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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를 잃고 너는 쓰고, 나는 회상하네
이 홍사
*똥자루 가라사대
기형도와 굳이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동갑이라는 점이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라는 글을 쓴 작가, 김태연과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그 또한 동갑이라는 점뿐이네. 쩝.
*
똥자루는 지금 외국의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마시는 게 아니라 똥자루라고 했으니 자루 주둥이에 넣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싶다.
진한 밀크커피다.
한 모금을 마시니 똥자루 주둥이가 달달하다.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외국의 노천카페라고 하니 유럽풍의 우아하고 낭만이 서린, 추억에 남을 노천카페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결코 아니다. 미얀마 숙소의 골목 앞에 있는 허름한 식당 마당이다. 대나무를 세워 차양을 쳐놓은 싸구려 식당 앞 앉은뱅이 플라스틱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이백 원짜리 커피를 시켜놓고 잔 언저리에 날아와 앉는 파리들을 쫓고 있다. 옆에는 때 묻고 구멍이 숭숭 난 메리야스를 입은 현지인들이 라팔예라는 현지 전통차를 마시며 뭐라고 떠들고는 웃고 있다.
슬슬 노름판이 시작될 모양이다.
똥자루는 조금 전에 다 읽은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라는 실화를 재구성한 소설을 읽었다. 그 책의 씁쓸한, 감당하기 힘든 후감 때문에 숙소를 나와 노천카페로 온 것이다. 똥자루는 기형도와 자신을 비교하고 또 그 글을 쓴 소설가, 기형도의 절친 김태연과 자신을 비교한다. 기형도와 김태연은 대학동기이다. 똥자루도 굳이 거기다가 끼우면 동갑이라는 점뿐이다. 읽어보고 파악해보니 똥자루가 기형도보다 약 이십 일쯤 먼저 세상을 나왔다. 기형도는 1960년 2월 16일 생이고 똥자루는 같은 해 1월26일이 출생일이다. 당시에는 출생일이 정확하게 호적에 오르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지어 면사무소에서 호적에 올리는 날이 생년월일이 되었고 논이나 밭에서 일을 하다가 장에 가는 이장을 만나 우리 새로 낳은 아이가 이름이 뭐고 언제 낳았으니 호적에 좀 올려달라고 부탁을 했다가 장에 간 이장이 한잔 걸치고 깜빡해서 전혀 다른 일자를 호적에 등재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심지어 동생과 생년월일이 바뀐 이도 있다. 그러나 똥자루는 음력과 양력을 조합해서 훑어보니 정확하게 출생일자가 등재되었다. 아무튼, 그들이 연세문학회에서 시국을 토론하며 왕성하게 문학에 대한 지적소양을 쌓을 적에 똥자루 자신은 무얼 했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똥자루는 자신도 모르게 볼우물이 패이도록 담배를 빨았다. 열패감 때문인가? 담배가 쓰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라는 책이 나왔다는 건 라디오에서 들었다. 똥자루는 라디오를 잘 듣는 편이 아닌데 우연히 들은 것이었다. 일주일쯤 전이었다. 거의 매일 만나는 권 박사와 이 교수 셋이서 내기당구를 쳐서 가까스로 이기고 술과 저녁을 푸짐하게 얻어먹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데 택시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그런 책이 나왔다며 그 책에 대해서 잠시 소개하는 걸 듣고 기사에게 음량을 좀 올려달라고 했다. 볼륨을 올리는 순간 그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끝이 나고 음악이 흘러나와 궁금증을 더 자극했다.
구미라는 공단도시에 살면 가장 불편한 애로사항이 도서구입이다.
몇 개의 서점은 있지만 참고서 위주이고 문학잡지는 아예 들어오지도 않고 신간은 빨리 들어오지 않는다. 하여 똥자루는 가끔 시간이 나면 기차로 삼십 분이 걸리는 대구로 내려간다. 이른바 똥자루에게만 있는 북 아이쇼핑 원정이요, 홀가분한 나들이다. 바쁠 것이 없는 날, 대구역에 내려서 천천히 걸어서 중앙로에 가면 교보문고와 영풍서적이 있다. 거기서 죽치며 이것저것 뒤지며 허기진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포만감이 일면 꼭 읽어야할 거리 한두 권을 사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 기분이 흡족하다.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아니고?
꼭 사서 읽어봐야지.
