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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회 2회 답사/퇴강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安東煥** ―――――――― < 目次> ―――――――― Ⅰ. 緖言 Ⅱ. 地壇廟會에서의 祭地활동과 전통연행예술 1. 祭地활동 (1) 地壇의 변천과정과 구조 (2) 祭地활동의 변천과정 (3) 倣淸祭地表演활동 2. 전통연행예술 Ⅲ. 廟市를 중심으로 한 현대문화적 요소 1. 먹거리 2. 완구류 3. 오락물 Ⅳ. 結語 ―――――――――――――――――――――― Ⅰ. 緖言 중국의 廟會는 “신령을 모신 寺廟(廟)를 중심으로 신령을 위한 제사 등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공동체 집단(會)으로서, 다면적인 문화적 의의를 응축하고 있는 독특한 민 중 민속활동이다.”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1) 따라서 원시신앙적인 묘회는 나약한 인간이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의지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재원(교육부)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NRF-2014S1A5B5A07041186] **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강사. 1) 필자는 <塗山禹王廟會考>(≪中國人文科學≫ 第三十五輯, 中國人文學會, 2007년 4월) “제Ⅱ장 廟 會란 무엇인가?”(325-327쪽)에서 廟會에 대해 상세히 고찰한 바 있으니 참조 바람.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54 - 그러나 현대에 들어 유물론적 사회주의를 표방하고서 민간신앙 등 전통의식을 미신이라 부정하며 배척의 대상으로 삼았던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특히 四舊타파를 내세우며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수많은 사묘가 파괴되고 수천 년 이어져 온 묘 회 역시 중단되었다. 10년 동안 지속되었던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鄧小平이 개혁․개방을 천명한 이후 1980 년대부터 본격적인 전통문화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중단되었던 전통묘회 역시 재개되 었다. 뿐만 아니라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현대성 묘회를 만들고 더 나아 가 우리나라처럼 지역별로 혹은 특정 분야별로 경제적인 효과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현 대축제를 만들고 있는데, 이들 모두는 전통묘회 형식을 빌리고 있다. 특히 G2로서 미국 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오늘날의 중국은 국가차원에서 전통문화의 보존과 보호 및 전수를 위해 2006년부터 國家級, 省級혹은 縣級非物質文化遺産2)을 신청 받아 엄격한 심사 후 등록하고 있으며, 파괴되어버린 유적지와 유물 및 사라져가는 전통문화 활동 등 에 대한 복원작업을 가속화하며 문화산업 발전과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北京지역의 묘회는 辽金시기에 이미 있었다.3) 특히 元이래 통일 왕조의 수도 역할 을 해왔기 때문에 도교 全真第一丛林인 白雲觀에서의 묘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통묘회 가 전승되어 왔다. 중국의 전통묘회는 종교․신앙활동과 연행예술 및 민간경제가 융합된 형식이다. 그러나 시대변화에 따른 현대묘회는 종교․신앙적인 측면은 거의 약화되고 각 종 연행활동과 상업활동, 특히 묘회 개최에 따른 금전적인 이익 등 경제적인 측면이 강 조되고 있다. 본고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地壇廟會역시 전통연행예술과 현대문화가 공존 하는 새로운 복합형태의 春節廟會로서 전형적인 도시형 묘회이자 경제적인 측면을 강조 한 가장 현대성을 띤 묘회이다. 역사상 地壇은 明淸황제들이 皇地祗神에게 제사지냈던 곳이라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 격히 통제되었던 곳이다. 따라서 과거에는 지단에서의 묘회는 없었다. 전술한 대로 1980 년대 이후 전통묘회가 복원되기 시작하면서 과거 황제들의 皇地祗神에 대한 제사(祭地) 장소를 민속․문화적인 측면으로 활용하고자 1985년 춘절부터 “地壇春節文化廟會”라는 명칭으로 개최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생겨난 북경 지역의 묘회에서 최 초로 명칭에 “문화”를 사용한 묘회이다. 1990년에는 地壇주변 安外大街공사로 인해 지 단으로 들어갈 수 있는 주요 출입구가 모두 막혔기 때문에 춘절묘회는 열리지 못했다. 그 대신 북경에서 열린 제11회 아시안게임(1990년 9월 22일-10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한 묘회가 9월 16일부터 23일 동안 열렸다. 1991년에 제6회 춘절묘회가 다시 열린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져 2015년에는 제30회 춘절묘회가 열렸다. 경우에 따 2) 무형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에서 보통 말하는 무형문화재에 해당된다. 3) 崔蕴华, <从娱神到娱人-北京节令庙会與说唱艺术关系研究>, ≪中国政法大学学报≫ 2009年4期, 123쪽.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55 - 라 앞뒤로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보통 매년 음력 섣달그믐부터 정월 7일까지 8일 동 안 열렸다. 본고에서 주 연구대상으로 한 2015년도 제30회 춘절묘회도 마찬가지였다. 양 력으로는 2월 18일부터 2월 25일까지였다. 이러한 地壇廟會와 관련된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물은 아직까지는 전혀 없고, 중 국에서도 학술적으로 접근한 논문은 거의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에 필자가 최초로 시도 해 보고자 하는데 본고에서는 첫째, 본래 기능이자 고유 기능이었던 祭場으로서의 地壇 의 변천과정과 구조, 지단에서의 祭地활동의 변천과정을 문헌을 통해 살펴보고, 이를 바 탕으로 오늘날 지단묘회에서 재현되고 있는 祭地활동(倣淸祭地表演활동)과 전통연행예술 을 현재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둘째, 먹거리, 완구류, 오락물 등 廟市를 중심으로 한 현 대문화적 요소를 고찰하여 지단묘회에서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연구 해 보고자 한다. Ⅱ. 地壇廟會에서의 祭地활동과 전통연행예술 1. 祭地활동 (1) 地壇의 변천과정과 구조 중국의 과거 봉건왕조시기에는 일반적으로 都城밖 100里이내의 지역에서 郊祭를 지 냈는데 주요 대상은 天地日月神이었다. 대자연과 천지만물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극복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빌려 심리적 안정과 행복을 기원하고자 했던 인간의 소망을 반영 한 것이다. 明淸시기의 북경에는 천지일월신에게 제사지내는 제단이 모두 있었다. 西漢이후 南郊坛(天壇)과 北郊坛(地坛)은 都城건설에 있어서 가장 숭고한 지위를 차 지하게 되었는데,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온전하게 남겨진 祭地장소로서의 북경의 地壇4) 은 바로 漢이래의 禮制에 따라 明嘉靖9년인 1530년에 최초로 北郊에 세워졌고, 동시에 天壇도 南郊에 세워졌다. 明末淸初사람인 孙承泽이 명나라 때 북경의 정황을 상세히 기 록한 ≪春明梦餘錄≫ 가운데 <卷十六․地坛>에 嘉靖九年에 方澤壇, 즉 地壇을 세우게 된 연유를 소개하고 있는데,5) 음양의 이치에 따른 古制에 따라 南郊와 北郊에 천지에 제 4) 1999년 4월에 南京의 紫金山최고봉인 头陀嶺남록에서 钟山建築유적지가 발견되었는데, 南朝 刘宋孝武帝大明三年(459년)에 만들어진 황실의 北郊坛유적지임이 최종 확인되었다. 이것이 중국의 황실 地壇유적지 가운데 현재까지 발굴되어 실물이 확인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5) 孙承泽, ≪春明梦餘錄≫, 北京古籍出版社, 1992, 234쪽. 『至嘉靖九年, 议改诸祀. 禮臣夏言因奏: “分祭天地, 本是古制. 况坛于南郊, 坎于北郊, 就阴阳, …… 宜令群臣博考会议, 陛下稱制而裁定之, 此中兴大业也.” …… 于是建方泽坛于安定门外, 坐南向北, 以高皇帝配, 如洪武十年以前之制.』