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라져가는 시골장터와 지역 문화유산을 사진과 글로 담았다
34년간 오로지 시골 장터만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온 작가가 지난 몇 년간 작업한 작품들을 모아 출간했다. 이미 같은 주제로 몇 권의 책을 출간한 바 있으나 이 책의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면. 전작들과 달리 단지 시골 오일장만을 취재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문화유산과 유적을 함께 돌아보고 장터가 지역의 경제뿐 아니라 문화 관광의 허브가 될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데 있다.
그렇게 각 지역의 문화, 역사, 위인, 특산물, 개성 등 일곱 가지 주제를 통해 전국 22개 장터와 각 지역의 문화유적을 탐방했다.무엇보다도 구수한 지역 사투리가 생생히 살아 있어 맛깔 나는 글과 어린 시절 시골에서 흔히 보았던 흑백의 풍경들이 마음 깊은 곳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각 장의 특징과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지역 특산물도 소개돼 있어, 이 책을 포토 에세이 작품으로 감상해도 좋고, 주말 가족 여행을 떠나기에 좋은 제안과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으로 삼아도 좋을 성싶다.
목차
1장. 느림의 미학을 만나는 오일장
담양장, 대나무 소리 들린다
예천장, 조상의 숨결을 담다
영암장, 남도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월출산
2장. 여인 삶의 향기가 밴 오일장
청양장, 콩밭 매는 아낙네가 부르는 칠갑산
순창장, 고추장으로 버무린 살풀이
남원장, 춘향이의 고장
3장. 자연 특산물과 만나는 오일장
강경장, 백제의 옛 터전 황산벌
광천 토굴 새우젓 시장, 은근하게 발효된 자연의 맛
남해 이동장, 가천 다랭이 마을
금산장, 인삼의 고장
4장. 개화기 인물을 만나는 오일장
정읍 샘고을 시장, 동학농민운동의 발생지 말목장터
영덕장, 블루로드 영덕대게의 고장
구례장, 지리산과 섬진강이 빚은 땅
5장. 옛 성현과 함께하는 오일장
광양장,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실의 고장
영주장, 소백산 자락에 깃든 선비의 고장
송정리 오일장, 정(情) 한 보따리가 이야기꽃으로
6장. 역사 이야기와 함께하는 오일장
울산 언양장, 우리나라 근대화의 진열장
부안장, 산과 바다와 땅의 특별한 조화
무주 반딧불 시장, 나제통문
7장. 문화의 숨결이 오일장 속으로
옥천장, 정지용 시인을 만나다
고창장, 세계 최대 고인돌 유적지
보성장, 판소리 가락 초록 융단 휘 감는가
완주 고산장, 산중에 핀 한 송이 꽃, 선암사
저자 소개
저 : 정영신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34년째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오일장 600여개를 모두 기록한 장돌뱅이사진가이자 소설가다. 장터에서 만난 우리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각 지역의 역사적 자취를 찾아다니며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농사짓는 초기부터 유통되기까지의 전 과정과 한국어머니들의 삶의 이야기를 채록해 왔다, 장마당의 풍정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장터 인근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역문화유산과 장마당을 고리지어 사진과 글로 담아내고 있다.
개인전
‘정영신의 시골 장터’ (2008, 정선아리랑제 설치전)
‘정영신의 장터’ (2012, 덕원갤러리)
‘장에 가자’ (2015, 아라아트)
‘장에가자프로젝트2’ (2015 정선시외버스터미널 문화공간)
‘장날’ (2016, 아라아트)
‘정영신의 한국의장터전’ (2017, 전국5일장박람회)
‘장터에서 백만 가지 표정을 담다’ (2018.정선고드름축제장)
단체전
<순실뎐> (2017 나무화랑), <병신무란 하야제> (2017 아리수갤러리), <촛불 역사전> (2017 광화문광장) 등
출판
‘시골 장터 이야기’ (2002, 진선출판사).
‘한국의 장터’ (2012 눈빛아카이브)
‘정영신의 전국 5일장 순례기’ (2015.눈빛)
눈빛사진가선 29 ‘장날’ 정영신사진집 (2016.눈빛)
‘정영신의 장터이야기1’ (2019 라모레터)
‘정영신의 장터이야기2’ (2019 라모레터)
‘정영신의 장터이야기3’ (2019 라모레터)
작품소장
서울시립미술관 2점 소장
책 속으로
“34년째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장터를 장터답게 만들 계기는 무엇일까?’ 숱하게 고민했다. 사진 한 컷 촬영하지 못하고 파장 무렵까지 장꾼들과 장에 나온 농민들과 이야기만 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장터에서 만난 사람들도 자신이 사는 곳에 어떤 보물이 숨어 있는지 책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된 것 말고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이 책, 『장에 가자, 시골장터에서 문화유산으로』는 내가 이전 책들에서 다룬 적이 없었던 장터와 지역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작업한 결과물이다. (...) 나는 지금도 장터에 가면 고향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을 느끼고 싶어 구경하러 나온 사람처럼 장을 몇 바퀴나 돌며 헤집고 다닌다. 어떤 물건이 새로 나왔는지, 난전에서 무엇을 파는지 알고 싶다. 계절 따라 파는 물건이 다르기에 사계절 모두 장에 가봐야만 그 생리를 알 수 있다. (...) 내게 남은 숙제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장의 특색을 잘 살려낼 고유한 문화를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네 시골장은 선조들의 역사이고 우리의 현재이자 아이들의 미래다.”
