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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루 한줄 불교이야기하루 한줄 불교이야기 2015.12.18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온 세상이 모두 고통스러우니 내가 마땅히 이를 평안케 하리라’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세상에 나 홀로 뛰어나고 잘났다’라는 자만과 아집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나’는 싯다르타가 아닌 인간 개개인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유일무이한 존엄함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존엄함을 찾아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라는 것이 이 말의 참뜻입니다.
부처님은 저 인도대륙 북쪽 카필라바스투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정반왕, 어머니는 마야부인이었습니다. 산월이 가까워오자 마야 부인은 정반왕에게 친정에 가서 애기를 낳고 돌아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아침 일찍 동쪽문으로 출발했습니다. 정오 정도에 이르러서 카필라성과 데바다하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아주 아름다운 숲을 만났는데, 그 숲에는 아쇼카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마야 부인은 가마에서 내려서 꽃구경을 즐겼습니다. 그 때 많은 꽃나무 가운데 가장 탐스럽게 핀 왕자다운 꽃나무를 보고 가까이 가서 오른손을 들어 그 꽃가지를 잡는데 마침 산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애기 낳을 준비를 해서 애기를 낳았다고 합니다.
경전의 기록에 의하면 그 때 범천왕은 황금그물로 애기를 받았고 인드라천은 일산으로 그늘을 만들어줬다. 그 때 용왕이 나타나서 더운물과 찬물로 애기를 씻기자 애기의 몸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애기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러자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 애기는 한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르키며 이렇게 외쳤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이것이 부처님이 태어나신 모습을 묘사해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진짜 그랬을까. 믿는 사람은 그대로 믿으시면 되고, 뭘 그랬겠냐 의심이 드는 사람은 그럼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신들이 부처님 오심을 찬미하고 받들었다 하는 것은 붓다는 신들의 세계 보다 위에 있었다, 신들의 세계도 초월했다 이런 의미입니다.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인도 문화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은 그 지은 바에 따라서 가장 열악한 지옥부터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게 되는데 인도 당시의 문화는 인간은 복을 지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은 윤회의 세계 안에 있는 좀 더 나은 세계가 아니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탈과 열반을 지향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천상의 세계가 아니라 천상의 세계도 벗어나 버린, 윤회를 벗어나 버린 해탈을 성취하신 분이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천상천하 아당안지’에서 ‘천상’이라는 것은 신들의 세계를 말합니다. ‘천하’라는 것은 인간의 세계를 말합니다. 인간의 세계는 첫째, 물질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둘째, 권력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셋째, 인기와 명예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과 권력과 인기와 명예를 구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 세계에 묶여 있습니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명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은 신들의 노예입니다. 여기서 신들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믿음도 들어갈 것이고 사상과 이념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념과 사상, 믿음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통틀어서 자신의 존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이 무지에서 벗어난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이 우주의 주인이고 자기 운명의 주인입니다. 부처님은 신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 존엄의 절대성을 선언한 것입니다. 천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천하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불교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첫번째 한 구절일 뿐입니다. 뒤에 나오는 ‘삼계개고 아당안지’가 있습니다. 나는 자유롭고 행복해졌는데, 내 주위를 둘러보니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 속에 헤매이고 있다. 그러니 그들도 내가 얻은 이 행복의 세계로 그들을 인도하리라 라고 다짐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 또한 자유와 행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도와주리라. 이것이 '삼계개고 아당안지' 입니다. 먼저 자기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고, 또한 나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 이웃들 주변 세상도 함께 이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을, 태어나실 때의 모습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 법륜스님, <즉문즉설> _2013년 부처님 오신날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 (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온 세상이 모두 고통스러우니 내가 마땅히 이를 평안케 하리라’
부처님이 태어나시면서 설하셨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살면서 한 번 쯤은 들은 말인데, 그 뒤에 따라오는 '삼계개고 아당안지'라는
구절은 저도 자료를 찾아보면서 처음 들어봅니다.
