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1.연중13주 수요일 묵상글>
<마태8,28-32>
예수님께서 호수 28 건너편 가다라인들의 지방에 이르셨을 때,마귀 들린 사람 둘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그들은 너무나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다닐 수가 없었다.29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의 아드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때가 되기도 전에 저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30 마침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31 마귀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쫓아내시려거든저 돼지 떼 속으로나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32 예수님께서 “가라.” 하고 말씀하시자, 마귀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그러자 돼지 떼가 모두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
노먼 베쑨은 제 1차 세계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하게 된다.
그가 경험한 전쟁은 그가 생각했던 전쟁이 아니었다.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살육만이 난무했다.
허무와 좌절의 시간이었다.
살육의 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자신도 부상당한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줄곧 그를 괴롭혔다. 이런 치욕을 씻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영국 해군으로 다시 입대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 비행단에서 제대한다.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런던의 병원에 근무하면서 큰 돈을 벌어,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한다. “나는 삶에 대해서나 죽음에 대해서나 아무런 목적도 갖지 못한 채 불빛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 그리하여 어리석게도무작정 그 주위를 돌고 도는 한 마리 나비와 같은 존재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19)/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과로한 탓에 결핵을 얻게 된다.
사경을 헤매던 그는 자신의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고 결핵 요양원에 입원한다.
그러나 그곳은 그에게 죽음의 장소가 아니었다. 죽을 날을 달력에 표시해 두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술과 담배에 몸을 맡기던 그는 존 알렉산더가 쓴 “폐결핵 수술”을 읽으며 인공 기흥술이 결핵을 완치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접한다.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수술을 요청한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1)/
그 이후에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자처한 그는 국민들에게 적절한 의료 혜택을 주기 위해 ‘몬트리올 국민 보건 그룹’이란 단체를 만든다. 돈이 있든 없든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모두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베쑨은 안락함을 버리고.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스페인 내전의 한가운데로, 그리고 장개석 마오쩌둥 그리고 일본의 전쟁 속으로!
일본군과 유격대원들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는 곳에서 하루 18시간씩 일하면서 면도하는 것도 포기했다. 당시에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몸은 몹시 피곤하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내게 있었던가?
나는 지금 얼마나 부자인가
매순간 활기차게 일하는 데다
모두들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7)/
세상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린 그로서는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지 찾아 헤매었고, 마침대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을 돕는 장수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아니었으면 살육만 난무하는 허무와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표방한 장개석 군대는 베쑨과 같은 모델이 없었고 정신적 기강이 헤이해져서 무기를 적에게 팔아먹는 일이 벌어졌고, 베쑨의 헌신적인 치료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받은 마오쩌둥의 군대는 공산주의를 표방했지만 하나로 단결되었으며 중국은 공산화 됩니다. 베쑨이 장개석 편으로 갔었으면 현재의 중국과 한반도 정세는 지금과 다른 형국일 것이라 생각 됩니다.
바닷물을 짜게 하는 것은 3.5%의 소금이라 했습니다.
베쑨의 헌신적인 봉사로 감동한 사람들은 타락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군대처럼 수많은 마귀 떼들을 돼지떼 속으로 쫒아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쫒아내신 것은 인간의 최종적인 치유를 미리 보여주시는 것 입니다. 이스라엘 뿐 만이 아니라 이교인들의 땅에서도 활동하시며 구원을 이루실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부정한 것으로 상징되는 돼지 떼였지만, 마을 주민들은 예수님께 떠나가달라고 합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재산적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이는 마치 어쩔 수 없이 세속적인 것과 인연을 맺어가며 먹고 살아가야하는 우리 이웃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세상의 것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나약함 입니다. 그러나 치유받은 그 두 사람은 다시는 옛날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그 전쟁의 지옥 속으로 베쑨이 다시 뛰어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
폐결핵으로 생을 포기했던 그가 기적적으로 수술을 통해 회생한 후 육적인 치유뿐만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로 거듭나겠다고 결심합니다. 안정되고 풍요로운 삶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으로 돈과 방탕한 생활에 빠졌던 그는, 불안정하며 물자가 턱없이 부족하고 살육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헌신적 치료를 통해 인간을 향한 사랑과 정의의 꽃을 다시 피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전쟁터에서도 매순간 베쑨이 활기 있게 일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의사인 자신의 치료를 필요로 했으며, 죽음을 무릎쓰고 영웅적이고 헌신적으로 일하면 일할 수록 두려움 속에 떨며 비겁했던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극복할 수 있었고 생기있는 삶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치유통한 예수님의 권능이 드러나듯이, 베쑨에게 있어서 전쟁터는 부상병 치료를 통한 사랑과 정의의 힘이 드러나는 현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Matthew8,28-32>
28 When he came to the other side, to the territory of the Gadarenes, two demoniacs who were coming from the tombs met him. They were so savage that no one could travel by that road.
