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96호
호주 시드니에서 온 백 서른 일곱 번 째 편지
1992년 10월 28일을 기억하십니까? (1)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나는 호주 텔레비전을 보다 한국 소식을 전해 주는 뉴스 프로그램에 시선을 고정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내가 본 한국뉴스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데모하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엄청난 사고가 발생해 사람들이 오열하는 그러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본 장면은 남자들은 양복을, 여자들은 한복을 입고 지하철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1992년 10월 28일 휴거’라는 띠가 둘러져 있었고 그들의 양 손에는 전도지가 가득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의 입술은 10월 28일 자정에 휴거가 있다고 다급하게 외치느라 바빴습니다. 호주 방송의 앵커는 그들은 다미선교회 회원들이며 또한 한국전역은 ‘10월 28일 자정 휴거설’에 엄청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하면서 호주 시드니에도 다미선교회 지부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1992년, 한국에는 정말 휴거 광풍이 불어 닥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당시에 시드니에 있어 잘 몰랐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심각성이 도를 훨씬 뛰어 넘어 사회적인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종말론에 심취해 몇 개월째 행방불명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휴거 날에 대비해 수십 명씩 집단생활을 하거나 다니던 회사에 휴직 계를 내고 선교활동을 하는 사람 등 교사와 공무원, 대기업 간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휴거 소동에 휘말려 있다고 했습니다.
휴거 되면 재산이 아무 소용이 없으니 전 재산을 선교회에 헌금하고 아예 교회 안으로 들어와 생활하는 가정도 있었으며 공부해야 할 학생들은 학교에 갈 필요가 없으니 학교 대신 교회로 와 전도지를 들고 거리로 나가 휴거를 외쳐대고 있다고 했습니다.
휴거설의 진원지는 개신교 목사 출신인 이장림이라는 사람이 1988년 8월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에 설립한 다미선교회였습니다. 이장림은 11년간 영문 성경을 번역하다 1987년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책을 출간해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처음부터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늘 문이 열린다’, ‘경고의 나팔’이라는 후속 저서를 통하여 암시적이던 것을 구체화시켜 나가다가 ‘1992년의 열풍’이라는 책에서 이를 못 박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는 1992년 10월 10일이 휴거일 이었으나 나중에는 10월 28일로 고착되었습니다. '다미'라는 말은 '다가올 미래'의 줄임말이며 다미선교회 지부를 도시마다 설립하는가 하면 해외에까지 그 세력을 넓혀 갖가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드디어 1992년 10월 28일. 그렇게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들이 말하는 D-Day 인 저녁 10시쯤 (한국 시각으로는 저녁 8시) 나는 다미선교회 호주지부를 찾아갔습니다. 나는 잘못된 ‘시한부 종말론’에 현혹되어 가정을 버리고 그곳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자녀들까지 데리고 그곳에 간 사람들에게 바른 신앙을 전해 주려고 그곳을 찾아 갔습니다. 내가 찾아 간 다미선교회는 2층 건물 중 위층에 세 들어 있었고 그곳의 창문은 커튼으로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엉터리 같은 시한부 종말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많은 호주인 들이 구경 와 있었습니다.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취재하기 위해 몰려 왔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찰력이 동원되었으며 또한 휴거가 있지 않게 되면 그곳에 모인 광신도들이 집단 자살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 앰블런스와 소방차까지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기도를 한 후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의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잠시 후 안에 있던 남자 분이 나에게 다미선교회에서 발급한 신분증이 있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없다고 말하자 다미선교회 회원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만 해주며 굳게 닫은 문을 열어 줄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밖에서 그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분이 나에게 와서 자신은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며 자신도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못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동생이 그만 다미 선교회에 빠졌다는 말을 듣고 동생을 만나기 위해 오늘 호주로 왔는데 들어가지도 못하게 한다며 발만 동동 굴렸습니다. 어느 분은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이 곳 안에 있는데 아이들만이라도 데리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분명 휴거가 없을 텐데 그렇게 되면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어떠한 집단행동을 하지 않겠냐고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그 분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빨리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무사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시계만 자꾸 들여 다 보며 애를 태웠습니다.
점점 시간이 더 지나가자 사람들이 400명가량으로 불어났습니다. 그 중에는 ‘거짓말쟁이’ ‘틀린 예언’ ‘악마의 교회’라고 쓴 피켓을 들고 찬송하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또한 시한부 종말론의 그릇된 것을 전도지로 만들어 와 그곳에 구경 온 사람들에게 전하며 바른 신앙을 전하려는 호주 그리스도인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인 그리스도인은 몇 명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쪽에서는 머리에 666이라는 글이 쓰인 모자를 쓴 수녀 복을 입은 남자, 머리를 빡빡 깎거나 이상한 모양과 염색을 한 사람, 긴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등 여러 모양의 형태를 한 뉴에이지 운동 추종자들이 나타나 큰 소리로 찬송하는 그룹을 향하여 욕을 하며 다미 선교회가 있는 2층을 향하여 손가락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시계는 새벽 2시, 한국 시각으로는 정확히 그들이 말하는 시간인 1992년 10월 28일 밤 12시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지면서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카운트다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0, 9. 8, 7, 6, 5, 4, 3, 2, 1.......
(다음 주 칼럼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호주에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 호주에서 자녀를 공부시키려는 부모님, 워킹홀리데이로 오는 젊은이들은 호주에 오기 전 미리 연락이 되어지면 호주에서의 정보, 공항 픽업, 숙소, 일자리 등과 함께 호주에서의 신앙생활과 정착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주님의 일을 이루려 합니다. 또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상담을 통해 젊은이들의 신앙과 인생에 안내자가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세계를 이끌어 나갈 미래의 주역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호주로 오시는 분들은 메일(hanachurchmoksa@hanmail.net)이나 전화(0414307660)로 미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함께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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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주신 지체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꼭 기억하여 미혹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고 조심하겠습니다.
그일이 있기 몇년전에 저는 친구들을 빼앗겼습니다. 같은학교 친구들 다섯명과 시작한 기도모임이 30명 50명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다른 학교학생들 그들의 어머님들 정말 뜨거운 기도 모임이었습니다. 1988년 이맘때 다미선교회에서 나온책이 유행을하더니 이상하게 같은 환상을보고, 같은 예언을 하고 다미선교에 직접연락을 해서 그곳 대표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저희집이 지방에 있어서 겨울방학을 보내고 오니 기도모임은 다미선교회지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네요...이곳 진주에서도 문화 예술회관을 빌려 집회를 했었는데..저도 잠깐 갔었고...부끄러운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