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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04월29일(화요일) 제주도 여행일정
06:20~07:00 코델리아S호텔 층 호 객실에서 기상하여 세면 및 양치질 후 짐 정리 [2025년 04월 29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일출시각 : 5시49분]
07:00~07:45 코델리아S호텔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식사 [조식 비용 : 1만원]
[조식 이용 가능(1인당 13,000원, 전날 저녁 10시 이전에 결제를 하면 10,000원)
조식 시간 : 7시~9시30분
조식 내용 : 밥, 미역국, 어묵볶음, 소세지볶음, 샐러드, 샐러드소스, 빵, 바나나, 단호박, 요거트, 우유, 시리얼, 커피, 차종류, 탄산음료, 김치, 콩나물무침, 누룽지 등]
07:45~07:51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주동로 4186 번지에 있는 코델리아S호텔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1715-7 번지에 있는 대수산봉 주차장으로 이동 [6분, 3.1km]
산 :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대수산봉
[대수산봉(大水山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위치한 측화산이다(고도:135m). 산사면이 완만한 기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 부분에는 산마루가 길게 이어지면서 중간쯤에 얕게 패인 타원형의 분화구가 형성되어 있다.
과거 이곳 분화구에 물이 있어서 '물뫼/물메'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 이 오름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북동쪽으로 성산봉수, 남서쪽으로 독자봉수와 교신했는데, 봉수대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산(水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읍치 동쪽으로 24리에 있다."고 했다. 『탐라지』에는 '수산(首山)'으로 기재되어 있다. '물'에 해당하는 훈차 표기가 '수(首)'로 되어 있다. 『탐라순력도』(한라장촉)에는 '수산망(首山望)', 『제주삼읍전도』에는 '수산봉(首山烽)'으로 기재했고 봉수 표시도 보인다. 이처럼 '수산'이라 부르던 오름의 이름은 후대에 동쪽에 이웃한 '작은물뫼[小水山峰]'와 구분하여 '큰물뫼[大水山峰]'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분화구에 샘물이 나오는 못이 있었는데, 송나라의 호종단(胡宗旦)이 와서 섬의 산맥 수맥의 기운을 눌러 버리고 갔을 때 이 오름의 수맥도 끊겨 샘이 마르고 물도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산행코스: [대수산봉 주차장~대수산봉 정상~대수산봉 주차장]
산행일 : 2025년04월29일(화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44분 소요)
07:51~08:05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1715-7 번지에 있는 대수산봉 주차장에서 산행출발하여 대수산봉(해발 135m) 정상으로 이동
08:05~08:25 대수산봉 분화구 둘레길을 산책
08:25~08:35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1715-7 번지에 있는 대수산봉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여 산행 완료
08:35~08:52 렌트한 승용차로 대수산봉 주차장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2705 번지에 있는 다랑쉬오름 주차장으로 이동 [17분, 12.3km]
산 :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 오름&아끈다랑쉬오름]
[월랑봉(月郞峰, 다랑쉬오름이라고도 부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기생화산구로서 다랑쉬오름이라고도 부름.
해발 382.4m, 높이 227m, 둘레 3,391m, 면적 80만 464㎡로, 구좌읍을 대표하는 오름이다. 비자림에서 남동쪽으로 1㎞ 떨어진 지점에 남서쪽의 높은 오름(405.3m)을 빼고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이 솟아 있다. 도랑·달랑쉬로도 불리는데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로는 대랑수악(大郞秀岳)·대랑봉(大郞峰)·월랑수산(月郞秀山)·월랑수(月郞岫) 등으로 표기되어 오다가 현재는 월랑봉(月朗峰)으로 쓰인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으로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며 북쪽은 평평하고 정상에 봉우리가 있다. 산정부에는 깔때기 모양의 원형 분화구가 크고 깊게 패어 있다. 화구의 바깥둘레는 1,500m, 화구의 깊이는 115m이다. 지름이 30여m인 바닥에는 잡초가 무성하며 산정부 주변에는 나무가 드문드문 있고 오름기슭에는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대부분이 초지로 형성되어 시호꽃·송장꽃·섬잔대·쑥부쟁이 등 초지식물이 자란다.
주변은 제주도4·3사건 때 유격대원들이 활동 요충지였으며, 20여 가구가 살다가 폐촌이 된 다랑쉬마을(월랑동)과 1992년 제주도4·3사건의 희생자 유골 11구가 발견된 다랑쉬굴이 있다. 매년 월랑봉일출제가 열리고 있으며 페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2005년 월랑봉 등반을 위한 나무계단이 설치되었고 오름 관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아끈다랑쉬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오름.
새끼다랑쉬오름, 아진다랑쉬오름, 소월낭악(小月朗岳) 등 여러 별칭이 있다. 높이 198m, 둘레 1,454m, 총면적 16만 4072㎡ 규모의 기생 화산으로 최고 높이와 최저 높이의 차는 58m이다. 오름 정상부에 둥그런 모양의 분화구가 있는데, 둘레가 약 600m인 분화구 안에 넓은 초지가 있고 초지 한구석에 묘 1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일부 잡목 숲을 제외하고는 오름의 비탈면 전체가 풀밭으로 이루어졌다. 서쪽 비탈면에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정상까지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다.]
산행코스: [다랑쉬오름 주차장~다랑쉬 오름 정상~다랑쉬 오름의 분화구를 한바퀴 순환~다랑쉬오름 주차장~아끈다랑쉬오름 정상~다랑쉬오름 주차장]
일시 : 2025년04월29일(화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2시간 소요)
08:52~09:17 다랑쉬 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의 사이에 있는 다랑쉬오름 주차장에서 산행출발하여 다랑쉬 오름(해발 382m) 정상으로 이동
09:17~09:47 다랑쉬 오름 정상 주변 파노라마 풍경을 사진촬영 후 다랑쉬 오름의 분화구를 한바퀴 순환
09:47~10:12 다랑쉬 오름의 분화구를 한바퀴 순환한 뒤 다랑쉬 오름과 아끈다랑쉬 오름의 사이에 있는 주차장으로 회귀
10:12~10:27 아끈다랑쉬오름 정상(해발 198m)으로 이동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에 오르다, 다랑쉬오름과 아끈다랑쉬오름
정은주 여행작가
여행스케치 기사 승인 2021.01.26. 16:09
[여행스케치=제주] 먼 옛적 달을 품었다는 거대한 굼부리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영원의 상징처럼 보인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하나, 둘 잊혀져간 이야기들이 그 안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곳에 서면 한라산과 수많은 오름들이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펼친다. 제주 오름의 ‘랜드마크’라 불리는 다랑쉬오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제주 동부 구좌읍에 자리한 다랑쉬오름은 웅장한 산세와 온전히 보전된 분화구가 일품인 오름이다. 멀리서도 보이는 위용스러운 자태는 동부의 수많은 오름 가운데서 단연 돋보이며, 서부의 노꼬메오름과 더불어 제주도에서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으뜸으로 꼽힌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동부 최고의 오름
동부에서 가장 높다 보니 이 일대를 조망하는 전망대 역할도 담당한다. 제주의 대부분 오름이 비고 100m 안팎인 것을 감안할 때 다랑쉬오름은 무척 높은 편에 속한다. 섬을 통틀어도 비고가 200m 이상인 오름은 이곳을 포함해 어승생, 큰바리메오름, 노꼬메오름, 군산오름 등 다섯 개에 불과하다.
