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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골든 아워2 (golden hour)
사활의 1시간(중상 후의 1시간 동안; 응급 치료가 성공 가능성이 높다).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저자-이국종(1955년 아주대학 의과대학 졸업. 박사. 2007 로열런던병원 외상센터에서 연수하며 선진국 중증외상 환자 치료 시스템 국내 도입. 국내 최고 외상외과 의료팀
출판사-흐름(2018.11.30.)7쇄(1쇄는 2018.10.2.) 393쪽
독정-2020.2.9.일
독후감-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들은 그들의 생사를 내어놓고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처우개선에는 관심 없는 정치판 논리 속에서도 그들은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었다.
‘안개 속으로 잠복해 들어간 정의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일하는 태양 같은 존재가 되어’
이 책을 읽으며 의사로 일하고 있는 조카, 동한이가 생각났다. 동한이의 삶도 이와 비슷할 진데. 앞으로 얼마나 힘들게 살아갈까? 걱정이 앞서 이 책을 알라딘에서 주문해서 동한이에게 보냈다. 마음 견고하게 다잡고 살라고.
또한, 이국종 의사의 인생을 바꾼 말 한 마디를 생각해고 인터넷에서 다시 찾아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육군으로 6. 25 전쟁에서 한쪽 눈을 잃고
팔다리를 다친 장애 2급 국가 유공자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반갑지 않은 이름이었다
‘병신의 아들’이라 놀리는 친구들 때문이었다.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를 둘러쌌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마다 술의 힘을 빌려 말했다
"아들아 미안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 때 축농증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습니다.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을 찾았는데
국가 유공자 의료복지카드를 내밀자 간호사들의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다른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몇몇 병원을 돌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이 사회가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얼마나 냉랭하고 비정한 곳인지
잘 알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자신을 받아 줄 다른 병원을 찾던 중 그는 자기 삶을 바꿀 의사를 만났다. '이학산'이라는 외과 의사선생님이 어린 이국종이 내민 의료복지카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그는 진료비도 받지 않고 정성껏 치료하곤
"열심히 공부해서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그 한마디가 어린 이국종의 삶을 결정했다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을 돕자. 아픈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살자.‘
그를 대표하는 삶의 원칙도 그 때 탄생했다.
"환자는 돈 낸 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
그에게 "아버지가 자랑스럽겠구나' 라는 말을 한 의사가 없었다면
그는 우리가 아는 이국종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부끄럽다고 생각한 의료복지카드를 자랑스럽게 만들어 준
근사한 한마디가 세상을 아름답게 했다
[출처]이국종 교수의 인생을 바꾼 따뜻한 말 한 마디
· 사멸해버린 생으로 부서지는 울음과 피어나는 생으로 번지는 웃음은 멀고도 가까웠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무한한 연속성을 헤아려보려 했으니 그 깊이에 닿을 수 없었다. 중환자실과 외상 병동의 중증외상 환자들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경계가 모호했고 매 순간 소멸과 회복 사이에 있었다. 그들을 삶에 가까이 끌어다 놓는 것이 내 일이었다.
·전역사를 하는 이호연의 목은 중간 중간 잠겼다. 나는 뒤편에 앉아 그의 고별사를 들었다
-청주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과도한 국가의 은혜를 입어 해군사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으며 나에게 계급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정의롭고 용맹한 전우들을 만나 영광스럽게 해병대원으로서 저를 키워준 국가에 봉사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최고 지휘관에 오른 군인들의 성장배경과 정신세계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했고 최후에 실패하더라도 마지막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국종아 너 돌고래가 말하는 소리 들어본 적 있냐
나는 갑판수병으로 있을 때 돌고래들이 무리지어 빠르게 헤엄치며 함정을 따라오는 광경을 보곤 했다.
-가끔 우는 소리 들어본 적 있지. 왜?
-심해에서 저쪽 잠수함은 보이지 않아. 정말 앞이 하나도 안 보여. 검은 우주를 항해하는 것 같아 되돌아갈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는 제3의 공간에 고립된 기분. 그런 상황에서 음향 하나에 의지해서 적을 쫓아가. 그럴 때 청음기가 없어도 돌고래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어 꼭 돌고래들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처럼 느껴졌지. 돌고래가 내 호위무사 같더군. 조현철을 그 말을 하 고 웃었다. 순간 그가 있는 곳은 세속의 잡사로 가득 찬 육지가 아닌 멈 심해였다.
