjye/221382066082
이번 여정은 평택이다,
평택은 차령산맥의 끄트머리에 위치하여
북동부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50미터 내외 낮은 구릉과 평야를 이루고 있다.
숙소가 있는 송탄은 부락산, 덕암산, 팔용산 등이 있는데
해발 150미터 내외로 그리 높지않다.
덕암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팔용산까지 여정에 넣어보니
원점으로 회귀해야 하는 여건이 부담스럽다.
오히려 북쪽 태봉산으로 돌아오면
부락산 자락으로 접어들 수 있을 듯 하다.
숙소를 출발하기 전,
미세먼지 예보를 보며 잠시 갈등한다.
하지만 숙소에 가만히 죽치고 있자니
그도 못할 일, 생수 한 병을 챙겨들고 길을 나선다.
부락산분수공원을 들머리로 삼아
송탄보건소와 부락종합사회복지관 사잇길로 들어선다.
산에 참나무가 지천이라
익어 떨어진 도토리를 자기것 인 양 줍는 이들이 보인다.
분수공원이라는 명칭에 잠시라도 둘러보려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돌아올 때 여유가 된다면 둘러볼 요량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현대적인 건물로 넓게 잘 지어진
평택시 북부 복지타운, 송탄보건소 뒤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고도가 높지않다는 사전 정보와
원경으로 야트막한 산등성이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본터라
내딛는 발걸음은 가볍지만 재다.
넓은 길이 완만하게 오르내린다.
등산보다는 산책을 하는 기분이다.
인근에 이충마을이 있다.
이 지역에 조광조와 오달제의 유허가 남아있어
'이충마을'로 부른다는 유래가 있는 곳이다.
조선 중종의 신임을 얻어
성리학적 이상향을 실현하려던 조광조가
인근 마을에 살던 어린시절 전해오는 이야기다.
옆집에 비슷한 또래 댕기머리낭자가 살고 있었는데.
집앞을 지나 서당으로 향하는 미소년을 흠모하게 된다.
하지만 낭자의 집안이 중인층이라
엄격한 신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던 낭자는
그만 마음의 병을 얻어 앓아눕게 된다.
낭자의 부모는 딸의 애닯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자 조광조의 집에 사람을 보내 서당으로 가는 길에 한 번 만이라도 고개를 돌려
낭자의 얼굴을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도가 아닌 일에 뜻을 바꿀 수 없는지라
다음 날 서당가는 길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따뜻한 눈길을 고대했던 낭자는
조광조의 냉정한 태도에 상사병이 도져 몸져굽더니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오달제는 조선시대 청나라의 위협에 화친을 반대하던 척화파로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항복하자 책임을 물어 청나라로 끌려간다.
적장 용골대가 회유하였으나 끝까지 저항하다
윤집, 홍익환과 처형당한다.
이들을 '삼학사'라 칭한다
부락산 종합안내도가 덕암산까지 길게 이어진다.
별다른 준비없이 간단하게 오를수 있는 곳이라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유유자적이다.
이정표에 부락산 정상이
오른쪽은 1.2킬로미터, 왼쪽이 80미터로 표시되어있다.
둘레길로 도는 거리가 꽤 멀구나, 싶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란 기대도 있지만
너무짧은 거리라 한편으로는 실망스럽다
중턱에 2층 육각정자, 부락정이 자리잡고 있다.
정자에 올라 사방을 돌아보지만
빽빽한 나무에 가린 전망은 볼품없다.
천정에 단청이 선명하고 곱다.
80여 미터를 올라온듯 한데
정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곳곳에 운동기구를 배치하여
산은 높지않아도 체력단련 효과는 충분하겠다.
부락정에서 약 100 여 미터를 올라왔을까?
야트막한 봉우리에 현판없는
2층 팔각정자가 나타난다.
이곳이 정상으로판단하고 주위를 살피는데
인터넷 검색에서 보았던 정상석을 찾을수 없다.
2층에 올라보았지만
마찬가지로 사방이 빽빽한 나무로 전망을 가렸다.
정자를 내려오니
인근 벤치에 쉬고있는 중년남자가 보인다.
"죄송하지만 이곳이 부락산정상 아닌가요?
