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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아노씨 부부를 기다리며
2023.6.6
카시아노씨 가족은 회사를 퇴직하고 여주 도전리에서
2막 인생을 시작할 즈음 만난 가족이다.
스승예수 제자수녀회 성당으로 매일 새벽미사를 다닐 때,
매일 부모와 함께 다섯 명의 아이들이 미사에 와서
맨 앞자리에 앉아 우렁차게 성가를 불렀다.
그 가족을 매일 보는 것이 산골에서 맞이한
놀라운 광경이며 행복한 시간이었다.
스승예수 수녀회 새벽미사에는 많은 주민이 참례했다.
카시아노 가족(7명)은 우리보다 10년 먼저 이 동네에 이사를 왔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 속에 그 집 하나만 있었다.
승용차로는 가기 힘든 산 속 길을 10분 이상 차를 타고 들어가면
손수 판 연못도 있고 손수 지은 소박한 집,
그리고 동물들(흑염소, 양, 닭 등)을 기르고 있었다.
그 후 카시아노 댁을 방문하기도 하고
우리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 카시아노 형제댁 친교방문(2006년)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온 식구가 미사를 오는데
맨 앞에서 큰 소리로 성가를 부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한 번은 홍수로 길이 끊겼는데 1시간 가까이 걸리는 다른 길을 통해
미사에 참례하는 열심한 신앙인 가정이었다.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석양이 지는 6시경 도착해보니 온 식구가 손수 판 연못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삼종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흡사 밀레의 만종처럼…
이후 우리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아내가 제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성탄절 미사 때 카시아노 자녀들이 하는 작은음악회에
서울에서 온 우리딸이 반주를 해주기도 했다.
카시아노씨 가족을 보내며
2007.7.25
매일 일곱 식구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미사에 참례하여 꾀고리 같은 목소리로 성가를 불러
미사 참례한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을 감동시켰던 우리 마을의 마스코트
카시아노, 마틸다 가족이 오늘 이곳 도전리를 떠났습니다.
멀리 미국으로...
어제 미사시간에 떠난다는 이야기를 신부님께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후
마을주민들과 수녀님들은 못내 아쉬워 눈시울을 붉히는 분도 많았습니다.
카시아노 형제님!
이제 매일아침 형제님 가족을 뵐수 없다는 것이 무척 섭섭합니다.
그러나 '회자정리'란 말처럼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는 것" 이라지요.
야고버, 리디아, 레오, 요안나, 필립보, 그리고 마틸다 자매님!
불러보면 정겨운 이름입니다.
저희 가족은 형제님 가족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님 가족과의 만남이
우리 가족을 더 좋은 가족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스코트 니어링이 죽기 전 마을사람들이
"당신이 살아서 세상은 조금 나아졌습니다" 라는 플랭카드를 걸었듯이
카시아노 형제님 가족의 삶을 배울 수 있도록
어디에 계시든 잘 사시기 바랍니다
'안보면 멀어진다'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기도 중에 자주 만날 것을 다짐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 하기길 빕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어느 곳에서든지 너를 내게로 이끌겠다."
그런데 우연히 도전리 생각을 하다가(가끔 도전리 생각을 하지요)
현재도 도전리에 살고 있는 아타나시오 형제가 생각났습니다.
그 형제도 아이가 5명으로 카시아노씨 가족과 친했지요.
그래서 작년 9월 아타나시오 형제에게
카시아노씨 근황을 물어보니 몇 년전 까지는 연락을 했는데
그 동안은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서
몇 년 전 통화했던 전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번이 바뀌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카톡을 했는데 카시아노 형제가 연락이 되었고
장성한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고 근황을 알려주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진 설명과 함께
올 1월에 결혼한 야고보 사진이에요
왼쪽부터 막내 필립보,레오,카시아노,큰 며느리 로사,야고보,마틸다,
리디아,레오 아내 빅토리아와 딸 에린,그리고 요안나예요.
지금 늘어난 저희가족 모두입니다.
그 후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소식을 알고 지냈습니다.
아이들도 장성해 이제는 하던 사업도 접어 시간의 여유도 있다합니다.
