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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제 32장 요단 동편을 요구한 두 지파
요단 동편에 거주하던 시혼과 바산, 그리고 미디안을 섬멸하고 그들의 영토를 정복함으로써 가나안 진입의 발판을 구축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내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스라엘 내에는 가나안 땅에 건설될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고 요단 동편에 안주하려는 극단의 이기주의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기주의와 무사 안일주의는 공동체의 단합과 번영된 미래를 위협하는 공동의 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거룩한 계획을 놓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살펴 볼 때 요단강 동편에 거주했던 두 지파와 반 지파는 우상 숭배로 인하여 앗수르의 지배를 받았으며 결국 먼 지방으로 흩어져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된다.
*대상5:25-26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멸하신 그 땅 백성의 신들을 간음하듯 섬긴지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시매 곧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사로잡아 할라와 하볼과 하라와 고산 강가에 옮긴지라 그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으니라.
성경은 이러한 불신과 이기주의와 탐욕에 사로잡힌 자들의 최후가 얼마나 허무하고 비극적인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실로 인생이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세상에 미련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따르는 것뿐이다.
1. 요단 동편을 요구한 갓과 르우벤 지파 (32:1-5절)
불과 12,000명의 소수 인원으로 미디안 대군을 무찌르고 수많은 전리품을 노획했던 이스라엘 군대는 참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 내부에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용감하기로 유명한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의 사람들이 가나안 행진을 포기한 채 이미 정복한 요단 강 동편의 땅에 안주하기를 요청했던 것이다. 그들의 요구는 가축을 많이 소유했기 때문에 비옥한 목초지인 요단 동편의 야셀과 길르앗 땅이 적격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는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형제들의 희생은 생각하지 않는 극히 소아적이요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을 그르치는 불신앙적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자기들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지파들의 분열을 조장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는 먼저 자기 부인과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우선하며 특히 절대 헌신을 할 수 있는 자라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예수를 따라가기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다.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르우벤은 야곱의 장남이며 갓은 레아의 몸종 살바의 첫 아들이다. 이 두 지파는 시므온 지파와 함께 같은 진기에 속한 지파였다. 이들은 특별히 용맹하였고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승전함으로써 많은 전리품 즉 심히 많은 가축 떼를 소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좋은 목초지가 절대로 필요했다. 이러한 점은 세상의 상식적으로 볼 때 부유하고 넉넉하여 남의 부러움을 사게 되지만 실상은 그 가축 떼를 돌보는 것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요단 동편에 있는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은 야르묵 강, 얍복 강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목축에 가장 적합한 땅이다. 이곳은 고대로부터 질 좋은 소와 양들로 유명하며 특히 곡창지대로 유명하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이곳을 바라보았을 때 에덴동산 같기도 하고 애굽의 고센 땅 같기도 하여 삼촌을 떠나 이곳을 거주지로 선택하였다. 이와 같이 두 지파 사람들은 물질적 욕심이 가득 찬 눈으로 이곳을 응시했으며 민족적 사명과 공평을 잃어버린 어두운 눈으로 이곳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 당시 다른 지파들도 이곳을 무시했을 리가 없다. 다만 기름진 땅에 대한 마음의 소욕을 버리고 약속의 땅으로 눈을 돌림으로써 사사로운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저들은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도자를 찾아가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그 땅을 소유하도록 산업으로 달라고 청원하였다. 즉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요단 동편 땅을 그들의 소유 즉 기업으로 취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소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신 기업으로 이 기업의 땅은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고유한 땅이라는 뜻이었다. 저들은 가장 좋은 땅을 자신들의 기업으로 얻게 하고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해달라고 당돌한 요구를 했던 것이다.
이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그들은 요단 서편의 땅을 얻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약속의 땅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넓고 기름진 땅에서 육신의 안일을 도모하겠다는 불신앙적 태도인 것이다.