아까 이정표에는 80미터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더 올라온것 같은데..."
"질 모르겠는데, 정상같은데요."
말투에서 묻어나는 억양이
분명 탈북주민 또는 중국교포가 확실하다.
입국하지 오래지 않은 한가한 날,
가까운 산을 찾아 오른것으로 짐작된다.
'부락산둘레길' 방향표지가 산비탈에 붙어있다.
갈림길이다.
왼쪽 넓은 길로
'부락산정상 700미터'가 표시되어있다.
단순하게 거리표시에 오류가 있었던 걸까?
자료를 정리하면서 사진을 확인해보니
아까 보았던 '부락산 정상80미터'이정표는
'부락산정상 부락정 80미터'로 확인된다.
80미터를 가면 부락정이 있다는 표지였던 셈이다.
초행길인 사람들에게
부락산정상이 있는 부락정까지 80미터 남았다는 오해를 살 만 하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인듯
네거리 갈림길에 등산용품을 펼쳐놓고 팔고있다
부락산정상까지 100미터 남았다.
급하지 않은 경사를 올라간다.
정상 바로 못미친 비탈에
희안하게 만들어놓은 기둥이 보인다.
1.5미터 내외 높이에
안쪽에는 돌을 쌓아놓은듯 한데
바깥에는 시멘트인듯 재질을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덧발라 놓았다.
돌탑에 간절함을 덧붙인듯 한데
보는 느낌에 사심에 욕심을 덧댓듯 괴기스럽다.
해발 150.5미터, 부락산 정상에 선다.
정상표지석에는 150.5미터,
안내문에는 148미터로 표시되어있다.
1995년 평택시로 편입된 송탄의 주산으로
불악산, 조락산, 요악산 등으로 불리웠다.
이정표없는 갈림길을 자주 만난다.
이벙표가 없는 곳 대부분은
봉우리를 올라 내려가는 길과 허리를 도는 길이
다시 만나 하나로 이어진다.
능선 흙길이 넓고 비교적 곧게 이어진다.
갈림길이 자주 나타나지만
일부러라도 땀을 흘리고자 봉우리로 오른다.
봉우리 곳곳에도
정자와 체육시설이 배치되어있다.
주변에는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있지만
등산로에는 낙엽도 흩어져있지 않을 만큼 깨끗하다.
부락산과 덕암산을 가르는
'흔치고개'마루로 내려선다.
고지도에는 '흰치고개'로 표시되는데
큰흰치고개(대백치)와 작은흰치고개(소백치)는
평택에서 가장 험한 길이었다.
춘향전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한양에서 과천까지가 한나절, 수원까지가 하루,
이곳 진위현 봉남리까지가 하루 반 거리로 나온다.
고개마루에 약수터와 꽃터널이 보인다.
꽃터널은 깨끗할 정도로 휑해
조성한지 오래되지 않은듯 하다
'삼남길', 경기도 지도가 보인다.
서울 숭례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이어지는
천리길은 조선시대 10대 대로의 대표길이었다.
방향색깔이 녹색과 주황색이다.
녹색은 숲, 서울방향이고
주황은 황토, 해남방향이다.
또한 각 세 개의 꺽쇠는
충청, 전라, 경상의 삼남을 표시한다.
고갯마루 갈림길 이정표다.
앞으로 보이는 계단을 따라
덕암산으로 향한다.
부락산, 덕암산과 부엉바위,
정도전사당, 태봉산을 거쳐 원균장군묘에 이르는
'평안 해오름길' 인의길, 충의길 안내도가 보인다.
두 길이 연결되어있고 총 거리 14.26킬로미터,
아마도 진즉 정보를 알았다면 이 코스를 따랐을수도 있겠다.
등산로를 오르기 시작하는데
방금 내려섰던 부락산과는 사뭇 다르다.
길 위에 밤가시껍데기와 낙엽 부스러기가 보이고
인적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나 길은 완만한 경사로 오르내린다.
길이 음택에 막혀 왼쪽으로 돌아간다.
역시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하나로 합쳐진다.
삼남로 317번 지방도로가 갈라놓은 길 위로
생태통로가 놓여져있다.