중간부터 들었으니 작가가 누구라는 이야기는 미처 듣지 못했다. 허나, 제목이 그런 책이라면 검증과정이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사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제목을 기억 속에 저장해두고 택시에서 내렸다. 취기가 좀 있어서 그런지 집에 돌아와 메모를 한다는 걸 잊고 똥자루는 씻지도 않고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그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허나,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군대 동기, 종호의 전화를 받고 녀석이 하는 타이어가게에 갔다가 거기 좁아터진 사무실에서 담배를 물고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있는 최 교수를 만났다. 최 교수는 인근 전문대학에서 간호학과의 강의를 맡고 있는 후배인데 짬이 난 모양이다.
-야! 최 교수. 인터넷으로 나 책 한권만 사주라.
인터넷을 쇼핑몰을 보니 문득 책이 생각이 난 거였다.
-무슨 책이요?
똥자루는 지난밤 취중이었지만 기억의 갈피에 꽂아둔 책 제목을 말해주었다.
똥자루는 인터넷으로 무엇을 구매할 줄 모른다. 카드 인증을 받고 뭐가 그리 복잡한지. 똥자루답게 그렇게 머리 아픈 건 딱 질색이다. 하긴 충동구매가 강한 똥자루가 인터넷 구매를 알면 살림을 거들 낼 일인데 모르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최 교수는 책을 받을 주소를 묻더니 뚝딱, 금세 구매를 완료했다. 책값은 똥자루의 카드로 긁은 것이 아니라 점심을 산다는 조건으로 최 교수의 카드로 긁은 것이다.
책은 다음날 오후에 똥자루의 사무실로 정확히 배달되었다. 참 편리한 시스템이라고 똥자루는 생각했다. 그게 사오 일 전이었다. 표지와 작가의 프로필만 훑어보고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아껴두었다. 며칠 후에 미얀마 출장이 예정되어 있어 마음의 숙제처럼 여겨졌다.
헌데, 어제 비행기를 타고는 책이 손가방에 들어있었지만 똥자루는 정작 책은 꺼내지도 않고 영화를 보았다.
꾼이라는 제목의 새로운 영화였다. 똥자루는 제목을 보며 꾼이란 프로와 그 의미를 같이 한다고 생각하며 불쑥 떠오른 말이 있었다.
같은 선수끼리 왜 이래?
그 말이 영화를 보는 내내 똥자루의 입에 맴돌았다.
꾼.
꾼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어떤 일을 전문적, 혹은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한국영화인데 똥자루는 책을 꺼내지 않고 그 영화에 빠졌다. 지겨운 비행시간에 읽으려고 아껴두었던 책인데.
영화는 반전에 반전을 물고 삼각관계와 삼각관계가 중복으로 설정되어 있어 대충 한번 훑어보고는 자세한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여 다른 승객들이 자는 시간에 방금 본 영화를 재탕으로 보았다.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똥자루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희대의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꾼에게 배신을 당해 살해되었지만 자살로 위장된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사기꾼만을 골라서 사기를 치는 인물로 중복 설정을 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똥자루가 느낀 점은 범죄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제동이 되지 않는 중독성이 심한 행위라는 생각을 했다.
옛날에 할아버지께서 살아생전 귀하디귀한 당신의 손자 똥자루를 앉혀두고 늘 말씀 하셨다. 거짓말은 금세 새끼를 치고 금세 손자까지 본다고.
한 번 뱉은 거짓말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거짓말이 동원되고 그 거짓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또 다른 거짓말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결코 첫 번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누누이 강조하셨던 기억이 났다.
여섯 시간이 넘는 비행동안 승무원에게 똥자루는 커피를 세 번이나 부탁해서 마시면서 범죄 심리의 제동에 대해 생각했다. 노름꾼은 본전에 망하고 사기꾼은 마지막 한탕에 인생을 조진다고 했다. 자고로 인생은 어느 순간에 제동이 필요한 물건이라고, 그 제동을 적절한 시기에 거는 게 진정한 꾼이라고 똥자루는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똥자루는 가당찮게도 해외에 일을 벌여놓아 비행기를 자주 타는 편이지만 그날은 왠지 여승무원들이 풀이 죽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로 말을 걸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뒤졌다. 그 정도는 똥자루도 할 줄 안다. 똥자루가 타야할 항공사의 전무로 있는 재벌총수의 딸이 광고대행사의 직원과 제작된 광고를 보며 공방을 벌이다가 물 컵을 상대의 얼굴에 던져 ‘갑질논란’에 휘말려 연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 전에도 그 언니가 어이없는 ‘땅콩회항사건’으로 한국사회의 정서를 뒤집어놓고 법정에 서야만 했는데 그런 냉담한 여론에 잠잠할 정부가 아니다. 드디어 그룹차원에서 세무조사와 세관의 유착관계 조사에 검찰이 칼을 빼들었다는 글귀를 읽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른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아니고 유전유죄 무전무죄가 될 모양이다. 거리에 나앉은 거지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 컵을 던졌다면 미쳤다고 생각하고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인데 칼자루를 쥐고 있으며 경영에 참여하는 재벌 자녀이자 임원이 그런 짓을 했으니 ‘갑질논란’으로 여론이 깊숙이 기울어져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느니, ‘흙수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느니, 기자들 입장에서 독자, 특히 ‘흙수저’들로 하여금 구미가 당길만한 말은 다 실었다.