둘째, 험난한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이 땅에서 안주하겠다는 것이다. 가나안 서편의 땅은 남은 지파들이 전쟁하여 차지하게 하고 자신들은 이 전쟁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단강 서편 지역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정하셨을지라도 요단 동편 지역 역시 차지하게 하신 것은 이 땅을 모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려고 계획하신 것이었다. 그렇다면 가나안 전 지역을 정복한 후에 각자 제비를 뽑아서 해당되는 지파가 이 땅을 차지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르우벤과 갓 지파 사람들은 너무나 세속적이고 탐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과 형제들 앞에 죄를 짓고 말았다. 실로 탐심과 욕심을 언제나 죄를 낳고 또 멸망으로 이끌어 간다.
2. 두 지파를 향한 모세의 책망 (32:6-15절)
모세는 이러한 두 지파 사람들에게 호된 책망을 내린다. 그 이유는 저들의 생각과 요구는 다른 지파를 낙심시키는 일이며, 가나안 정복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38년 전 가데스바네아 사건과 흡사한 반역 사건이었다.
이 두 지파가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며 이스라엘의 분열과 분쟁을 조장하여 제 2의 반역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모세는 저들이 아예 정착하여 안주하려고 한다며 책망조로 물었다. 과연 그러하냐는 뜻이다. 그렇게 하는 일은 자기 형제들을 낙심하게 하는 일로써 지금까지 수고한 모든 일들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낙심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10명의 정탐꾼들의 보고처럼 백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여 하나님께 불평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한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모세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회고하고 상기시키면서 두 지파의 요구가 부당함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실행함에 있어 낙심과 두려움은 절대 금물이다. 그것은 곧 패배와 멸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에게는 오직 온전한 신뢰와 담대함만이 있을 뿐이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취하기를 거부하다가 여호와께 징계를 받아 광야에서 다 죽어간 처참한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두 지파의 행동의 재고를 촉구한 것이다.
만약 이들이 그 요구를 철회하지 않고 탐욕을 부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 백성들을 광야에 버리실 것이며 그리하면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광야에서 다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모세는 죄악이 지닌 악순환의 고리와 지속적 파급 효과의 신속성을 갈파하면서 조상들의 범죄가 그대로 답습될 수 있음을 주지시키고 그들의 요구 속에 담긴 패역함을 깨우쳐 주었던 것이다.
3. 성전에 참여할 것을 약속한 두 지파 (32:16-32절)
모세의 책망을 들은 두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지 않겠다던 자신들의 요구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가나안 정복 전쟁에 계속해서 참여할 것과 형제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이들의 약속에 대해 모세는 조건부 수락을 하였다. 저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깊이 통감하고 개선의 의지를 세 번씩이나 보였기 때문이다. 설령 순간적인 실수로 잘못을 범했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 백성의 바른 자세이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지도자의 말을 수용하고 고치는 자세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인격인 것이다.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으로 인도하기까지’
두 지파 사람들은 형제들과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기 이전에 할 일에 대해 모세에게 두 가지 사항을 건의하였다. 첫째,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짓겠다는 것이다. 둘째 가족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보수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저들이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에 가족들을 안전히 보호하겠다는 조치였다.
그리고 난 후에 사사로운 일에 유념하지 않고 곧장 전투에 참전하겠다는 것이며 나아가 이 두 지파가 이스라엘 진영의 선두에 서서 적군과 용감히 맞서 싸우겠다는 뜻이다. 후일 이러한 저들의 맹세는 요단을 건널 때,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언제나 선봉에 서서 전투를 수행함으로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또한 정복 전쟁뿐만 아니라 그 땅을 분배하여 정착할 때까지, 안정을 확보할 때까지 타지파와 함께 가나안 땅에 머물 것을 약속한 것이다. 나아가 비록 저들이 피 흘려 쟁취한 요단 서편의 땅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대한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지금 요단 동편의 땅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여호와 앞에서’
‘리프네 여호와’ 이 말은 20-22절 사이에 여섯 번이나 나올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헬라어로 ‘코람 데오’라는 이 말은 두 지파와 모세와의 약속이, 그 실행의 여부가 모두 하나님 앞에 놓여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여호와 앞에서’ 이루어진 이 약속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는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위반 시에는 공평한 증인이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과 징벌을 감수해야 할 성질이었다. 그러므로 두 지파가 약속을 지킨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지만 약속을 불이행한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 앞에서 가서 싸우라.’ ‘여호와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라.’ ‘여호와 앞에 복종하게 하라.’ ‘여호와 앞에서 무죄하여 돌아오라.’ ‘여호와 앞에서 너희 소유가 되리라.’ 만일 이같이 아니하면 범죄가 되고 그 죄가 반드시 너희를 찾아낼 것이라고 하였다.