·나는 김지용의 성격 중 일부를 안다. 분명히 나보다 더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성공을 빈다는 말 외에 긴 말을 하지 않았다.
<변방의 환자>
중국 외곽 지역에서 한국인 중년 남사가 추락해 크게 다쳤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벌인 사업이 성공해 알려진 사람이었고 건축 중인 건물 5층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를 받아낸 중국 병원에서 보내온 진료기록은 명확하지 않았다. 환자는 병원에 도착해 도착했을 때 이미 심장이 뛰지 않아 응급 개흉심 마사지로 소생시켰다고 했다. 환자의 생존 여부는 불투명했으나 한국인 보호자들은 간절히 그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원했다. 의사는 보호자들이 환자를 포기하지 않으면 힘닿는 한 적극 치료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야 한다. 에어 앰블런스가 필요했으나 나라의 도움은 받지 못했다. 시간은 없고 환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보호자들은 가진 재산을 총동원해서라도 환자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환자의 자녀들은 부친에게 받은 사랑이 컸다며 어떤 희생도 감수하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돈이 많다고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환자가 좋은 아버지였고 좋은 가정을 꾸려왔음을 짐작했다. 해외에서 에어 앰블런스를 수배했다. 기관절개 수술을 하고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신장내과, 순환기내과,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혈액내과를 비롯한 거의 모든 내과계 교수들에게 협진이 의뢰되었고 나는 진단검사의학과에 내려가 환자에게서 검출된 항생제 내성균주에 대해 상의했다. 빨리 회복될 수 없으므로 입원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개월이 지났다. 환자는 살아 있으나 다시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생략) 환자는 행복한 마지막을 보냈을 것이다. 혼란 속에서도 그것 하나만은 선명했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든 동일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오지는 않는다. 버려진 죽음을 수없이 보아왔다. 가족이 없고 돈이 없어서 쓸쓸하게 허물어져 가는 목숨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므로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이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상황은 아무나 받는 축복이 아니다. 그 지점에서만큼은 분명히 행복했을 환자였다.
·행복한 명절이라는데 ‘민족의 대이동’이라 할 만큼 오가는 사람이 많으니 각종 사고가 줄을 이었다. 우리는 당직을 짜놓고 병원에서 버티며 밀려드는 환자들을 받아냈다. 부산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국도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운전자였던 젊은 여자가 많이 다쳤다. 어둑한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암흑 속에서 흰 먼지 같은 눈발이 시야를 가렸다. 논산에 접근할 무렵 기상이 악화됐다. 헬리콥터는 한 치도 전진할 수 없었다. 우리 사정을 안 육군항공학교에서 악천후 때문에 폐쇄한 활주로를 열어줬다.
-활주로를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별말씀을요. 명절 전날인데도 수고 많으십니다. 시장하실 텐데 좀 드세요.
당직사관은 악수하려고 내민 내 손을 잡으며 검은 비닐봉지를 건넸다. 봉지가 묵직하고 따뜻했다. 두유였다. -뭘 이런 걸 다 . 감사합니다.
어둠 속으로 이어진 활주로는 하얀 솜뭉치로 뒤덮인 것처럼 보였다. 그 위에 선 채로 소방대운, 팀원들과 두유를 나누어 마셨다. 하얗고 따뜻한 것을 나누자 명절 기분이 났다. 당직사관이 가져온 고소한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 몸을 덥혔다.(생략) 그해 여름에 환자가 애인과 함께 외래로 왔다. 외상외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목숨 하나 살리기 위해 모든 고통을 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의 최종 희생자는 내 주위 사람들이다. 거의 완벽하게 건강을 회복한 젊은 환자는 연인과 행복해 보였으나 외상외과 의료진은 강도 높은 노동 현실에 꺾이며 쓰러져나갔다. 민족의 명절 좋아하시네.