'모든 존재는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모두 존귀한 존재이며, 내 자신의 불성을 깨우쳐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
깨달음이란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맑고 향기로운 삶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복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크리스마스인데요.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지요. 예수님의 탄생과 더불어 부처님의 탄생까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그런 크리스마스 보내시기 바랍니다. 결국 모든 종교의 끝은 사랑이 아닐까요? 연말, 나와 내 이웃에게 자비심이 넘치는 그런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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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줄 불교이야기
하루 한줄 불교이야기 | 날마다 새롭게 늘 맑고 향기롭게🌿
직심시도량 (直心是道場) '곧은 마음이 곧 도량'이라는 뜻으로 <유마경 維摩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도량(道場) 이라는 말은 원래 부처님께서 도를 깨우친 보리수 아래 자리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 후에 도량이란 수행을 하는 신성한 장소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 한 수행자(광엄동자)가 한적한 장소에서 정진하고 싶어서 그런 장소를 찾아 성 밖으로 나갑니다. 그때 마침 유마 거사가 어딘가 다녀오는 길에 그와 마주 칩니다. 수행자가 묻습니다. “거사님, 어디에 갔다가 오시는 길입니까?” 유마 거사의 답입니다. “수행도량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 수행자는 마침 한적하고 조용한 도량을 찾고 있던 참이라 반기면서 묻습니다. “그 도량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때 유마 거사가 한 대답입니다. “直心是道場 직심시도량, 곧은 마음이 도량이지요. 그곳에는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곧은 마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 정직한 마음, 분별과 집착을 떠난 마음이 곧 도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량을 밖에 있는 어떤 특정한 장소로 착각하지 말라는 소식입니다. 임제 스님은 말합니다. “시끄러움을 피해 따로 고요를 찾는 것은 外道 외도의 짓이다.“ 육조 혜능 스님도 이렇게 가르칩니다. “걷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언제나 곧은 마음으로 하라.” <유마경>은 말합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국토가 깨끗하다.” <천수경>에도 나오는 “늘 보리심을 지니면 가는 곳마다 극락세계이다.”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속에 각자의 금강보좌가 있어야 합니다. 굳은 의지와 집념, 금강석으로 된 자신만의 보좌가 있어야 합니다. 밖에서 찾지 마십시오! 마음 밖에서 따로 찾지 마십시오! 이와 같은 곧은 마음으로 이번 안거를 맞이한다면 큰 깨침이 있을 겁입니다. 부지런히, 꾸준히, 그리고 침묵 속에 정진하십시오. 법정 스님, 2006년 12월 5일 겨울 안거 결제 법문 중에서 --- 늘 한결같은 곧은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참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흙탕 연못 속에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어내는 연꽃처럼, 세속에서 청정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수행입니다. 보살이 지켜야 하는 계율과 행법을 정리한 보살품에도 '곧은 마음이 보살의 청정한 정토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는 즉 '곧은 마음이 도량'이라는 '직심시도량'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가 진리의 자리이며 도량입니다. 진리는 내 안에 있습니다. 아뇩다라샴막삼보리, 가장 완벽한 깨달음은 내 마음 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도 괴로움의 세계인 사바세계에서 인욕정진바라밀입니다 _()_ #하루한줄불교이야기 #불교이야기 #직심시도량 #곧은마음 #인욕바라밀
일즉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뜻입니다. ---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시간적,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고 해서 혼자일 수는 없습니다. 각자 개별적인 환경에 있으면서도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저는 늘 그것을 의식합니다. 외떨어져 살면서도 다 얽혀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서로 의지해야 사람이 됩니다. 서로 기대고 받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정을 나눌 수 있어야 사람이 됩니다. 만족도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는 소비문화 속에서 사는 현대인들은 얼마나 비정합니까? 우리들 자신이 그렇습니다. 매우 건조합니다. 아무리 사들여도 끝이 없습니다. 