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모으는 법을 가르쳐준 친구 / 정희연
대나무로 만든 말을 타고 놀던 둘도 없는 친구는 성장을 거듭하면서 생활권이 서로 달라 멀어졌다. 환경이 바뀌면 다른 나무에서 자란 가지들과 어울려 새로운 친구를 만든다. 다른 것 같지만 비슷하고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같은 또래 이다보니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어 손을 내밀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
봉사 동아리 ‘밀알회’에서 친구를 처음 만났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토록 보존하리라는 말씀대로 한 알의 밀알이 되자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남광주역에서 출발해 입교역(화순군 청풍면, 지금은 폐역)에 도착했다. 남학생들은 짐을 들고 목적지인 지석천 송석정 유원지로 향했다. 역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서 시작한 지석천은 나주 금천면 인근에서 영산강과 합류하고, 조선후기 양인용이 축조한 누정으로 송석정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지은 정자와 넓은 강물과 모래사장이 펼쳐져 야유회로서 좋은 장소였다. 게임, 물놀이, 교수님과 같이 잡은 물고기로 튀김과 어죽 먹으며 보낸 하루는 알 수 없는 숫자와 기호들로 가득한 칠판과는 다른 분위기로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인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광주 학동에서 자취를 했고 친구는 방림동에 살았다. 광주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닿는 거리에 있었다. 동아리 침목을 이유로 자주 만났고, 집이 같은 방향이다 보니 자주 만나 친한 사이가 되었다. 건축학과를 다녀서 건물을 바라보는 시각도 새로웠다. 시간이 많았던 우리는 주말이면 만나서 충장로, 무등산, 지역학교, 행사장을 찾아 다녔고, 영화관, 오락실, 동아리 모임으로 하루를 채웠다. 하루는 태권도장 옆을 지나는데 자기가 다니던 곳이라며 한번 배워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 왔다. 새벽시간에 하는 거라 부담이 없다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밀고 들어왔다. 태어나서 운동을 배우는 것이 처음인 나는 어느 틈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앞 지르기를 하고 있었다. 옆 차기 준비! 돌려 차기 준비! 시작! 얍! 얍! 태권도 대학반은 모두 4명이었다, 2단인 4학년 선배, 태권도 유단자(3단)인 친구, 한 학년 위인 빨간띠, 나는 초짜 였다. 주먹을 쥐어도 발로 허공을 갈라도 솜방망이처럼 힘이 없었다. 며칠을 보내도 태권도를 가르치는 단장은 보이지 않았다. 새벽 대학반은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개인의 건강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처음 힘을 모으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늘 힘을 주고 운동하는 것이 말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순간과 지점에 힘을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언제든 몸의 중심이 사방팔방 모든 방향으로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교육은 끝났다. 그리고는 알아서 하란다. 염병! 무슨 말인지 알아듣긴 하겠는데, 어쩌란 말인지. 첫차를 타고 증심사에 도착해 체력을 키우려 무등산을 달려 오르던 기억도 새롭다.
2008년으로 기억된다. 농업기반공사에서 발주한 용수로 개선사업을 했을 때의 일이다. 준공을 앞두고 발주처에서 민원이 생겼다며 보완을 요청해 왔다. 소를 키우는 축사 옆으로 논이 있었는데 높이차가 많아서 우사 쪽 흙이 개거로 쏟아져 구조물을 더 높여 달라는 것이었다. 자재·인부·장비가 모두 철수해 다른 곳에 투입되어 여건이 좋지 못했다. 그때 친구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도와주었다. 작은 공사비에 잔일이 많아 고생만 했지 소득은 없었을 것인데 친구는 말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그때의 미안한 마음을 시간이 지난 후 꺼냈더니 대수롭지 않게 그냥 웃어 넘겼지만 나는 아직도 남아있다.
건축을 전공했던 친구는 토목에 발을 붙였다. 건축은 토목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자주 이야기 했었다. 그 이후 몇 년을 서로가 바빳는지 잊고 지냈다. 어느 날 카톡이 울렸다. 쿠웨이트 건설현장이라며 일주일 후면 귀국 한다는 것이었다. 교량 상부 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건설 업체에 있고 15일의 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상무지구에 좋은 횟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언제나 그대로인 친구 말투, 행동, 생각하는 것이 그때와 변함이 없다. 항상 맑고 밝고 긍정적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아버지와 이별을 하며 몇 번 봐왔었지만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해를 보내면서 어머니께 인사도 못하고 보냈다. 집에 가면 아들처럼 늘 반갑게 웃으며 반겨주시던 어머니셨는데 달달한 포도 한송이 사드리지 못했다. 명절이 되면 잊지 않고 작은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해본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구절초 꽃향기 가득한 가을이다, 친구와 있으면 담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함께 했던 추억이 그렇고 같은 업계에 있어 교감도 많다. 손을 건네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있어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 덕분에 기초체력 만들어 해양경찰대 훈련소에서도 어려움 없이 보냈다. 육체적 정신적 보디가드가 되어 주었던 마음 든든한 친구, 올해 첫 생산한 복분자에 술 한 상 준비해야겠다. 성민아 낮술 한잔 해야지?
첫댓글 나이 드니 친구가 더 소중해 집니다.
그러게요 친구가 그립습니다. 심박수가 비슷하여 늘 편한 친구 입니다.
직접 제조한 복분자로 친구와 한 잔, 술 맛 땡기겠어요.
작년엔 실패 하고 올해는 좀 괜찮아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멋진 친구와 복분자 한잔! 술맛은 모르지만 멋진 광경일 것 같네요.
조금만 먹자고 약속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저번에도 좀 과했어요.
문과생으로서 선생님의 전문 분야를 다룬 글은 어려웠는데, 이번 친구 이야기는 따뜻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과생으로서 따라가기 많이 힘듭니다. 틀린 것 또 틀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