<기울어진 배-세월호 참사>
-효주 선생, 무슨 얘기야?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해봐
-정확한 건 모르겠습니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이 탄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고만 나옵니다. 빨리 좀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YTN채널에서 생중계되고 있었다. 화물선이 아닌 여객선으로 저 규모라면 수백 명을 태울 수 있는 배다. 이미 옆으로 심하게 기울어 침몰하고 있는 선체는 별다른 파손 흔적 없이 매끈했다. 화염도 보이지 않았다. 배 주위에 항로를 방해할 만한 것이 없고 바다 조류도 잔잔했다. 선박 주면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욕조에 장난감 배가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기이한 장면이었다. 저만큼 기울어졌으면 승조원과 승객들은 퇴선하여 구명보트를 타고 선박을 떠나야 했다. 구명조끼라도 입고 배 주위를 떠다니는 사람들이 보여야 했다. 그러나 화염 속에는 별다른 탈출 흔적도 구조작업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배가 오롯이 고요히 가라앉고 있었다. 옆으로 누운 배는 복원력이 없어 다시 일어나기 힘들고, 수병들은 이런 함정을 ‘죽어가는 고래’에 비유했다. 실제로 고래는 몸이 기울기 시작하면 대부분 살아나지 못한다. 남쪽 바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극도로 위험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승객 구조였다. 구해냈다고 해도 응급처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담요를 두른 아이들은 연신 두리번거렸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아이들을 붙잡고 물었다.- 배안에 몇 명이나 있었어요?
아이들은 내개 되물었다.
-친구가 빠져나오지 모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해요?
-아직 친구들이 배 안에 있어요
-못 나온 아이들이 많아요
-선생님, 지금 계속 구조되고 있어요? 네?
나와 학생들은 서로 답할 수 없는 물음들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 의심 없는 얼굴이었다. ‘여기에 없느 친구들은 다른 곳에서 구조되었을 것이다.’모두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수온이 11도에 불과하지만 해가 지면 수온은 더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그들은 산 시간도 버틸 수 없다. 생각이 최악의 상황에 가 닿았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진도 채육관에 생존자가 모여 있다는 말이 들렸다. 우리는 헬리콥터를 체육관 바로 옆 잔디밭에 착륙시켰다. 반듯한 매트가 중앙에 마련된 실내에는 구조된 사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걱정과 불이 체육관 안에 가득했다. 가장자리에는 지역 보건소와 관공서, 군부대 등에서 나온 사람들이 부스를 설치하고 있었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구조된 사람들 전부인가요?
-저희도 잘 모릅니다.
-혹시라도 구조되지 못하고 누락된 사람들에 대해 구조요청이 들어오고 있습니까?ㆍ
-지금 막 도착해서 모릅니다.
-그럼 지금 사고 해역 현장과 이곳 통신을 담당하는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글쎄요…….
대답은 한결 같았다. 윗선으로부터 단지 이곳에 가라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통일된 지휘 체계 안에 있지 않았고 누가 자신들을 지휘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각자 소속된 조직 상부에서 내려오는 파편적 집합 명령에 따라 모인 것뿐이었다. 모두 위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휴대전화를 귀에 달고 있었다. 그들의 분주한 말들이 섞이고 섞인 거대한 웅성거림에 체육관은 거대한 울림통 같았다. 그 웅성거림의 실체가 보이지 않았다 장비 가방을 둘러멘 어깨 통증은 이상하리만큼 심해지고 있었다. 윗사람으로 보이는 현장 요원을 잡고 다시 물었다. 체육관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혹시라도 많이 다치거나 아픈데 병원으로 가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잘 모르겠는데요. 어디서 오셨죠?
나는 더 이상의 질문을 포기했다.
-이제 그만 복귀하자. 각자 훝어져서 구조된 사람들을 살펴보고 중환자인데 방치된 사람이 잇는 지 찾아봐 이곳에서 치료 가능한 경증 환자나 지역병원으로 보내고 중환자를 찾게 되면 복귀하는 길에 데리고 가자. 그 동안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정보를 학생들에게서 들었다.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 수만 적어도 300여 명이라는 것. 체육관에 모인 학생 대부분은 침몰 초기에 구조되었다는 것. 체육관 안을 둘러보았다. 대충 보아도 이 안의 구조자는 300명에 한참 못 미쳤다. 다른 곳에 임시 대피처가 마련되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디에 얼마나 많은 승객들이 구조되어 대피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구조에 대한 믿음은 의심이 되었고 의심은 불안으로 번졌으며 불안은 공포와 절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부모들은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 울음은 한가 아니어서 바윗덩어리처럼 내 속을 짓눌렀다. 나는 옆을 지나던 또 다른 노란 점퍼 사내의 팔을 잡고 다시 물었다.
-아주대학교병원에서 온 중증외상팀입니다. 지금 이곳 말고 구조된 다른 승객의 집합소가 또 있습니까?