만족이 없고 고마움이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어 문장에 'One for All, All for One'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의미로 <화엄경> 법성계에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진정한 깨달음이고 진리의 세계입니다. - 법정 스님,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 한 가지를 철저하게 이해할 때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최선의 길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를 알면 모든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길을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 스즈키 선사, <선심초심> ---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하다 보면 생각만 복잡해집니다. 하나를 알면 그것과 연결된 새로운 것을 알아갑니다. 마치 컵을 알고나면 컵의 컵받침을 알아가는 것처럼. 컵이 있어 컵의 컵받침이 생겨난 것 처럼, 모든 것이 인연법을 따라서 생긴다고 선가에서 말합니다. '하나를 철저하게 알게되면, 결국 그것과 연결된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스즈키 선사의 말씀처럼,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하는 삶이 되여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가르침처럼, 그런 하나의 진리를 깨닺기 위해 오롯이 정진하는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하루한줄불교이야기 #불교이야기 #스즈키선사 #법정스님 #일즉일체다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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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진인 (無位眞人) 선종의 대가이신 임제 의현 선사의 말씀으로, '차별 없는 참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위진인 면문출입 (無位眞人 面門出入) 차별 없는 참 사람이, 얼굴을 통해서 출입한다. --- 어느 날 임제 선사가 대중 앞에서 설법을 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다. "붉은 몸뚱이에 무위진인(차별 없는 참사람)이 하나 있어 항상 여러분의 얼굴로 드나든다. 아직 보지 못한 사람은 똑똑히 살펴보라."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무위진인(차별 없는 참사람)입니까?" 그러자 임제는 대뜸 선상에서 내려와서 그 스님의 멱살을 잡고 물었다. "어디 말해 봐라. 말해 봐라." 스님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임제는 그 스님을 밀쳐내면서 말했다. "차별없는 참사람이라니, 그 무슨 마른 똥 막대기 같은 소리냐?" '진인'은 장자가 이상으로 삼았던,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완전히 자유로운 경지에 있는 진인과 같다. '무위'라는 것은 잘나고 못남. 똑똑하고 미련함. 귀하고 천함의 차별이 전혀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무위의 진인'이므로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사로잡히지 않는 절대의 경지에 있는 존재다. 곧 부처다. 사람의 몸 속에는 그런 부처가 들어 있으며 늘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런 것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무위진인이란, 어느 자리도 연연하지 않고, 어떤 모습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어떤 상태에도 머물지 않고 스스로를 잘 아는 참사람을 뜻합니다. 자신의 참된 본성을 저버리고, 오직 분별하고 집착하여 스스로의 생각에 메여 사는 사람은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살게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알고 느끼고 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알아차림) 스스로를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의 주체인 본래심을 자각하여 주인이 되어 살 수 있으면, 지금 여기의 자신의 삶이 진실된 깨달음의 세계가 됩니다. 여러분은 무위진인의 삶을 살고 계신가요? #불교 #불교이야기 #무위진인 #임제선사 #하루한줄불교이야기
초발심시변정각 (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한 그 때가 바로 정각을 이룬 때'라는 뜻으로 <화엄일승법계도_화엄경>을 요약한 <법성게>의 한 구절입니다. 처음 마음을 발 할 때가 문득 정각(正覺)을 이루는 때다. 즉,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첫 마음을 내는 그 순간이 올바른 깨달음을 이룬 때이며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불자라면 처음의 그 마음, 초발심. 즉,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마음 속에 새겨야 하는 구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많은 사람들이 절에 와서 “스님 나는 부처님 말씀을 믿고 어떻게 따르며 살아가야 합니까” 하며 묻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은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는 말을 써도 될 사람입니다. 처음 보리심을 낼 때 부처를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부처님 믿겠다고 마음을 내는 순간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는 의상대사 법성게송에 있는 말입니다. 