저런 싸가지하고는.......
같은 항공사의 비행기를 탈, 탑승을 기다리던 옆의 ‘흙수저’ 무리들도 때마침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룹 총수의 대국민 사과를 보고 딸들의 운운하는 걸 보니 예측컨대, 그 그룹이 해체될 날도 멀지 않았다. 대국민사과를 하더라도 여론이 이렇게 냉담하게 기울면 복원력을 상실한 셈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코 살아남지 못하고 종내에는 침몰할 것이라고 똥자루는 생각했다.
‘땅콩회항사건’이 있었을 적에는 비행기를 타면 여승무원에게 땅콩은 안 주느냐고 웃으며 농을 하는 승객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총수의 대국민사과가 발표되자 그 사건에 대해서 농담을 하는 승객은 없었다. 사태가 심각함으로 풀이 했으며 개미구멍 때문에 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승객에게는 습관적인 웃음을 물고 있었지만 승무원들의 표정은 굳어 있는 듯 보였었다. 똥자루 눈에만 그랬던가?
저녁으로 나오는 기내식을 먹고 와인과 함께 잠이 잘 오는 약을 먹었지만 이륙한 비행기가 착륙할 동안 똥자루는 한숨도 자지 않고 영화를 재탕으로 보았다. 본 영화를 까뒤집어 분석해보니 실망스럽게 권선징악, 복수의 성공, 한국영화의 보편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주제였다.
야심한 밤중에 도둑고양이처럼 숙소에 스며들어 씻고 누웠지만 똥자루는 바로 잠들지 못했다. 약기운이 이미 떨어졌고 잠을 잘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리라.
이 시간에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지?
똥자루는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머리의 불을 밝히고 담배를 찾아 물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문했다.
똥자루!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 ‘따까리’께서 지어준 별명인데 여태 동기들에게는 이름보다 똥자루로 불리고 있다. 똥을 담는 자루. 인간의 내장이 아니라 밥을 넣어 똥을 만드는 자루를 일컫는 말이다.
아마도 고등학교 이 학년 때였지 싶다.
책상위에 영어 교과서를 펴놓고 책상아래 무릎 위에 도시락을 열어 놓고 아메리카 본토발음으로 열강을 토하는 선생님 눈을 피해 젓가락질을 하다가 딱 눈이 마주쳤다. 동작 그만! 입안에 우물거리던 밥을 미처 삼키지 못하고 ‘따가리’의 억센 손아귀에 한 쪽 귀가 잡혀 질질 끌려서 교단 앞으로 나가 서야만 했다.
저는 똥자루입니다.
입안에 밥을 삼키지도 못하고 밥알의 파편이 튀도록 소리를 질렀다. 물론 ‘따까리’께서 시키는 대로 따라한 말이었다.
더 크게.
저는 똥만 만드는 똥자루입니다.
그날은 다른 체벌 없이 세 번 복창하는 걸로 끝났지만 똥자루라는 별명은 야무지게 달라붙었다. 그렇게 붙은 별명이 이렇게 오래 따라다닐 줄이야. 환갑 밑자리를 깔아놓은 요즘도 어쩌다 예기치 못한 동기를 만나면 똥자루! 이름은 기억에서 사라졌는지 똥자루를 먼저 외치는 동기들이 있다. 귀가 순해졌는지 똥자루 자신도 똥자루라는 별명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고 누가 그렇게 부르면 오히려 친근감으로 다가온다.
-헬로 코리안! 코피 아야다 실라? (커피가 맛있느냐?)
노천카페에서 서빙을 하는 새까맣고 깡마른 녀석이 이방인인 똥자루에게 말을 건다. 유난히 새까만 인도계인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등학교 사오학년쯤 되겠다. 똥자루가 후딱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가락에 꽂힌 담뱃재가 휘어져 탁자에 떨어졌다. 엉뚱한 데 정신이 팔렸던 모양이다. 자주 들르는 곳이라 안면이 있는데 거의 한 달간 못 보았으니 녀석은 내심 반가웠던 모양이다.
