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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기 1 —네팔의 "소나울리"에서 인도의 "바라나시"로— "소가 있으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면 되고"
<인도 "바라나시"의 위치>
<확대지도: "소나울리"에서 "바라나시"로>
2011년 10월 20일 아침 9시, 네팔과 인도의 국경선을 넘었다. 국경선을 넘자마자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 무슨 냄새인가 했더니 온갖 쓰레기와 동물의 분비물에서 나온 냄새였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오줌 냄새와 개똥 냄새였다.
인도 이민국을 향해 걸었다. 길 위의 쓰레기가 발에 밟히더니, 이 쓰레기는 소용돌이 바람을 따라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가을날 덕수궁 돌담 길에 흩어진 낙엽이 날리는 것은 그야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데모 대원이 광장을 어지럽힌 후 자리를 뜨고, 그 자리에 또 다른 데모 대원이 와서 데모를 하고 간다. 이렇게 하기를 수십 번, 그 뒤에 수십만 비둘기 떼가 "뭐 먹을 것이 없나?"하고 내려 앉는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한 방의 대포를 쏜다. 그 소리에 놀라 한꺼번에 푸드덕 거리며 땅에서 하늘로 날아 올라갈 때, 온 천지에 흩어지고 나부낄 쓰레기와 먼지를 상상해보라. "바로 그곳이 그러했다"라고 말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과연 어디에다가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땅을 바라보면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겠고, 인도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나에게 해코지할 것 같고, 하늘을 쳐다보면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질 것 같았다. 장님 공사판 걷듯, 나는 앞 사람 뒤를 바짝 따라 인도 이민국으로 들어갔다.
<네팔에서 국경선을 넘자마자 인도 땅에서 네팔을 향해 찍은 사진. 조금 지나면, 길은 쓰레기 천국이 된다. 같이 간 여행 동료들의 표정이 당시의 상황을 어느 정도 말해 주고 있다.>
이민국 직원인지 공사판 노무자인지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복을 입은 것도 아니고, 무슨 모자를 쓴 것도 아니고, 구닥다리 볼펜 하나 갖고 있으면 그가 바로 이민국 직원이다. 대충 서류를 작성해서 넘겨주고, 그도 대충 보고 싸인해서 넘겨주는 여권을 나꿔 채 듯 받아서, 우리 차가 주차해 있는 곳으로 갔다.
웬 이상한 청년이 우리 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돈을 달라고 했다. 자동차 문을 열어준 뒤 팁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며칠을 굶었는지, 아니면 마약을 먹었는지, 몸은 *겨릅대처럼 말랐으며, 눈은 검은자가 보이지 않고 흰자만 보이는 젊은이가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문 앞에 턱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디 외계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했다.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저리 가라고 하니, 그 젊은이는 욕지거리라고 생각되는 이상한 말을 쏟아 부으며 다른 먹이감을 찾아 술주정뱅이 비틀거리듯 걸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시라도 이곳을 빨리 떠야 한다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우리가 지금 인도 땅에 도착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수근거렸다.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는 인도, 「훔쳐가다가도 "모든 것이 신의 뜻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뿐인 나라」라는 이야기를 듣던 바로 그 나라다. 네팔을 떠난 지 단 몇 분만에, 우리는 사람을 죽인 범법자나 된 듯, 모두 야코가 팍 죽어서, 기도 못 피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입만 버벅거리면서 먼 하늘만 쳐다 보았다.
그 뒤 우리의 자동차는 들판을 달렸다. 아주 가끔 가다 보이는 사람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마을, 검은 물소가 풀을 뜯기도 하고, 드물게 양(羊)이 보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넓은 아스팔트 길이었으나, 가면 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아스팔트는 망가져 있었다.
<길 오른 쪽에 휴게소가 있고, 휴게소 쪽에서 던져주는 음식을 받아 먹기 위해 길 반대 쪽에서 원숭이들이 앉아 있다.>
어떤 쉼터에 도착했다. 그곳의 특징은 원숭이가 많다는 것. 동물원에서 사람이 원숭이 바라보듯, 길 건너편에서 원숭이들이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려고 원숭이들은 목숨을 걸고 거리를 횡단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 먹어야 하는 그들의 순발력은 대단했다. 시속 80키로로 달리는 자동차를 능수능란하게 피하면서, 말 그대로 "원숭이에게 던져준 비스켓 받아 먹듯", 원숭이는 무엇이나 손쉽게 나꿔채갔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이 속담은 오늘부터 "원숭이도 자동차에 치여 죽을 때가 있다"로 바뀌어야 했다. 아기 원숭이를 등에 태우고 이쪽에서 던져주는 먹이를 향해 오는 원숭이가 있었다. 길을 거의 다 건너왔을 무렵, 새끼 원숭이는 사람이 두려웠는지 엄마 등에서 뛰어내려 다시 길을 건너 멀리 달아나려 했다. 그러다가 그 새끼 원숭이는 80키로로 달려오는 트럭에 치여 퍽 소리를 내며 수십 미터를 대굴대굴 굴러 갔다. 어미 원숭이는 재빨리 달려가 새끼 원숭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어찌할 줄 몰라했다.