모세의 이 같은 준엄한 요구에 저들은 자신들의 대답이 핑계가 아님을 확인하고 맹세하였으며 후일에 다른 지파보다 먼저 요단 앞에 도착하여 확실히 입증해 보였다.
*수4;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모세는 다시 한 번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이 사실을 당부하는데 만약 두 지파가 약속을 불이행하여 정복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요단 동편의 땅을 주지 말고 서편의 땅을 기업으로 주어 민족적 분열을 방지하라고 명령하였다.
두 지파는 약속을 다 지키고 무사히 요단 동편의 땅을 분배 받았지만 이 기름진 땅은 그 지리적 유리한 조건 때문에 숱한 이방의 침략을 받게 되었고 그들 후손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이 주위 이방 세력들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4.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의 영토 (32:33-42절)
모세는 두 지파 반에게 요단 동편의 땅을 분깃으로 허락하였다. 요단 서편의 땅은 각 지파가 제비뽑기를 통해 분배 받은데 반해 동편의 땅은 모세가 직접 할당해 줌으로써 구체적인 지역을 기업으로 지정받았다.
가나안 전쟁이 끝나고 이들 지파는 동편으로 돌아와 평안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사사 시대에 이르러 그곳의 군사, 경제적 가치 때문에 아모리 족속의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그 후 이곳은 주변 국가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이스라엘의 왕정 정치의 초기 즉 사울과 다윗의 시대에는 정치, 군사의 주요 무대가 되기도 했다.
결국 이 지파들은 이방의 침략을 받아 곤고한 나날을 보냈고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선택했던 곳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의 땅이 될 수 없었다.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여기 두 지파 외에 므낫세 반 지파가 들어간 것은 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길르앗 땅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요단강을 서쪽 경계로 하여 북쪽 헤르몬 산과 남쪽 사해의 중간에 이르는 땅을 기업으로 받았는데 위쪽은 므낫세 반 지파가, 중간은 갓 지파가, 남쪽은 르우벤 지파가 각각 받았다.
물론 이러한 분할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돌아온 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므낫세 반 지파가 요단강 동서로 분할된 이유는 광야 40년 기간 동안 가장 큰 폭으로 인구가 증가된 때문이었을 것이다.
34-36절은 갓 지파의 성읍들이 열거 되었고, 37-38절은 르우벤 지파의 성읍이 열거되어 있다.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자손은’
‘마길의 자손’이란 그 가족 전체라기보다는 그들 중의 일부를 가리킨다. 이들은 얍복강 북쪽의 길르앗을 중심한 바산 지역을 점령하였다. 마길의 자손 중 7가족만이 정복한 길르앗 땅에 기거하였고 나머지 6가족은 요단 서편의 땅을 분배받았다.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엄밀히 따지면 므낫세의 아들이 아니라 그 후손을 가리킨다. 므낫세의 아들 마길에게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유다 지파의 헤스론과 결혼하여 스굽을 얻었고 스굽이 낳은 아들이 야일이다.
*대상2:21-24 그 후에 헤스론이 육십 세에 길르앗의 아버지 마길의 딸에게 장가들어 동침하였더니 그가 스굽을 헤스론에게 낳아 주었으며 스굽은 야일을 낳았고 야일은 길르앗 땅에서 스물세 성읍을 가졌더니..
야일은 외가쪽으로 므낫세의 현손이 된다. 마길은 엄청난 재산을 딸에게 상속하였고 이 재산이 그 자손에게 상속된 것이다. 야일은 자신이 소유한 성읍의 이름을 ‘하봇 야일’이라 명하였는데 ‘야일의 성읍들’이라는 말이다.
또한 마길의 자손 노바는 그낫과 그 마을들을 빼앗아 자기 이름을 따라서 노바라 불렀다. 노바는 주변 촌락에 영향을 미치는 성읍을 점령하여 자기 이름으로 불렀으나 그의 위세가 야일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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