29 They cried out, "What have you to do with us, Son of God? Have you come here to torment us before the appointed time?"
30 Some distance away a herd of many swine was feeding.
31 The demons pleaded with him, "If you drive us out, send us into the herd of swine."
32 And he said to them, "Go then!" They came out and entered the swine, and the whole herd rushed down the steep bank into the sea where they drowned.
—-//—-
<책 소개>
12.생명을 구하기 위해 명성과 이익을 뿌리친 큰 의사 노먼 베쑨
“내가 수술하지 않으면 저 아이는 죽어.”
노먼 베쑨은 1890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그레이븐 허스트에서 목사인 아버지 말콤 니콜슨 베쑨과 어머니 엘리자베스 앤 굿윈 사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하지만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은 꼭 해내고야 마는 집념이 그에겐 있었다. 외과 의사였던 할아버지를 존경했던 그는 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성장하자 토론토 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 제1 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1915년 캐나다가 참전을 선언한 바로 그날, 베쑨도 캐나다 육군에 입대하여 제1 사단 야전 병원에서 복무하였고 바로 프랑스의 전장으로 파병되었다. 그는 이프레스에서 독일군의 포탄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고 영국군 병원에서 치료받지만 결국 캐나다로 송환된다. 이후 그는 의과 대학을 마친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13)/
그가 경험한 전쟁은 그가 생각했던 전쟁이 아니었다.
정의는 온데간데 없고 살육만이 난무했다.
허무와 좌절의 시간이었다.
살육의 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줄곧 그를 괴롭혔다. 이런 치욕을 씻기 위해서는 새로운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영국 해군으로 다시 입대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 비행단에서 제대한다.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런던의 병원에 근무하면서 큰 돈을 벌어,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한다. “나는 삶에 대해서나 죽음에 대해서나 아무런 목적도 갖지 못한 채 불빛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 그리하여 어리석게도무작정 그 주위를 돌고 도는 한 마리 나비와 같은 존재였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19)/
런던에 있을 때 만난 명문가의 딸, 프란시스 캠벨 패니와 결혼을 한 그는 유럽에 눌러앉아 방탕한 생활을 한다. 삶에 아무런 목적도 없는 시절이었다. 그는 빈털터리가 되자 미국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병원을 개업한다. 외과 의사로서 실력을 인정받아 베쑨의 생활은 풍족해진다.
자동차 산업으로 나날이 발전하던 디트로이트 중심에 자리 잡은 베쑨은 그 곳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디트로이트에서 그의 의료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아닌 가난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 그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한 푼도 받지 않고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면 의사로서 실패한 삶이 되고, 어떤 부인네한테 운동만 좀 하면 될 증세에 대해 강장제 한 첩을 조재해 주고 그 약값을 엄청나게 받았다면 그건 성공이 된다는 말일세.”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정작 의료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오직 의사의 주머니를 배부르게 하는 현실에 대한 한탄이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0)/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과로한 탓에 결핵을 얻게 된다.
사경을 헤매던 그는 자신의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고
결핵 요양원에 입원한다.
그러나 그곳은 그에게 죽음의 장소가 아니었다. 죽을 날을 달력에 표시해 두고 절망적인 심정으로 술과 담배에 몸을 맡기던 그는 존 알렉산더가 쓴 “폐결핵 수술”을 읽으며 인공 기흥술이 결핵을 완치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접한다.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수술을 요청한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퇴원 후 스스로에게 맹세한다.