<저 멀리 죽은 원숭이 새끼가 보인다.>
그 순간 또 어떤 사람이 먹이를 원숭이에게 던졌다. 그 먹이는 죽은 새끼 원숭이와 10미터 떨어져 있었다. 이제 어미 원숭이는 새끼를 버리고 먹이를 주으러 가든지, 아니면 죽은 새끼를 데리고 어디로 가든지 해야 했다. 즉, 죽은 새끼가 더 중요하냐, 아니면 먹는 물건이 더 중요하냐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이다.
나는 급박하게 돌아가는 순간에 원숭이의 본능을 알아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눈을 떼지 않고 지켜 보기로 했다. 관찰 결과는, 어미는 안고 있던 죽은 새끼 원숭이를 땅에다 놓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 먹고 있었다. 그 먹이가 다 없어지자 어미는 죽은 새끼를 품에 안고 숲 속으로 사라졌다.
역시 동물은 먹는 것이 제일이다. 사람도 동물인 이상 먹는 것이 제일인지도 모른다. 심하면 사람도 잡아먹는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오랜 기간 동안 먹지 못했던 선원들이 실제로 한 선원을 잡아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배가 고파도, 배가 불러도 먹는 것이 음식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대체로 식당이나 커피숍 또는 술집에서 만난다. 일을 하다가도 "다 먹자고 하는 짓여"라고 하면서 일을 그만두고 먹으러 간다. 옛날부터 왕들의 가장 큰 임무는 백성들을 굶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뇌물도 먹는 것이다. 그렇다면 뇌물을 주고 받는 것은 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하는지도 모른다. 국회의원 돈봉투 사건으로 국회의장이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과, CNK 주가 조작 혐으로 외교부 대사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는 TV 자막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바로 내 옆에 있는 TV 화면의 우에서 좌로 흘러 가고 있다.
어디 그것뿐이랴. 작년 프로축구 뇌물 사건에 이어, 지금은 배구선수, 야구 선수도 검찰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것도 "골을 먹듯이" 돈을 "먹기" 때문에 근절이 어려운지 모른다.
실제로 우리 나라 사람만큼 먹는 일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어디 가면 음식점 빼 놓으면 별로 볼 것이 없고, 먹는 일 빼 놓으면 별로 할 일도 없다.
특히 우리 나라는 먹는 것이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발달한 나라인 것 같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탁구를 하다가, "너는 이선생하고 먹고, 나는 김선생하고 먹는다."라고 했다. 즉 한 편이 되는 것을 먹는다고 표현한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술을 마실 때, 한 사람이 "우리가"라고 말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남이가?"라고 응대하며 건배를 하기도 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우리는 한통속이라는 것이다. 「한 통속이라는 것은 "우리 같이 뇌물을 먹자"」라는 뜻과 비슷하다는 어떤 서양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본능을 억제하는 것,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은 본능대로 할 것인지, 본능을 억제해야 할 것인지 생각을 해 본 후, 행동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본능대로 행동한다면, 이 세상은 개판이 아니라 원숭이 판이 될테니까.
<수컷 원숭이의 붉은 고환 주머니: 흔히 말하듯 만발이나 늘어져 뒷다리에 부딪치고, 채이며, 하늘로 치솟기도 한다. "자유자재란 이런 것이여!"라고 말한다고나 할까? >
그 후 자동차는 계속 달려 해가 질 무렵에야 바라나시 외곽에 도착했다. 그때까지 단 하나의 산도 구경하지 못했다. 계속 평원이었다. 눈에 낯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가고, 이상한 잔치를 벌리는 마을을 통과한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소 여러 마리가 끄는 수레도 보인다. 양떼도 본능인 먹는 문제를 해결하려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는다.
<오른 쪽 소의 꼬리 뼈 부분이 빨갛다. 까마귀가 날아와서 살점을 쪼아 달아난다.>
어느 한 곳에서 흥미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검은 새(아마도 까마귀의 일종인 것 같았다) 한 마리가 전기줄에 앉아있다. 그 새는, 꼬리 부분에 피부가 벗겨져 붉은 살점이 보이는 검은 소를 노려보고 있다. 그러다가 잽싸게 내려와 살점을 쪼아 입에 문다. 아픔을 참지 못하는 소는 꼬리를 흔들어 새를 쫓아보려 하지만, 살점을 뜯어 내어 입에 물고 있는 새는 이미 다시 전기줄로 올라가 앉아 있다. 이런 일이 되풀이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주위에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새를 쫓아내거나 소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지 않고 내 버려 둔다는 사실이다. 자연의 법칙이라고 생각하는지, 적자생존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인도인들은 그저 내 버려두는 일에, 내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익숙한 듯 했다.
바라나시 중심부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낯선 장면이 나타난다. 검은 차도르를 입은 여인들이 섬짓하게 느껴진다. 온몸이 검은데다가 눈동자도 모두 검어서, 혹시 저승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순간 9.11 테러가 얼핏 뇌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 같으면 아무래도 저런 여자와 함께 하기는 힘들 것 같다. 혹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고 했으니까.