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56 - 사할 수 있는 壇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명나라 때 북경의 지단이 세워진 이후 오늘날 까지의 변천 역사에 대해서는 지단제사문화에 대하여 10여 년간 발굴 연구한 후에 종합 보고서 형식으로 펴낸 ≪地壇史略≫과 1995년 8월에 지단 개방 70주년 기념회를 계기로 관련자들이 지단의 사료를 수집하고 편집하여 발행한 ≪北京地壇史料≫6)가 아주 좋은 종합적인 참고자료가 된다. 또한 인터넷 중국어 백과사전인 “百度百科”의 ‘地坛公园’ 항 목(<http://baike.baidu.com/view/453069.htm>)에서도, 위 두 자료와 두 자료에는 없는 현 대 자료까지 종합하여 주요 부분만을 발췌 소개하고 있는데,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하되 ≪地壇史略≫과 ≪北京地壇史料≫를 상호 대조하여 주요 사항만 수정․보완해서 지단의 변천 역사에 대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嘉靖九年(1530년) 5월에 北郊에 方丘를 만들었다. 嘉靖十年(1531년) 3월에 方泽坛이 완공되었고, 5월에 明世宗이 方泽壇에서 친 히 地神에 제사지냈는데 이것이 지단에서 최초로 올린 제사였다. 嘉靖十三年(1534년) 2월에 方澤을 地坛이라 정식으로 명칭을 바꾸었다.7) 乾隆七年(1742년)에 斋宫을 수리했고, 乾隆十四年(1749년) 5월에 황제의 명으 로 대대적으로 보수하기 시작, 乾隆十七年(1752년)에 모두 완공되어 오늘날 전해 지고 있는 전체적인 地壇의 모습을 갖추었다. 嘉庆五年(1800년)에 高宗이 皇祇室, 方澤壇, 库座, 斋宫, 牌楼등을 중수했다. 咸豊十年(1860년) 8월 제2차 아편전쟁 때 영불 연합군이 지단의 벽돌과 석조 들을 뜯어 炮臺를 만들었다. 同治十二年(1873년)에 穆宗이 親政후 친히 나아가 禮를 행하고 皇祇室을 중 수했는데 이것이 군주시대의 마지막 보수였다. 光绪三十三年(1907년) 5월에 德宗이 친히 方泽壇에 나아가 禮를 행했는데 이 것이 황제가 직접 올린 마지막 제사였다. 1925년에 京兆公园으로 개방되었다가 1928년에 京兆地方이 北平特别市로 명칭 이 바뀜에 따라 市民公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7년에 재차 공원화하여 地坛公园이란 명칭을 다시 사용하였다. 1965년에 钟楼가 무너져 철거하였다. 1973년 6월에 斋宫南殿지붕 보수를 시작하여 1977년 5월에 완공하였다. 1980년 2월 7일에 方泽坛과 皇祇室에 있던 군용 창고를 옮겼고, 1981년 3월 15 일부터 方泽坛에 대한 대대적인 수리를 시작하여 12월 16일에 완공하였다. 1982년 2월 24일에 地壇公園管理處가 설립되었다. 1984년 5월 2일에 정식으로 재차 유료개방 했고, 24일에 北京市人民政府가 北 6)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北京燕山出版社, 1998, 155-165쪽 <附錄Ⅰ 北京地壇大事年表> 참조. 北京市東城區園林局․北京市檔案館編, ≪北京地壇史料≫, 北京燕山出版社, 1998. 7) 이로부터 方泽과 地坛이라는 두 개의 명칭이 병존했는데, 禮部尙書夏言의 주청대로 祝文에서는 方泽, 公務에서는 地坛이라 칭했다(≪北京地壇史料≫, 18쪽).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57 - 京市文物保护单位로 정식 공포했다. 1985년 2월 14일에 제1차 地坛春节文化庙会가 13일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1990년 5월 22일에 牌楼중건 시작하여 9월 16일에 완공하였다. 1999년 9월 25일에 神马殿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시작하여 11월 25일에 완공 하였다. 2000년 8월 31일에 钟楼중건 시작하여 11월에 완공하였다. 12월 31일 밤에 신 세기 맞이 타종식을 거행했다. 2004년 10월 29일에 方泽坛, 皇祇室등의 고건축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시작하 여, 2005년 9월 1일에 완공하였다. 2006년 5월 25일에 国务院이 全国重點文物保护单位로 정식 공포했다. 이러한 변천 역사를 지니고 있는 北京의 地壇은 明淸시기의 황제들이 地神에게 제사 지냈던 祭地활동의 대표적인 제단이자 황실 園林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따라 서 일반 백성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는 엄격히 통제된 장소였다. 그러나 청나라가 망하자 봉건왕조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었던 황실의 전통 제사문화도 모두 사라졌으며 天地日月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도 황폐화되거나 공원화되었으니 지단도 예외가 아 니었다. 오늘날 공식적인 행정구역상의 주소는 北京市東城區安定門外大街2號地壇公 園이다. 孙承泽의 ≪春明梦餘錄≫에는 皇祇室, 神库, 神厨, 宰牲亭, 祭器库, 斋宫, 牌樓등의 明 末당시의 대략적인 위치가 소개되어 있는데,8) 현재 지단에는 비록 최초 창건 당시의 원 래 모습은 아니지만 神库, 宰牲亭, 斋宫, 皇祇室, 神马殿, 牌楼, 方泽坛, 鐘樓등의 주요 건축물이 淸代이래 현대까지 보수되거나 重建되어 그 위치에 남아있다. 地壇公園공식 홈페이지(<http://www.dtpark.com/>)와 각 건축물 앞 안내판에는 ≪地壇史略≫과 ≪北 京地壇史料≫의 내용을 발췌하여 해당 건축물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잘못된 부분이나 누락된 부분을 ≪地壇史略≫9)에 근거하여 수정․보완해서 건축연대와 구조, 기 능 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神库: 明嘉靖九年(1530년)에 세워졌다. 正殿은 神库라 하는데 神位를 맞이 하고 보내는데 사용하는 凤亭(正位皇地祇신위를 싣고 가는 가마)과 龙亭(配位 와 从位신위를 싣고 가는 가마)을 보관하고 皇祇室을 보수할 때 임시로 각 신위 를 모셔 두었던 곳이다. 东配殿은 祭器库로 제사에 사용되는 각종 그릇을 보관 하는 곳이고, 西配殿은 神厨로 제사 음식을 만드는 곳이다. 南殿은 乐器库로 제 8) 孙承泽, ≪春明梦餘錄≫, 232-233쪽. 『南门外爲皇祇室…… 西门外迤西爲神库, 神厨, 宰牲亭, 祭 器库. 北门外西北爲斋宫. 又建四天门, 西门外为銮驾库, 遣官房; 南爲陪祀官房. 又外为坛门, 又外为 泰折街, 牌坊. 护坛地一千四百七十六亩.』 9)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74-83쪽.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58 - 사 시 사용되는 악기와 복장을 보관하는 곳이고, 东․西井亭은 方泽坛에 물을 대 고 神厨에 물을 공급하는 전용 우물 위에 세운 정자이다. 南殿과 두 井亭은 清 乾隆十四年(1749년)에 만들어졌다. ② 宰牲亭: 고대 황실에서 祭地전에 제사용의 가축인 犊․羊․豕․鹿․兎등 을 잡던 장소이다. 매번 제사 하루 전 子时에 이곳에서 犧牲을 잡는 의식인 宰牲 의식을 거행하였다. 문 안 양쪽에는 원래 明代(東井亭)와 淸代(西井亭)에 각각 만 들어진 井亭이 하나씩 있었다. ③ 斋宫: 황제가 祭地시 재개하고 머무르던 곳이다. 淸代顺治․康熙․雍正․ 乾隆․嘉庆황제들이 모두 이곳에서 머물렀다. 坐西面东으로 서․남․북 三殿으 로 구성되어 있다. 명 嘉靖九年(1530년)에 처음 지어졌고, 청 雍正八年(1730년)에 重建되었다. ④ 皇祇室: 명 嘉靖九年(1530년)에 처음 세워졌다. 皇地祇神신위와 五嶽․五 镇․四海․四渎․五陵山신위를 모시는 곳이다. 方澤壇에서 祭地할 때 모시고 나 가 상응한 위치에 모셨다가 끝나면 다시 이곳으로 모셔왔다. 1925년에 京兆公园 으로 되면서 이곳에 通俗图书馆을 설치했었는데, 1986년 가을에 地坛文物陈列室 로 바꾸어 1987년 元旦부터 개방하였다. ⑤ 神马殿: 제사 시 御馬를 먹이고 쉬게 하던 곳으로 神馬圈이라고도 한다. 1530년에 처음 지어졌고 1999년에 대대적으로 수리되었다. ⑥ 牌楼: 牌坊이라고도 부르는데 地壇의 主門인 西门의 첫 번째 건축물이다. 황제들이 지단에 와서 祭地할 때 먼저 패루를 지나고 다시 坛门으로 들어갔다. 명 嘉靖九年(1530년)에 처음 건축되었을 때에는 泰折街牌坊이라 칭했고, 청 雍正 二年(1724년)에 廣厚街牌坊이라 개칭하였는데 두 패루는 모두 없어졌고, 현재의 패루는 1953년에 철거되었다가 1990년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정면 중앙에 地坛, 뒷면 중앙에는 廣厚街라는 글자가 있다. ⑦ 方泽坛: 明淸代황제들이 皇地祇神에게 제사 지내던 곳이다. 坛臺둘레에 方形의 水路가 있어 方泽坛이라 칭했다. 명 嘉靖十年(1531년)에 처음 세워졌고, 청 乾隆十五年(1750년)에 개조되었다. 현재 건축물은 1981년에 청 乾隆시의 形 制에 따라 복원한 것이다. 坛평면은 方形으로서 天圆地方의 说을 따르고 있다. 중심 坛臺는 상하 2층으로 나뉘어져 있고, 둘레에는 水路가 있다. 밖은 2중의 담 장으로 되어 있고, 四面에는 각각 棂星门이 있다. 