“다시는. 매스를 들면서 그 어떠한 생명도 단순한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은 꿈을 가진 존재이다. 이제부터 나의 칼은 육체와 꿈을 동시에 구하리라.
사람의 몸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마음과 영혼까지 치료하겠다는 결심이었다. 더 이상 그는 과거의 베쑨이 아니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1)/
그는 의욕적으로 의사 생활에 몰두했다. 늑골 절단기, 기계 팔 등 결핵 수술이나 흉부 외과 수술에 필요한 많은 기구들을 고안해 내었다. 그의 명성은 높아져 연방 정부, 지방 정부, 보건성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그는 의사로서 명성을 쌓아 가면서 하나의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아무리 의사가 훌륭한 업적을 쌓더라도 환자가 줄지 않는 것은 가난 때문이라는 사실을.
의사는 한 명의 환자를 고치지만
가난은 열 명의 환자를 만들어 냈다.
“부자들의 결핵과 가난한 자들의 결핵은 따로 있다. 부자들은 회복되지만 가난뱅이들은 죽음을 면치 못한다.”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료 서비스는 아무나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자는 얼마든지 병을 고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병이 들어도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는 ‘가게의 통조림처럼 몇 달러로 거래되는’ 의료 행태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몸이 아픈 자는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2)/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사건이 터졌다.
거리에서 시위대와 기마경찰이 충돌했다.
“우리 아이에게 우유를 달라,
나의 아내에게 빵을 달라.”
여러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전진하던 시위대를 향해 기마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자,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이 광경을 본 베쑨은 다음 날 몬트리올 실업자 협회를 찾아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친 사람들을 보내 주면 무료로 치료해 주겠다고 제안한다.
•가난한 사람의 친구를 자처한 노먼 베쑨.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3)/
이후 그는 국민들에게 적절한 의료 혜택을 주기 위해 ‘몬트리올 국민 보건 그룹’이란 단체를 만든다. 그는 보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문제, 즉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았고, 국민 보건을 위해 공공 기금이 활용되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돈이 있든 없든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모두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내전 중인 스페인에 파견할 의료대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베쑨은 고민에 빠진다.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어 안락과 부를 누리고 있는 그로서는 그 모든 것을 버려야 할 처지에 온 것이다. 베쑨은 안락함을 버리고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스페인 내전의 한가운데로
•스페인 내전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4)/
1936년 11월 3일, 포격이 한창이던 마드리드에서 그는 세계 최초로 ‘기동 수혈대’를 만들어 부상병들을 치료한다.
그의 수혈 활동으로 부상자들의 사망률은 현저히 감소했다. 당시 프랑코 군대는 히틀러의 독일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로부터 충분한 무기를 공급받았다. 그러나 공화군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서 외롭게 독재 세력에 저항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은 통상 금지 조치를 내린 채 방관만 하고 있었다. 공화국 측은 베쑨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한다. 그는 스페인이 처한 상황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캐나다로 귀국한다. 대대적으로 환영하는 군중들을 향해 그는 외쳤다.
“파시스트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프랑코 군대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유럽 열강들의 통상 금지 조치로 얼마나 많은 도시들이 폐허로 변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웅변에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정의를 움직인 것이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5)/
그 후 일본이 중국의 도시들을 폭격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베쑨은 스페인을 떠올린다.
폭음과 비명 속에서 죽어 가는 부상자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결국 그는 죽어 가는 사람들, 치료를 가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행을 결심한다.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행하는 그였다.
그는 1938년 1월 20일 홍콩에 도착하여, 중국의 항일 투쟁 본거지로 향했다. 그는 그곳에서 마오쩌둥을 만나 부상병 치료를 위한 지원을 약속받고 의무대를 꾸려 전선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곳은 일본군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던 곳이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6)/
그는 초인적인 의료활동을 벌인다. 일본군과 유격대원들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는 곳에서 하루 18시간씩 일하면서 면도하는 것도 포기했다. 당시에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몸은 몹시 피곤하다.
그러나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내게 있었던가?