도로로 끊어진 길을
동, 식물이 자유롭게 이동할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보호를 당부하고있다.
그 길로 내려서는 계단과 흙길이 나란하다.
나는 흙길로 걷는다.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이 보인다.
나무를 베어낸 양지바른 곳,
곳곳에 잘 가꿔진 무덤들이 자리잡고있다.
그나마 아직 길은 넓직하다.
갈림길이다.
역시 산허리가 아닌 봉우리를 찾아 오른다.
그 갈림길이 다시 합쳐진다.
봉우리를 내려서는데 산악자전거 한 대가 올라오며
"사람, 사람" 외친다.
갈림길에 닿는데
대여섯명이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허리로 돈다.
방금 내려섰던 부락산에 산악자전거길이 있어서
MTB를 즐기는 사람, 동호회가 자주 찾는 곳 이라던데
길이 이곳까지 이어지는지
아니면 한정된 곳이 지겨워져 영역을 넓힌것인지 알수없다.
갈라지고
다시 만나고 한동안 이어지는 사이
길이 무척이나 좁아졌다.
다시 산뜻한 길이 이어진다.
길 왼쪽으로는 소나무가
오른쪽에는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한참을 걸어도 마주치는 사람이 없다.
한적한 길을 걷는 맛이 나름대로 편안하다.
산불감시탑이 보이고
그 앞에 쉼터 정자가 보인다.
정자가 있는 네거리 갈림길에서
원균장군묘가 오른쪽으로 800미터 거리다.
시간상 여유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만든 역사가
'의롭지 못한' 또는 '슬기롭지 못한' 사람으로 각인시킨 탓인지
애써 걸음을 옮기도록 만들지 않는다.
만약 같은 거리, 또는 조금 더 먼 거리에
이순신장군의 묘가 있었다면 필시 발길을 돌렸을 터이다.
부락산 정상이 1킬로미터 남았다.
갈림길에서 나무벤치가
잠시 쉬어가실테냐, 묻는다.
하지만 걸음을 잠시나마 멈출수 없다.
나무 둥치에 친절하게도 이정표를 붙여놓았다.
오른쪽의 원균장군묘, 오르막이 정상방향이다.
여전히 길은 사소한 일로 헤어졌다
밤새 후회하다 다시 만나는 연인처럼 결합한다.
이곳에서는 중간에 길이 한 번 더 갈라져
세 곳으로 흩어지다가 다시 만난다.
얼마남지 않은 오르막을 오른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길은 다시 갈라진다.
봉우리 오르는 길을 올라야 정상석을 만난다.
해발 164.5미터, 덕암산 정상이다.
다시 산길을 내려간다.
부엉바위를 찾아 가는 길이다.
스마트폰 지도 지형도를 보면
봉우리로 표시된다.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는 갈림길에서도
봉우리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르내린다.
동네 뒷산 오솔길처럼 좁다랗지만
인적이 없으니 불편하지 않다.
예전부터 걸으며 다져진 길 같지만
곳곳에는 흙유실 방지용 목책을 세워놓았다.
나무계단과 흙길이 사이좋게 이어지며
취향에 맞게 골라 걸으라 한다.
고개로 내려선다.
왼쪽과 오른쪽으로도 길인듯 한데
사람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듯 풀이 듬성듬성 자랐다.
계단을 올라서자 잘자란 소나무숲 비탈 아래
식재된지 오래지 않은, 1미터 내외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개활지가 나타난다.
그 사이로 포식을 마친 거미가
줄에서 꼼짝도 않고 거꾸로 매달려있다.
산에 둘러쌓인 전망은 특별할 것 없다.
멀리 건축물이 보이고 공사를 하는지
가계가 땅을 울리는 소리만 단조로움을 깬다.
부엉바위와 팔용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이다.
스마트폰 지도는 부엉바위를 지나
내려가는 길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부락산에서 보던 이정표와는
다른 모양의 이정표가 보인다.
왼쪽으로 부엉바위 200미터,
은산리 3킬로미터를 표시하고있다.
그렇다면 능선을 타고
태봉산으로 갈수있는 길이 있다는 뜻이다.
이정표 앞 바위위에 돌탑을 세워놓았다.
