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8일 토요일
도시와 개들
김미순
휴~ 이제야 다 읽었다. 623쪽의 방대한 소설을 읽으면서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부었으나 잔뜩 긴장하여 어떻게 될까, 누구일까, 빨리 알고싶어 닷새만에 읽어버렸다. 제목부터 뭔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 때문에 안달하였다. 운동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성경쓰는 시간만 제외하고 온통 이 책을 읽는데 할애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쿠바 혁명과 체 게바라, 시인 파블로 네루다, 옥타비오 파스의 이름만 알았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노벨문학상을 탔는데도 처음으로 접한 소설가였다.
이 책은 바르가스 요사의 데뷔작이다. [도시와 개들] 은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이 유럽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만든 작품이기도하다.
[도시와 개들] 은 바로 작가가 살던 거리이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리마를 배경으로 한다. 정확하게는 작가 본인이 중퇴한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이다. 소설에는 실제로 군사학교에 살고 있는 개도 등장하고 3년 과정의 군사학교에서 신입생도들을 '개'라고 부르고 있어 제목의 '개'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레온시오 프라도 군사학교는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다. 페루의 모든 인종과 사회계층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며, 불평등, 범죄와 약탈, 허위고발과 부패, 체념과 마초이즘이 횡행하는 곳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리마는 리마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그 어떤 도시도 폭력으로 점철되지 않은 곳이 없으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없는 곳 또한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서 [도시와 개들] 의 생도들은 주말에 학교를 벗어나며 '정상적인 사람' 으로 행동하려고 애쓰지만, 그들이 사는 가장과 공동체의 현실은 학교 내에 존재하는 권력의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며 학교와 같은 사회구조를 재학인 시켜준다.
대도시에서 밀려나 리마로 오게 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별명은 시인-는 다음 화학시험에 낙제를 하는 게 두려웠다. 곧 졸업을 하는 5학년으로 3년 동안 함께 한 1반 생도들과 별다르지 않게 '노예'라는 별명으로 리카르도 아라나를 부르고 야한 글과 시로 친구들과 어울린다. 사건의 발단은 바로 그 화학 시험지를 훔쳐 낸 왕초 클럽 중 한 명 ㅡ카바를 누군가 고발하며 주말 외출이 모두 취소되면서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 간다.
알베르토와 노예, 재규어가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해 나가는데, 나는 요즘 부각되는 왕따 문제, 미성년자의 촉범 나이 문제, 자기는 옳다고 믿었는데 당하는 사람은 불평등이 되고 상처를 입는 문제, 사기치고 부정직하고, 조직을 위해 덮어버리고 협박하는 사회현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처음1부까지는 권태로울 정도로 언제 일이 진행되나 조금 느리게 읽혔다. 그런데 2부에서는 정확하지 않은 시점, 시제, 당사자 등등 혼란이 계속 되었고 군사고등학교에서의 사건이 진행 되나 싶을 때 시간은 다른 누군가의 과거로 와 있다. 그래도 1부는 알베르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 되어 여기까지는 읽자 싶었는데 그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2부를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갈증을 느껴야만 했다. 5학년 1반 생도 ㅡ 노예의 죽음, 그 죽음을 사고사로 결정 지으며 덮으려는 학교의 군체제, 사고가 아닌 살인이라는 고발과 그럴 가능성을 깨달은 감보아 중위, 비밀스런 2부의 화자가 나래이션처럼 과거형으로 서술하다 어느 시점엔 다시 현재로 또다시 바뀐 화자 등으로 [도시의 개들] 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린다. 에필로그에서 앞으로 살아가려는 감보아 중위와 한층 성숙하진 알베르토와 재규어가 작품을 빛낸다. 성에 관한 직설적인 표현들과 음담패설, 그 어디에서도 접해 보지 못한 날것의 표현들, 계층과 차별적인 시선들, 폭력들과 범죄의 결과물로 삶을 영유하는 인생들이 즐비한 페루의 상황을 잘 전달하고 있어서 독자를 끌어당겼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작가가 자신 문학을 형성하게 한 세 명의 작가를 들었데, 그들은 사르트르, 플로베르, 포크너이다. 사르트르의 존재론적 불안감, 인간 행위에 대한 도덕적 의문, 개인의 자유와 사희적 책무 사이의 모호한 관계를 보여주는 상황 이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특히 "저는 그런 사회에 문학은 불이라고, 문학은 반체제와 반항을 의미하며 작가의 존재 이유는 항변과 반대와 비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문학은 영원한 반란의 형식이며 구속이나 속박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의 가치를 파과하려는 정치적 ㆍ 사회적 억악에 대한 투쟁에 참여하는 것이 문하과 작가의 진정한 임무이자 책임이라는 . 참여문학 사상을 엿볼 수 있다.
프로베르에게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배운다. 작중 인물들에게 화자의 역할을 배분하지만, 때로는 화자가 대화 속에 숨어서 레온시오 크라도 학교의 이야기와 사회적 배경을 형성하는 리마의 환경과 상황을 들려주기도 한다. 사건은 인과관계에 따라 일어나는게 아니라, 무질서하고, 생생하게 움직여 독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여러 화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다양한 관점에서 표현된다는 인상을 준다. 재규어의 목소리를 끝까지 숨기는 게 그렇다.
그리고 포크너의 소설 [8월의 빛] 과 비슷하다. 범죄 수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핵심 용의자는 주변 상황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이라는 점이 일치한다.
나는 바르가시 요시가 집요하고 깊은 인내심의 작가라고 단언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내용을 차분히 써내기까지 얼마나 깊이 있게 생각하고 한줄 한줄 쓰면서 주제와 어울리게 덧붙이고 덜어내며 밤을 샜을까,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손이 떨린다. 참 대단하고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