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이효석문학상
기수상작가 자선작
얼굴을 비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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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
박은희
화자인 나는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다. 나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와 함께 입시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말 타 듯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라’는 뜻을 가진 <말타> 미술학원에서 이년 여의 기간을 대체로 매우 평화롭게 보냈다.
친구 서영이는 대체로 밝은 편이었고 유머도 있었다. 여러 면으로 운이 좋은 친구처럼 보였다. 패션 업계에서는 꽤 큰손으로 통했던 디자이너 엄마가 있어, 대학 재학 중에 미술 학원을 시작했다. 깊은 밤 서영의 말문이 터질 때마다, 기이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영의 엄마. 너무 애인이 많아 기억상실증을 앓는 서영의 엄마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서영이는 미술에 재능도 있고 모든 일에 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입시철이 막 끝난 즈음 나이든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왔다. 박호수라는 아들은 말이 없고 온순해 보였으며 나무만 그렸다. 나무 사진을 가져 오지만 나무와 조금도 닮지 않은 환상적인 나무가 일주일에 한 그루씩 그의 스케치북에 들어섰다. 그는 나무를 그리는 일에 혼신을 쏟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행복해 보였다.
그는 이상한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다르게 흉내 내며 실내를 춤을 추듯 돌아다니는 그의 행동을 보고 나와 서영이는 그 현상에 대해 그가 아프다거나 그것을 병이라고 부르지 않았고, 박폭포수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서영이는 그의 뒤를 따라 뛰며 질문하고, 몸짓을 흉내 내고 아무 얘기나 빠른 속도록 뱉어 냈다.
나는 한 걸음 떨어져 둘의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스케치를 하고 있는 나를 본 박호수는 평소의 그로 돌아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내가 그를 향해 스케치북을 들고 앉으면 박호수는 그의 일인극을 멈추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광증 같은 말 폭포수를 멈추고 온순하게 맞은편에 와 앉았다. 그러는 사이 박호수의 얼굴은 평온해지고 초상화가 그려지는 시간을 즐겼다.
내가 그린 첫 초상화 <호수> 라는 제목을 단 그 작품을 단체전에 출품했다가, 박호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의 아버지에게 우리의 관찰을 알려주고 아들에게 건강을 되돌려주려면 그림을 배우라고 했다.
서영 엄마의 건강 악화로 <말타>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말타> 이후 나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동원해 꾸준히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쌓이면서 갤러리들이 전시 제안을 꺼리지 않는 화가가 되었다. 한 번도 제도권 안에서 일할 기회를 가져보지 않은 자유로움을 누렸다. 그런 자유로움이란 늘 어느 정도는 생활의 불안정과 함수관계를 가진다. 수입만큼만 살기로 결정하니 어느 해는 풍성했고, 어느 해는 빈곤했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다 보니 초상화를 배우겠다고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씩 생겼다. 그들 중 한 명이 제주도에서 초상화가로 활동을 시작했기에 오랜만에 서영에 대해 생각했다. 제주도로 내려간 그녀는 두 번의 개인전을 끝으로 작품 활동을 그만 두었다. 서영의 개인전은 제주도에서는 물론 모든 미술계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영은 갑자기 결혼을 하고 화가로서의 활동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 한 재능 있는 예술가가 어떻게 그 재능을 포기하게 되는 것일까. 어떤 사람에게 인생에서 만나는 악재는 약이 되기도 한다. 악재로 인생에 근육이 붙는 사람들을 가끔 만나기도 한다. 서영이는 끝내 그녀를 따라다니는 어머니라는 악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미술 판을 떠나 제주도로 내려간 것도, 엉뚱하게 약재상 집 아들과 만난 것도 서영이 엄마의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림과 건강관리와 사색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러, 바퀴달린 그림 도구함을 끌고 자연 속을 숨어들어 갔다. 그러다보니 자동 연상처럼 나무만 그리던 박호수를 생각했다. 박호수가 <말타>의 층계를 오름으로써, 서영이 아니라 바로 내가 박호수 부친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내 삶의 저울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십여 년 전에 받은 박호수의 아버지 명함을 찾아내 전화를 걸었지만 잘못된 번호였다.
나의 때 늦은 수소문은 초상화가로서는 확실히 잘못된 호기심이었지만, 스타카토로 음절을 자르듯, 거친 허스키로 수험생들을 매료시키던, 허세와 도발과 선동인줄 알면서도 모두가 이끌렸던 서영의 젊은 목소리
“한 번 확 망가져봐, 가 봐!”
그것을 핑계로 삼고 나는 어느 날 <말타>의 시간 속으로 되돌아갔다. 살아 있는 왕뱀처럼 똬리의 방향을 수시로 바꾸는 서울의 지리이다 보니, <말타>가 있던 동네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시간 남짓 골목을 돌다가 겨우 박호수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슈퍼의 자리라고 추정되는 건물 앞에 다다랐다. 슈퍼가 있던 자리에는 놀랍게도 미술학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그린 이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나 또한 아주 어릴 때부터 왜 그토록 절실하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무엇 때문에 나는 무언가를 그리는 그 시간에 그토록 넋을 잃고 몰두했던 걸까. 오랫동안 나는 내가 중독처럼 빠져들던 그 농밀한 시간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 바로 그때만 완벽하게 내가 나를 잊는 자유로운 부재의 경험. 마치 액체로 된 한 존재가 그리는 대상 속으로 흘러들어가 완전히 비어지는 그 황홀한 느낌, 나는 그것을 처음으로 박호수를 그리면서 어렴풋이 맛보았던 것 같다. 박호수가 나무를 그리면서, 스스로 나무가 되면서 그의 말 폭포수에서 벗어났 듯이.
그래서 나는 발뒤꿈치를 돌려 그 거리에서 멀어졌다.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었나? 축제장에 가면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한 번도 그린 적이 없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서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다. 화가와 마주 앉아 우정과 존중이 혼합된 예외적인 만남을 통해 같이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화자인 나와 서영이와 박호수는 예외적인 사람들이다. 나는 서영과 박호수의 영향을 받았고, 박호수도 서영이와 나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서영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한 걸까? 작가가 말한 것처럼 재능 있는 서영이가 작가의 꿈을 포기했다고 해서 악재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박호수의 아버지가 대단한 것 같다. 발작을 하는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힘들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할 수도 있는데 아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배우게 하고 아들을 그리면 발작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그림을 배운 것이 놀랍다.
처음 읽었을 때는 제목과 내용이 무슨 상관이지? 알지 못했는데 여러 번 읽고 마지막 문단을 읽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마치 액체로 된 한 존재가 그리는 대상 속으로 흘러들어가 완전히 비어지는 그 황홀한 느낌, 얼굴을 비울 때까지 나를 잊고 타인을 관찰하고 몰입한다는 뜻인 것 같다.
내가 나를 잊을 정도로 어떤 일에 몰입한 적이 있었나? 내가 나를 잊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보면 거의 없었나보다. 글을 읽고 쓸 때 얼굴이 비워지는 그 황홀한 느낌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