야트막한 산이라도
정상부에 다다르니 바위가 무리를 이루고있다.
부엉바위라는 명칭에
혹여 그냥 지나칠까 유심히 보지만 짐작도 할 수 없다.
해발 150미터 부엉바위 정상석이 서있다.
그렇다면 부엉바위가 바위이름이 아닌
봉우리 이름이었던 걸까?
다음 날 평택시청 홈페이지 등산로 소개에 표시된
송탄출장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에게 전화드리도록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연락이 없다.
그 다음날 다시 전화했더니 자기들 관할이 아니라고
평택시청 담당부서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역시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어
관할 이장님께 전화를 해보고 연락을 주겠단다.
결국 전해들은 답변은
부엉바위가 봉우리 이름인지, 부엉바위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스마트폰 지도에는 없던 등산로가
직진하던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이정표에는 '은산리 2.8킬로미터'로 표시되어있다.
지도를 보면 은산리에서
태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표시되어있다.
아직까지 길이 훤하다.
길을 내려서다
등산로 아래 바위를 보고 지나쳤다.
형상으로 부엉이를 연상할수 없었지만
부근 가장 가까운 곳에 바위형상이라
기록에 남기려고 다시 올라가 사진에 담는다.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우측으로는 은산리(용의 눈물) 2킬로미터,
왼쪽은 은산리(쌍바위, 낙엽송군락지) 2.6킬로미터다.
태봉산 염두에 둔 들머리를 찾으려면
좌측으로 내려가야한다.
훤하던 길이 금새 어지러워진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탓에
낙엽이 떨어져 쌓여 길을 가린것이다.
그래도 어렴풋한 흔적을 찾아가면
다시 또렷한 길이 나타난다.
다시 만난 갈림길에
이정표가 오른쪽 한 곳만 남았다.
자세히 보면 이정표 기둥 밑에
또 하나의 표지판이 기대어져 있다.
왼쪽이 낙엽송군락지, 오른쪽이 쌍바위방향이다.
역시 왼쪽으로 길을 잡고 들어선다.
갈빛에 가린 길이 흐릿하지만
그리 구별하기에 어렵지 않다.
가파른 내리막이 한동안 이어진다.
아래쪽 전방이 트이고
산소너머 황금빛 논과 마을길이 보인다.
태봉산 들머리를 찾아 방향을 가늠하며
마을길을 따라간다.
전봇대에 평택 '섶길' 리본이 붙어있다.
스마트폰 지도로 확인되는 들머리다.
들어서 무덤 끝
풀이 무성한 길을 헤치고 들어선다.
다시 무덤을 지나 산쪽으로 오르려는데
길이 없다.
혹시 옆으로 길이 보일까 둘러보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하는수없이 돌아나와
태봉산 정상방향을 짐작하고 마을길을 따라간다.
마을 윗쪽에 저수지가 있다.
유료낚시터로 이용하는지
둘레에 좌대가 빼곡하다.
저수지를 지나는데
비탈아래 한뙈기쯤 되는 옹삭한 밭에
아주머니가 깨를 수확하고 계신다.
태봉산 등산로 올라가는 길을 여쭙는데
잠깐 생각하는 눈치이시더
자신없으신지 모르시겠단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난다.
길 끝에 묘지가 있다.
묘지 뒷등으로 능선이 보인다.
무작정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역시 등산로가 보인다.
보이지 않는 숲을 치고 올라온 셈이다.
길바닥에는 아직도 밤송이에 갖힌 밤 세 형제가
온 몸을 부대끼며
청운의 앞날을기대 하면서도 떨고있다.
토종밤이 삶거나 구으면 더 맛있는데
역시 내 몫이 아니므로
땅에 덮여 새싹으로 거듭나길,
그도 아니면 산짐승의 겨울 양식이 되길 바란다.
태봉산 정상을 찾아가는 길이다.
마찬가지로 완만하게 오르내리길 거듭한다.
둥치만 보면 구별되지않는 밤나무가 지천인지
길에는 벌어 떨어친 작지만 토실한 밤알 그득이다.
마음만 먹고 줍는다면
겨울밤 한 때 좋은 간식거리를 장만할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내 몫이 아니다.