-미야지 아야다 시래. (굉장히 맛있다)
대답을 하고 생각하니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엇길로 샜다. 역시 생각에도 주관을 잡고 조향을 잘 해야 하는 모양이다. 녀석은 그 대답을 듣고 메롱, 혀를 내밀고는 주방 쪽으로 뛰어갔다. 주방이라고 해봐야 숯불에 물을 끓이고 있는 차양천막의 뒤쪽이었다.
-인마. 천천히 다녀라 먼지난다.
똥자루는 녀석에게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주방장인 꼬마의 아버지, 역시 때 묻은 메리야스만 입고 배꼽 밑에 난 털이 보이도록 메리야스를 걷어 올린 인도계가 놀라 쳐다본다. 똥자루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노천카페의 바닥은 시멘트가 아니라 맨바닥에다 모래를 깔아두었다. 먼지가 나도 두 녀석이 때 묻은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서빙을 한다.
간밤에는 괜히 소득 없이 잠을 설쳤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비록 자정이 넘었지만 엉뚱한 잡념에 사로잡혀 담배만 축내다가 새벽에 비몽사몽 가수면 상태로 두어 시간 자다가 일어나 푸석한 얼굴로 역시 푸석한 밥으로 똥자루를 채우고 다시 잤다.
두어 시간 넘게 잤나?
매니저인 캉카이가 출근해서야 일어났다. 캉카이에게 그동안의 작업 진행 상황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건축 하도급계약서 공증을 받아오라고 시내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로 보냈다. 차가 엄청 밀리는 곳이니 서둘러도 갔다가 오더라도 퇴근시간을 훌쩍 넘기지 싶다.
캉카이를 보내 놓고 가방에 든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를 꺼내 들었다.
기형도의 빈집 첫 소절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그 시에서 따온 표제인 모양이다. 책을 펴자,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라는 구절이 똥자루의 뇌리를 스쳤다. 기형도가 사랑을 잃고 작가가 기형도를 잃었음은 그 비애의 무게가 저울에 얹어도 가늠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작가는 서문에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했다고 했으니 논픽션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기형도와 작가의 대학생활 대해 주로 썼다. 하긴 기형도가 너무 짧게 살았기 때문에 그쪽을 더듬어야 소설거리가 생길 게 아닌가. 소설 속의 둘은 연세대학 출신이다. 읽으면서 미루어 짐작하건데 작가, 김태연은 수학적으로 타고난 천재였다. 똥자루는 그 책을 읽는 내내 여러 번의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똥자루는 저도 모르게 소설속의 둘과 자신을 자꾸 비교했다. 동갑이라서 그랬겠지만 동갑이라서 소설속의 사회적 배경과 연도순과 사투리, 속어는 이해가 비교적 쉬웠다.
고등학교 때 똥자루라는 별명이 붙도록 했으니 소설 속의 그런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지방의 따라지 대학도 보기 좋게 떨어졌다. 실망할 이유가 없었다. 예상했던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똥자루답게 진학은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겠다고 포클레인 조수로 따라나섰다. 발표를 보러 간 게 가당찮은 일이고 암팡진 허욕이었다. 고린내 나는 자존심 때문에 집에도 들르지 않고 아는 선배의 연줄을 통해 바로 현장으로 떠났다.
조건은 월급이 없이 밥만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었다. 그런 자리도 연줄이 없으면 거부당하던 시대였다. 그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기 전인 1978년 겨울이었다.
똥자루가 이렇게 자술하면 기형도나 동갑내기 작가, 김태연은 당시의 사회적 구조나 배경을 바탕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현장에 투입된 똥자루는 다음해 1월에 있었던 졸업식날조차도 현장에서 기름강아지가 되어 눈칫밥을 똥자루에 쑤셔 넣었다. 기술을 배우겠다고 온 주제에 두 달도 안 되어 졸업식이라고 다녀오겠다는 소리를 기사에게 할 만큼 간덩이가 크질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졸업장과 졸업앨범은 같은 동리에 사는 친구, 춘모가 받아서 집에 가져다 놓았다.