산체가 높은 만큼 탁 트인 시야는 다랑쉬오름을 올라야 할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정상에 오르면 올록볼록한 오름 군락과 너른 들녘,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그 앞에선 누구라도 감탄사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이 빚은 작품은 그 어떤 예술품보다 감동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토록 수려한 경관을 품은 다랑쉬오름 앞에 ‘오름의 여왕’, ‘오름의 랜드마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명성에 걸맞게 다랑쉬오름은 탐방 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탐방안내소와 화장실은 물론 주차 공간도 여유로운 편이다. 탐방안내소는 제주 오름 전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며 필요하다면 전문해설사를 요청할 수 있다. 해설사가 상주하는 오름은 세계자연유산인 거문오름을 제외하고 이곳이 유일하다.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탐방안내소 운영이 중단되기도 하니 탐방로 입구에 세워진 안내석을 읽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라산과 오름, 바다가 그려내는 황홀함
오랜만에 찾은 다랑쉬오름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다. 단지 예전에 비해 방문객들이 많아진 건지 오름 입구까지 이어진 길을 한창 확장하는 중이다. 고개를 한껏 들고 올려다보아도 오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 번 크게 심호흡 한 후 탐방로에 발을 내딛었다.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지그재그로 이어진 탐방로는 체력과 끈기만 있다면 아이들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 바닥에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걷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경사가 심한 구간은 친절하게도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가파른 길이지만 시간을 넉넉히 두고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닿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할 때는 잠시 멈춰선 후 고개를 돌려보자. 한발씩 내딛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기운을 북돋워준다. 마지막 걸음을 뗄 무렵엔 아끈다랑쉬오름의 분화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에 서면 수많은 오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에 있는 용눈이오름을 비롯해 멀리 보이는 안돌ㆍ밧돌오름, 높은오름, 백약이오름 등 일일이 다 세기도 힘들 정도다. 게다가 계절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푸릇푸릇한 밭들은 이곳이 제주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 너머로 햇살을 듬뿍 머금은 바다가 마치 금빛 쟁반처럼 반짝인다. 여기에 성산일출봉과 우도 전망까지 더하면 통쾌하다 싶을 만큼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복잡한 머릿속도 답답한 마음도 쏴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모두 날아가 버린다. 그저 흘러가는 구름을 잡아두고 한없이 평화로운 정경 속에 빠지고 싶어진다.
바다를 뒤로 하고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리면 섬의 기둥인 한라산이 나타난다. 한라산은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값진 풍경이다. 흰 눈이 뒤덮인 한라산의 설경이 여느 때보다 더욱 신령스러워 보인다. 한라산 자락 아래 산그림자처럼 겹겹이 겹쳐 보이는 오름들도 유난히 신비롭게 느껴진다. 기회가 된다면 해질녘에 한라산을 바라보며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노을이 번져가는 하늘 아래 실루엣만 남은 한라산은 황홀하리만치 아름답다.
백록담과 닮은 분화구, 그리고 신화와 역사
오름 중앙부에는 다랑쉬오름이 지켜온 귀한 보석이 숨어 있다. 원형이 그대로 남은 움푹 파인 분화구는 오로지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까. 둘레가 1.5km에 달하는 분화구는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데만 30분가량 걸린다. 깊고 푸른 분화구는 종종 한라산의 백록담에 비견되는데 신기하게도 실제 깊이마저 115m로 백록담과 같다. 아쉽게도 백록담과 달리 이곳 분화구는 투수성이 높아 물이 고이지 않는다.
능선 중 가장 높은 언덕에 세워진 산불감시초소는 분화구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예전에 귀동냥으로 들었던 신화가 떠오른다. 아주 오래전 제주도의 창조 여신인 설문대할망이 치마에 흙을 채워 나르는 길에 한줌씩 놓아 오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 너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있어 주먹으로 한 번 쳤더니 꼭대기가 푹 들어가 버렸다. 그것이 바로 지금 서 있는 다랑쉬오름이다. 설문대할망이 주먹으로 친 곳은 분화구가 되는 셈이다. 옛 사람들의 재치 가득한 이야기에 덩달아 발걸음이 유쾌해진다.
다랑쉬오름이란 이름도 분화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과거엔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고 해서 월랑봉(月郞峰)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추석 보름날에는 세화리 주민들이 이곳에서 축제를 열기도 한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지금도 분화구에는 밤마다 신비로운 달빛이 비쳐든다. 상상하고 있자니 금세라도 아름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다.
사실 다랑쉬오름이 아름답고 근사한 풍경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들녘 가운데 우뚝 서 듬직해 보이는 이 오름은 제주4.3사건의 아픔까지 묵묵히 껴안고 있다. 광복 이후까지도 오름 아래쪽에 다랑쉬마을이 있었다고 하나 4.3때 모두 불에 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잊혀져가는 역사였던 4.3사건이 재조명되면서 근처의 다랑쉬굴에서 당시 피란했던 사람들의 유해가 발굴되기도 했다.
오름이 품은 슬픈 역사를 되새기며 걷는 동안 어느새 발걸음이 능선 말미에 닿았다. 분화구 남쪽 사면은 특이하게도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능선 둘레로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터널을 이뤘는데 그 모습이 참 이채롭다. 이 터널을 지나면 다랑쉬오름 탐방은 마무리에 접어든다.
겨울날의 서정을 품은 아끈다랑쉬오름
다랑쉬오름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아끈다랑쉬오름은 모양새나 형태가 마치 형과 아우를 떠올리게 한다. 높낮이만 다를 뿐 오름 중앙에 원형 굼부리가 있는 것과 그 둘레로 탐방길이 난 것까지 둘이 꼭 닮았다. 아끈은 제주어로 ‘작은’, ‘새끼’란 뜻을 갖고 있는데 풀이하자면 아끈다랑쉬오름은 다랑쉬오름의 동생격이 되는 셈이다.
오름이 낮다고 볼 만한 풍경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군가 ‘오름은 올라야 제 맛’이라고 했는데 아끈다랑쉬오름이야 말로 그 표현에 딱 들어맞는다. 오르지 않으면 아끈다랑쉬오름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오름이 나지막해도 경사면을 직선으로 올라야 하는 까닭에 5분 정도는 애를 써야 한다. 이곳 정상에 펼쳐진 풍경은 기대 이상이다. 마치 보란 듯이 굼부리 안팎을 가득 메운 억새꽃 무리가 끝도 없이 이어져있다. 억새는 가을에 절정을 이루지만 겨울이 되어도 활짝 핀 그대로 마른 억새꽃을 볼 수 있다.
능선을 따라 난 오솔길은 억새와 나란히 걷는 길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들이 사락거리며 노래를 부른다. 분화구 가장자리에 서면 겨울에도 생명력 넘치는 밭들이 내려다보인다. 한창 수확철인 지금은 월동무와 당근을 캐는 제주 농부들을 볼 수 있다. 다랑쉬오름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한 폭 그림이라면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생동감 넘치는 영상으로 다가온다. 하늘 아래 펼쳐진 억새밭은 햇살이 비치는 곳마다 노르스름하게 빛난다. 곁에 다랑쉬오름이 지키고 있어 더 든든한 느낌이다. 아끈다랑쉬오름에서 보낸 한 때는 포근함과 평화로움이 흐르는 겨울날의 서정으로 남는다.