하층 坛臺남반부 동․서 양측 에는 각각 山形纹石神座十五座를 설치하여 제사를 받들 때 五嶽․五镇․五陵山 의 신위를 봉안한다. 북반부 동․서 양측에는 각각 水形纹石神座八座를 설치하 여 제사 시 四海․四渎의 신위를 봉안한다. 外壝동북부는 望燈杆이고, 그것과 대칭되는 서북부에는 원래 瘞坎한 곳이 있었다. ⑧ 钟楼: 1530년에 처음 건축된 이래 1965년에 무너져 철거되었다가 2000년에 원래의 모양대로 重建되었다. 이러한 구조로 된 地壇은 중국의 고대 “天南地北, 天圆地方, 天青地黄, 龙凤,10) 乾坤” 등의 전통과 상징성에 따라 구상되고 설계되었다. 따라서 明淸代황궁이었던 紫禁城(故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59 - 宮)을 중심축으로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정반대 위치에 있는 天壇과는 서로 대조․비교되 는 구조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道家의 “天陽地陰”이라는 음양학설에 따 라 계단이나 기둥 등의 건축 재료도 모두 짝수(陰數)로 사용되어11) 중국의 전통습속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이 재차 확인된다. (2) 祭地활동의 변천과정 땅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곡식을 생산해 낸다. 이처럼 귀중하고도 신성한 토지를 관장하는 地神에 대한 제사 역시 원시신앙 시기부터 있었다. 태초에 인간들은 자연현상 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극복할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해 天神과 地祇등 神을 창조하 여 그들의 도움을 비는 미신적 종교 관념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三代가운데 夏는 5 월에, 商은 6월에, 周는 夏至에 연못 가운데의 方丘壇에서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12)는 기록이 있어 地神에 대한 제사는 최소 4,0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周代에 이르러 君王들은 백성들을 통치하는데 이를 활용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天子개념의 확립과 禮儀제도인 周禮의 완성이다. 이로부터 天地日月神에 대한 제사는 엄격한 절차에 따라 오직 天子만이 지낼 수 있는 고유 권한이 되었던 것이다. 漢代를 거치면서 더욱 확고하게 자리 잡은 ≪周禮≫의 “夏至日祭地祇于泽中方丘”를 明淸代에도 그대로 답습하여 國泰民安, 風調雨順, 五穀豐登등을 기원하며 매년 하지에 황제들이 친히 이 方澤壇에 나아가 祭地하였다. 孙承泽의 ≪春明梦餘錄≫에 기록되어 있 듯이13) 명대에도 周禮를 따라 그대로 하지에 祭地했고, 청대 황제들 또한 하지에 지단에 서 祭地했음이 다른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14) 地壇의 연혁에 의하면, 1531년 하지 때 明世宗(嘉靖)이 지단의 方澤壇에서 첫 祭地한 이래 淸이 멸망할 때 까지 381년 동안 明淸시기 14명의 황제15)가 지단에서 직접 祭地 10) “地坛为凤, 每年夏至拜; 天坛为龙, 每年冬至拜.” 11)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69-70쪽. 12) 孙承泽, ≪春明梦餘錄≫, 233쪽. 『李善長等進方丘說. 曰: “按三代祭地之禮見於經典者, 夏以五月, 商以六月, 周以夏至日, 祀之於澤中之方丘.”』 13) 孙承泽, ≪春明梦餘錄≫, 233쪽. 『李善長等進方丘說. 曰: “蓋王事者天明, 事地察, 故冬至報天, 夏至報地, 所以順陰陽之義也. 祭天於南郊之圜丘, 祭地於北郊之方澤, 所以順陰陽之位也.”』 14) 潘榮陛, ≪帝京歲時紀勝≫, <夏至>條: 『하지에 방택에 크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곧 나라의 큰 제도이다(夏至大祀方澤, 乃國之大典).』[국립민속박물관 세시기 번역총서 4, ≪중국대세시기Ⅱ≫(희 조락사, 제경경물략, 제경세시기승, 연경세시기), 국립민속박물관, 2006, 179-180쪽.] 劉錦藻撰, ≪淸祖續文獻通考≫(萬有文库第二集)<卷一百四十九郊社考三祀后土>, 常務仁書館, 1936, 1522쪽: 『國祖茵席之定制每歲夏至大祀地於北郊, 方澤以五嶽五鎭四海四瀆爲四從壇配享……』 15) 明嘉靖九年(1530년)에 지단이 세워진 이래 모두 16명의 황제가 있었지만, 明光宗(泰昌)은 즉 위 29일 만에 崩하고 하지 때에는 재위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친히 祭地하지 못했다. 淸의 마 지막 황제 溥儀(宣統)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직접 祭地하지는 못하고 宣統二年(1910년)에 莊親 王載功을 파견하여 대행했다는 기록(劉錦藻撰, ≪淸祖續文獻通考≫, 1525쪽 참조)이 있다. 14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60 - 했다. 그러나 매년 황제들이 직접 祭地한 것은 아니다. 迎神부터 送神까지 三跪九叩禮를 행해야 하며, 전체 두 시간 가량의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힘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황제 가 건강이 좋지 않거나 어릴 경우에는 직접 가지 않고 亲王이나 皇子를 파견하여 대행 시키기도 했다. 청대 康熙황제는 61년간 재위하면서 앞 40년간은 26차례나 직접 지단에 가서 祭를 올렸지만 후반기 21년 동안에는 모두 亲王이나 皇子가 대신 祭를 올린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16) 그렇다면 明淸代황제들의 祭地모습은 어떠했을까? 孙承泽의 ≪春明梦餘錄≫에, 明崇禎15년 1642년 5월 26일 하지 때의 祭地모습이 기 록되어 있는데,17) 분야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方澤壇에 이르는 노선 및 시간: 사전에 황제는 方澤에서 친히 祭地한다는 것을 알리고, 주관 관리는 모든 절차를 의례에 따른다. 이날, 四鼓후 鐘이 울리 면 황제는 가마에 올라 午門, 端門, 承天門, 長安左門, 安定門을 거쳐 北郊에 이 르러 임시 막사에서 祭服을 갖추어 입는다. 이 때 날이 점점 밝아 오고 황제는 한참동안 상주문을 쭉 훑어본다. 卯時18)를 알리면 황제는 大次19)에서 걸어 나와 안쪽 담장의 櫺星右門으로 걸어 들어가 大祭禮를 행한다. 禮가 끝나면 大次에 이 르러 祭服을 갈아입고 환궁한다. ② 절차: 九曲을 연주하고, 황제가 壇에 오르는 것은 다섯 차례인데, 은혜에 보답하고 선양하며 禮를 다한다. ③ 祭物: 正位에는 黑犢1, 黃琮, 黃帛, 黃玉爵을 올린다. 配位도 마찬가지나 玉 만은 없다. 四從位에는 黑犢4, 北羊4, 猪4를 사용했다. 모두 犢6마리, 北羊및 猪각 4마리를 사용했다.20) 北羊(綿羊)은 뿔이 아래로 굽은 것이 가치가 높았고, 명의 황제가 친히 祭地한 구체적인 횟수는 ≪地壇史略≫ 11쪽 참조. 16)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10쪽. 17) 孙承泽, ≪春明梦餘錄≫, 237-238쪽. 西垣筆記: 『崇禎十五年五月二十六日甲午, 夏至. 先是上傳 親祭地於方澤, 所司者皆如儀. 是日, 四鼓後鐘鳴, 上乘輿從午門、端門、承天門、長安左門、安定 門詣北郊, 至行幄, 具祭服. 時曙色漸開, 上繙閱章疏久之. 報卯時, 上步出大次, 從內壝櫺星右門步 入, 行大祭禮, 樂九奏, 上升壇者五, 而對越盡禮. 仍至大次, 易常服而還. 正位黑犢一, 黃琮、黃 帛、黃玉爵, 配位同, 惟無玉; 四從位黑犢四、北羊四、猪四. 計用犢六隻, 北羊及猪各四隻. 北羊 者, 角彎下, 價高; 山羊, 角直上, 價廉. 大祀不用山羊. 南祀配位藏於泰神殿, 北郊配位在太廟, 臨 祭前一日請出, 入壇. 祭畢, 仍奉入.』 18) 하루 밤을 五鼓(五更)로 나누었을 경우 四鼓는 오늘날 시간으로 새벽 01-03시이며, 하루를 12 時辰으로 나누었을 경우 卯時는 05-07시이다. 19) 제사 시 황제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임시 막사. 淸代에는 황제가 祭地할 때 의무적으로 齋宮 에서 재개하고 휴식을 취했지만, 明代에는 齋宮에 머무르는 것이 규정화되지는 않았었다. 20) “北羊及猪各四隻”은 ≪春明梦餘錄≫(237-238쪽)에는 누락되었지만, 필자가 ≪北京地壇史料≫ (26쪽)에 근거하여 보완한 것이다. 또한 明淸代의 從位는 五嶽․五镇․四海․四渎․五陵山으 로 모두 23座神位인데, 五嶽․五镇․四海․四渎은 각각 한 군데에 모아 모셨고, 五陵山신위 (황제의 陵이 있는 다섯 산의 山神)는 五嶽과 五镇에 각각 나누어 모셨다. 따라서 “四從位”가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61 - 山羊은 뿔이 위로 곧게 뻗은 것이 가치가 낮았다. 大祀에서는 山羊을 쓰지 않았 다. ④ 配位보관 장소: 南祀配位는 泰神殿에 보관했고, 北郊配位는 太廟에 보관 했다. 제사 하루 전에 모시고 나와 壇에 모셨다가 祭가 끝나면 다시 받들고 들어 간다.