기형도와 술에 떡이 된 김태연이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나서 연세문학회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던 그 즈음 똥자루는 제법 조종 실력이 늘어서 기사가 식사를 하러 가면 교대를 해주는, 이른바 ‘식사교대’ 정도는 할 수가 있었다. 식사교대면 포클레인을 배우는데 있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포클레인을 배우는 데는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기름만 치고 닦는 ‘기름강아지’ 그 다음 단계는 ‘식사교대’ 그 다음 단계는 ‘맞교대’ 그 다음 단계는 조종 실력이 기사와 맞먹는 ‘종일교대’다. 종일 교대가 되면 기사는 난이도가 높은 작업만 잠깐하고 현장관리만 한다. 기형도와 작가가 유명대학 캠퍼스에서 시와 소설 그리고 수학을 토론하고 술을 마시며 짬짬이 시국토론을 하고 있을 즈음 똥자루는 ‘맞교대’에 들어갔다. 난이도가 높고 위험한 작업은 기사가 하고 보통 작업은 종일토록 똥자루가 해야만 했다. 그 정도 되면 기사월급의 반에 해당하면 월급이 나왔다.
기름강아지로 시작해서 육 개월 만에 첫 월급을 받았다. 6만원! 똥자루가 난생처음으로 받은 월급이다. 월급을 몇 번 받고 보니 회의가 들었다. 종일토록 포클레인 조종석 사각 유리상자 속에 갇혀 생각한 것은 아무래도 이 노가다 길은 똥자루의 길이 아니다, 라는 데 결론을 내렸다. 대학을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기초가 부실하지만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사범대에 가는 것이 아니라 국문학을 전공하고 교육학을 이수해서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지 시를 쓰고 소설을 읽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똥자루치고는 기특한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그만 두고 싶다고 나 몰라라,하고 기사 혼자 버려두고 현장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노가다에서 배은망덕이고 소문이 나고 혹여 일이 잘못되어 다시 포클레인을 하려면 자리를 구할 수가 없는 일이라는 걸 똥자루는 기름밥을 먹어서 알고 있었다. ‘기름강아지’를 하나 구해서 부지런히 가르쳐 ‘식사교대’가 될 때쯤 기사에게 대학을 가야겠다고 말을 했다. 그게 월급을 네 번 받은 9월이었다. 기사가 이틀을 고민하다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날 바로 보따리를 쌌다. 옷가방을 메고 현장을 빠져 나오는데 일찍 핀 코스모스가 길가에서 하늘거렸다. 예비고사가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똥자루는 옷가방을 메고 대구에서 따라지 대학을 다니는 친구 빈 자취방에 짐을 풀고 내 집처럼 혼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사전에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기습적인 기식이고 기숙이었다. 그곳을 아지트로 삼고 핵심만 정리하는 속성 단과학원을 다니며 밤에는 독서실에서 잘 요량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갔느냐?
결론부터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기형도와 작가, 김태연이 자주 다녔다는 뮤직 박스가 있고 DJ가 있는 그런 음악다방이 문제였다. 단과학원에 등록을 하고 독서실을 정하고 좀 다니다가 바람을 좀 쐬고 하라는 친구를 따라서 다방에 들락거리다가 거기서 만난 인근 공단에 다니는 처녀를 임신시킨 것이었다. 똥자루도 처음에는 몰랐다. 어느 날 특강을 듣는 학원으로 찾아온 처녀기 인근 다방에서 찻잔을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이고 고백했다. 청천벽력이 다름 아니었다. 예비고사를 그럭저럭 치고 본고사를 준비하는데 뭔가 된통 꼬인다고 생각했다.
유산시키면 간단하잖아.
그럴 것 같으면 왜 찾아왔겠어? 나 천주교 신자인 거 아시잖아,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야. 금기사항 맨 앞자리에 있는 항목이야.
네 마음대로 해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처녀의 머리를 툭 치고 다방을 먼저 빠져나왔지만 똥자루는 무서웠다. 임신한 처녀의 싸늘한 미소가 무서웠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두려웠다. 본고사고 나발이고 도망부터 가야했다. 책과 가방을 학원에 그대로 두고 서둘러 친구의 자취방으로 가서 친구가 없는 틈에 가방을 꾸렸다. 똥자루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의 꿈을 접어야 한다는 게 가슴 시렸다. 그러나 일은 저질러졌다.
포클레인 업계에 수소문하여 몇 달 전에 똥자루의 사수로 있던 기사를 찾았다. 구세주는 그곳뿐이었다. 어느 현장에 있다는 걸 알고 찾아가서 사실이 이렇게 되었으니 은신처를 마련해주십시오. 똥자루는 머리를 조아렸다. 똥자루가 타던 장비는 이미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사수의 숙소에서 이틀을 기다리니 같은 기종의 장비 조수가 군에 간다며 자리가 난다고해서 사수가 주선을 해주었다. 그 현장을 찾아가서 기사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차주를 만나고 현장사무실이 딸린 방에 짐을 풀었다.