나무계단을 오른다.
길 가운데 누군가 일부러 모아놓은 것인지,
아니면 미련퉁이 다람쥐가 감춰놓고 잊어버렸는지
밤이 한주먹 쌓여있다.
역시 내 몫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오른쪽으로 철조망이 따라온다.
국가주요시설이 인근에 있는걸까?
스마트폰 지도에서는 태봉산으로 표시하는 곳인데
확인할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도가 옳았으므로 믿기로 한다.
참 밋밋한 산행이었다 생각하고
이정표방향으로 내려선다.
이정표방향으로 내려서니 고개마루다.
내려온곳 맞은편 산으로
400미터를 올라가면 태봉산이 있다고 표시한다.
역시 사람뿐 아니라
세상에 믿을건 아무것도 없다.
오른쪽은 철책에다 가시철망을 촘촘히 쳐놓았다.
태봉산 방향으로 비탈을 올라간다.
역시 가시철망을 두른 철조망이
죄인을 호송하는 간수처럼 따라붙는다.
철조망이 누워버렸다.
탐심을 시험하려는 듯...
하지만 내 길을 갈뿐이다.
산비탈을 도니 철조망이 사라져버렸다.
그때 길이 어긋났는지
잠시 길을 잃었다가 능선으로 올라 길을 찾았다.
철조망이 제 역할을 망각한 곳에 다다르니
태봉산 정상석이 온화한 웃음으로 구도자를 맞는다.
해발 150미터다.
철조망이 길게 드러누웠다.
그 너머 조망이 나와 다가서니
별다를 것 없는 시골풍경이다.
비탈 논 왼쪽에
양식 주택이 몇 채 보이는 것 말고는.
철조망이 따라오던 안쪽 방향을
건너다보아도 시야에 확인되는 것은 없다.
하산은 어디로 할까?
방향을 가늠하면 은산리로 내려가야
동막저수지를 끼고 부락산으로 들수 있겠다.
철조망 안쪽으로 길이 보인다.
이번에는 그 길을 따라 내려간다.
고갯마루까지 와도 바깥으로 나서는 길이 없어
조금 못미친 비탈 철조망이 넓게 벌어진 곳을 빠져나온다.
동막저수지 방향으로 향한다
또렷한 길이
탐색하느라 지친 두뇌를 잠시나마 쉬게한다.
길 한 편에 족히 이삼백은 되어보이는
벌통이 쌓여있다.
계절이 그런지 벌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해는 시쪽으로 많이 기울었고
마을이 보인다.
동막저수지다.
역시 유료낚시터로 운영중인지
좌대가 사방으로 놓여있다.
부락산 흔치고개를 찾아간다.
왼쪽으로 동막저수지를 지나다
지도를 보니 샛길이 보인다.
그 방향에 큰 트럭이 길을 막고섰다.
그래도 들어섰다가
길이 막혀 돌아나온다.
그 바로 위 포장로로 올라 오른쪽으로 돈다.
아까 생태통로 위에서 내려다보던
삼남로 317번 도로를 건넌다.
지도를 따라 올라가니
규모가 큰 식당이 보인다.
삼남로 표지가 아는만큼
새롭게 보인다.
서울방향 녹색, 해남방향 주황색.
공원 초입에 닿는다.
흔치고개에서 보던 꽃터널이다.
잎을 떨군 덩굴식물이
터널파이프 바깥에 앙상하다.
터널만 끝나면 흔치고개에 닿으리라 짐작한다.
예상과는 달리 다시 길이 이어진다.
다시 긴 꽃터널을 지나자
흔치고개에 닿는다.
약수터에서 바가지 가득 물을 받아
양껏 들이킨다.
이번에는 들머리를 찾아 나는 길이다.
갈림길에서는 가급적 허릿길을 돈다.
온전히는 아니어도
넓게 부락산을 걸을 작정이다.
부락산 정상 밑 허리를 지난다.
길고 긴 산허릿길로 접어든다.
한참을 걷는데
산 아래쪽에서 꽹과리소리와
읊조리는 듯한 소리가 가끔이라도 듣는 소리가 아니다.