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사 절차에 대해서는 비록 세부적인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록 되어 있지는 않지만 淸代에 각 의식 과정마다 각기 다른 乐章을 연주한 것으로 미루어 明代도 九曲을 연주했으므로 의식 절차는 청대와 마찬가지로 9개의 절차가 있었음을 추 정할 수 있다. 또한 언급되어 있는 神位의 내용으로 미루어 명대에도 청대와 마찬가지로 正位와 配位, 從位등 3등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문헌의 기록21)에 따라 구체적으로 고찰해 보면, 먼저 正位는 皇地祇신위로 方澤壇상층 정중앙에 모셨다. 配位는 황제의 조상 신위로 正位양측에 配享했는데, 명대에는 太祖만을 배향만 반면 청대는 太祖․太 宗․世祖․聖祖․世宗․高宗․仁宗과 宣宗등 8명을 배향했다. 끝으로 從位는 五嶽․五 镇․四海․四渎과 五陵山신위로 아래층에 모셨음을 알 수 있다. 결국 明崇禎15년 때의 祭地기록을 통해 方澤壇에 이르는 노선이나 시간, 사용한 제 물의 종류와 配位를 보관해 두었던 장소 등 明代당시의 모습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지단묘회에서 재현하고 있는 淸乾隆帝시기의 祭地모습과 비교했을 때 齋宮과 皇祇室의 사용 여부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점을 보이지만 큰 틀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아 청대는 명대의 禮制를 바탕으로 했음이 거듭 확인된다. (3) 倣淸祭地表演활동 오늘날에는 地神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제사활동은 없어졌지만 1991년 제6 회 春節廟會부터22) 청나라 乾隆皇帝가 夏至때 祭地하던 장면을 재현하여 “倣淸祭地表 演활동”이란 항목으로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明淸代황제들의 전통 祭地를 현대문화와 접목시킨 지단묘회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연행항목이다. 특히 2009년 제 24회 묘회부터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황제를 공모 선발하여 祭地활동에 직접 참여케 함으로써 지단묘회와 倣淸祭地表演활동에 대한 관심도를 제고시켜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여 묘회 수입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현대묘회에서 경제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일면 되며 제사 시에는 네 군데에 각각 제물을 바쳤다. 明淸代신위의 구체적 위치는 ≪地壇史略≫ 9-10쪽 참조. 21)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7-9쪽. 22) 1990년에 地壇建壇460주년 기념으로 복원하여 夏至때 최초 재현하였고, 그해 가을에는 북경 아시안게임 기념 묘회에서 재차 재현하였다. 다음해인 1991년부터는 地壇春節文化廟會로 옮겨 정식 연행항목으로 확정하여 춘절묘회 때마다 재현하고 있다.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62 - 【正位에 향을 바치는 황제(인터넷 사진)】 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① 규모 200여 명의 전문 연행단이 참여하는데, 이는 비록 淸乾隆七年(1742년)에 수행하는 인 원을 乐舞生480명과 执事生90명을 두기로 정했던23) 규모보다는 대폭 축소되었고, 관광 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재현이라는 특성상 의식 시간도 대폭 간소화되었지만 큰 틀에 있 어서의 의식 절차만큼은 원래 모습에 따라 재현하고 있다. ② 祭物 과거에 황제들이 祭地할 때에는 太牢의 禮에 따라 宰牲亭에서 犊․羊․豕등을 통째 로 잡아 기본 제물로 바쳤으나,24) 재현이기 때문에 실제 제물은 별도로 준비하지 않고 正位앞에만 상징적으로 소․양․돼지의 실물모형을 올려놓고 제사를 지낸다. ③ 祭儀 祭地절차로는 迎神․奠玉帛․进俎․初献․亚献․终献․撤饌․送神․望瘞25) 등 모두 9개의 의식 과정이 있다.26) 初獻이후 读祝이 있고 亞獻이 이어지며, 終獻후에는 受福 胙(飮福)가 있고 나서 撤饌하는데, 初獻과 讀祝, 終獻과 受福胙는 각각 하나의 과정 안에 서 진행되기 때문에 9개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각 의식 과정에서는 각기 다른 乐章을 연주하는데, 실제로는 送神과 望 瘞는 같은 악장을 연주하고, 마지막 절차 인 禮成때 다른 악장을 연주한다. 禮成 은 望瘞때 이미 方澤壇의 櫺星門을 나와 望瘞位에 선 이후 禮를 마친 황제가 大次 로 들어가 祭服을 갈아입고, 각 神位를 원래 보관하던 장소로 원위치하는 과정이 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공식 의식 순서에 23)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34쪽. 이 외에도 수많은 儀仗隊와 문무백관, 侍衛隊등이 따랐으니 그 규모는 매우 방대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24) ≪地壇史略≫(13쪽 “閱選祭祀所用的犢․羊․豕․鹿”)과 ≪北京地壇史料≫(116쪽 <淸會典事例>)의 기록에 의하면, 大祀이외에는 鹿이나 兎도 제물로 받쳤음이 확인된다. 25) 제사가 끝난 후 神에게 올린 폐백이나 축판, 축문 등을 瘞坎에서 묻거나 태우는 禮. 26) 祭地준비 상황부터 황제가 方澤壇에 이르는 노선 및 절차, 9단계의 祭地절차에 대한 구체적 인 내용은 王仲奋의 ≪地壇史略≫ 제1장 제5절 “夏至皇帝祭地(大祀方澤)典儀全程”(13-20쪽)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조 바람.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63 - 서는 빼고 9개 과정으로 여긴다. 또한 의식 과정에서는 文․武八佾舞를 추었는데 初獻 과 亞獻에서는 武舞를 추었고, 終獻때에는 文舞를 추었다. 춤출 때 文舞生은 기다란 무 도용 도구인 羽와 籥을, 武舞生은 干과 戚을 양손에 각각 하나씩 들었다.27) 그러나 오늘날 재현하는 것은 비록 옛 문헌에 근거하고 문화재 전문가와 역사학자들 의 엄격한 고증과 자문을 거쳐 건륭황제가 하지 때 祭地하던 순서대로 연행하지만 대폭 축소하여 진행한다. 과거에는 매 하나의 절차를 진행할 때 마다 모두 각각 正位와 配 位28)를 향해 三跪九叩禮를 행하여 迎神부터 送神까지 70여 차례 무릎을 꿇고 200여 차 례 머리를 조아리며 2시간 정도 걸렸지만,29) 옛날 그대로 전부 재현하면 연행자들이 힘 들고 특히 관객들이 지루해하여 끝까지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대폭 축소하여 10여 차 례 一跪三叩禮하며 30분 만에 끝낸다. 오늘날 묘회에서 재현하는 倣淸祭地表演활동은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과거 황제가 재개하며 기다렸던 斋宫에서 분장하고 의관을 갖춰 입고서 출발하여 祭 地의례가 열리는 方泽坛까지 행진하는 것으로 의례는 시작된다. ․각종 의장 깃발과 傘- 樂舞生- 문무백관과 侍衛隊- 가마에 탄 황제 - 日傘- 호위 武將순으로 齋宮을 나서 행진하고, 櫺星門을 통해 方澤壇에 들어선다. ․각종 의장 깃발과 傘이 입장하여 좌우로 담장 앞에 도열한다. ․樂生이 입장하여 좌우 대각선으로 도열한다. ․문무백관과 시위대, 執事生이 황제에 앞서 입장하여 도열한다. ․明黃色둥근 日傘아래 명황색 龍袍를 입은 皇帝가 櫺星門을 지난 후, 日傘은 더 이 상 따르지 않고 문무백관이 도열해 있는 가운데를 따라 속칭 祭壇혹은 拜臺라고도 하 는 方澤壇으로 걸어 들어선다. ․제사를 도울 執事生이 먼저 하층 壇에 올라 있다가 황제가 천천히 하층 壇으로 올 라오면 상층 壇으로 이동하여 각자 위치에 서고 황제는 하층 壇계단 앞(拜位)에 선다. ․舞生이 입장하여 도열한다. ․樂生의 연주와 함께 의식이 시작된다. ․영신부터 송신까지 청 건륭제 때의 의식에 따르되 30분에 끝내야 하는 시간 관계상 절차를 간소화시켜 正位와 配位한 곳에만 집사생의 도움을 받아 향을 바치고 각 一跪 三叩禮만 행한다. ․각 의식 과정마다 歌舞樂이 있는데 文舞와 武舞의 사용처, 文舞生과 武舞生이 손에 들었던 도구나 연주하는 악장 등은 건륭제 때와 다르지 않다. ․모든 의식이 끝나면 각종 의장 깃발과 傘- 樂舞生- 황제 - 日傘- 문무백관과 시 27)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42쪽. 28) 從位는 分獻官이 했다. 29)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11쪽.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64 - 위대, 집사생 순으로 퇴장한다. 이러한 절차로 재현되는 倣淸祭地表演은 묘회 기간 매일 한 차례 펼쳐지는데 예년에 는 보통 10시에 시작했지만, 2015년에는 가장 혼잡한 10시부터 오후 2시 사이를 피하기 위해 30분 앞당긴 9시 30분에 시작하여 10시에 끝냈다. 2. 