도전리 집은 비워둔 상태로 미국으로 갔기에
도전리 집이 궁금해 가끔 귀국해서 집을 돌볼 예정이라하기에
오게 되면 제주에 꼭 방문할 것을 권했지요.
그 부부가 5월 31일 전화로 연락이 왔습니다.
시간을 내어 2박 3일 (6월 7일 ~ 9일) 제주에 오겠답니다.
벌써부터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만날 날이 기다려집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헤어진 후
16년 만의 만남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제주에서의 알찬 시간을 보내기위해
비행기표 예약, 숙소예약(우리집 바로 건너편집), 여행할 곳, 식사 등
내가 여행하듯이 계획을 짜면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덕분에 손님맞이 집안 대청소도 했지요.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헤어져 있던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반갑지 아니한가?"
카시아노 부부와 보낸 2박 3일
1일차(6월 7일)
오늘 정기검진 결과 상담차 병원에 들린 후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부부가 탄 비행기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전광판을 보고
16년 만의 만남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혹시나 얼굴을 기억 못할까 문 두 곳을 아내와 나누어 맡고
나오는 승객들 하나 하나 보면서 기다린지 20여분 후(2시30분)
드디어 아내가 보고있던 문으로 두 분이 모습을 나타냈고
나도 발견하고는 달려갔지만 아내가 먼저 두 분을 포옹하며
반겼고 이어서 나도 같이 반갑게 맞이했다.
두 분 모두 건강한 모습을 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먼 이국 땅에서 5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16년간 거의 모든 시간과 세월을 헌신한 부모에게~
이 후 중문 대포주상절리로 차를 몰았다.
40여분 동안 차 안에서 그 동안 궁금했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주변공사 중이라
주차장과 입장료를 받지않고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었다.
산책로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바닷가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 대포주상절리[柱狀節理]
마그마의 냉각과 응고에 따른 부피 수축에 의해 생기는, 다각형 기둥 모양의 금.
암석이 결과적으로 다각형 기둥 모양이 열주해 있는 듯 보여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 형제섬(바위)
그 동안 거의 밀물일 때 바닷물에 거의 잠긴 것을 보았기에
형제바위로 알고 있었지만
바닷물이 빠져나간 형제바위는 정말 섬모습을 보였다.
파란 잔디처럼 풀이 깔려있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형제섬이라고도 불러야겠다.
밀물일 때는 형제바위, 썰물일 때는 형제섬으로~
▼ 모슬포에서 저녁식사
고등어 세트와 자리회
고등어회가 이처럼 싱싱하고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고
부부는 몇 번이고 감탄을 했다.
아내가 자리를 먹지 않으면 섭섭하다고 하여
자리회 반접시를 업소 사장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함께 먹었다.
포만감을 느껴 코스로 나오는 순서 중 고등어 조림과 탕은
싸달라고 부탁하여 집으로 가지고 왔다.
내일 아침 식사때 먹기로 하고.
▼ 우리 집에서
숙소에 같이 가 짐을 풀고 우리집으로 와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카시아노 부부가 선물로 가져 온 수반과 돼지머리를 받고
우리는 부부에게 고무신을 선물했다.
이후 5리터 생맥주통을 개봉하고 생맥주를 먹으면서
그 동안 궁금했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3차 국내성지순례 시 카시아노씨 부부를 만날 수도 있었는데
한국에 와 있는 사실을 몰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나누고
167곳 성지를 마친 사실을 말하고 순례책자를 보여주었다.
아내가 여분으로 가지고 있던 성지순례 책자를 가지고 와서
카시아노 부부에게 전달하며 내일 제주 성지에 가면
스탬프를 찍으라고 권하며 전달했다.(이번에 3개를 찍을 수 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기에 아쉽지만 헤어지고
다음날 아침 9시에 우리집에서 아침을 먹자고 약속하고
1일차 여행을 마무리 했다.
2일차(6월 8일)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었지만 4시 경 잠이 깨어 컴퓨터를 켜고
오늘의 기상상태를 보니 새벽 5시 부터 7시 까지 비가 조금 온다는 예보가 있다.
씨마늘을 마당에 널어놓았기에 걱정이 되어 밖을 보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얼른 옷을 입고 창고에 들어가 갑바 천막을 꺼내서 덮었다.