모른다. 모른다. 나는 알지 못한다. 가보라고 해 서 왔을 뿐이다. 모두가 일관된 대답을 해댔다. 정부의 많은 부처들은 바다 밑으로 배가 사라지고 나서야 분주해졌다. 구조작업의 가장 중요한 시점을 속절없이 보내버렸다. 뉴스에서는 시종일관 골든타임 내에 승객을 구조해야 한다고 떠들었다. 정경원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추적거리며 내리는 봄비까지 더해져 뼛속까지 춥다고 했다. 깊은 무력과 좌절이 분노에 실려 전해왔다. 먼 곳의 축축하고 서늘한 바다와 비의 기운이 전화선을 타고 몸 안으로 스며들어와 소름이 돋았다. 진도의 팀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수원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여객선이 가라앉을 때 윗선에서 VIP 고용 영상자료를 보내달라고 실무진을 닦달한 음성파일이 한 언론을 통해 터져 나와 여론이 들끓었다. 관료화되고 경직된 한국 사회에서 보고서는 몹시 중요했다. 유려한 말과 글로 이루어진 보고와 보고서에는 현장에서 몸을 던져가며 일하는 일선 노동자들이 고꾸라지는 현실은 없었다. 때때로 침몰하고 있는 배의 끝에 생각이 가닿았다. 죽어가는 고래처럼 뒤집어져 번들거리던 선체의 퍼런 밑창이 머릿속에 판화처럼 깊이 박혔다. 사고 당일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내가 현장에서 보고 실제 겪은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이미 다 끝난 상황에서 애꿎은 사람들의 목만 수없이 날아갈 것이다. 사실 나라 전체가 다 그러낳네 몇 명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 나는 낡고 닳아빠지고 있었다.USS 본험리처드함이 사고해역에서 벗어날 때, 몇 몇 미 해군 사관들이 함미 갑판으로 나와 서서 세월호 침몰 지점을 향해 마지막 경례를 했다고 전해 들었다. 리본 속 이름들 중 얼마만큼 이 죽음을 이해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뒤늦게 남쪽 바다까지 비행해 내려가야 했던 이유와 헬라 콥터가 추락한 원인을 저들은 알고 있을까. 죽은 이들은 침묵했고, 살아있는 구누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빗방울의 무기력한 추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어느 하나도 중력을 거스르지 못했다. 무수한 우적들이 바닥과 충돌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내 몸을 후려치며 휘감았다. 어디론가 도망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데 갈 곳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잘못 건드리면 바스러질 얇은 유리잔 같았다. 사직서를 보며 세월호 때 부서져나간 어깨가 생으로 찢어져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뭘 찍든 소견만 관찰될 뿐, 확인한다고 치료받고 쉴 수 없으므로 검사는 무의미했다. 통증이 격렬해질 때면 그것이 죽음의 신호처럼 느껴지곤 했다.
-소수의 인원들이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나는 병원 구성원 모두가 이 사업을 접으라고고 하면 그만둘 생각도 있었다.
-그래도 좀 쉬어가며 일하세요. 대장이 쉬지 않으니 아랫사람들도 눈치 보여 덩달아 못 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다 저렇게 쓰러지는 거고요.
-교수님,ㅡ 이상센터가 바쁜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시간 외 근무를 많이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 기관이 노동부에게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 진퇴양난이구나
· 헬기장으로 가는 응급 구조사에게 피자 두 쪽을 쥐어 보냈다. 찬 기운에 피자는 금방 식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할 때, 쌓였던 눈덩이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며 회오리쳤고, 부서진 눈가루가 지상에서 대기 중이던 의료진을 정면으로 후려쳤다.
-안개 속으로 잠복해 들어간 정의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일하는 태양 같은 존재를 위해.
‘그래, 이런 자세로 알 했었다. 나와 내 동기들은 일주일에 120시간 가까이 일하며 젊음을 태웠었다. 서서도 졸았고, 걸으면서도 잤다. 나는 낡은 수첩을 넘겨가며 손으로 눌러 쓴 과거의 흔적들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의사로서의 비전이라. 실제 의사로 살고 있는 내게 학생이 바라보는 의사에 대한 말은 헛소리였다. 학생이 말하는 의사로서의 삶은 모호하고 뜬구름 같았다. 나는 당장 오늘 밤조차 예상할 수 없다. 내일은 더 먼 이야기다. 그런 내게 ‘비전’이란 단어는 현실적이지 않다. 저런 정신세계로는 치열한 의료현장을 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다 바뀔 정도로 각오를 새롭게 다지지 않으면 안 된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학생과 교수가 상담하는 시간이 40분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곧 보호자들과 저녁 면담을 해야 했고 그중 한 보호자에게는 악화하고 있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그 밤 김재근은 학생과 면담을 했고 나는 보호자들을 설득하느라 진을 뺏다.