전통연행예술 地壇廟會는 전통과 현대가 결부된 새로운 형태의 묘회답게 지단의 본래 기능이었던 祭地장면을 재현한 倣淸祭地表演활동 외에도 많은 전통연행예술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에는 북경의 전통연행예술도 있지만,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인 河北의 沧州舞狮, 陝北의 安塞腰鼓, 白族의 八角鼓등 전국 각지에서 많은 유명 전통연행예술단도 참여한다. 과거 중국에서는 藝人들이 자신들의 솜씨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가 결코 많지 않았었는 데, 廟會는 자신들의 실력을 연마하고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이었다. 여러 연행단 들이 서로 기량을 견주어보면서 경쟁하고 배울 수 있는 경연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전 통을 지단묘회도 그대로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지단묘회는 다른 전통묘회와는 달 리 현대에 시작된 전통과 현대를 결부시킨 도시형 묘회이기 때문에 각종 전통 민간문예 활동 외에도 전통연행에 현 시대의 새로운 유행을 반영하여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한 연 행들도 있고, 현대식 패션쇼나 서커스, 심지어 해외 공연단 등도 참여한다. 이러한 전통은 2015년도 地壇廟會에서도 계속되었는데, 핵심 내용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文藝演出항목으로 倣清祭地表演외에 乐队演唱, 吉舞祥歌, 秦腔古风, 欢天喜地, 黄梅雅韵, 民间花会, 80後脱口秀등의 전문 연행단이 참여하였는데, 전통연행 뿐 아니라 현대연행도 있었다. 둘째, 군중참여성 활동으로 老北京手工艺互动区, 科技动漫嘉年华, 民俗廣場등이 있었 는데, 일반 관광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장 형식으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2015년 제30회 地坛春节文化庙会조직위원회에서 공식 발표한 것으로 地壇公園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데, 문예연출 항목 및 군중참여성 활동 부분만 도표 화하면 다음과 같다.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65 - 주 제(항 목) 장 소 시 간 ① 传统文化经典节目方泽坛內09:30—10:00 ② 乐队演唱方泽坛內10:00—12:00 / 13:30—15:00 ③ 吉舞祥歌方泽坛內09:30—11:30 / 12:30—15:10 ④ 秦腔古风方泽坛內09:50—11:50 / 12:50—15:20 ⑤ 欢天喜地方泽坛內09:40—11:40 / 12:40—15:10 ⑥ 黄梅雅韵方泽坛內09:50—11:55 / 13:00—15:30 ⑦ 大型民间花会表演东门门球场09:30—15:30 ⑧ 80後脱口秀斋宫西舞臺09:30—15:00 ⑨ 老北京手工艺互动区银杏路东侧09:00—16:30 ⑩ 科技动漫嘉年华北门文化廣場09:30—15:30 ⑪ 民俗廣場方泽坛北门廣場09:00—16:00 위 표의 순서대로 각 항목별 구체적인 활동 내용을 상세히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① 传统文化经典节目은 고전전통문화 프로그램으로서 위에서 상세히 고찰한 倣清祭地 表演활동이다. ② 乐队演唱은 方泽坛하층에 무대를 마련했다. 표면적으로는 민간가요 공연이지만 실 질적으로는 가라오케 무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方泽坛상층에서의 황제 祭地연행이 끝나고, 從位를 모신 하층에서 곧바로 가라오케 무대를 연다는 것은 전통과 현대를 결합 한 묘회이고, 상업성을 강조한 묘회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상업주의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③ 吉舞祥歌는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종합예술 프로그램으로 유행가 부르기, 유명 댄 스곡 추기, 패션쇼 등 현대문화적 요소들이 주류를 이루어 전통연행예술과 현대문화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④ 秦腔古风은 오늘날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중국의 서북지역에 해당되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왕조의 수도 역할을 하여 당시 왕조의 중심지였던 古都西 安유역을 중심으로 陝西省과 그 주변 일대에서 유행하는 秦腔과 西安의 大唐芙蓉園歌 舞연행이다. 특히 秦腔은 2006년 5월에 国务院의 비준을 거쳐 제1차 국가급 비물질문화 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극이다. ⑤ 欢天喜地는 지단묘회 30주년을 기념하여 북경 민간예술 발상지 가운데 하나였던 天桥의 절묘한 재주인 天橋绝活위주로 편성하여 天桥, 나아가 옛 북경 특유의 문화를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66 - 보여 주었다. 相声, 口技, 摔跤, 雙簧,30) 中幡,31) 牛骨数来寶32) 등의 각종 曲藝와 雜技가 그것이다. ⑥ 黄梅雅韵은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安徽省의 <天仙配>, <打猪草> 등의 黄梅戏를 중심으로 강남 특색의 가무가 연행되었다. 주지하다시피 黃梅戱역시 2006년 5월에 제1 차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⑦ 大型民间花会表演은 高跷, 旱船, 秧歌, 舞狮, 鑼鼓隊등 이색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 는 남북의 전통 민간 연행항목으로 地壇东门게이트볼장에서 열렸다. 民间花会는 이미 漢代부터 있었는데 당시에는 百戏라 불렸고, 宋元代에는 社火라고 칭 했다. 明淸代이후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전통 연행항 목으로서 묘회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핵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5년에도 전국 각지의 국가급 혹은 성급 비물질문화유산인 河北沧州舞狮, 山西威风锣鼓, 陝北安塞腰鼓, 白族八角鼓, 井陘拉花, 河洛大鼓, 四川清音, 满族秧歌, 东北秧歌, 朝鲜族舞蹈등이 각기 자 기 고장 혹은 민족 특색을 띤 공연을 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지단묘회는 최초로 시도했던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고위 관료의 치사 없이 바로 개막공연을 함으로써 개막식을 대신했는데 抚顺满族秧歌, 河北沧州舞狮와 山东鼓子秧歌등이 개막공연을 하였다. ⑧ 80後脱口秀는 80년대 이후 출생한 사람들이 相声, 快板, 口技, 山东快书등으로 시 사성 있는 문제를 풍자하는 일종의 토크쇼로서 斋宫서쪽 무대에서 진행되었다. 전통문 예를 계승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전통양식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전통과 현대문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항목이라 할 수 있다. ⑨ 老北京手工艺互动区는 布老虎나 虎头鞋, 虎头帽, 布鞋등 북경 전통의 수공예품을 현장에서 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하고 직접 제작 체험도 해 볼 수 있게 만든 구역으로 일 반 관광객,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전통문화를 교육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⑩ 科技动漫嘉年华는 과학 기술 애니메이션 카니발의 성격으로 北门문화광장에서 펼 쳐졌다.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은 전문 애니메이션 코너에서 만화, 만화영화, 인터넷 애니 메이션, 모바일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무대극 등 여러 종류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즐길 수 있으며, 애니메이션 제작도구 또한 직접 보고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쌍방향 전시 겸 체험장인 셈이다. 