그때부터 집과 친구들에게는 연락을 끊었다. 물론 임신을 시킨, 똥자루의 인생을 된통 꼬아놓은 그 처녀에게도 철저하게 연락두절이었다.
기형도와 작가가 휴교령이 떨어져 술집을 들락거릴 즈음 똥자루는 건설현장을 전전하며 열심히 땅을 팠고 관로를 매설했으며 농지의 객토와 평탄작업을 했다. 시골로 돌아다니니 똥자루는 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고 제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알고 싶지도 않았다. 조종기술과 정비기술이 날로 늘어 기사자리를 넘보았지만 결정적인 결함이 있었다. 중기조종사 자격증이 없다는 거였다. 당시에는 일 년에 한 번. 건설부령으로 중기조종사 시험이 있었는데 예비고사를 준비하느라 기회를 놓친 것이었다.
기형도도 그랬고 김태연도 그랬겠지만 똥자루도 마찬가지로 군대 때문에 고민을 했다. 주특기를 살려 중장비운전병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해에도 시골로 현장을 옮겨 다니느라고 정보가 없어서 자격시험을 놓친 것이다. 신검을 받는데 기술은 있지만 그럴싸한 주특기가 없었다.
기형도와 작가, 김태연이 리포트로 시험을 대신한다고 연락을 받았을 때 똥자루도 입영영장을 받았다. 숙련된 조수를 구하지 못해 입대 이틀 전까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일 년이 넘어서야 집에 오니 임신을 시킨 그 처녀가 난데없이 똥자루 고향집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할머니께서는 아기를 업고 계셨다. 묻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은 들에 나가고 없었던 모양이다.
집안 돌아가는 사태를 파악하고 바로 돌아서 나왔다. 그리곤 대구로 내려가 친구들과 어울려 이미 군에 간 친구의 안부를 들으며 술을 마시다가 대구에 있는 50사단으로 취중에 입대를 했다.
31개월 18일.
똥자루가 군 복무한 일자다. 대학을 가지 못했으므로 똥자루는 단축혜택을 단 하루도 받지 못하고 만기전역을 했다. 그게 1983년 10월이었다.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언제 만들었는지 아기가 둘이었다. 참 희한한 원리라고 똥자루는 생각했다. 예비군복을 벗는데 바지주머니에서 딸랑, 동전 소리가 나자 큰놈이 다가와 두 손을 포개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돈을 달라는 소리였고 돈을 받을 줄 아는 아이였다. 그걸 보고 똥자루는 잠시 감전되듯 굳었었다. 돈! 돈을 벌어야했다.
집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새벽에 대구로 나갔다.
수소문하여 중기 기사들을 찾아다니며 상황을 파악해보니 똥자루가 군에서 보낸 세월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군에 가기 전에는 일본장비 미쯔비시나 히다찌가 주종이었는데 대우중공업에서 생산된 장비가 판을 치고 있었다. 레버를 다시 배워 손에 익혀야 하는 것이다. 조수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노가다 일머리를 알고 있었고 포클레인의 구조를 알고 있었으므로 사흘만하면 맞교대는 가능하다고 큰소리를 치고 그날 일자리를 구했다. 기형도가 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되어 통보를 받을 즈음 똥자루는 간신히 면허증을 손에 쥐고 비로소 기사자리를 꿰차고 조수를 거느릴 수가 있었다.
-왜 이래? 미야지 나리래. (너무 시끄러워.) 기형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싸가지들 없이.......
똥자루는 주위를 돌아보며 중얼거린다. 노천카페가 상당히 시끄러워졌다.
돌아보니 한쪽에서 탁자 위에 장기판 비슷한 걸 놓고 대나무 조각으로 만든 쾌를 쥐고 앉아 화투놀음 비슷한 내기를 하고 있는 무리가 있었다. 장기는 아니요 바둑은 더더욱 아니고 화투와 장기를 믹스해놓는 놀음인 것 같다. 꼬깃꼬깃 접은 돈을 두 패에 나누어 건다. 모두들 어중간한 나이다. 일하기도 놀기에도. 똥자루가 하도 여러 번 와서 다 안면이 있는 골목 사람들이다. 한 쪽이 이기자 와 함성을 지르고 진 쪽에서도 우 함성을 지른다. 어느 틈에 하나둘 몰려왔는지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다. 앉은뱅이 플라스틱의자가 모자라는지 서빙을 하는 꼬마 녀석이 메롱, 혀를 내밀며 똥자루가 앉은 탁자 앞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를 걷어간다.