Info 다랑쉬오름안내소 주소 : 제주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산6
TIP 다랑쉬오름에서 맞는 일출도 최고!
겨울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날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다랑쉬오름을 오른다. 동부에서 이름난 일출 명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새해에 다랑쉬오름을 올랐는데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찬란히 떠오르던 태양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물론 평소에도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탐방로를 오르는 사람들이 적잖다. 굳은 다짐이나 마음가짐을 새로 할 때에 다랑쉬오름은 최고의 선택지가 된다. 2021년 새해 일출을 놓친 아쉬움을 다랑쉬오름에서 달래보자.]
10:27~10:37 사진촬영 후 휴식
10:37~10:52 다랑쉬 오름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여 산행 완료
10:52~10:57 렌트한 승용차를 타고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2705 번지에 있는 다랑쉬오름 주차장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2608-3 번지에 있는 다랑쉬굴로 이동 [5분, 1.1km]
10:57~11:10 다랑쉬굴을 탐방
[제주시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에 소재한 다랑쉬굴은 4·3사건 당시인 1948년 12월 18일,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희생 당한 곳이다. 이 날 군경민 합동 토벌대는 다랑쉬오름 일대를 수색하다가 이 굴을 발견했다. 토벌대는 수류탄 등을 굴속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가도 죽을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었고 굴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하나 둘 죽어갔다.
한 때 이들과 같이 다랑쉬굴에 은신해 있었던 채정옥(남, 1923년생) 씨는 "사건 발생 다음 날 굴속에 들어가 흩어진 시신들을 나란히 눕혔다. 굴 안에는 그때까지도 연기가 가득차 있었다. 희생자들은 고통을 참지 못한 듯 돌틈이나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죽어 있었고 코나 귀로 피가 나 있는 시신도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출처: 제주도·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 Ⅰ』(2003); 제주도·제주4·3연구소, 『제주4·3유적 종합정비 및 유해발굴기본계획』(2005)>
1992년 제주도 구좌읍 중산간지대에 있는 ‘다랑쉬굴’에서 유골 11구가 발굴된 사건은 제주4‧3사건 당시 은신자에 대한 무분별한 작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확인 결과 이들 유해의 주인공들은 1948년 12월 18일 제9연대의 진압작전에 의해 희생된 도피 입산자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희생자들의 신원은 구좌읍 종달리와 하도리 주민들로서 그 중엔 여자 3명과 아홉 살 난 어린이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었다. 다랑쉬 굴 속에서는 플라스틱 안경, 흰색 단추, 혁대, 버클, 옷감, 고무신, 질그릇, 놋그릇, 놋수저, 가마솥, 항아리, 물허벅, 접시, 놋쇠로 만든 제기용 잔받침, 물통, 프라이팬, 가위, 요강, 철사뭉치, 석쇠, 화로, 구덕, 주전자, 나무주걱 등의 생활용품과 낫, 도끼, 톱, 나대, 자귀, 곡괭이, 숫돌 등 연장류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외따로 떨어져 있던 유골 1구 옆에는 그가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철모, 군화, 철창, 대검이 놓여 있었다.
<출처: 제민일보 4․3취재반,『4․3은 말한다 ②″』(1994) ; 제주4·3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2003)>]
11:10~11:25 렌트한 승용차를 타고 다랑쉬굴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1431 번지에 있는 대왕산 입구로 이동 [15분, 9.1km]
산 :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대왕산
[대왕산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기생화산으로 해발고도 157.6m, 면적 258,195㎡ 규모이며 정상에는 북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가 형성되어 있다.
대왕산은 옛날 한 지관이 왕(王)자 모양이 오름 사면까지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고 하여 큰왕메라고 하였다는 얘기가 전해지며, 또는 양이 누운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와양악으로도 불린다.
대왕산은 수산리 들판에 위치하고 있는 오름들 중에서 산세가 웅장하면서 풍수지리상 음혈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북동쪽에는 소왕산이 위치한다.]
산행코스: [대왕산 입구~대왕산 정상~대왕산 입구]
일시 : 2025년04월29일(화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40분 소요)
11:25~11:40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대왕산 입구에서 산행출발하여 대왕산(해발 157.6m) 정상으로 이동
[명산 대왕산 등 자연이 만든 마을 곳곳 절경
제주일보 기사 승인 2023.05.16.
(173) 탐라·동도·정의현 역사문화 깃든 길
동굴·오름·못 많은 중산간 마을
물 가두는 동네 ‘水山리’로 불려
산세 웅장한 대왕산·벌라릿굴 등
옛 문화 엿볼 수 있는 명소 존재
▲동굴과 오름 가름 수산 마을 이름의 변천사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1·2리)는 한라산 동녘 기슭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이다. 특히 제주도의 160여 동굴 중 수산굴·누루못굴·벌라릿굴 등 8기가 모여 있는 동굴 가름이다. 또한 대왕산·낭끼오름·궁대오름 등 5기가 마을 도처에 산재한 오름 가름이다. 게다가 연못과 습지 27곳이 있던 못 가름이기도 하다. 이렇듯 동굴·오름·못이 많은 수산리는 마을 곳곳에 형성된 암반지대에 물을 가두는 동네의 의미를 담아 수산(水山)리로 불려온 것으로 여겨진다.
제주의 여러 역사서에는 수산리 지명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한자로는 ‘水山’ 또는 ‘首山’으로 기록돼 있다. 세종실록(1439)에는 水山·水山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과 탐라지(1653)에는 首山城·首山坪, 탐라순력도(1702)에는 首山城操·首山望·舊首山, 탐라지도(1709)에는 首山村·首山峰으로 적혀 있다. 또한 수산1리는 18세기 이후 하수산(下水山)·산양(山陽), 20세기 초에는 한때 수월(水月)리로 쓰이다가 다시 수산리라 했다.
수산2리는 일찍부터 곶앞(고잡)을이라 하여 화전촌(花前村)으로, 18세기 이후에는 산양(山陽)·상수산(上水山)·화남(花南)리로 불려오다가, 1914년 수산리와 성읍 일부를 병합하여 수산리로, 1950년대 초 수산1리·수산2리로 불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산1리 표지석에는 ‘首山에서 水山’으로 변경된 사유를 다음과 같이 새겨놓고 있다.
‘괴수자백(魁首自白)이란 뜻인 首는 오래전부터 선비마을이자 양(반)촌으로 알려진 마을에 적합하지 않아 인산지수(仁山智水)의 뜻을 담은 水로 하여 수산(水山)으로 개명하였다.’
▲명산 대왕산에서 옛 수산평과 탐라목장을 그려보다
이름이 너무 거창한 대왕산(1431번지, 표고 156m)을 두어 번 찾았다. 접근하기 어려워 보이는 그곳을 본 리(里) 출신 고보진님(1951년생)의 도움으로 보다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대왕산은 비좁은 길과 계곡을 따라가는 한적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방문하기가 꽤 불편하다. 최근 조성된 등정 길을 찾아 올라야 보다 편하게 정상에 오늘 수 있다.
