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기억될 56번 / 정희연
'워킹 홀리데이'란 해외여행 중인 청소년이 방문한 국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특별이 허가하는 제도다.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여행과 일을 같이하며, 최대 1년을 체류하면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로벌 시대에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외국어 실력을 키워 독립적인 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2024년 2월 4일 아들은 졸업을 며칠을 앞두고 담당 교수와 함께 11명의 학생이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아들이 멀리 있는데 휴대 전화번호 외에는 숙소, 직장, 친구, 동료 등 연락처가 없다. 스마트폰이 연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다.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현대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예전에는 집과 회사의 주소, 전화번호, 직장 동료의 연락처는 기본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휴대폰, 에스앤에스(SNS) 등 디지털로 쉽게 연결되는 과거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이젠 익숙하다.
전화가 왔다. 아들이다. 휴일 오후라 가족 모두 같이 들으려고 외부 스피커를 켰다. 아들은 현지 적응을 위하여 문화, 기본 법률, 안전 정보, 직장 환경, 은 행 계좌 계설 등 한 달 가량 교육을 받았다. 그 후 '브리즈번'에 있는 한인 식 당에서 일하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직장을 옮겼다. 주문을 받고 음식이나 음료를 나르는 일을 한다. 순조로운 출발이다
지금부터 전화로 들려오는 아들의 이야기다. 어느 날 친구를 따라 '두바이 에미레이트 항공사' 면접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면접을 보러 간다는 이야기에 궁금증이 동했을 뿐 정작 그 자리에 같이 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담당자에게 부탁해 면접을 볼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 운 좋게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서류심사에 합격한 55명 뒤 마지막 번호 56번을 받았고 그렇게 면접이 시작되었다.
1라운드 질문은 지금 하는 일, 자기소개, 최종 꿈의 목적지를 묻는 질문이었 다. 한 명씩 앞으로 나갔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격이라 마음이 차분했을뿐더 그동안 수없이 준비해온 터라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옆 사람은 떨기도 하고, 말이 꼬이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면접이 마쳤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에 "두바이에서 보고 싶다"로 끝을 맺었지만, 그 말이 많은 것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합격자가 전광판에 숫자로 표기 되는 순간이다. 스물 여덟명 마지막 줄에 56번 숫자가 또렸이 떳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막상 숫자를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몰려왔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그 순간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었다. 긴장과 불안이 사라지고 내 안에서 솟구치는 기쁨은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2라운드는 '그룹 미션'이다. "우리는 호텔의 고객 관리팀으로 고객 여섯팀이 우리 호텔에 숙박한다. 한 팀을 선발해 특별 식사권을 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했면 좋겠는가?"다. 대부분의 팀원이 70세 노부부의 결혼 40주년을 축하해 주 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틀린 의견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 랜만에 만난 친구, 기념 여행을 온 가족 등 모두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팀을 선택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온 모든이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보내려고 온 만큼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존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식사권을 나누면 그 크기는 작아질 수 있으나, 모두 소중하고 특별함을 인정하는 것이 또 다른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모든 고객에게 특별한 순간을 존중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합격자 11명. 56번도 같이 있었다
아들은 대학 4년 동안 방학이 되면 해외 연수를 나갔다. 학교의 지원을 받는 것이라 선발 과정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외국에 가서도 우리 나라 학생과 어울리기보다는 외국인과 가까이했다. 언어도 익히고 친구도 사귀며 견문을 넓혔다. 그런 과정에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이행하면서 생각을 나누고 그것으로 결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즐겼다.
3번째 라운드는 영어 테스트다. 영어 문법, 들고 말하는 시간, 아홉 명이 합격 했다. 마지막 최종 라운드는 다음 날 개별적으로 두바이 본사와 연결되었다. 면접관은 다섯 명, 조금 긴장이 되었지만 질문이 오가며 차츰 안정을 찾았다.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갔고 꽤나 시간이 흘렀다. 면접관은 누구를 뽑고 싶을까 고민이 될 때 내 색깔을 보여주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면접이라기 보다는 대화에 가까웠다. 그렇게 최종 라운드를 마쳤다. 그때까지만 해도 합격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나도 면접관도 모두 함께 일할 수 있기를 서로 바랐다. 비록 떨어지기는 했지만 벅차오르는 감정은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눈물이 나올 듯한 기쁨이 밀려왔다. 서류 접수부터 올바른 순서를 밟았더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직업을 구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다. 자신을 증명하고 꿈을 향해 나가는 과정에서 얻은 성취감과 자부심은 살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순간으로 남았다. 그 일을 있는 뒤, 시드니로 가려고 세 곳에 메일을 보냈고 그중 두 회 사와 면접을 봤다. 모두 영주권이 있는 자를 뽑는 회사였다. 면접 대상도 되지 못했지만 여기서 머물 수 없었다. 배움의 자세. 열정, 그리고 역량을 어필하였고 운 좋게 두 곳 모두 합격했다. 의료기기 제조 회사는 정규직, 소프트웨어 업체는 최저 기본급에 인센티브제로 입사 제안을 받았다. 후자를 택했다. 의료회사는 입사하고 3~5개월을 신입 교육을 받아야 했고, 그것이 끝나면 몇 달 되지 않아 우리나라로 되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피해를 줄 것 같았다. 며칠 전 3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받아 4박 5일 인근 도시로 출장을 떠났다. 세 개의 매장에 기기를 설치하고 사용법도 알려주고 후속 조치까지 혼자 완수했다.
아들은 연봉 6만불을 받는 사회 초년생이 되었다. 호주 시드니 하늘 아래서 새로운 경험을 쌓아 가고 있다. 두바이 항공사 면접을 보면서 느꼈던 희열은 단순히 단계별 합격이라는 결과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믿고 내 의견과 생각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더 컷다고 말했다.
첫댓글 아들 교육 잘 시켰나 봅니다.
멋진 아들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어려서부터 방목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서 해결하는 법을 배우고 있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얼마나 뿌듯하실까요? 용기있는 아드님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이제 시작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응원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들을 잘 키웠군요.
꿈을 향해 도전하는 요즘 젊은이답네요.
두바이 항공사에 합격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다양한 경험이 아들을 더 성장시킬 겁니다.
응원합니다.
떨어진 게 다행인 듯합니다. 전공이 우선인데 고민이 많아질 뻔했습니다. ㅎㅎㅎ
도전을 즐기다니. 대단합니다. 입사도 축하드려요.
고맙습니다. 잠깐 머무르는 것이라, 이거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은가 봅니다. 이번에 글이 없네요?
아빠 닮았나 보네요.
축하합니다.
저도 기쁘네요.
고맙습니다. 응원만 할 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