직감적으로 무속인의 굿소리다.
부락산을 들어서던 초입,
인근 관련 지명과 역사인물을 소개하는 안내문에
말발굽이 패인 역마바위와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장소인 빈대바위가 있었다.
지근에 있을까, 찾아보고 싶었으나
중봉, 대수골 등 그릭 가까운 곳은 아닐듯 하여
그냥 지나쳤었다.
부락산 남쪽 기슭에는 대수골이 있다.
대수골에서 소골봉 정상으로 오르다보면
무속인들이 치성을 드리는 커다란 바위벽이 있다.
이 바위를 빈대바위라고 한다.
5백여 년 전 대수골에는
사찰에 스님 한 분이 주석하고 있었다.
스님은 경전을 공부하고 도를 닦기보다
잿밥에 눈이 먼 사람이었다.
보다 못한 부처님은 스님을 훈계하기 위해
절 뒤쪽 바위틈에서 빈대가 나오게 하여 스님을 괴롭혔다.
하자만 우둔한 스님은
부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파계하고 말았다.
그 뒤 절은 폐사됐지만 사람들은
부처님이 계시던 곳이라고 하여 치성을 드렸고
지금은 무속인들이 치성 드리는 장소가 되었다.
길 아래 소리가 또렷이 들리고
그 위에 까만바위가 꽤 크다.
엉성한 시멘트계단을 내려가
바위를 사진에 담는다.
방법없이 무속인 옆모습이 작게 담긴다.
사진을 찍어 올라오는데
방금 지나쳤던 사내가 다가와 묻는다.
"사진을 왜 찍는거요."
음산하고 위압적이다.
"아까 위에서 바위 설명하는 글을 봤는데
그 바위로 알고 찍었습니다."
재차 묻고는 돌아서간다.
한동안 이어지는
좁다란 오솔길이 참좋다.
긴 허릿길 끝에서 주등산로와 만난다.
아까 헛갈렸던 이정표다.
부락산정상 부락정 80미터.
혹시 동그라미가 하나 빠졌는지
다시 한 번 자세히 관찰한다.
들머리이자 날머리를 나선다.
숙소까지 가는 시간을 대충 계산해도
약속시간에 십여분 여유있다.
부락산분스공원 입구광장을 들어서는 조형물이다.
둥근 입구 위쪽에
'부락산 즐거움의 문'이라고 적혀있다.
공원에도 이미 가을이 채색을 시작했다.
물이 가득했을 저수공간
바닥이 민낯으로 드러났다.
평택시 북부 복지타운 건물이
특색있게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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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평택 하면 캠프 험퍼리에서 큰 애가 카튜사로 복무한 곳이라 관심이 갑니다.
좋은 곳이네요. ^^
나는 파르라니님 사진을 첨부해서 일일히 상황설명을 하시고
음산한 분위기에 사나이가
사진은 왜 찍으세요?..ㅎㅎ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으면서
산에는 언제 올라가노...?..ㅎ
나도 서울서 한때는 산이고 들이고 야생화 이름 아는게
취미가 되어 꽃 하나 하나 찍으면서 산에 올라 갈려면
참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검색해서
꽃이름을 알 수 있지만 그 당시만해도 여러곳에서 일일히 찿아보고
꽃이름하나 아는데도 온갖 정열을 쏟아 노루오줌 며느리발톱
알고나서의 그희열을 저는 압니다
19Km 산길을 시속 4K 넘는 속도로 다녀 오신 기록을 보니 대단합니다.
누대에 걸쳐 평택토막이인 저보다 평택의 지리와 역사에 통달하셨습니다. 팔용산과 태봉산은 지금에야 그 산이로구나 하고 깨닫게 됐습니다. 빈대바위의 존재도 이제야 알게되었습니다. 우아! 그저 감탄입니다.
그래도 파르라니 차장님께 유감입니다. 부락산,덕압산을 비롯 저도 못가본 태봉산까지 구석 구석을 살필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그림자 처럼 다녀갔다는 사실에 유감을 표합니다. 연락좀 주시지요. 정말 반가웠을 텐데요. 다음 부턴 검문소 차려 놓고 지켜야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부턴 그러기 없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