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산 둘레길
일월 하순 넷째 주 금요일이었다. 오전엔 밀린 원고를 정리하고 점심 식후 길을 나섰다. 동정동에서 천주암으로 올랐다. 예전엔 암자 아래 비탈진 언덕에 약초동동주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근래 그 자리 주꾸미요리 전문점이 들어섰다. 사람들 입소문에 맛집으로 알려졌는지 시내에서 차를 몰아온 손님들이 북적댔다. 텃밭에 소나무 분재를 가꾸는 사람이 전정을 하고 있었다.
암자로 오르니 비구승이 요사 채를 나와 법당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나는 계단 아래서 아름드리 고목 사이로 법당과 종각을 치켜보았다. 뜰에 오르니 따뜻한 오후 햇살에 법당 문짝이 활짝 열어젖혀 있어 내부의 불상과 단청이 훤히 드러났다. 나는 마당에서 두 손을 잠시 모으고 등산로를 찾아 들었다. 약수터가 있는 고개로 오르지 않고 관음사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경사가 급한 비탈을 오르내리기엔 왼쪽 무릎이 시큰거려 조심이 된다. 그래서 최근 새로 뚫린 천주산 둘레길을 걸을 요량이다. 관음사 뒤편에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소계동 사람들이 천주산으로 오를 때 다니는 길이었다. 내가 사는 생활권과 달라 그간 한 번도 다녀보지 않은 길이었다. 비가 오질 않아 산길엔 먼지가 폴폴 일고 가랑잎은 오가는 사람들 신발에 부서졌다.
숲과 가까운 차도에선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쯤 나아가다 산기슭에서 텃밭을 일구는 사내를 만나 등산로에 대해 물어보았다. 위쪽으로 얼마간 오르면 옆으로 뚫린 길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사내가 일러준 대로 수직으로 오르니 커다란 바위 틈새 샘터가 있었다. 무속인이 촛불을 켜 놓고 굿을 하는 신당인 듯하였다. 신령스런 바위를 지나 둘레길을 만났다.
천주산 둘레길이 뚫린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듯하였다. 그새 여러 사람들이 지나다녀 길바닥이 반질반질했다. 경사가 급한 천주산의 허리로 길을 내느라 인부들이 고생을 제법 하였지 싶었다. 계곡을 건널 때는 참나무를 잘라 다리를 놓은 데도 있었다. 돌너들을 지나야하는 곳도 있었다. 간간이 나뭇가지 사이로 시내 방향을 바라보니 창원시가지 전경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평일이라 산행객이 드물게 지났다. 산중턱 어디쯤 돌너들 틈새로 밭을 일구어 놓은 데도 있었다. 절로 자란 두릅을 임자가 관리하는 사유림도 나왔다. 중간에 경상고등학교와 주민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소계동으로 내려서지 않고 산모롱이를 여러 개 돌고 돌아 앞으로 나아갔다. 인성고개로 오르는 갈림길 못 미쳐 시내를 바라보니 창원대로와 일직선이었다.
인성고개는 천주산 정상으로 가고 칠원 산정마을로 넘는 길인 듯했다. 나는 고개로 오르지 않고 둘레길을 계속 걸었다. 응달 북사면엔 정초 내린 눈이 녹지 않은 데도 있었다. 경사가 워낙 가팔라 산허리 둘레길을 걷는 데도 어지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약간의 고소공포가 있어 낭떠러지에 서거나 출렁다리를 건널 때면 오금이 저려오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경우가 있다.
비탈진 산허리를 지나니 펑퍼짐한 평지가 나왔다. 편백나무 숲에는 쉼터와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소계동과 합성동에서 올라온 여러 사람들이 삼림욕을 즐기고 운동을 했다. 구암초등학교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3·15민주묘지로 향해 나아갔다. 약수터에는 샘물을 길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산중 임간 헬스장에선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체력을 단련하고 있었다.
공원으로 단장된 3·15민주묘지 주차장엔 산행과 산책을 위해 타고 온 사람들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즈음인데도 산을 오르거나 산책을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정문 진입로를 내려서니 산책로에는 그날의 함성을 시구로 옮겨 빗돌에다 새겨놓았다. 천주암에서 둘레길 산책을 시작한지 네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왼쪽 무릎이 더 시큰거려 오지 않길 바랐다. 14.01.24
첫댓글 천주산 둘레길이 뚫렸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언제 날 잡아 함 다녀와야 하겠습니다. 왼쪽 무릎 너무 혹사하지 마시기 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