고진감래의 길과 같다고나 할까. 산세가 웅장하게 펼쳐진 대왕산에 올라 반월형의 정상에 서면 옛 정의현 지역이, 그보다 먼저 조성된 탐라목장의 수산평도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들어와 10소장과 산마장을 채우던 말 떼가 풀 뜯는 어슴푸레한 풍경 속에, 멀리는 백록담과 다랑쉬 오름이, 가까이로는 일출봉과 수산봉이 또렷하게 다가온다.
특히 남쪽 인근지역 일직선상에 위치한 두 개의 오름이 유독 눈길을 끈다. 바로 은월봉과 전이미오름이다. 일직선상에 위치한 세 오름 사이에서 선인들은 王(임금왕)자 지형이 저절로 그려져 대왕산을 오름명으로 삼았으리라 여겨진다.
오름의 형세가 王자 모양으로 생겨서 대왕산(왕뫼·왕메·왕미)으로 불렸다는 설과 함께,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원나라 시절 탐라총관부의 수장인 몽고의 다루가치(몽골제국에서 파견된 정복지의 총독 또는 지방장관으로 사용된 직명)가 수산평에서 키우는 말들을 감시하고 호령했던 높은 산이라 해 대왕산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에 더해 대왕산 인근에는 소왕산과 왕자골(동)이라는 곳도 있다. 또한 대왕산은 탐라목장에 위치한 오름들 중 산세가 가장 수려하고 풍수지리로도 음혈이 가장 많은 곳이란다. 그래서인지, 증보탐라지(1765) 등에도 대왕산(大王山), 제주군읍지(1899) 등에는 왕이산(王伊山)으로 표기돼 있다
▲대로변에 숨어 마주 보는 벌라릿굴
벌라릿굴 가는 길은 옛 수산평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기에 탐라의 목축문화를 엿보는 길이고 시공(時空)과 대화하는 길이다. 게다가 옛 탐라목장 지대에 들어선 풍차들이 목가적 풍경을 더하는 길이다. 제주시와 성산포를 잇는 금백조로를 따라가다 보면, 백약이오름을 지나 궁대오름 가까이 이를 즈음 수산2리 이정표와 함께 회전 교차로가 나타난다. 이어 성산포 방향의 큰길을 따라 곧장 달리면 이내 평야지대가 펼쳐지고, 우측 한 길가에 돛단배 모양의 2층 구조물이 보인다. 그곳이 바로 선사유적지인 벌라리왓(4083번지) 일대이다. 그리고 그 근처에 벌라릿굴이 숨어 있다.
벌라리왓 주차장 남쪽에 위치한 한적한 숲으로 내려서면, 70여 m 거리를 두고 마주 보는 2기의 동굴 입구와 계곡 속에 조성된 아담한 정원이 나타난다. 1㎞가 넘는 벌라릿굴을 단편적으로나마 둘러볼 수는 이곳은 지하세계를 가로질러 내려온 용암동굴 일부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진 함몰 지역이다.
제주어 ‘벌르다(깨뜨리다)’는 함몰의 의미이고, ‘벌리다’라는 양쪽이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말이다. 이렇듯 벌라릿굴이란 이름은 함몰 지형 사이로 2개의 굴이 마주보고 있음에서 유래된 듯하다. 대로변에 숨어 있는 벌라릿굴을 만난 것은 ㈔질토래비에게 주어진 행운이고 벅찬 감동이다.
굴 내부는 무너진 지 오래돼서인지 외부에서 유입된 점토가 두텁게 퇴적돼 있다. 용암종유·용암유석·동굴산호 등의 동굴 생성물들과 아아용암·용암선반·용암폭포 등을 관찰할 수 있는 벌라릿굴은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이 굴은 4·3 당시에는 수산리 주민들의 피난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한다. 벌라릿굴에서 500여 m 떨어진 남쪽에도 ‘알벌라릿굴’이라는 이름의 벌라릿굴 남쪽 입구가 있다 한다.
기대치 않은 곳에서 만난 벌라릿굴을 둘러본 이들은 곧잘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대로변에 숨어 있는 대형동굴인 벌라릿굴 2개의 입구를 보고 놀라고, 중산간 지대에 출현한 돛단배 형태의 구조물을 보고 의아해한다.
벌라릿굴 주변 일대를 사적 공원화하는 데 앞장섰던 당시의 수산2리 양만길 이장에 의하면, 바다를 내려다보고 또한 선사유적지와 벌라릿굴이 있는 이곳에서 ‘제주에서 세계로’ 오가는 탐험의 과거사와 미래사를 그려보려 돛단배 모형의 안내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1274년과 1281년 2차에 걸쳐 일본원정에 참여한 원제국 연합전함들 중 일부는 이곳에서 자라던 나무들로 만들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삼별초가 입도하기 전인 1268년 원나라는 탐라에 전함 100척을 건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전한다. ]
11:40~11:50 대왕산 정상 주위 풍경을 사진촬영 후 휴식
[대왕산(왕뫼, 왕메, 왕미)
성산읍 수산리 북서쪽에 위치한 오름으로 수산리와 종달리를 연결하는 군도 변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남사면으로 구불구불한 숲길이 나 있고 수산리 공동묘지가 있다.
산등성이가 남서에서 북동으로 길게 이어져 있으며, 동사면으로 뻗어내린 등성이는 오름 동쪽 끝에서 부리를 이루고 있어 마을사람들은 이를 왕뫼 동끝 이라 부른다.
서사면에는 얕고 깊게 패인 화구가 북서쪽으로 벌어져 말굽형 화구을 이루고 있고, 서쪽과 동쪽 기슭에는 묘들이 들어서 있다.
주요식생은 산정부를 제외한 전사면에 해송, 삼나무가 조림되어 숲을 이루고 있다.
※오름명의 유래 : 옛날 한 지관이 근처에 임금왕(王)자 모양의 형국이 있어 그 줄기가 이 오름에서 뻗어 나왔다고 한데서 왕뫼(왕메, 왕미)라고 불려 온다고 전해지며, 산모양이 王(왕)자 모양으로 생겼다는 형국설도 있다고 한다.]
11:50~12:05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대왕산 입구로 원점회귀하여 산행 완료
12:05~12:20 렌트한 승용차로 대왕산 입구를 출발하여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25번길 64 번지에 있는 드르쿰다 제주 성산점으로 이동 [15분, 7.3km]
[“오늘 당신 드르쿰다 하세요.”라는 푯말이 반겨준다. 드르쿰다 in 성산은 밤낮없이 핫한 성산의 핫플레이스로 낮에는 디즈니, 밤에는 라라랜드 느낌으로 변하는 초대형 스튜디오이다. 성산일출봉 등 제주의 자연환경은 물론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다양한 컨셉의 포토존과 회전목마 등 다양한 촬영 소재들이 존재해 가족 및 연인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기 충분하다.
카라반과 다양한 식음료가 준비되어 있어 관람도중 허기와 피로를 달래는 데에도 아주 적절하다.
다양한 컨셉과 테마의 스튜디오가 즐비해 있어 제주도에서 기억에 남을 개성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사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환경과 그에 맞게 어우러지는 드르쿰다 인 성산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뛰어나다.
이뿐만 아니라 성산일출봉 아래 이용 고객들을 위한 프라이빗 드르쿰다 해변은 절경의 성산일출봉을 방해받지 않고 감상하는데 충분하며 반려동물과 산책, 일광욕까지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또한 드르쿰다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예약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제휴 할인과 이벤트가 있기 때문에 드르쿰다를 갈 예정이라면 참고하는 것이 좋다.]