-야! 이 자식아, 아직도 커피가 백 원어치 넘게 남았다. 안 간다. 그리고 제발 좀 뛰지 마라. 먼지난다 인마!
똥자루는 의자를 걷어가는 녀석에게 중얼거린다.
뭘 생각하다 말았지. 그렇지. 기형도가 시를 쓰고 작가가 소설을 쓸 적에 똥자루는 중기 구조를 생각하고 작업의 효율성을 비교하며 일을 했다. 기형도가 중앙일보 기자로 입사해서 받은 초봉이 55만원이라는 ‘거액’이라고 소설 속에 기술되어 있었는데 똥자루도 당시에 그 정도를 받았다. 똥자루가 기형도보다 앞선 점이 있다면 그해에 초등학교 학부형이 되었다 점이다. 연결고리가 없는 것 같지만 세월을 되짚어 회상하니 공통점이 있다고 똥자루는 생각한다. 그뿐이 아니다. 기형도가 파고다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질 때쯤 똥자루도 포클레인 기사를 그만 두었다.
중기업계를 완전히 떠났느냐하면 아니다. 포클레인 차주로 둔갑을 했다. 기형도도 한자리 오르고 똥자루도 한자리 올랐다. 비록 할부를 좀 끊었지만 차주가 되었다. 지금 와서 비교하니 그런 것인데 똥자루는 기형도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똥자루가 기형도를 만난 것은 그가 떠나고 유고시집이 나오고부터였다.
입 속의 검은 잎,
똥자루는 그 시집을 나달나달하도록 읽었다.
언어에 극심한 갈증을 느끼던 참이었는데 기형도의 시는 똥자루에게 사탕나무의 줄기였다. 씹을수록 달콤한 즙이 나와 목을 축여주었다. 초등학교 때, 의미도 모르는 ‘님의 침묵’과 박목월의 ‘나그네’를 어디서 보고,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지루한 등하교 시간, 신작로에서 달달 외우며 나불거리고 다녔는데 그보다 더한 감칠맛이었다.
구미라는 공단도시.
똥자루의 고향, 문학 불모지라고 불리는 땅에 문학의 싹을 틔운 단체가 있다. 수요문학회. 자생단체인데 공단 근로자중에서 오다가다 만난,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끼리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모임을 만들었다. 수요일 저녁에 만난다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정년을 하고 대구에 살지만 당시에 몇몇 시인과 평론가가 구미에서 학교와 공단본부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 분들을 모셔 자작시의 평을 요구하고 꼭 읽어야 할 좋은 시를 필사하면서 기형도를 만난 것이다.
그 이듬해에 문학 불모지라는 오명을 없애자고 토의하고 궁리한 끝에 강변시인학교를 개최했다. 일박 이일로 한참 휴가철인 칠월 말일과 팔월 일일에 걸친 것이었다. 구미공단 부근의 낙동강 중간토막, 모래밭의 고수부지 버드나무숲에 모였는데 경향각지에서 초청시인과 문청 삼백 여명이 모이는 쾌거를 이루었다. 시 낭송과 심야백일장, 그리고 초청시인의 강의를 들었는데, 중요한 것은 시 낭송을 열댓 명이 했는데 거기서 기형도의 시가 세 편이나 낭송되었다. 그의 시를 낭송으로 들으며 똥자루는 기형도가 죽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이만 멈추었을 뿐, 영원히 불특정 다수의 입에 살아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기형도가 나이를 멈추지 않고 살았다면 한국 시단이 장족의 발전을 했을 게고 이상(李箱)이 더 살았더라면 한국 소설계의 판도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똥자루는 지금도 지울 수가 없다. 한국문단에서 볼 때 실로 아까운 문재들이다.
헌데, 오늘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를 읽고 보니 기형도에 대해서 똥자루가 모르던 사실들을 알 수가 있었다. 기형도에게 누나가 있었었다는 사실. 그 누나 기순도가 여고시절 성폭행 당하며 살해되었다는 사실. 그로 인해 기형도가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망했다는, 이렇게 중대하고 기가 막힌 이야기는 사실을 근거로 재구성한다는 작가, 김태연이 임의대로 넣은 픽션은 결코 아니리라. 그렇다면 기형도의 등단작 안개에 나오는, 안개 속에서 겁탈당한 여직공과 누이에 대한 기억은 무슨 관계가 있었던 게 아닐는지.