덮고나자 빗줄기가 조금 더 세졌지만 비를 맞히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고 차 한잔을 마시고 10시 조금 넘어서
1차 행선지인 새미은총의 동산으로 향했다.
부부가 몇 십년 전 제주에 다녀갔을 때는 와 본 적이 없기에
천천히 산책하면서 묵상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산책길에 오디, 산딸기, 버찌도 맛보면서~~
▼새미 은총의 동산
새미 은총의 동산은
천주교 제주교구 제3대 교구장이었던 김창렬(金昌烈) 바오로 주교가
‘신자들의 공경과 심신을 고취시키는 방법이 무엇일까?’,
‘제주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 기도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
이시돌 목장의 금악 본당 임피제(McGlinch) 신부와
지금의 장소가 이상적이라는 의견 일치를 보아 1991년 10월 28일에
축성식을 거행함으로써 ‘새미 은총의 동산’이 조성되었다.
'새미 은총의 동산'의 옛 이름은 '구 삼뫼소 은총의 동산'인데
새미 은총의 동산으로 변경하였다.
새미(SAEMI)의 영문표기는
[Sanctus: 거룩한]
[Anima:영혼]
[Evangelium:복음]
[Mediator:중개자]
[Imago Dei:하느님의 모상]의
머리 글자를 딴 것이다.
성모동굴 앞을 지나는데 길옆에 설치된 돌담에서
독사뱀 한마리를 발견해 그를 보고 있는데
금악성당에서 12시 삼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성모동굴 앞에서 종소리를 들으며 삼종기도를 바쳤다.
성지순례 책자에 순례도장을 찍고 시간을 보니
예정시간보다 늦어졌지만 아내가 테쉬폰은 보고 가자고 했다.
가는 도중 목장 풀밭에서 풀을 뜯고있는 말들을 보고 있는데
말 한마리가 벌러덩 누워있는 것을 보았다.
카시아노 형제가 말이 쓰러지면 일어나지 못하는데
아마도 죽은 것 같다고 하였고 모두 동의하였다.
이시돌 목장 '우유부단' 업소에 도착하여 그 사실을 알리자
말이 너무 편안한 상태인 때는 종종 그렇게 누워있는다는 사실을 들었다.
'우유부단'에서 아이스크림 한 개씩 사서 먹고
테쉬폰 앞에서 사진을 찍고 둘러본 후
추사적거지와 기념관으로 향했다.
아까 누워있던 말이 궁금해 말들을 쳐다보니
정말 누워있는 말이 없었다.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다시 풀을 뜯고 있었다.
오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말도 너무 편안하면 누워있는다는 것과
혼자서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 추사 김정희 기념관, 적거지
감자 창고라고 제주도 사람들이 생각한 추사관은 담박한 건물이다.
군더더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퓨어한 건물.
세한도 속의 집을 그대로 표방한 작품이다.
세한도(歲寒圖)
국보(1974.12.31 지정)
조선 말기를 풍미했던 김정희의 문인화 이념의 최고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
위리안치라는 가장 가혹한 유배형에 처해진 추사는 외로움과 질병,
그리고 유배 중에 아내의 부고를 접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지인의 도움 또한 없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추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며 역관이었던 이상적의 도움으로
추사는 중국에서 나온 서책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세한도는 바로 제자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1844년 그려준 그림이다.
그림의 왼편에 쓴 발문에서 추사는 공자의 논어에서
"날이 차가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라는 글을 인용
자신의 처지가 곤궁해졌음에도 자신을 대하는 마음에 변함이 없는
이상적에 대한 사제지정을 표현했다.
그림 끝에 작화 경위를 담은 작가 자신의 발문과
청나라 시대 16명사들의 찬시가 적혀 있고,
이어 뒷날 이 그림을 본 김정희의 문하생 김석준의 찬문과
오세창·이시영의 배관기 등이 함께 붙어 긴 두루마리를 이루고 있다.
아내가 세한도가 그려진 부채를 마틸다 자매께 선물했다.
추사는 대정에 유배되어 8년 3개월간 귀양살이를 했다.
