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노와 노름꾼들 2
니는 다시 그곳을 지나
수전노들이 모여 사는
땅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말 그대로
축적의 즐거움에만 흠뻑 빠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생기고
허리가 구부러진
거무튀튀한 존재들이
먹이를 찾는 새처럼
금 조각을 캐기 위해
검은 땅을 여기저기
파헤치고 있었지요.
뭔가를 찾아내면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라도 되는 양
조심스레 싸서
가슴속에 품고 다닙니다.
이들은 대개 혼자서 지내는데,
소중한 보물을
누가 홈쳐가기라도 할까봐
서로가 서로를
본능적으로 피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이
내 말을 잠깐 듣다가 다시
보물을 캐러 갔습니다.
그 사람 마저도
내가 혹시 자기 품안을
들여다볼까봐 두려워서
나를 몰래 훔쳐보고 있었지요.
나머지 사람들은 보물을 캐는
일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내 존재를 의식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 음침한 땅을
나와서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수전노들의 땅에서 어두운
아래쪽 영역을 향해 내려가자
지상 영계의 아래에 위치한,
지상보다 영적 수준이 휠씬
낮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 나왔습니다.
이곳은 '불안의 땅' 과
매우 흡사했지만,
영들이 휠씬 추악한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식물을 기르려는 시도는 아예 없었고
하늘도 밤처럼 어두컴컴했지요.
희미하게나마 빛이 있긴 했지만
가까운 곳의 사람이나 사물을 겨우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불안의 땅이 말다툼과
불만과 시기로 가득 찬 곳인 반면,
이곳 사람들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거나
끔찍한 폭언을 주고받았습니다.
이곳은 노름꾼과
술주정꾼들의 땅이었습니다.
야바위꾼, 사기꾼, 난봉꾼,
빈민굴의 좀도둑에서부터
상류사회의 거물급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도둑들이 모여 있었지요.
하나같이 방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개중엔 품위 있는
인생을 살 수도 있었지만
질이 안 좋은 부류와 어울리는
바람에 신세를 망치고
그 인연의 끈으로 인해
죽은 뒤에도 이처럼 어두운
영계로 끌려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곳이 내가 이를 수 있는
마지막 영계였습니다.
이곳에는 선하고 올바른 것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는데,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절망적 상태를
일깨워주는 말을 하면
말귀를 알아듣기도 하고
좀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습니다.
이 비참하고 어두운 땅의
가옥과 거주지들은
대부분 공간은 넓지만
하나같이 불결하고 추악하고
소름 끼치는 외관을 하고 있었습니다.
빈민굴에서나 종종 볼 수 있는,
한때는 아름답고 홀륭했지만
이제는 죄악과 범죄의 소굴이 되어버린
건물들과 매우 흡사했지요.
시 외곽에는 허름한 집과
오두막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지상 도시의 음울하고
조잡한 복사판 같은 도시에는
건물과 사람들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어딜 가든 너저분함과
불결함이 판을 치고,
아름다운 곳이라곤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탁한 기운이
그에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비참한 지역에서
별모양의 작은
불빛을 들고 다녔습니다.
불빛이 너무나 작아서
내가 움직이면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작은 빛처럼 보였겠지만,
그 불빛은 내 주변을 밝혀서
아직 사악한 욕정에
눈멀지 않은 사람들을 비추어주는
희망의 빛이었지요.
문간이나 벽이나 허름한 밤 같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 빛을 보고 몸을 일으켜,
나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을 벗어나서
좀더 나은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렇게 몇몇 사람들은
남을 돕는 일에 동참하도록
설득할 수 있었지만,
대개는 자신의 불행을
해결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들에겐
발전이라 할 수 있어서,
곧 다른 사람을 돕는 방법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이 지역을
돌아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넓고 황량한 벌판에 있는
큰 도시의 변두리에 나와 있었습니다.
검고 메마른 토양은 마치 거대한
석탄재의 더미처럼 보였습니다.
주변에 막 쓰러질 듯한 작고
허름한 오두막들이 있었는데,
우중충한 도시의 경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지요.
갑자기 오두막집 한 곳에서
왁자지껄하게
싸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호기심이 들기도 하고
또 도움을 줘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그쪽으로 가보았습니다.
그곳은 집이라기보다는
헛간에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크고 엉성한 탁자가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는데,
십여 명의 사람들이 조잡한
나무의자에 빙 둘러앉아 있었지요.
말이 좋아 사람이지,
사람이라 부르는 게 인류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험상궃고 뒤틀린
외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하며 몸뚱아리와
기형적인 팔다리는
차마 말로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흉물스러웠습니다.
옷차림도 기괴하고 남루하거나
혹은 몇백 년 전의 옛날 옷도 보였고.,
좀더 신식 옷을 걸친 자들도 있었지만
더럽고 너저분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은
음흉한 복수심으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지요.
그 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보다
더 등급이 낮고 어두운 곳에서
휠씬 무시무시하고
악독한 사람들을 보게 됐는데,
그에 비하면 이곳 사람들은 차라리
온순하고 인간적이라 할 만합니다.
나중에 가장 밑바닥 세계인 지옥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만,
아무튼 지금 이 오두막에서
싸우고 있는 영들은
탁자 위에 놓인 동전 가방을 놓고
다툼을 벌이고 있던 차였습니다.
그 가방은 그들 중
한 명이 발견한 것인데,
도박에 쓰이는 판돈이었지요.
다들 상대방 입장은
아랑곳없이 자기 혼자
그것을 독차지하려고
악다구니를 쓰고 있었습니다.
목소리 크고
힘센 사람이 최고라는 듯,
이들은 서로를
거칠게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전들은 지상에서
쓰이는 것과 똑같았는데
돈을 발견한 사람은
20대쯤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로
아직 선량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얼굴에 배어 있는
방탕한 인상만 아니었다면
그곳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는 그 돈이 자기 것인데
노름을 하려고
꺼냈다가 빼앗겼다고 소리쳤습니다.
왠지 내가 간여할 일이 아닌 것 같아
분노에 찬 아우성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않았을 때
오두막에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돈가방을 든 청년 옆에서 뒤엉킨 채
치고받고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청년을 발로 차고
때리며 돈가방을 낚아챘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모두가
달려들어 그 사람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 청년은 무리에서
빠져나와 내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때 속은 것을 깨닫고
화가 치민 무리가 다시 청년을
쫓아와 두들겨팼습니다.
가방 안에는 돈 대신
돌맹이만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옛날이야기에서처럼
동전이 전부 돌로 둔갑한 것입니다.
불쌍한 청년은 내게로
달려와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악마들로부터 자기를
구해달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자 온 무리가 청년을
잡으러 우리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나는 재빨리 그 청년을 데리고 근처의
빈 헛간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지 않도록 등으로
받치고 온 힘을 다해 밀었습니다.
그들이 아우성을 치며 문을
두드리고 내리찍고 부수려 했지만,
나는 사력을 다해 버렸습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을 열지 못해 잔뜩 성이 난
그들은 또 다른 시빗거리를
찾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