정재호의 수술은 본인을 닮아 섬세하고 깔끔했다.
· 외과 전공의 수련과 학회 운영에 뒤따르는 난점들을 하나씩 짚어나가면서도 그는 내 처지를 걱정했다.
-요즘엔 좀 어찌 지내십니까?
-그냥 지냅니다.
이재연은 힘내라는 말과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마무리를 지었다.
해군과 해병들이 교두보를 확인하는 단계이든.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정책 교두보를 만드는 작업이든 모두 엄청난 희생을 담보로 한다. 나는 그 지난한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돌아보면, 모르는 척 덥지 모하고 파고들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는 것은 결국 내 선택에서 기인했다. 다른 길은 알지 못해서 스스로를 진창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을 나는 좀처럼 멈추지 못했다.
· 나이 듦과 함께 체력과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서 그 능력은 자연스럽게 감퇴하지만, 능력 배가분은 감퇴분을 상회해 종합적으로 50대 초반까지는 증가 곡선을 그린다. 나이가 예순에 가까워지면 경험과 지식 축적분은 유지되는데 반해 체력과 신체 기능을 급격히 저하되어, 증가 곡선을 그리던 전체 기울기는 내리막을 그리기 시작한다. 내 나이는 쉰에 가깝고, 몹시 그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았다.
· 배정되어 있었다. 적어도 스태프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으니 윗선 보직자는 도면 한쪽을 붉은 매직펜으로 그어냈다. 새빨간 선 하나가 미세한 쇳소리를 내며 스태프들의 방을 가로질렀다. 그 순간 교수들의 연구실로 배정된 면적의 60%가 잘려 나갔다. 이를 악물고 항의했으나 다른 임상과와의 형평이 중요하다 했다. 형평이라. 대부분의 임상과 교수들은 병원에서 먹고 자고 싸며 일하지 않고,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하며 환자를 돌보지 않는다. 우리에게 병원은 일터이자 집이었다. 주거가 해결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었다. 붉은 쇳소리가 두개골을 가로질렀다. 아무리 피곤해조 잠을 잘 자지 못했다.
· 내 눈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아셨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집에 들렀을 때 어머니는 내게 많은 것을 묻지 않았다. 나를 앞에 앉혀둔 채 몸을 사선으로 돌려 앉아 묵묵히 먼 곳을 응시했다. 어머니 눈에서 손가락 마디만한 눈물아 쏟아졌다. 소리 없이 너무 많은 눈물이 흘러서 놀랐다, 어머니의 작은 어깨가 움츠러 들었고 등은 더 깊이 굽었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어머니를 안았다. 연로한 어머니의 앙상한 골격이 품에 닿았다 힘없는 작은 뼈마디의 진동이 가슴팍에 전해져왔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품 안에서 낮게 울렸다.
-네 아버지도 왼쪽 눈이 실명이지 않았니. 그것도 지독한 유전인가. 어째 안 좋은 건 다 닮아가는지…….
어머니는 예전부터 낵 아버지를 닮지 말라고 하셨다. 원칙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성정이 대쪽 같고 타협이란 없는 분이어서 주위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했다. 집안에서도 좋은 남편. 아버지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그런 아비를 따라 강팍한 성미로 힙겹지 않기를 바랐다. 한국 조직 생활에서의 적당한 융화를 강조하며 겟 얼롱(ret along-더불어)을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그러면서도 본인 역시 강한 성정을 버리지 못해 ‘돌아서 가기보다 차라리 부딪쳐서 산산조각 나는 게 낫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길바닥에서 일하다 파편처럼 흩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눈 부모의 자식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적당히 어울리지 못해 인생이 고달팠고 어머니 말씀처럼 돌아가지 못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그것을 어머니도 모르시지 않을 것이다. 품에 안은 어머니의 눈물이 내 어깨를 적시며 축축하게 스몄다. 늘 강인해 보이던 어머니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왜소해진 어머니의 세월이 안쓰러웠다. 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말없이 어머니를 안아드리는 것뿐이었다. 평탄하지 않은 아들의 삶은 죄송스러웠으나 달리 사는 재주가 내게는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버지 묘뿐이었다.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로 서울 북부 납골당에 모셔두었으니 내게 문제가 생기면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대전 국립묘지로 모셔야 했다. 나는 육군본부에 연락해 아버지 병적 증명서와 진료 기록부를 요청했다..