특히 굴삭기 학원 협찬으로 어린이들에게 소형 굴삭기로 모래 파기를 체험하게 하여 아이들로부터 인기를 끌기도 했다. ⑪ 民俗廣場은 方泽坛북문광장에서 진행되었으며 민속을 공연하고 공연단과 함께 직 30) 한 명은 무대 위에서 동작을 맡고, 다른 한 명은 무대 뒤에서 대사와 노래를 담당하는 곡예의 일종. 31) 화려하게 장식되고 의장의 특색을 지닌 깃발이 달린 깃대를 자유자재로 놀리는 기예의 일종. 32) 数来寶는 곡예의 일종으로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대나무판이나 구리방울이 달린 소 넓적다 리뼈로 박자를 맞추며 노래하는 것. 최초에는 藝人들이 길거리에서 노래를 팔며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불렀는데, 나중에는 소형 오락 장소에서 공연하게 되었다.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67 - 접 체험해 보는 곳이다. 黎族이나 苗族등 少數民族의 전통 무도인 竹竿舞, 전통 그네타 기, 漢族혼례문화 가운데 신부를 맞이할 때 사용하는 신부용 가마를 타는 擡花轿등 여 러 체험항목이 있어서 地壇廟會가 그동안 줄곧 견지해 온 “民间, 民俗, 民族”이라는 활동 주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이밖에 臺灣소수민족의 민속춤을 관람하고 직접 춰 볼 수 있는 臺灣風俗展도 있었는 데, 2014년에 北京의 地壇廟會가 臺灣의 臺北에서 열린 연장선으로 중국인의 전통문화인 廟會를 통한 兩岸간의 활발한 민간교류를 엿볼 수 있다. Ⅲ. 廟市를 중심으로 한 현대문화적 요소 地壇廟會는 중국의 수도 北京에서 열리는 상업성이 강조된 도시형 현대묘회이다. 따라 서 묘회 기간 동안 시장 기능을 하는 廟市에 나온 상품들 역시 전통적인 민간공예품, 전 통음식과 전통놀이기구에서부터 현대의 최첨단 제품까지 모두 있다. 특히 오늘날은 묘회 를 관광 상품화하여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는 상업적 성격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에 각종 먹거리, 놀거리와 볼거리 등 각종 오락물, 어린이용 장난감 뿐 아니라 최근에 유행 하는 상품들, 혹은 앞으로 유행을 선도할 상품들이 전통상품 보다 갈수록 더 많이 나오 는 추세이다. 이렇듯 오늘날 대부분의 묘회는 전통문화 전승보다는 경제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 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인 이익 창출 여부를 가지고 묘회의 성패를 따지기도 한다. 이러 한 요인은 예전에는 중앙정부에서 직접 주관했던 것들을 지금은 지방정부로, 지방정부는 다시 관련 單位로 주관 업무를 넘겨버렸기 때문이다. 지단묘회도 최초 1985년에는 北京 市政府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东城区政府의 주도 하에 시작되었지만, 2005년에 북경시정 부가 <北京市大型社会活动安全管理条例>를 반포한 이래 동성구에서 동성구 园林绿化局 산하의 地壇公園管理處로 이관하여 주관하고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경제적인 수익만을 강조하다 보니 경매회사에 위탁하여 노점 경영권을 판매하고, 심지어는 경매를 통해 지 단묘회 전체 운영자를 찾는 등 묘회 운영단위를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하여 기업형식으 로 운영하면서 경제적인 이익만을 따지는 경향이 농후해 졌다. 이로 인해 지단묘회에서 연행되는 전통 민간연행예술이나 민속활동 역시 많은 부분이 현재의 時流와 유행을 따 르면서 현 정권이나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게 변화해 버린 경향도 있다. 이에 대해 南焱은 <北京庙会亟待市场化突破>(≪中国经济周刊≫ 2009년 Z1기)라는 글 에서, 현재 북경의 묘회와 지단묘회의 일반적인 상황에 대해 소개하면서 지나치게 시장 화, 산업화, 상업화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徐敏또한 <庙会经济>(≪新西部≫ 2013 년 Z1기)라는 짤막한 글에서, “1985년에 북경시가 앞장서서 제1회 지단묘회를 개최했다.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68 - 이로부터 각지에서 묘회가 재개되었는데, 표면상은 인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묘회 조직자와 상인들이 이익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묘회들은 본래의 종교적인 측면이 대거 약화되고 천편일률적인 특색을 지니게 되었는데 거의 똑 같은 오락과 판매되는 물건들, 먹거리 위주 등이 그것이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보다 훨씬 앞서 习五一은 <近代北京庙会文化演变的轨迹>(≪近代史研究≫ 1998년 1기)에서, “북경이 현대화되면서 묘회도 전통적인 종교․신앙적인 측면에서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경제적인 측면, 즉 상업과 오락 위주의 廟市로 변화하였다.”고 1990년 말기에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처럼 현대묘회의 문제점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서구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 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 그렇게 변해버린 오늘날 중국의 廟會에서 가 장 많이 팔리는 것은 역시 각종 먹거리와 아이들의 완구류이다. 이에 본장에서는 廟會의 廟市를 가장 대표하는 먹거리와 완구류 및 오락물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1. 먹거리 지금처럼 시장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상품유통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였던 廟市 는 전통묘회에서는 물론이고 현대묘회에서도 묘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심지어는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廟會를 아예 廟市라고 칭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묘시에서 예나 지금이나 빠지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먹 거리이다. 2015년도 지단묘회의 음식 코너는 35개였는데 모두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다. 최저 입 찰가는 개당 50,000元이었고 보증금은 30,000元이었다. 먹거리에 대한 인기가 많기 때문 에 그만큼 비싼 가격에 경매되는 것이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향토음식이 모이고 서양 먹거리들도 혼재되어 있는데, 특히 북경의 특색 있는 전통 먹거리가 가장 유명하다. 2015년에는 정통 中华老字號먹거리의 대표인 东来顺饭莊, 回族식당인 白魁老號, 护国 寺小吃店등의 북경 유명 식당과 馄饨侯, 北京天橋茶汤李등 북경의 대표적인 유명 먹 거리 외에 200여 가지의 각종 먹거리가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 炸灌肠, 酱骨头, 烤乳鸽, 撒尿牛丸, 烤肉串, 全素刘, 爆肚王, 李记白水羊头, 豆汁, 焦圈, 豌豆黄, 锅贴, 卤煮火烧, 宫廷倣膳등과 天津의 狗不理包子, 十八街麻花등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먹거리들이다. 이외에도 酸辣粉(四川省川菜), 长沙臭豆腐(湖南省湘 菜), 符離集烧鸡(安徽省徽菜), 德州扒鸡(山東省鲁菜) 등 중국 8대 요리에 속하는 지방 특색 요리와 大連鐵板魷魚, 내몽골의 烤羊肉, 雲南菠萝饭, 臺灣의 蚵仔煎들도 참여하였 다. 또한 煎餠과 油茶․面茶․杏仁茶등의 수많은 茶종류, 江米粥등 죽 종류, 牛骨髓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69 - 등의 한약재, 현대식품으로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컵라면과 솜사탕 등도 있어 여느 묘회 처럼 지단묘회도 완전 먹거리를 위한 묘회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 가운데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 하면 아마도 산사나무 열매 등 여러 열매나 과일을 꼬챙이에 꿰어 설탕물이나 엿 등을 발라 굳힌 冰糖葫蘆(糖葫蘆)가 아닐까 한다. 어린아이는 물론이거니와 어른들에게도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해주는,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전통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인기만큼이나 먹거리로 인한 많은 문제점들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역시 환경문제이다. 