12:20~13:30 성산읍의 야경 명소인 드르쿰다 제주 성산점에서 시그니처 커피인 우도땅콩크림커피(8,700원)을 마신 후 드르쿰다 제주 성산점을 [카페~잔디광장~빈티지 마을~드르쿰다 해변~나무 원두막~드르쿰다 캐슬~회전목마~카페]의 동선으로 탐방
[드르쿰다 제주 성산점
이곳은 성산일출봉과 가까운 위치에 있고, 회전목마 등 다양한 포토존이 있으며, 드르쿰다 성산에서의 야경은 낮의 경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밤이 되면 조명들이 공간을 환하게 밝히고, 성산일출봉의 웅장한 모습과 어우러져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하는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며 제주도 여행의 특별한 순간을 가져볼 수 있다.
제주 방언으로 ‘드르’는 넓은 초원이고, ‘쿰다’는 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영업시간 : 09:00 ~ 20:30
연락처 : 064-901-2197]
[드르쿰다in성산은 광치기 해변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고, 부근에 유명한 관광지들이 밀접해 있어 인프라가 좋아 여행 중 들르기 좋은 명소이다. 넓은 부지에 이국적으로 꾸며 놓은 잔디 광장, 돌담으로 만들어 놓은 城과 추억을 되살리는 회전목마가 눈길을 끈다. 스튜디오를 연상케 하는 실내공간에서는 인생샷을 찍기 좋고, 다양한 테마의 카라반을 예약하여 내부에서 파티, 보드게임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낮엔 디즈니, 밤엔 라라랜드 느낌으로 변하는 대형 스튜디오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남기고 성산일출봉 뷰의 프라이빗 한 드르쿰다 해변에서 일광욕도 즐겨보자.]
13:30~13:33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25번길 64 번지에 있는 드르쿰다 제주 성산점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오조로 19 1층에 있는 국빈관 제주성산점(전화 : 064-784-8986)으로 이동 [3분, 1.7km]
13:33~14:20 국빈관 제주성산점에서 점심식사 [식사 시간 중에 핸드폰 충전]
[국빈관 제주성산점 메뉴
짜장면 7,000원
짬뽕 9,000원
탕수육 23,000원
깐쇼새우 25,000원
간짜장 9,000원
삼선간짜장 13,000원]
14:20~14:43 렌트한 승용차로 국빈관 제주성산점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중산간동로 4772 번지에 있는 오늘은녹차한잔으로 이동 [23분, 14.9km]
[오늘은녹차한잔을 방문하면 녹차밭 구경부터 베이커리 카페는 물론 녹차 족욕 체험 그리고 동굴까지 볼 수 있다. 1층에는 녹차 관련 기념품 숍과 족욕 체험실이 있고, 2층에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녹차가 메인인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역시 녹차의 종류인 호지차로 만든 아이스크림, 밀크티, 셰이크이다. 떫은맛을 줄이기 위해 두 번 덖어 더 구수하고 카페인은 일반 녹차의 1/3로 어른, 아이 등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카페 이용 전 녹차 밭과 동굴 구경을 하고 이곳에만 있는 녹차 족욕 체험장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버블 족욕제, 녹차 소금, 녹차 오일을 제공하여 약 30분 동안 피로를 풀어주는 마사지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어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을 여행한다면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14:53~15:30 녹차 밭과 사진 작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천연 용암동굴인 녹차동굴을 탐방
[성읍녹차동굴은 제주에서 유명한 천연 용암 동굴 포토존이다. 동굴 안쪽에서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찍는 사진은 미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성읍녹차마을 다원 안에 있어 드넓은 녹차밭 풍경과 동굴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녹차밭을 따라 15~20분 정도 걸어가면 작은 숲이 보이고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동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더 깊고 큰 동굴이 있다. 큰 동굴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사진을 찍으면 미묘한 색감으로 사진이 잘 나온다. 동굴은 성읍녹차마을 다원 안에 있으므로 길도우미에 ‘오늘은 녹차한잔’ 혹은 ‘성읍녹차마을’로 목적지를 정해서 오면 된다. ‘오늘은녹차한잔’ 카페 1층에는 녹차 기념품 샵과 족욕 체험장이 있고 2층은 베이커리 카페가 있다.]
15:30~15:39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중산간동로 4772 번지에 있는 오늘은녹차한잔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서문로 14 번지에 있는 정의향교로 이동 [9분, 3.6km]
[정의향교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의향교는 성읍민속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다.
1416년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정의향교를 방문할 때에는 신도를 밟지 않아야 하며, 가을 제사는 8월 정혜일인 8월 18일 즈음 제사를 지낸다.
정묘일(丁卯日)에 제사를 지내는 제관들이 이곳 정의향교에서 잔다.
정의향교에서는 매주 토요일 선비체험을 진행하는데
참가자가 10명 이상인 경우 한해서 진행된다.
선비체험에 참여하려면 사전연락해 진행여부를 확인하고,
공문을 보내거나 접수를 통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문의 및 안내 064-787-1324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서문로 14
주차 가능
지정현황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정의향교 (1971.08.26 지정)
체험 안내 선비체험 프로그램 / 전패례 재현 체험
프로그램체험가능 연령 선비 체험 : 중학생 / 전패례 재현 : 전연령
입장료 무료]
15:39~16:00 정의향교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서문로 4-7 번지에 있는 제주성읍마을 고창환고택을 탐방
[정의향교는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1423년 정의현청을 고성리에서 진사리(지금의 성읍리)로 옮겨 설치할 때 함께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 후 여러 차례 개축과 이건을 거듭하다가 1849년 방어사 장인식이 조정에 주청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정의향교는 약간 높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대성전, 명륜당, 수선당, 수호사, 내삼문, 협문, 동재가 복원되어 있다. 대부분의 향교 건물이 남향이고, 제주향교와 함께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배향 공간인 대성전과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정의향교에는 현재 전패가 보관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10철, 송조6현과 한국의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해마다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한다. 향교 앞에는 10개의 송덕비가 줄지어 서 있고 향교 안에도 5개의 송덕비가 있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으로는 성읍민속마을과 보름왓, 백약이오름이 있다.]
[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濟州 城邑마을 高昌煥 古宅)
국가민속문화재 (구)제70호 (1979년 1월 26일 지정)
면적 787m2
수량 2필지
시대 조선시대
소유 제주특별자치도
위치 : 제주 성읍마을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서문로 4-7 (성읍리)
좌표 북위 33° 23′ 13″ 동경 126° 48′ 06″
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은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성읍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이다. 1979년 1월 26일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예전 정의(성읍) 고을에서 여인숙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19세기초에 세운 것으로 보이며 정의향교와 이웃해 있다. 안채(안거리)와 헛간채를 둔 단촐한 구성의 집으로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여관집'으로 불린다.
문을 들어서면 왼쪽 곁으로 헛간채, 그 앞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가 있다. 안채 뒤편에는 넓은 텃밭과 수목들이 우거져 집 주변과 안의 경치를 조화롭게 꾸미고 있다.