_적 폭약의 폭발로 파편이 좌안으로 관통되며 안구 손상. 육군 이동 외과 병원에서 더 이상의 진료는 불가능해 육군기지 병원으로 재후송. 한문으로 된 의학용어부터 국문과 영문이 혼용된 단정한 필체였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나와 동일한 좌측 눈의 심한 망막 파열이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평생 좌측 시력 없이 사셨다. 아버지의 유골이 매장된 자라는 아직 흙바닥이엇다. 겨울에는 잔디가 생착 되지 않아 봄이 되어야 잔디를 덮을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 뫼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다들 거의 집에 못 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안 좋은 예기들만 계속 보고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센터장님도 위축되실 거고요. 가뜩이나 외부로도 사방에서 차이는데요. 모두가 한계 상황인 거 아는데 재가 옆에서 자꾸 이런 보고나 올리면 더 하고 싶으시겠어요?
김지영은 내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그 한계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내가 더 이상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판을 접어버릴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김지영을 이해할 수 없다가도 이해가 됐고 이해하면 할수록 빨리 때려치워야 할 것 같았다.
· 사람은 자기가 사는 세계 밖의 일을 잘 보지 못한다. 나는 그 인사를 이해해보려 애썼다, 귀빈 수송용 헬리콥터를 조종했을 것이고 큰 기업체의 업무용이나 관광객 수송용 헬리콥터를 조종했을 것이고 시계가 충분히 확보된 화창한 날에만 비행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보방항공대의 구조구급 임무를 통제하려면 현장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안자야 했다.
새 외상센터 건물의 환자용 엘리베이터가 지나치게 좁았다. 각종 장비가 옆에 달린 중환자용 침대가 들어가면 의료진이 탈 자리가 부족하고 비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육중한 중환자용 침대가 드나들면서 엘리베이터 내부는 금방 우그러졌다. 내가 설계 당시부터 지적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땅이 좁았고 기본 설계상으로도 한계가 있었다. 시설팀에서 변경에 난색을 보여 그대로 진행했으나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러나 교체에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대로 둘 수는 없어 문짝을 뜯어서 입구만이라도 좀 더 늘리는 방안을 시설팀에 부탁했다. 결국 엘리베이커 내부의 지지대를 철거해 공간을 넓혔다. 가로세로 약 10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이 더 생겼다.
2008년 이후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이 현실화되자 열풍이 불었다. 돌아가는 꼴이 아프리카 토착민 마을에 콜라병이 하나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私有(사유)와 이권을 이룬 영화 <부시맨>을 보는 듯 했다.
·일부 정치인들이 특별히 생각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몸을 서서 먹고 살았고, 몸으로 먹고사는 노동자들은 일하다 사고로 으스러져 죽어가곤 했다 말로 먹고사는 이들은 몸으로 먹고사는 이들의 삶을 깊이 알지 못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끼리 말잔치만 벌이며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논했으므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책은 실제 노동자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부서지고 찢겨져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을 눈앞에서 보는 나는 그렇게 느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물살에 부서진 조각들이 발 끝에 채는 광경에 나는 무참했다.
세상이 질투와 모략을 일삼을 때-
“세상이 우리에게 하는 더러운 말을 다 듣고도 너희 마음에 선한 의지가 남아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내가 하는 이야기는 백가지 중 한 가지일 뿐이야. 그 하나기는 나조차도 감당이 안 돼서 하는 거고. 쓰레기 취급당하는 게 아니야 . 여러분 명예와도 관련된 거라서 나는 숙이고 들어가면서까지 이 짓을 더하고 싶지 않아.