꼬치구이에 사용된 대나무, 일회용 그릇, 냅 킨, 휴지 등 재활용이 어려운 일회성 물품들의 지나친 사용과 그러한 일회성 쓰레기를 아무데나 함부로 버리는 행위, 지나치게 많은 쓰레기로 넘쳐나는 쓰레기통 주변의 불결 함 등 이번 묘회에서도 친환경 묘회를 강조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 문제점으로 지 적되고 있어 많은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아쉬움을 남긴 묘회로 평가받고 있다. 2. 완구류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묘회 묘시에서 빠질 수 없는 상품 가운데 하나가 어린이를 위 한 각종 장난감이다. 특히 한 자녀가 대부분인 오늘날 중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는 장난감은 대부분 사 주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익을 창출하려는 상인들의 입장에 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완구류 상품을 특히 많이 내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유사한 상품은 결국 상인들의 공멸을 초래하기도 한다. 2015년도의 경우 도 마찬가지다. 羊의 해를 맞아 양 인형을 판매하는 노점이 많다보니 묘회가 끝나기 3-4 일 전부터 이미 세일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묘회 조직위원회에서 좀 더 치밀하고 효과적으로 안배를 한다면 상인들의 판매 수입은 더 늘어날 것이다. 어차피 묘회에서의 노점상들은 모두 경매에 의해 그 자리를 임대받았기 때문에 공멸을 막아 주는 것이 향 후 지속적인 묘회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번 廟會廟市에 나온 주요 완구류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전통 수공예품이자 완구인 空竹과 風車를 빼놓을 수가 없다. 남녀 구분 없 이 어린이는 물론이고 성인들에게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종류의 방패와 창, 칼, 총기류와 탄알 등의 무기류는 비교적 남자아이들에게서 인기 높은 장난감들이다. 이에 비해 각종 가발과 가면, 모자, 꽃이나 동물 뿔 등의 장식 이 달려 있는 머리띠 등은 상대적으로 여자아이들이 선호하는 장난감들이라 할 수 있다. 각종 동물캐릭터나 애니메이션 장난감과 인형, 익살스럽거나 무서운 얼굴의 가면인 鬼臉 儺面, 가스를 넣은 각종 풍선․막대풍선․기다란 막대풍선으로 여러 모형을 만든 것 등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70 - 의 풍선류 역시 남녀를 가리지 않고 어린이들에게서 인기 있는 품목이다. 廟市에 나온 완구류 가운데 많은 것들은 전통 수공예품이다. 이런 수공예품을 일부 노 점들은 현장에서 직접 제작하여 판매하기도 하고 어린이들에게 직접 만들어보게도 하여 판매점이자 체험장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어린이들에게 전통놀이와 전통놀 이도구를 알리는 교육적인 측면도 상당하다 할 수 있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공존하 는 지단묘회가 지닐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2015년도 廟市 에 나온 완구류 가운데 전통 수공예품에 속하는 주요 품목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연 종류: 沙燕兒, 龙睛鱼, 活眼睛, 活关节, 大蜈蚣, 성냥갑 속에 들어갈 수 있는 휴 대용 연 등 종류도 다양하고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② 인형류: 각종 전통 인형, 财神大元寶인형, 泥人张彩塑(채색된 찰흙으로 만든 각종 인물 인형으로 京劇주인공이나 고전소설 혹은 희곡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 등 다양 하다), 兔兒爷(토끼 머리에 사람 몸을 한 찰흙 인형으로 추석 때 가지고 놀거나 달에 제 사 지내는데 많이 쓰인다), 각종 봉제 인형 등 종류가 가장 다양한 완구이자 전통 수공 예품이다. ③ 설탕류: 糖人(유리공예를 하듯 입으로 물엿을 불어서 만든 각종 모형이나 동물 모 양의 인형), 특히 설탕을 원료로 녹여 여러 형상을 만드는 糖画는 우리나라의 ‘달고나’와 유사한 것으로 현장에서 직접 제작 판매하여 어린이들에게서 인기가 높은 완구이자 먹 거리가 되기도 한다. ④ 도예류: 东巴陶艺, 각종 瓷器및 茶壺등 종류가 다양하다. ⑤ 布艺류: 천을 이용한 공예 종류인 編織工藝와 土布织造등의 예술제작 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서 전통 솜씨를 볼 수 있다. 특히 북경 전통 수공예품인 布老虎, 虎头鞋, 虎头帽와 毛球등도 인기가 높다. 蘇繡(2006년에 제1차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에 지정된 蘇州자수로 양면 자수는 특히 더 손꼽힌다), 装饰画(자수를 놓아 그린 그림), 手工耳枕 (중간 부분에 귀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어 귀가 압박받지 않도록 만든 베개), 각종 봉제 완구류 등도 모두 천을 이용한 전통 수공예품에 속한다. ⑥ 그림 및 刻字류: 木板年畵, 각종 唐卡(藏族의 특수한 두루마리 그림으로 주로 佛經 이야기나 藏醫藥지식 등을 내용으로 한다), 각종 麥稈畵(보릿대나 밀대로 만든 그림), 內畵(중국 특유의 미술공예로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용기 안쪽 면에 그린 그림), 쌀 톨 위에 글씨를 새기는 米上刻字등이 있다. ⑦ 악기 및 공연류: 각종 京劇소품, 그림자극인 皮影戱에 사용되는 각종 도구, 소형 전통악기들, 나팔,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은 拨浪鼓등이 판매되었다. ⑧ 장식 및 생활용품: 가장 대표적인 剪纸, 각종 红燈笼, 藏族특유의 장식품, 白象牌 梳篦(白象牌는 江蘇省常州市의 유명 상표 이름이다. 전통적인 수공으로 만든 다양한 얼 레빗과 참빗으로 魏晋시기부터 제작되었기 때문에 최소 1,600여 년 이상의 전통을 지니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71 - 고 있다. 常州梳篦는 2008년에 제2차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소형 코담배 병인 鼻烟壶, 재앙과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빗자루, 천과 종이로 만든 해바라기나 장미 등의 장식용 造花, 장식용 붉은 고추와 여지, 四合院을 비롯한 각종 유명 건축물의 축소 모형 등 매우 정교한 민간수공예품도 있다. 특히 미리 선보인 2016년 원숭이띠의 상징물인 손오공 머리의 紫金冠은 아주 잘 팔리 고 있어서 다음 묘회에서의 히트상품임을 예고하고 있다. 앞으로 유행을 선도할 상품을 미리 선보인다는 廟市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3. 오락물 廟會의 廟市에서 먹거리와 어린이들의 완구류 다음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볼거리와 놀거리를 포함한 다양한 오락물이다. 다트로 풍선 터트리기, 쇠구슬 던져 쌓아 놓은 빈 깡통 무너뜨리기, 작은 고리를 던져 상품에 걸치면 그 상품 타기, 농구공 넣어 넣은 수에 맞는 상품타기, 사격으로 상품 떨 어트리기 등등 다양하다. 특히 전통 그네 타기나 신부용 가마타기 같은 전통문화 체험이 있는가 하면 서양 서커스, 게임 머니를 이용한 각종 오락 게임과 같은 현대 오락물도 있 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이밖에도 옛날 북경의 인력거인 老北京黄包车, 여러 장의 사진이나 그림을 렌즈와 조 명이 설치되어 있는 나무상자 안에 넣고 돌리면서 그 줄거리를 노래나 이야기로 전해주 는 전통 민간예술인 拉洋片도 있어서 북경 토박이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算命또한 어느 묘회에서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 지단묘회도 예외는 아니다. 전통과 현대의 오락 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고,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수많은 빨간 색 宮燈은 地壇春節廟會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Ⅳ. 結語 지금까지 地壇자체에 대한 문헌적 연구와 地壇廟會에서의 祭地활동 및 전통연행예술 을 살펴보았고, 아울러 廟市를 중심으로 한 현대문화적 요소도 먹거리와 완구류, 오락물 위주로 고찰하여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양상을 국내 최초로 연구해 보았다. 