--- 머리말 중에서
추천평
인간애가 물씬한 ‘장에 가자’, 문화유산은 덤이다
사진가 정영신씨의 시골장터와 지역 문화유산을 연결한 ‘장에 가자’를 보니, 잊고 있던 고향과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듣던 사투리가 튀어나오고, 약장사의 구수한 입담이 재현되는 등 그리움이 왈칵 밀려온 것이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사람답게 살아 온 노인들의 삶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 마디로 로봇의 세상에서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가자는 메시지 같았다.
이 책은 34년 동안 장에 미쳐 쫓아다녔던 정영신의 장터 사랑이 이루어 낸 또 하나의 결실이다. 그동안 전국에서 열리는 오일장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장터 사람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등 여러 권의 장터 책을 펴냈지만, 이 책이 기존 책과 다른 것은 장터 인근에 있는 문화유적과의 연관성을 살펴보며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다. 옛 선인이나 유적인들 장터와 관계없을 수가 없지만, 사람 만나는 장소가 장터고, 사람 사는 게 문화이니, 자연스러운 조화인 것 같았다. 이왕 장에 간 김에 인근에 있는 유적지도 함께 돌아본다면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장터에서 절망보다 희망을 찾았다. 현실적 부정보다 긍정적으로 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장터사람들이 전하는 구수한 사투리도 정겹지만, 감칠맛 나게 풀어가는 이야기 전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추억속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며 근원적 향수를 자극했다.
“워메 줄 것이 한나도 없는디, 요 무시라도 하나 깍아드릴께라. 먼디서 온 손님인디.”라는 남원장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인정이 군고구마처럼 따뜻하다. 갈퀴 같은 손을 내밀며 “꼭 소가죽 같제라. 그래도 이 손으로 새끼덜 먹이고 갈쳤제”라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찡해진다. 그렇게 키운 자식들인데, 다 어디 가 있는가?
영암장에서는 따뜻한 믹스 커피 한잔으로 하루 장사를 시작하는 할매들의 수다가 요란했다. 도갑사 해탈문 이야기, 도갑사를 지키는 나무 이야기, 영험한 월출산 이야기 등 장보따리 풀 듯 풀어낸다. 장터에 “봄에는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온 풋풋한 초록 푸성귀를, 여름에는 따가운 햇볕 아래 농익은 과일과 채소를,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들판에서 익어간 곡식을 가져온 여인네들의 삶이 아름다운 색과 냄새와 맛과 소리와 함께 진열된다.”고 적고 있다.
청양장에는 당근 네 개 달랑 들고 나와 자리를 편 할머니 이야기도 있었다. “이거라도 놔야 사람 구경을 마음껏 허지유. 산중에 살다 보면 사람이 그리워유.”라는 말에 외로움이 절절하다. 농산물 팔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구경 온 할머니에서 심각한 오늘의 농촌 현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정영신의 사진과 글은 아무런 기교나 멋을 부리지 않는다. 따스한 인정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만 차곡차곡 쌓여 있다. 시골 할아버지의 등짐에, 아줌마의 봇짐에 감춘 사연 사연들을 장마당에 풀어 놓고 있다. 사진들이 다소 산만한 느낌은 들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장터의 난장스러움이 잘 묘사되어 오히려 정감이 간다. 대개가 화면을 단순화시키기 위해 장애물을 치우는 등, 주변을 정리해 기록적 가치를 망가트리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 그런 하잘 것 없는 장애물도 역사적 단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배경을 택해 장꾼을 연출시키는 기존의 사진들에 비해, 이 처럼 장꾼들과 소통하며 찾아 낸 감정묘사나 장마당의 혼잡한 분위기가 주는 가치나 울림이 훨씬 오래간다. 사진을 찍기 전에 물건을 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것 또한 그만의 어프로치다. 재미는 좀 덜하지만, 그보다 몇 배로 값진 장꾼과 사진쟁이의 소통된 마음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영신식 색깔의 장터세계고 작품세계인 것이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일곱 차례의 장터개인전을 가졌고, 18년 전에 펴낸 정영신의 "시골장터 이야기"는 이미 13쇄나 팔려 나간 인기서적이 되었다. 그 이후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장터사진아카이브 ‘한국의 장터‘와 포토에세이 ’전국5일장 순례기‘, 눈빛사진가선 ’장날‘ 사진집을 출판하는 등 우리나라 대표적 장돌뱅이 사진가다.
다큐멘터리사진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진에서는 현장성에 의한 휴머니티가 짙게 깔려있다.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인정이 모닥불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정영신의 사진에서는 된장처럼 구수한 냄새도 베어나고 잘 익은 막걸리 맛도 난다.
정영신의 장터 사진을 보면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각박한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람 사는 게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준다.
- 조문호 (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