처음 내는 보리심이 비로소 많은 행을 닦아 깨달음을 완성하는 것이므로 보살은 반드시 최초에 이 마음을 내서 잘못을 뉘우치고 믿음을 내지않으면 안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특히 보리심을 내는 발보리심(發菩提心), 즉 발심을 중시하고 처음으로 깨달음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초발심은 정각(正覺)을 얻는데 있어 핵심적 요소라 봅니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많은 시간이 흘러 간 뒤에는 정신이 맑아져서 실수는 더더욱 사라지며 아주 밝은 혜안(慧眼)이 찾아옵니다. - 오성스님 --- 새해가 되면 무언가 하겠다 마음 먹지만, 그렇게 행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 먹은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편안함에 익숙한 우리는 습관 하나 마음 낸 것처럼 털어버리지 못합니다. 발심하는 그 순간이 깨달음을 얻는 자리입니다. 내 안의 불성을 알아차림하고, 내가 부처다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나는 부처다' 생각함에 따라 내 시각과 삶이 달라집니다. 내 안의 불성을 일깨우기 위해 오늘도 정진바라밀입니다_()_ #불교이야기 #불교 #하루한줄불교이야기 #발보리심 #초발심시변정각 #내안의부처 #붓다 #새해결심
소욕지족 소병소뇌 (少慾知足 少病少惱) '적은 것으로써 넉넉할 줄 알며, 적게 앓고 적게 걱정하라' 라는 뜻으로, 법정스님께서 해인사에 계시던 자운스님께 문안 편지를 보냈더니, 해운 스님은 이 짧은 여덟 글자만 엽서에 적어서 보내주셨다고 합니다. ---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할 수 있으면 얻는 것보다 덜 써야 한다. 절약하지 않으면 가득 차 있어도 반드시 고갈되고, 절약하면 텅 비어 있어도 언젠가는 차게 된다. 덜 갖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덜 갖고도 얼마든지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다. 소유와 소비 지향적인 삶의 방식에서 존재 지향적인 생활 태도로 바뀌어야 한다.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은 우리들 일상에 두루 깔려 있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살아가는 기쁨이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 이르렀을 때, 어느 쪽 삶이 우리가 기대어 살아갈 만한 삶이여,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인가 뚜렷이 드러난다. 똑같은 조건을 두고 한쪽에서는 삶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근심 걱정의 원인으로 본다. 소욕지족 小欲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 - 법정 스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줄 알아야 삶이 넉넉해진다고 법정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소소한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현재 이 순간, 내 삶속에 스며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나누는 따뜻하고 정다운 말 한마디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알아차림을 통해 깨어있음을 통해, 그 순간 순간의 행복함을 느끼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불교 #불교이야기 #하루한줄불교이야기 #소욕지족 #소소한행복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그곳은 모두 진리다'라는 뜻으로 임제 선사가 남긴 선어입니다. --- 수처작주 隨處作主 입처개진 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머무는 곳마다 진실 하라. --- 언제 어디서나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된 곳이다. 어디서나 주인 노릇을 하라는 것이다. 소도구로서, 부속품으로서 처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곳이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 법정 스님, <산에는 꽃이피네> --- 수처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자 우리의 삶터입니다. 작주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수처작주, 즉 어느 곳 어디에서든 이르는 곳 마다 참주인이 되면 우리가 서있는 그 곳이 바로 참진리라는 뜻입니다. 중국 명나라 말기 학자인 육상객은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 가는 생활의 덕목인 육연을 말합니다. 1. 자처초연: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고 2. 처인초연: 남에게 언제나 부드럽고 3. 유사감연: 유사시에 활기에 넘치고 4. 무사초연: 무사시에 마음을 맑게 5. 득의담연: 성공했을 때에 담담하게 6. 실의태연: 실의에 빠졌을 때 태연하게 ---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산다는 것이 하고 싶다 해도 쉽지 않으게 현실입니다. 자기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는 늘 밖에서 답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임제 선사는 늘 '본래의 나'를 강조합니다. 속안에 있는 참된 나를 버리고, 어찌 껍데기 같은 겉에서 참된 것을 구하려 하는가 임제 선사는 우리를 그렇게 질타합니다. 궁극의 진리와 깨달음으로 가는 길, 내 마음 속을 살피면 답이 보입니다. 쉽지 않지만 오늘도 참선을 하면서 내 마음을 알아차림 해보면 어떨까요? #불교 #불교이야기 #수처작주입처개진 #임제선사 #하루한줄불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