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먼 곳 / 박은지
멀다를 비싸다로 이해하곤 했다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최대한
먼 곳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정말 먼 곳은 상상도 어려웠다
그 절벽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어서
언제 사라질지 몰라 빨리 가 봐야 해
정말 먼 곳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었다
돌이 떨어지고 흙이 바스러지고
뿌리는 튀어나오고 견디지 못한 풀들은
툭툭 바다로 떨어지고
매일 무언가 사라지는 소리는
파도에 파묻혀 들리지 않을 거야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우리가 상상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곳은
상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리고 흙을 잃었으며 뿌리를 의심했다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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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박은지 시집<여름 상설 공연>에 실려있습니다.
박근영 감독 영화'가장 먼 곳'의 모티브가 된 시이기도 하지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멀다"와 "비싸다"가 동의어로 통하기도 하지요.
이상향으로 먼 곳 중에서"정말 먼 곳"에 도달하기 위해 현실은 최대한 노력하지만
점점 닿을 수 없을 것 같아,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아 불안하지요.
그 오르고 싶은 절벽은 매일 허물어지고 있고 상상하는 사이 가까운 곳도 매일 넘어지고 있지요.
그래도 마지막 연처럼 "가장 먼 곳"을 상상해야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있을 수 있고,
그래야 절벽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견딜 수 있겠지요.
이 시는 미래와 현실이 대조적으로 공존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주면서도
정말 현실을 잘 살아야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중의적으로 잘 표현된 시입니다.(감상/어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