오늘날 地壇에는 비록 明嘉靖九年(1530년) 최초 창건 당시의 모습은 아니지만 淸代이 래 현대까지 보수되거나 重建된 神库, 宰牲亭, 斋宫, 皇祇室, 神马殿, 牌楼, 方泽坛, 鐘樓 등의 건축물이 남아있어서 당시의 규모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묘회에서 연행되는 倣淸祭地表演활동을 통해 과거 왕조시대에는 일반 백성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明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72 - 淸代의 祭地모습도 공개되고 있다. 비록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재현이라는 특성상 대폭 축소되었지만 옛 문헌에 근거하고 전문가와 학자들의 엄격한 고증을 거쳐 明代의 禮制 를 대체로 따른 淸乾隆帝가 夏至때 祭地하던 순서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地壇廟會는 북경의 전통연행예술 뿐 아니라 河北의 沧州舞狮, 陝北의 安塞腰鼓, 白族 의 八角鼓등 國家級非物質文化遺産도 참여하기 때문에 전국의 전통연행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무대이자 현대오락까지도 즐길 수 있는 묘회이다. 더 나아가 일반 관광객 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여러 전통 체험장도 운영하고 있어서 전통과 현대를 잘 조화 시킨 묘회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北京이 현대화되면서 묘회도 전통적인 종교․신앙 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인 측면, 즉 상업과 오락 위주의 廟市로 변화하였다. 地壇廟會도 예외가 아닌데, 지단묘회가 이렇게 된 요인 가운데 하나는 묘회 주관 단위가 지방정부에 서 地壇公園管理處로 바뀜에 따라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노점이 나 운영 주최를 경매를 통해 판매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 게 책정된 경매가격은 결국 많은 낙찰자들에게 이익 없는 장사를 하게 하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으며, 지나치게 상업화를 추구하다 보니 먹거리와 오락 중심이 되어 버리기 도 한다. 입장료 또한 평소의 5배33)를 받고 있으니, 묘회를 주관하는 지단공원관리처가 묘회를 개최하는 목적이 비록 겉으로는 공익사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사업단위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과거 황제들이 祭地했던 方澤 壇하층 從位를 모신 부분을 가라오케 무대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니 지나친 상업화로 인한 전통과 현대의 부적절한 조화가 “地壇春節文化廟會”라는 명칭을 무색케 하는 문제 점도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地壇廟會는 北京의 地壇에서 뿐만 아니라 2014년도에는 臺灣 의 臺北에서도 열렸고, 2015년도에는 태국의 방콕에서도 개최하여 지단묘회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더 나아가 점차 동남아의 다른 나라 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 까지 확대하여 중국 전통문화를 세계에 전파시킬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전 세계에 孔子 學院을 설립하여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전파하여 세계인을 親中化하려는 속내와 일맥상 통하다 하겠다. 필자는 풍요를 기원하며 대관령 山神에게 제사 지내던 전통풍습이 오늘날 산신에 대 한 제사와 단오굿이나 관노가면극과 같은 전통놀이, 상인들이 민속공예품이나 먹거리 등 을 판매하는 현대적 개념의 축제 형태로 발전하여 2005년 9월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 33) 평소에는 공원 입장료 2元외에 공원 안의 다른 곳을 보기 위해서는 추가로 입장료를 내야 하 지만 전체를 모두 볼 수 있는 通票는 10元이다. 하지만 묘회 기간에는 무조건 전체 입장료 10 元을 받는다. 물론 月票나 年票도 허용되지 않으며, 65세 이상의 경로우대카드도 허용되지 않 아 10元입장료를 구입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 그러나 1.2m 이하의 아동은 무료입장 한다. 전통연행(演行)예술과 현대문화의 공존: 북경 지단묘회(地壇廟會) 연구 - 473 - 유산에 등재된 강릉단오제와 중국 廟會의 연관성을 연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제사 와 전통놀이, 상품 판매 등이 어우러진 이러한 성격은 중국 전통 廟會의 성격과 크게 다 르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과제로 남기기로 한다. 【參考文獻】 국립민속박물관 세시기 번역총서 4, ≪중국대세시기Ⅱ≫(희조락사, 제경경물략, 제경세시기승, 연경세시기), 국립민속박물관, 2006. 高有鵬, ≪廟會與中國文化≫, 人民出版社, 2008. 高占祥, ≪論廟會文化≫, 文化藝術出版社, 1992. 郭子升, ≪市井風情-京城廟會與廣甸-≫, 遼海出版社, 1997. 段玉明, ≪中國寺廟文化論≫, 吉林敎育出版社, 1999. 北京市東城區園林局․北京市檔案館編, ≪北京地壇史料≫, 北京燕山出版社, 1998. 釋源, ≪中華傳統文化書系-寺廟文化≫, 內蒙古人民出版社, 2006. 孫景琛ㆍ劉恩伯, ≪北京傳統節令風俗歌舞≫, 文化藝術出版社, 1986. 孙承泽, ≪春明梦餘錄≫, 北京古籍出版社, 1992. 王同禎, ≪寺廟北京≫, 文物出版社, 2009. 王仲奋编著, ≪地壇史略≫, 北京燕山出版社, 1998. 王兆祥․刘文智, ≪中国古代的庙会≫, 常務印書館, 1997. 劉錦藻(淸) 撰, ≪淸祖續文獻通考≫(萬有文库第二集), 常務仁書館, 1936. 李鴻斌, ≪廟會-北京地方志風物≫, 北京出版社, 2005. 趙世瑜, ≪狂歡與日常-明淸以來的廟會與民間社會≫, 三聯書店, 2002. 華智亞․曹榮, ≪中國民俗文化叢書-民間廟會≫, 中國社會出版社, 2010. 安東煥, <塗山禹王廟會考>, ≪中國人文科學≫ 第三十五輯, 中國人文學會, 2007년 4월. 安東煥, <淺談2008年淸明節堯山聖母廟會>, ≪長安學術≫ 第二輯, 常務印書館, 2011. 高雅楠, <庙会研究文献述评>, ≪理论界≫ 2012年2期. 郭佳, <慈禧與庙会的兴盛>, ≪科学大观园≫ 2013年4期. 祁建, <老北京庙会沿革>, ≪北京观察≫ 2008年2期. 南焱, <北京庙会亟待市场化突破>, ≪中国经济周刊≫ 2009年Z1期. 塘萍, <迷人的北京文化庙会>, ≪中外文化交流≫ 1997年1期. 董曉萍, <非物質文化遺産與民俗評估>, ≪北京師範大學學報≫ 2005年5期. 黎宏河, <北京庙会: 文化與时尚共舞>, ≪时代潮≫ 2004年Z1期. 卜建东, <中国庙会與国外狂欢节的对比研究>, ≪东南文化≫ 2007年6期. 中國人文科學第61輯 - 474 - 徐敏, <庙会经济>, ≪新西部≫ 2013年Z1期. 習五一, <近代北京廟會文化演變的軌迹>, ≪近代史硏究≫ 1998年1期. 劉敏․刘爱利․袁梦, <非物质文化遗产之传统庙会的传承與运营-以北京地坛庙会为例>, ≪企业经济≫ 2011年11期. 刘鹏, <北京的庙会>, ≪北京纪事≫ 2009年1期. 李永菊, <庙会的文化功能分析>, ≪湖北省社会主义学院学报≫ 2003年6期. 崔蕴华, <从娱神到娱人-北京节令庙会與说唱艺术关系研究>, ≪中国政法大学学报≫ 2009年4期. 韩同春, <庙会类型研究概述>, ≪民族艺术研究≫ 2010年1期. <http://baike.baidu.com/view/453069.htm>(百度百科地坛公园). <http://www.dtpark.com/>(地壇公園홈페이지). 【中文概要】 北京地坛亦称方泽坛,最初建于明嘉靖九年(1530年),是明清两代皇帝祭地的场所。自 1531年夏至明世宗首次祭地,到1911年先后有明清两朝的14位皇帝在此祭地。 現今的北京地壇,雖然不是明嘉靖九年當時的原格局,但依然有從淸代到現代维修或重 建的神库、宰牲亭、斋宫、皇祇室、神马殿、牌楼、方泽坛、鐘樓等的建築物,由此可見當 時的規模。 地坛春節文化庙会举办30年来一直遵循民间、民俗、民族的活动主题,坚持突出文化性 和公益性,主要体现在文化活动、民间艺术、传统小吃等方面。其中最特色的就是仿清祭地 表演。它根據古文獻而通過專家和歷史學者的严格考證,遵照在夏至時淸乾隆帝的祭拜程序 进行,分迎神、奠玉帛、进俎、初献、亚献、终献、撤馔、送神、望瘞等九个部分。除此之 外,还有北京的傳統表演和河北沧州舞狮、陝北安塞腰鼓、白族八角鼓等的國家級非物質文 化遺産。全國各地的小吃和各種各樣的玩具也是地坛庙会的一大特色。 【中心语】傳統演行藝術, 現代文化, 共存, 北京, 地壇廟會, 傳統文化, 地神 접수일자 2015. 11.03 심사완료일 2015. 12.06 게재확정일 201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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