<살려낸 소방대원>
· 화재진압 중에 얻은 개방성 상처가 급격히 왁화 되어 도착하자마자 수술을 받은 소방대원은 다리 끝에서 시작된 괴사성 근막염이 하반신을 넘어 상체를 지나 이미 액와부까지 와 있었다. 큰 수술에 출혈이 심했고 수술 후에는 다발성 장기기능부전을 보이며 사경을 헤맸다. 마흔도 채 안 되는 환자의 신장기능이 마비되어 몽에서 노폐물을 뽑아내도 폐부종이 여전했다 기관 내 압력이 너무 높이 올라가 산소 분압이 유지되지 않았다. 간 기능이 마비되어 복수까지 차올라 배가 남산만큼 불렀으며 황달까지 와서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복압이 올라가자 복부 구확증후군까지 올까봐 전전긍긍하는 나를 문종환이 달랬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죠. 무종을 조금 더 낮춰보겠습니다.
나는 부종을 빨리 낮추지 말라고 당부했다. 서두르면 환자의 혈압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 몇 달 가까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화자 부인이 지극히 남편을 간병 했다. 소방대원은 천신만고 끝에 극적으로 회생해 깨어났다. 회진을 돌 때 환자 머리맡에 둔 아이들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시 아버지를 찾아 다행스러웠다. 환자는 회복해 퇴원했고 부인과 함께 외래로 찾아왔을 때 다시 만났다. 나는 돌풍이 불던 날 자청해서 그를 데리고 온 경기 소방항공 대원들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본인이 소방대원이므로 그 이름들의 의미가 남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두 사람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환자가 일선에 복귀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의 몸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출동은 아지 일렀다. 몸이 완쾌되면 다시 현장으로 나가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또 건져 올릴 것이다. 한 목숨이 살아서 여러 목숨이 살 가능성이 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것은 환자 본인이 살았고 살아서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좋았다.
헬리콥터 정비 중에 문제가 발생했다니까 윤 대원이 직접 본다고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깊숙이 위치한 전정기관을 치고 들어간 격렬한 진동이,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절 사이사이로 이어지며 그의 몸 전체를 흔들었을 것을 떠올렸다.
-헬리콥터는 언제 출발하실 겁니까? 헬기장을 준비해놓겠습니다
-지금은 띄울 수 있는 기체가 없습니다. 앰블런스로 가겠습니다.
· 나이를 먹으면 얼굴이 늙어가듯, 몸ㅇ듸 내장기관들도 낡고 고장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인간은 대체 부품이 없는 존재다. 고장 나고 문제 있는 장기들을 갈아 치우지 못하므로 ‘약발’로 보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만성질환은 노화와 죽음으로 가는 자연적 과정이어서 제원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의료계 재원이 만성질환에만 집중되는 한국 현실은 현실 정치와 일반 국민, 의료계의 합작품으로 보인다.`
수술은 간신히 끝났다. 마취과 이인경 교수가 자기 손으로 앰부를 짜서 터진 환자의 폐 속으로 공기를 불어넣으며 환자를 중환자실로 데려갔다. 피에 절고 피곤에 절어 다리마저 풀린 외과 전공의 소중섭이 위태롭게 환자 침대를 끌었다. 밀려가는 침대 바퀴 궤적이 핏자국으로 나돌며 수술방 복도를 물들였다, 나는 멍하니 서서 환자가 빠져나간 수술방을 응시했다. 흥건한 핏물 위에 널부려진 많은 수술기구들과 일회용 소모품들의 잔해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숨이 막혔다. 내가 마치 쓰레기로 뒤덮인 피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것 같았다.