전후 세 차례 집을 옮겼는데 여기는 강도순의 집터에
그가 처음 살던 송계순이 집 모양을 편지에서 말한 대로 복원한 것이다.
추사에게 내려진 형벌은 '위리안치'였다.
위리안치는 유배지의 가시나무 대개는 탱자나무 울타리로 집의 사면을 둘러
보수주인(감호하는 주인)만 출입이 가능했다
▼ 대정성지: 정난주 마리아 [황사영 알렉시오 부인]묘
신앙의 불모지인 이 땅에서 정 마리아는 황사영 부인으로
수난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자로서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분이다.
신유박해의 실상을 기술한 황사영백서는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발송되기 직전에 발각되어
황사영은 대역죄인으로 체포되고
동년 음 11월 5일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으로 순교하였다.
그 결과 어머니 이윤혜는 거제도에,
처인 정 마리아는 제주도에,
아들 경한은 추자도에 각각 귀양을 가게 되었다.
제주목 관노로 정배된 정 마리아는 온갖 시련을 신앙으로 이겨냈으며,
풍부한 교양과 학식으로 주민들을 교화시켜 노비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서울 할머니’라 불리우며 이웃들의 칭송 가운데 살아갔다.
신앙만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37년 동안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다가
1838년 음 2월 1일 병환으로 숨을 거두자
그녀를 흠모하던 이웃들이 유해를 이곳에 안장하였다.
정난주 마리아 묘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위 사진 오른쪽에 비치된 순례도장을 찍고 점심식사하러 출발했다.
모슬포 항구식당에서 자리회 정식과 우럭 매운탕을 먹고
저녁에 안주로 먹을 도미회를 떠서 자동차에 싣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 수월봉
수월봉은 옛날 수월이와 녹고라는 남매가
홀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수월봉에 오갈피라는 약초를 캐러왔다가,
누이인 수월이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자
녹고는 슬픔을 못이겨 17일 동안을 울었다고 한다.
이 녹고의 눈물이 곧 녹고물이라고 전하며
수월봉을 "녹고물 오름"이라고 한다.
수월봉 정상에서 본 차귀도(왼쪽)와
오른쪽 해안가로 이어지는 올래길 12코스이자 김대건 순례길인
엉알해안산책로(수월봉지질트레일)
그리고 오른쪽 봉긋 솟아오른 오름이 당산(봉)이다.
▼차귀도(자구내 포구)
차귀도는 옛날 중국 호종단이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경계하여 제주의 지맥과 수맥을 끊고 중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의 수호신이 매로 변하여 갑자기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켰다.
배가 돌아가는 것을 차단했다고 해서
섬의 이름이 차귀도(遮歸島)가 되었다고 한다.
맨왼쪽 매섬, 그 옆 2개 봉우리는 지실이(감자)섬, 그 앞 장군바위(잘 보이지 않음),
등대가 있는 죽도(김대건 신부님 일행이 표착한 곳), 맨 오른쪽이 와도(누운섬)
이 모두를 합쳐서 차귀도라고 함
▼ 김대건 신부 표착 기념관
기도하기위해 김대건 신부 표착기념 성당에 들렀는데
평화방송에서 취재차 와서 스테인드 그라스등을 촬영하고 있었다.
기념관과 라파엘호 등을 둘러보고 성지순례 도장을 찍고
근처에 있는 우리집으로 향했다.
모슬포에서 떠온 도미회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면서
친교의 시간을 가진 후 2일차 여행을 마무리 했다.
3일차(6월9일)
아침식사 후 차 한잔씩 하고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우리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밭에서 상추를 따고, 잔잔한 꽃의 수국을 좋아하기에
가지를 꺾어서 전달했다. 여주 집에 가서 삽목을 하라고~~
신창성당을 향해 김대건 신부 해안도로로 가면서
포토포인트에 잠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김포행 13시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선인장마을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기위해 시내로 출발했다.(10시45분)
시내에 도착하니 점심먹을 시간이 부족할 듯 하여
바로 공항으로 가서 체크인을 한 후 공항에 있는 음식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진 후 우리는 치과에 들러 임플란트 치아를 심고
성체성혈 대축일 꽃꽂이 꽃을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조금 고달팠지만 즐겁고 행복한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