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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 편 산에서 바라본 석남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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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호 |
| 천년 사찰에 아침이 내린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면 산사에는 생생한 기운이 살아 숨쉰다. 아침 예불 시간인지 대웅전 안에서부터 발원한 스님의 염불 소리가 조용한 산사에 하나 가득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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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에서 바라 본 산사의 아침이다. 따스한 아침 햇살이 산사에 내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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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호 |
| 대웅전 안에서는 청명한 목탁소리와 스님의 염불 소리가 울려나오고, 대웅전 밖에서는 풍경소리가 찰랑찰랑거리며 손님을 맞는다. 뒤질새라 산사의 주변에 날아든 산새들이 합창을 해댄다. 그렇게 산사의 아침엔 종교와 자연이 만나 거룩하고 평온한 부처님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천상의 하모니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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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따라 초겨울 바람에 흔들려서 인지 풍경소리가 쉴 새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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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호 |
| 아침 예불을 마친 스님이 드디어 대웅전을 나선다. 대웅전 문 앞에서 계단 아래를 보면 산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약 300년 전(17세기)에 중수된 대웅전. 대웅전 바로 밑에서 묵묵히 비바람을 맞이하던 쌍으로 된 5층 석탑. 석가모니불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를 함께 모신 영산전 등. 한눈에 들어온 석남사의 건물들은 산사의 유구한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주기에 충분하다. 세월의 무게 앞에 옷깃이 저절로 여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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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광루 바로 밑에서 바라본 대웅전이다. 올라가는 계단 오른 쪽에 보이는 건물이 영산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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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호 |
| 산사를 통째로 눈에 넣다 보면 전체의 형국이 독특해 자꾸만 가슴에 와 닿는다. 서운산 아랫자락에 자리 잡은 산사는 마치 서운산이 어머니가 되어 석남사를 자녀처럼 포근히 감싸 안은 듯 아늑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속세에서 불어오는 비바람을 서운산이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도를 닦기 딱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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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밑에 있는 석탑이 사이좋게 대웅전을 지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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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호 |
| 가만히 보니 온통 까치밥이다. 우리 조상들이 추수 때에 감나무에 감을 다 따지 않고, 까치나 새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남겨 놓았던 바로 그 까치밥이 석남사 안팎으로 널어져 있다. 그러기에 석남사엔 산새들이 항상 와서 매일같이 잔치를 연다. 부처님의 은공에 대해 감사의 향연을 벌인다. 산사에는 그렇게 머리 깎은 스님도 산에 사는 산새들도 모두 같은 불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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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남사 마당에 설치된 불상은 기와 조형물에 둘러 싸여 있어 이색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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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호 |
| 굴뚝에서 연기가 오른다. 아마도 장작불에다가 스님들의 아침밥을 하나보다. 장작을 때 가마솥에서 익힌 밥의 맛을 아는가.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지 못하는 맛이 아니던가. 누룽지는 또 어떻고. 산사의 아침마당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석남사는 또 한 번 추억 속 그때 그 시절로 스며들어간다.
이렇게 산사를 둘러보는 게 끝이 아니다. 산사 입구에 다시 서면 어딘가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서운산 등산로와 마애여래입상으로 가는 길이 같은 방향임을 확인하면 그 쪽으로 발을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서운산 정상까지 1.8㎞가 남았다는 표지를 따라 500m 정도를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나온다.
고려 초기에 새겨졌을 것으로 보는 마애입상은 자그마치 5.3m 높이나 되는 바위에 새겨진 걸작 중에 걸작이다. 그 입상 앞에서 누군가 간절한 소원의 기도를 드린 듯 촛대가 놓여 있다.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대는 변해도 소원을 비는 심정은 한결같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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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초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석남사 마애불은 5.3m 바위에다가 직접 새겨 만든 불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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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호 |
| 산사의 매력에 한껏 취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차를 타고 국도를 따라 안성 시내 쪽으로 5분만 가다 보면 올 때 만난 마둔호수가 환송을 한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쌀쌀한 겨울바람을 맞이하다보니 그제야 정신이 든다. 잠시 잠깐 천상의 꿈을 꾸다가 속세로 하산하는 거사가 된 듯 마음이 상쾌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