나는 지금 얼마나 부자인가
매순간 활기차게 일하는 데다
모두들 나를 필요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그는 헌혈하기를 두려워하는 중국인들 앞에서 직접 자신의 피를 뽑았다. 그는 부상병 치료뿐만 아니라 중국의 공중 보건과 의료시설 개선에도 힘썼고, 자신의 의술을 많은 중국인에게 가르치고 베풀었다. 또한 그는 중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고 의약품 등 원조를 요청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7)/
그가 설립을 추진하던 병원이 완공되던 날 중국인들은 이런 플래카드를 걸고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베쑨 선생은 우리들의 교사. 베쑨 선생은 우리들의 동료 투사. 베쑨 선생은 우리들의 의료 고문. 베쑨 선생은 우리들의 의사. 베쑨 선생은 우리들의 친구. 베쑨 선생은 우리들의 모범. 베쑨 선생은 영원한 동지!”
그는 40시간 동안 한잠도 자지 않고 70건의 수술을 하기도 했다. 조금만 쉬라는 동료들의 권유에 그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수술하지 않으면 저 아이는 죽어.”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8)/
포탄이 터지며 담벼락이 무너지는 동안에도 그는 수술을 했다. 그의 뒤에는 왕이라는 조수가 서 있었다. 베쑨은 왕에게 거기서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왕은 대답했다.
“저는 선생님의 안전을 보살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포탄을 맞는다면 저도 함께 날아가 버릴 것입니다. 선생님이 위험한 곳에 계시는데 저만 안전한 곳에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베쑨은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사실조차 망각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그런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일본군과 장제스 군대에 의해 마오쩌둥 군대가 물자 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베쑨은 스페인에서처럼 자신이 직접 고국으로 돌아가 지원을 요청하고 물품들을 가져올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떠나기로 되어 있던 1939년 10월에 일본군이 개전이래 최대의 공격을 감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부대원들을 이끌고 전투지로 떠났다. 일본군이 5분 거리에 올때까지 그는 마지막 부상병의 수술을 마치고 퇴각했다. 바로 그 순간 그만 수술칼에 손가락을 베고 말았다. 간단한 의약품으로 치료할 수 있는 감염이었는데 폐혈증으로 악화되어 결국 1939년 마흔아홉 살의 아까운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29)/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달려갔던, 의사이기 이전에 큰 사람이었다.
이익을 좇지 않고 자신을 희생할줄 알았던 노먼 베쑨 , 베쑨의 죽음 앞에서 마오쩌뚱은 그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서거 이상의 것을 통곡합니다.”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Guerra Civil Espanola)은 스페인 제2 공화국 정부와 군부, 가톨릭 교회로 대표되는 보수파 사이에 벌어졌던 내전으로 ‘에스파냐 내란’ 이라고도 한다. 모로코에서 프랑코 장군이 이끈 쿠데타로 시작되어 1936년 7월 17일부터 1939년 4월 1일까지 스페인을 초토화시켰으며, 결국 프랑코가 이끄는 반란군 측의 승리로 끝났다. 공화국 정부군은 소비에트 연방과 멕시코의 지원을 받았고, ‘민주 공화국 스페인’을 지원하기 위하여 전 세계에서 달려온 의용병들로 구성된 국제 여단이 큰 활약을 했다.(14살 인생 멘토,김보일,(주)도서출판 북멘토,2010,p.230)/
*노먼 베쑨
1890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출생
1914년 캐나다 육군에 자원입대해 제1 차 세계 대전에 참전
1915년 토론토 대학교 의학부 졸업
1918년 캐나다 비행단으로 전출. 외무장교로 근무.
1924년 미국 디트로이트에 병원 기업
1926년 결핵이 발병해 요양소 입원
1927년 결핵에서 회복됨
1935년 러시아 방문하여 사회주의 의료 제도를 둘러봄.
1936년 북미 스페인 민주주의 위원회가 파견하는 의료, 지원단을 이끌고 스페인으로 감. 이동식 혈액은행을 설립하여 전시의 의료 분야를 개척함.
1938년 중국 의료 봉사대에 지원함. 중국 민중의 영웅으로 추앙받음.
1939년 수술 중 감염에 의한 폐혈증으로 사망.
첫댓글 아멘!
"치유를 통한 예수님의 권능"을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