안채는 한라산 산남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3칸 집이다. 앞에서 볼 때 왼쪽부터 부엌, 대청, 안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부엌 뒤쪽에 작은방, 안방 뒤쪽에 곡물을 쌓아 두던 '고팡'을 마련하였다. 대청마루와 안방 앞쪽으로는 툇마루를 두었고 대청마루에 두 개의 쌍여닫이널문을 설치하였다. 그 중 오른쪽 문에는 바깥사람과 잠깐 말을 나눌 때 사용하는 '호령창'을 만들었다. 부엌 앞에는 물동이를 넣는 바구니(물구덕)을 얹어두는 넓적한 ‘물팡’이 있다.
헛간채는 1칸으로 멍석이나 살림도구를 두던 곳이다. 안채 옆에 오래된 뒷간이, 집 입구에는 현대식 뒷간이 있어 좋은 대조가 된다.
여관으로서 특이한 가옥 형태는 찾아볼 수 없지만 평범하고 단촐한 옛 농가의 형태를 살피고 대문 없는 민가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명칭 변경
당초 문화재 지정명칭은 '성읍 이영숙 가옥'이었으나, 본래 고창환이 살던 집을 2004년 남제주군에서 매입한 집임을 감안하여 '제주 성읍마을 고창환 고택'으로 2017년 2월 28일 명칭이 변경되었다.]
16:00~16:27 렌트한 승용차로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서문로 14 번지에 있는 정의향교를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62-3 번지에 있는 섭지코지 노외공영주차장으로 이동 [27분, 17.9km]
16:27~17:00 [섭지코지 노외공영주차장~휘닉스제주섭지코지 바람의언덕~섭지코지 노외공영주차장]의 동선으로 섭지코지를 탐방 [이동거리 : 1.5km] [33분 소요]
[섭지코지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섭지코지로 107
섭지코지는 코지(코지곶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코의 끄트리 모양 비죽 튀어나온 지형이다. 위치상으로는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 해안에 돌출되어 있다. 외지인들에게는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데 대개의 경우 신양리 해안 국도변에서 마을로 진입하여 이정표를 보고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가면 코지 끝에까지 이를 수 있다. 또는 서귀포 방면에서 찾아온다면, 표선 시내를 지나 약 7km쯤 가서 우측으로 해안 도로 표지판이 나오면 여기서 우회전하여 줄곧 바다를 끼고 정면으로 섭지코지 전경을 바라보며 달리다가 이내 신양해수욕장 백사장이 보이고 마을 앞에 이르러 우회전, 마찬가지로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특히 이곳의 유채꽃은 밝은 햇살과 푸른 바다 빛과 어울려 그 어느 곳에서보다 더욱 선명하고 고운 빛깔을 띠고 있다. 넓고 평평한 코지 언덕 위에는 옛날 봉화 불을 지피던 협자연대라는 돌로 만든 봉수대가 세워져 있는데 높이 약 4m, 가로세로 9m의 정방형으로 비교적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연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솟아있는 봉우리는 일명 붉은오름으로, 제주말로 송이라고 하는 붉은색 화산재로 이루어진 오름인데, 정상에 서있는 하얀 등대의 모습이 노란 유채꽃밭과 오름의 붉은 흙빛, 그리고 파란 하늘빛, 바다 빛과 대비되는 또 다른 이국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등대까지는 철계단이 마련되어 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으며 등대 난간에 올라서면 과연 기가 막힌 섭지코지의 해안절경이 바로 코앞에 펼쳐진다.
상세정보
영화.드라마 촬영지 - 단적비연수, 이재수의 난, 천일야, 올인
입장료 : 무료
섭지코지 노외공영주차장 소형차 주차요금 : 최초 30분 이내 1천원(15분 초과시마다 500원 추가, 당일 최대요금 3천원)
화장실 : 있음]
17:00~17:11 렌트한 승용차로 섭지코지 노외공영주차장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263 번지에 있는 광치기 해변 공영주차장으로 이동 [11분, 6.1km]
[15현서 제주목·정의현·대정현 체제로 개편
제주일보 기사 승인 2023.06.27.
(179) 탐라·동도·정의현 역사문화 깃든 길
1416년 제주목·정의현·대정현 체제
먼 거리로 인한 폐단에 장계 올려
정의현 최초의 현청 있었던 수산
현재 고성리로 옛 성곽 흔적 남아
1423년 향교와 함께 성읍으로 옮겨
▲차현우 난과 왜구의 침입 그리고 제주승첩
제주사연표(2005년) 등에 의하면, 1374년 최영장군 부대가 목호의 난을 진압한 다음해인 1375년(우왕 1)에도 제주에서는 ‘차현우 난’이 일어났다. 목마관리의 공백기를 틈타 차현우 등이 말과 관련한 관사에 불을 지르고, 안무사 임완·목사 박윤청·마축사 김계생 등을 죽이고 민란을 일으켰다. 이에 성주 고신걸과 왕자 문신보는 병사를 모아 차현우 등을 물리쳤다.
1376년과 1377년에는 왜구들이 200척이 넘는 배에 나눠 타 수천 명이 제주에 침입, 전도에 걸쳐 노략질을 했다. (일설에는 목호 가족들을 구출하려 입도했다고도 전한다.) 이에 성주 고신걸과 왕자 문신보는 전라도 수군 도만호 정용과 윤인우 등과 함께 이들을 막아냈다. 1555년 일어난 을묘왜변 제주대첩보다 177여 년 앞서 제주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친 것이다.
특히 성주 고신걸은 적의 화살을 맞으면서도 앞장서 왜구를 격퇴했다. 이 승첩이 고려 조정에 알려져 호조판서(戶曹典書)와 여러 귀중품이 하사(下賜)됐다. 이에 고신걸은 아들 봉례(마지막 성주)와 함께 조정을 찾아가 답례하기도 했다. 제주고씨 전서공파는 이로부터 비롯됐다 한다.
한편 8준마를 거느리던 이성계 장군은 1388년 제주마 응상백을 타고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후 1392년 조선을 개국했다.
▲제주목·정의현·대정현 3읍의 탄생
제주에서는 1300년 즈음 실시된 기존의 동서도 15현 체제에서 1416년 제주목·정의현·대정현으로의 3읍 체제가 들어선다. 조선왕조실록 등에 따르면, 제주 목사(겸 안무사) 오식과 전 판관 장합 등이 조정에 제주3읍 정립을 위한 장계를 올리니, 조정이 이를 윤허(允許)했다.
조정에 올린 장계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산남에 사는 백성들은 왕래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관리들은 군마를 고찰한다는 핑계로 폐단을 일으키고, 아무 때나 사냥하면서 약한 백성들을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목사와 판관이 그 사연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해를 거듭할수록 여러 폐단이 생겨났다. 이에 오식 목사 등이 조정에 장계를 올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본읍인 제주목에 동도의 신촌현·함덕현·김녕현과 서도의 귀일현·고내현·애월현·곽지현·귀덕현·명월현을 귀속시켰다.
특히 산남 90여 리 땅을 동서로 나눠 동도에는 정의현을 본읍으로 삼아 토산현·호아현·홍로현 3현을, 서도에는 대정현을 본읍으로 삼아 예래현과 차귀현 2현을 소속시켜, 목에는 목사를, 현에는 현감을 뒀다.
▲정의현의 첫 현청 도읍지 고성리
1416년 제주·정의·대정 삼읍 체제로 출발할 당시에는 정의현 현청을 수산(현재의 고성리) 지경에 뒀다. 이후 정의현의 첫 도읍지로 최초의 현성이 있었던 수산리 지경은 옛 성이 있었던 마을이라 해 고성(古城)이라 불리게 됐다.
