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가 감나무에 감이 무겁게 열리자 옆집에서 곶감을 좀 보내 줄테니 감을 따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빈 닭장에 닭을 키우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생전에 어른들이 하신 일이 참 많습니다. 농기구를 관리하고 곶감을 만들고 닭을 키우고 하던 농사를 짓고. 그 모든 일들이 눈앞에 선합니다. 시골에 시골집들이 많이 허물어지고, 어떤 곳에는 뱀들이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빈 집에서 안부전화가 왔습니다. 역설이죠. 빈 집에서 누가 전화를 하겠습니까? 그래도 시인은 그런 것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그러라고 했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젊은 노인'은 없는 말이죠. 그런 표현은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거죠.
전기도 수도도 끊어 놓은 그 집에 물이 들어오고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밝은 집이 된 빈집
이제 빈 집은 가장 핫한 집이 되었네요. 사람들이 오가고 물길이 들어오고 말이죠. 어른들이 계신다면 더 좋겠지만, 어른들은 돌아가셨어도 여전히 그 영향력이 온 마을에 뻗칩니다.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 멀리 있는 아들 내외에게 물어 온다
떼 내지 않은 나무 문패는 옛 주인의 이름으로 살아 있어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라는 표현도 재미있습니다. '빈집'의 주인은 생전의 어른들이죠. 아들 내외는 고향을 떠났고요. 하지만 문패는 그대로 달려있어, 이 곳에 누가 거처했는지 알려주는군요. 담담한 심정으로 적어내려간 것 같습니다.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라는 구절도 구체적입니다. 하늘의 번지수는 하늘에 속한 것인데 그걸 동사무소에 가서 물어보겠다는군요. 시인의 발상이 기가 막힙니다.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라는 말이 제목이기도 합니다. 위의 모든 연에서 '그러라고 했다'라고 했으나 마지막 연에서는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라며 여운을 남깁니다. 이런 것이 시가 아닐까요? 좋은 시는 마음을 흐뭇하게 합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