거, 심각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책을 읽으면서 똥자루가 가장 열패감을 느낀 건 수학이다. 작가, 김태연은 소설에서 수학이 연구의 대상이며 시나 소설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똥자루는 그 동안 수학을 모독했다. 수학은 시험 치기 위해서 공부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수학을 전공하는 자가 아니면 그저 물건사고 거스름돈 잘 챙겨 받을 정도면 써먹을 일이 없는 과목이라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수학에 관한한 똥자루의 고정관념이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했다. 수학에 김태연이 말한 그런 기막힌 문학적 공간이 존재한다니.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은데 언감생심이다.
기형도와 김태연, 같은 시대를 살아온 똥자루가 생각하기에는 둘은 천재다. 똥자루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수학의 공간으로 들어가 그런 현학적인 언어는 구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천재들만 들어갈 수 있는 미로 같은 출입구가 있는 공간일 게다.
우와!
오호,
노천카페의 함성이 더 커졌다. 돌아보니 노름판이 도를 넘었다. 앉아서 책을 읽은 후감을 생각하고 기형도를 사유할 분위기가 아니다. 이 난장판에서 기형도를 생각하고 작가를 더듬는다는 건 그들에 대한 결례다.
-이렇게 일하기 좋은날 놀기만 해서 뭐 처먹고 사노?
그 말을 하다가 똥자루는 한 손으로 입을 막는다. 말 잘못했다. 한국과는 다르다. 놀아도 굶어죽을 일이 없는 나라다.
한국은 70%가 산인데 반해 이 나라는 70%가 들판이라 지평선이 보이도록 들이 드넓고 거기다 삼모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닭은 봄이 아니더라도 사시사철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수시로 생산한다. 계란프라이에 보얀 쌀밥을 예로부터 사시사철 눈치 보지 않고 똥자루에 쑤셔 넣었던 나라다. 심지어 국수까지도 쌀로 해서 처먹는다. 누룽지를 밥 쓰레기라고 부르면서 처먹지 않고 개나 돼지에만 주는 나라.
배가 고프던 시절 이런 나라가 있다고 짐작이나 했을까?
아무리 놀아도 굶어죽거나 얼어 죽을 일이 없는 나라다. 기형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이 나라 인간들은 안개의 주식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포만감의 주식을 조금씩 할당받은 족속들이다. 조선의 어느 정승마누라가 하도 배가 고파 잠자리에 들었다가 벽에 발라놓은 흙을 갉아먹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승마누라가 그 정도였다면 민초들은 어땠을까? 초근목피로 연명했던 조선과는 확연히 다른 나라다. 그렇듯이 순수한 원초의 시적 감수성을 지닌 기형도와 수학 천재 김태연, 역시 똥자루와 사유의 지평과 뇌의 구조가 다르다.
사유의 지평? 그렇게 중요한 건 이 난장판을 떠나 숙소에 가서 조용히 책을 다시 읽으며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똥자루는 난장판이 되어버린 노천카페에서 남은 커피를 똥자루 아가리에 털어 넣고 일어선다. 똥자루가 일어나자 안쪽 주방에 있던 주방장 인도계가 손을 번쩍 들어 보인다. 잘 가라는 말일 터이다. 인도계는 흘러내리는 때 묻은 메리야스를 다시 가슴까지 걷어 올린다. 젖꼭지 보일라.
-아름답지?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답지 아니한가. 똥자루가 일어서자 꼬마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를 냉큼 걷어간다.
-겁나게 아름답지?
건너편 주방을 향해 다시 묻자 인도계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다시 손을 번쩍 들며 웃어 보인다. 노천카페를 나서는데 석양 쪽으로 야자수너머로 숙소 건물이 보인다. 똥자루가 쏘아올린 건물인데 마치 시 속의 빈집인 거 같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똥자루는 빈집에서 생각나는 구절만 중얼거리며 골목으로 들어선다.
그래!
기형도를 잃고 너는 쓰고, 나는 회상하네.
숙소 앞에 다다라 큰 소리로 야자수 너머 석양을 향해 똥자루는 손나팔을 만들어 외친다. 마침 지나가는 버마족 아줌마가 저게 뭔 지랄이야? 하는 눈초리로 똥자루 아래위를 훑어보고는 지나간다.
-니들이 기형도를 알어?
지나간 버마족 밍클리(아줌마)의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린다. 밍클리가 힐끗 돌아본다.
배춧잎 같은 발자국 소리를 내며 이번에 한국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기형도의 시집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달나달해진 시집은 서재나 사무실 책장 어디엔가 꽂혀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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