지금의 고성리에 구축했던 정의현청 성곽은 1910년 일제의 ‘읍성철폐령’에 의해 성산포의 터진목 등 바다를 메우는 데 사용됐다. 정의현 첫 현성의 성문이 있었던 곳은 지금 마을길로 바뀌었다. 옛 성곽의 흔적으로는 고성리 서쪽 속칭 도깨비동산에 폭 2m, 높이 2m, 길이 150m 정도가 남아 있다.
탐라순력도 수산성조(首山城操)에는 이곳을 구수산 고성(舊首山 古城)이라 표시하고 있으며, 또한 지금의 고성리 일대가 잘 그려져 있다.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해 제주에 온 군위오씨 입도조인 오석현 전 나주영장의 묘가 있는 수산봉은 수산리가 아닌 고성리에 속한다.
이에서 보듯 고성리는 오래전 수산리 지경이었다. 처음 우도 가까이에 있었던 정의현에는 강풍이 자주 몰아쳐 곡식이 잘 익지 않고, 왜적이 자주 침범했다 한다. 조선왕조실록(탐라록)과 탐라지 등에 따르면, 1417년 정의현감 이이는 한라산 남쪽에 연달아 있는 정의현 4현을 살피고 난 후, 백성들이 왕래하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정의현의 중앙인 서촌·진사·토산 중 적당한 곳에다 읍성을 설치하는 게 좋겠다는 장계를 올렸다.
1420년에도 제주경차관 박호문이 정의현성 안에는 샘물이 없어 가물 때는 15리 밖에서 물을 길어오니 현청을 토산 또는 진사리로 옮길 것을 건의했다. 이에 조정에서는 1422년(세종 4) 12월 목사(도안무사 겸임) 정간에게 명하여 정의현성을 진사리로 옮기도록 하니, 이듬해인 1423년 판관 최치렴 감독 하에 3읍 백성을 동원해 돌로 축성케 했다. 당시 성의 주위는 2981척이고, 높이는 13척이었다. 정의향교 역시 1420년 지금의 성산읍 고성리에서 생도 50명으로 문을 열었다가 현청이 1423년 성읍으로 옮기면서 향교도 옮겨갔다.
▲배추의 기(裵樞之記)에 실린 정의현 이설과 축성 과정
‘배추의 기’를 쓴 이(裵樞)는 목사를 수행하던 관리의 이름이다. 1423년 제주판관 최치렴의 감독 하에 정의현을 축성하게 한 목사는 정간이다. 정간 목사는 정의현성의 성읍으로의 이설과정을 현청 낙성식에 목사를 수행한 배추에게 쓰도록 명하였다. 이에 배추가 남긴 기록이 ‘배추의 기’이다. 배추의 글 중 정의현성 이설 및 축성과 관련한 주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한라산는 섬 가운데 웅거하고 제주는 산의 북쪽에 있다. 산의 동서가 모두 제주에서 90리 거리이며 산의 남쪽 또한 멀다. 백성들이 왕래하는 데 이틀이 소요되고 관청에서 공문을 보내면 며칠 뒤에야 도착한다. 이런 까닭에 목사 오식이 제주를 안무할 적에 제반 사항을 갖추어 조정에 보고하여 (제주를 1416년) 셋으로 나누었다.
서쪽에는 대정현을 동쪽에는 정의현을 두었는데, 정의는 가장 동쪽에 위치하여 산남까지의 거리가 적어도 80-90리는 되었다. 이에 도안무사(겸 목사) 정간이 순시하여 진사리에 이르러 말하기를 ‘여기에 현을 세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정간 목사가 이를 백성들에게 물으니 모두 기뻐하여 따랐다. 이에 임금께 알린 후 세 고을 백성을 사역시키고 판관 최치렴에게 감독하게 하였다. 최치렴 공은 성곽의 두께, 높이, 노동력, 공기(工期) 등을 헤아리고 계산하여 명령을 부지런히 이행하였다. 궁가(弓家:성가퀴)를 높이고 세 문을 세우니, 성터는 2520자이고, 높이는 13자이다. 계묘(1423년) 정월 초 9일에 시작하여 13일에 끝나니, 이룬 결과가 심히 신비스럽다.”]
17:11~17:25 광치기 해변에서 영주십경(瀛州十景) 중 제1경인 성산일출봉을 사진촬영 [14분 소요]
[성산일출봉에서 섭지코지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광치기 해변은 제주올레 1코스의 마지막이자 2코스가 시작되는 곳이다. 펄펄 끓던 용암이 바다와 만나 빠르게 굳어지며 형성된 지질구조가 특징이며, 특히 썰물 때는 바닷물에 가려있던 비경들이 속속들이 들어나 숨은 비경을 선사한다. 용암 지질과 녹색 이끼가 연출하는 장관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내어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사진명소이기도 하다. 특히 성산일출봉 옆으로 뜨는 일출을 한 프레임에 담을 수 있어 연말연시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광치기 해변의 모래는 현무암의 풍화작용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입자로, 검은 색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영주십경(瀛州十景)은 제주에서 경관이 특히 뛰어난 열 곳을 선정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제1경 성산일출 (城山日出) - 성산의 뜨는 해
제2경 사봉낙조 (紗峯落照) - 사라봉의 떨어지는 햋빛
제3경 영구춘화 (瀛邱春花) - 영구(속칭 들렁귀)의 봄꽃
제4경 정방하폭 (正房夏瀑) - 정방의 여름 폭포
제5경 귤림추색 (橘林秋色) - 귤림의 가을 빛
제6경 녹담만설 (鹿潭晩雪) - 백록담의 늦은 겨울 눈
제7경 영실기암 (靈室奇巖) - 영실의 기이한 바위
제8경 산방굴사 (山房窟寺) - 산방산의 굴 절
제9경 산포조어 (山浦釣魚) - 산지포구의 고기 낚시
제10경 고수목마 (古藪牧馬) - 풀밭에 기르는 말]
17:25~17:23 렌트한 승용차로 광치기해변 공영주차장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307-1 번지에 있는 성산마을제단으로 이동 [3.9km] [8분 소요]
17:23~17:40 성산마을제단에서 영주십경(瀛州十景) 중 제1경인 성산일출봉을 사진촬영
[성산마을제단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관련항목 보기에 있는 포제단.
성산리의 포제는 마을의 무사 안녕과 생업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유교식 공동체 의례이다. 포제는 해방 후 한때 중단되었다가 주민들이 다시 복구하였다고 한다. 해안 마을답게 용신(龍神)을 모시는 특징이 있다.
[위치] 성산리 포제단은 성산리 306번지에 있다. 속칭 ‘용당’ 지경이라 부르는 곳으로, 일출봉이 보이는 바닷가 언덕이다.
[형태] 성산리 포제단 주위에 시멘트를 덧바른 돌담을 사각형으로 높이 쌓아 두르고 철문을 달았다. 그 안에 대리석으로 제단을 두 개 만들었다.