도착 예정 시간 10분. 싣고 오는 환자는 총상을 입은 군인이라 했다. 흉복부와 사지에 다발성 총상을 입은 환자라고 했다. 찢어진 폐에서 새어 나오는 공기는 폐와 심장을 짓눌러 쪼그라 리고 있었다. 긴장성 기흉이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몇 분 내 사망한다. 구급대원들은 흔들리는 헬리콥터 안에서도 폐에서 빠져나오는 공기를 완벽하게 제거하도록 신속하게 응급처치르 해냈다. 그들은 거의 다 죽은 목숨을 필하사적으로 붙들어 데리고 왔다. 환자는 피를 너무 흘려 블랙호크 캐빈 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인계받은 환자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혈압이 60 아래로 떨어지며 심각한 출혈성 쇼크를 보였다. 초음파 검사상 복부 안에도 피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환자를 뚫고 지나간 총알은 최소 다섯 발 이상이었다. 총탄의 흔적은 팔다리뿐만 안지라 가슴과 엉덩이 겨드랑이에까지 사방에 위치했다. 그 자리를 따라 피가 계속 솟구쳤다. 탄환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부수고 어떻게 빠져나갔는지 쉽게 보이지 않았다. 확보한 중심정맥과 사지정맥을 통해 O형 혈액과 수혈을 때려 부었으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CT 촬영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빴다. 병원에 도착한 지 30분 만에 환자를 수술방으로 올렸다, 그런 와중에 군과 국정원 관계자들이 센터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환자가 북한군 병사라고 했다. 환자의 상태는 순차적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했다. 외상와과와 정형외과 두 팀이 동시에 달라붙었다. 환자의 복부를 칼로 가르고 들어갈 때 정형외과 팀이 좌측 상단의 출혈들을 빠르게 잡아나갔다. 절개창 사이로 검붉은 서혈이 내 머리 끝으로 튀어 올랐다. 눈앞이 붉었다. 배 속에서 쏟아져 넘쳐흐른 핏물이 내 발을 적셨다. 마취과 의료진의 날 선 외침이 터져 나왔다. 수술방에 가득한 극도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날을 세웠다. 골반을 부수고 들어온 총알이 10여 군데의 내장을 뚫고 지나가며 파열 시켰고. 으깨진 장에서 흘러나온 온갖 내용물이 복강과 장기를 오염시켰다. 내장은 동시다발적으로 손상됐다. 살릴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었다. 핏물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피 구덩이 속에서 쓰물거리는 기생충들을 보았다. 적은 수가 아니었다. 의료진 모두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간 찢기고 으스러진 환자들을 수없이 봤으니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보통 상황이면 구충제를 먹이면 될 것이지만 내장이 터져나간 환자에게 경구 약을 투여할 수는 없다. 약이 있어도 쓸 수 없다는 사실에 미칠 것 같았다. 오만에서 석해균 선장을 마주했던 때가 그대로 겹쳤다. 환자가 죽고 기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순식간에 스쳤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눈에 보이는 대로 기생충들을 짜내며 걷어내기 시작했다. 최대한 제거하는 데까지 제거한다. 그것이 우선이었다. 기생충이 봉합한 부위를 뚫고 나오면 내장들은 다시 파열될 것이다.
-교수님 아직도 출혈이 많습니다.
마취과 의료진이 쉴 틈 없이 피를 쏟아 넣고 있었으나 탄공과 열린 후복막강으로 끊임없이 피가 빠져나갔다. 북한 환자의 피와 남한 사람이 헌혈한 피가 뒤섞인 피였다. 끊임없이 피가 솟는 부위 중 일부는 꿰매고 일부는 결찰해 들어가며 출혈을 잡아갔다. 도저히 못 쓰게 된 자은 끊어내고 살릴만한 곳은 봉합해 정리했다. 1차 수술을 마쳤을 때 수술방 바닥은 피바다였고 의료진 모드가 피 철갑이었다. 모두가 기진하여 쓰러질 듯 했다. 환자는 배가 열려 있는 상태로 중환자실로 올려졌다. 2차 수술이 끝난 뒤 환자 상태에 대한 브리핑에서 기생충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 날 선 비판이 튀어나왔다. 한국 중증외상센터의 직원 고용ㅅ 수준은 영미권의 3분의 1에 불과했고 적은 인력이 과도한 업무를 감당하느라 과로로 스러져나갔다. 수술병방의 모든 의료진이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고 환자의 피를 뒤집어썼다. 전담간호사들이 다치거나 유산해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이 현실은 무관심 속에 외면 받고 있었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무슨 이유로 희생을 기본 값으로 감수해야만 하는가. 거대 담론만이 존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지속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한국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고, 그 안에서 각자도생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 사회는 영화 <매트릭스>와 흡사하고, 사회가 움직이는 시스템의 근간을 모르는 채 사는 것이 좋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잘 자는 사람들의 책상에서 결정되는 정책에 따라 24시간 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의 생사여탈이 결정되는 현실에 신물이 났다. 정치적 이슈가 되는 환자들이 치료되어 살아날 때마다 무지개처럼 제시되던 헛소리들을 믿어가며 너무 오래 버텨왔다.
그의 흰 가운이 거센 하향풍에 심하게 펄럭였다. 그가 쓰러지지 않을지 나는 두려웠다. 정경원은 점차 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