[의례] 포제는 매해 정월 정일(丁日)을 택하여 자시(子時)에 한다. 제관은 13~15명 정도이다. 포제단과 가까운 개인집을 빌려서 제청으로 삼고 제관들이 모여 3일 정성을 한다. 성산리 포제는 포신제와 용신제를 동시에 한다. 왼쪽 제단은 본단(本壇)으로 포신(酺神)을 위하고, 바다 쪽인 오른쪽에 있는 제단은 별단(別壇)으로 용신(龍神)을 위한 것이다. 한편 액사한 혼을 위령하기 위해 하단(下壇)에도 제를 지냈었으나 1980년부터는 하단제를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포제는 유교식 공동체 의례로서 마을의 무사 안녕과 생업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의 유대 강화를 위한 소중한 의례이다. 성산리 포제는 해안 마을의 특성을 반영하여 용신을 함께 모시는 사례이다.]
17:40~17:53 렌트한 승용차를 타고 제주특별자치도 성산마을 제단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 2 번지에 있는 지미봉 주차장으로 이동 [13분, 7.8km]
산 :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지미봉
[지미봉(地尾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기생화산.
해발 165.8m이며 높이는 160m이다. 지미봉은 제주도의 동쪽 땅끝에 있는 봉우리를 의미한다. 봉우리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설치한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있다. 지미봉은 해안가와 가까워 철새들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저어새와 도요새가 많고 그외 희귀조류도 많이 관찰된다. 정상부에서는 우도를 포함하여 제주도의 동쪽 해안을 조망하는 경치가 좋고 매년 1월 1일에는 해돋이행사가 열리고 있다.]
산행코스: [지미봉 주차장~지미봉 정상~지미봉 주차장]
산행일 : 2025년04월29일(화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50분 소요)
17:53~18:1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 2 번지에 있는 지미봉 주차장에서 산행출발하여 지미봉(해발 165.8m) 정상으로 이동
[지미봉(地尾峰)
종달마을 입구 동북 방향에 있는 오름으로 산 위 등성이는 원뿔 모양의 동쪽 봉우리가 주봉(정상)이다. 북쪽에서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졌고, 서북 쪽 기슭에는 하도리 창흥동 양어장이 있으며, 이 지역은 철새도래지(둘레 약 3,700m, 면적 약 369,000㎡)로서, 겨울이 되면 겨울 철새인 저어새, 도요새, 청둥오리 등이 날아와 겨울을 난다. 성산일출봉과 우도, 종달항과 종달리 앞바다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지미봉은 올레기 21코스에 자리하고 있어 많은 올레길 관광객이 찾는다. 경사가 비교적 높아 편한 운동화를 착용해야 하며, 하산 시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오름 꼭대기에 봉수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북서로 왕가 봉수, 남동으로 성산 봉수와 교신하였다고 한다. 지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곳이 제주 섬의 꼬리 부분에 해당되기 때문이고, 한자로 보는 뜻을 빌어 지미봉(地尾峰)이라 표기하며, 속칭으로는 '땅끝'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한경면 두모리를 섬의 머리 또는 제주 목의 머리라 하고, 동쪽 끝의 이 오름을 '땅끝'이라 했다고 한다. 두산봉, 은월봉, 식산봉 북사면에 말굽형 분화구가 북향으로 벌어진다.]
18:13~18:23 지미봉 정상에서 주위 파노라마 풍경을 사진촬영 후 휴식
[지미봉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우도가, 동남쪽으로 영주십경(瀛州十景) 중 제1경인 성산일출봉이, 남쪽으로 종달리 해수욕장과 그 뒤로 대수산봉이, 남서쪽으로 두산봉과 그 뒤로 대왕산이, 서쪽으로 다랑쉬오름과 그 뒤로 멀리 한라산이, 서북쪽으로 제주시 구좌읍의 세화해변이, 북쪽으로 하도해변과 그 뒤로 토끼섬이, 북동쪽으로 종달리 고망난돌 쉼터가 조망된다.]
18:23~18:43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 2 번지에 있는 지미봉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여 지미봉 산행을 완료
18:43~19:05 렌트한 승용차로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산 2 번지에 있는 지미봉 주차장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33-3 번지에 있는 월정리 해수욕장으로 이동 [22분, 13.7km]
[월정리 해수욕장
제주도의 동쪽에 있는 마을인 월정리는 달이 머문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서정적인 풍경의 마을이다.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그 위에는 밝은 달이 비친다.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월정리 해변을 방문한 여행객들은 저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해변의 경치를 만끽한다. 특히 수심이 얕은 편이기 때문에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좋다. 월정리의 아름다운 풍광이 여행객들 사이에서 점점 유명해질수록 월정리의 해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났고, 그에 맞춰 다양한 식당과 카페, 숙박시설 등이 많이 들어서 있다. 몇몇 카페는 사람들이 바다를 보며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를 두었는데, 이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하나의 포토 스폿이 되기도 했다. 월정리엔 카메라를 들고 제주도 여행의 추억을 담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밖에 서핑, 스노클링, 카약 등 다양한 수상 레포츠를 즐기며 보다 더 역동적으로 해변에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있다. 월정리 해변은 일정한 높이의 파도가 지속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서핑을 하기 좋아 서퍼들이 즐겨 찾는다. 제주도 올레길 20코스 [김녕-하도 올레]와 [김녕-월정 지질 트레일 코스]의 일부여서, 뚜벅이 여행객들이 걷다가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쉴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19:07~19:20 월정리 해수욕장에서 일몰 광경을 사진촬영
[2025년 04월 29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몰시각 : 19시15분]
19:20~19:30 렌트한 승용차로 월정리 해수욕장을 출발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남2길 36 번지에 있는 빨간풍차펜션(Tel : 010-6425-1645)으로 이동 [10분, 6.7km]
[이동 중에 주유소에서 인수 상태의 휘발유를 유지하기 위하여 원 어치 주유]
[아고다 예약(예약번호 : ) 2025년04월29일(화요일) 1박 숙박요금 : ₩(세금 및 제반요금 포함) [월일 현대카드로 결제]
조식(라면, 토스트, 계란, 잼, 커피)이 숙박요금에 포함(조식 시간 : 7시~9시)
관리동 바로 옆에 조식 먹는 장소인 공용식당이 있고 정수기 있음.
펜션은 객실 건물인 1동과 2동, 그리고 관리동으로 구성되어 있음.
퇴실 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해야 됨. 관리동 옆 공용식당에 분리수거통 있음.]
19:30~19:50 빨간풍차펜션 객실에 입실하여 짐 정리 후 휴식
19:50~20:00 렌트한 승용차로 빨간풍차펜션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 88-1 번지에 있는 장터밥집으로 이동 [10분, 4.3km]
[영업시간 : 매일 06:00 ~ 23:00
전화 : 010-3880-4524
대표 메뉴
해물순두부찌개 백반 9천원]
20:00~21:00 장터밥집에서 해물순두부찌개 백반에 공기밥 1개를 추가하고 막걸리 2병과 병맥주 1병을 반주로 저녁식사
[저녁식사 비용=해물순두부찌개 백반 9천원+공기밥 1개 추가 1천원+막걸리 2병 6천원+병맥주 1병 5천원=21,000원]
21:00~21:10 렌트한 승용차를 타고 장터밥집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김녕남2길 36 번지에 있는 빨간풍차펜션(Tel : 010-6425-1645)으로 회귀 [10분, 4.3km]
21:10~22:30 빨간풍차펜션 객실에서 샤워 후 TV를 보면서 휴식
22:30~ 빨간풍차펜션 객실에서 취침
제주도 관광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