자전거를 개조하여 만든 세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애인이 있었다. 한 없이 가는 두 다리가 눈물 겹도록 가슴에 저려온다. 검은 소떼가 거리를 활보하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인력거 그리고 자동차가 뒤 섞여 뭐가 뭔지도 모르게 굴러가고 있다.
날은 어두워져 가고 있다. 차 밖으로 보이는 먼지가 바람에 날려,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어느 사거리에 차가 멈췄다. 안개처럼 매연과 먼지가 자욱한 곳에 1.5미터는 됨직한 긴 막대기를 든 교통 경찰이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교통 경찰은 입에 손수건을 돌돌 감고 눈을 번쩍이며 자동차를 통제했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어떤 자동차를 붙잡아 수첩을 꺼내 자동차 번호를 적기 시작한다.
일초라도 먼져 가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 운전수의 독수리 같이 번득이는 두 눈이 실내 거울에 비쳐 보인다. 다른 방향의 차들도 악세레이터를 밟고 출발을 기다린다. 마치 100미터 경주 출발선상에서 출발 총소리를 기다는 육상 선수들처럼 말이다. 0.1초도 뒤지지 않으려는 인도인들의 무감각한 살벌함이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인도인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이 온몸에 배인 사람들 같다.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믿었던 인도인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전혀 웃음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분노가 보인 것도 아니다. 아무런 감각도 느낌도 없이, 번득이는 눈빛과 빈틈을 노려, 남보다 한 발짝 먼저 가려는 불같은 의지만 보였다. 마치 적진을 뚫고 나가야만 살 수 있는, 한 손에는 단도와 한 손에는 총을 든 람보처럼.
더 이상 차로 들어갈 수 없는 "고돌리아"라는 지점까지 왔다. 나는 "고돌리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무 이유도 없이 「이것은 "고도리"와 "불놀이야"의 합성어」라고 생각했다. 그때가 밤 9시쯤이었다. 차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어디서인지 모르지만 릭셔꾼들이 그야말로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경쟁심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서로 우리를 태우겠다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소리 지르고 서로 삿대질을 하며 난리 법석을 피웠다. 애써 외면하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왜냐하면 눈을 마주치는 것이 자기를 선택했다는 표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릭셔꾼과 이를 지켜보는 수 많은 군중들이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우리가 타고 갈 릭셔(릭셔가 정확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3발 자전거에 사람이 탈 수 있게 좌석이 마련되어 있고, 위에 포장이 쳐진 탈 것)가 정해졌다.
그러나 어쩌랴. 하루 중 너무 많은 시간을 차를 타고 왔고,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인도인들 때문에 겁에 질려, 우리 대원 중 몇 사람이 릭셔를 탈 수 없었다. 얼굴이 노랗고 반쪽이 된 이들은, 배를 만지며 길가에 주저 앉아 일어나지를 못했다. 설사, 메스꺼움, 현기증에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들은 나오지는 않는 마른 침을 길 바닥에 뱉으며 머리를 양 손으로 싸매고 꺼억꺼억 해댔다.
어떻든 잠시 쉬다가 릭셔를 타고 출발했다. 우리의 숙소까지는 약 400미터, 보통 때 같으면 걸어서도 갈 수 있겠지만 그날만은 어쩔 수 없이 무엇인가 타고 가야 했다. 나는 대열의 맨 뒤에 타고 갔다. 앞에 가는 사람들이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원정대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사방에서 소리치고 달려드는 군중을 보고, 여기가 영화 촬영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도살장을 향해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꿈을 꾸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사실은 이 부분에 대한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이, 이번 여행 중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환경에서 감히 사진 찍을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내가 프로 사진사가 되려면 아직 택도 없다. "프로 사진사는 주어진 장면을 멋있게 찍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뼈에 사무쳤다.)
<고돌리아 및 숙소의 위치>
<목적지로 가는 골목길>
골목 입구에 내려 앞 사람을 따라 좁은 골목을 걸어 들어간다. 좁은 골목에 소가 할 일 없이 서 있기도 하고, 온몸에 피부병이 걸린 개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골목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손바닥만한 가게에서는 소똥, 개똥, 사람똥 냄새를 맡아가며, 하지만 전혀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토박이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나가는 나그네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그들의 생업일 것이다.
<온 몸이 병에 걸린 개>
우리의 숙박소인 망라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몇 번 골목을 꺾고 또 꺽어서 들어왔는지 모른다. 조그만 방이 5 개가 있었는데, 이미 방 하나는 다른 사람이 차지 하고 있어서, 우리 중 일부는 다른 게스트 하우스로 옮겨가야 했다.
내가 배정 받은 방은 창문이 없는 방이었다. 창문이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곳은 커튼이 쳐져 있었는데, 절대 열지 말라고 쓰여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3박 4일 동안 하루 24시간 이 방의 불을 켜 놓고 있어야 했다.
아내는 방에 들어오자 마자, "아이구, 나 죽는다"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끙끙 댔다. 그러더니 시골 쥐 고구마 통가리가 있는 방 드나들 듯,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검은 물체가 방 바닥을 지나가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쥐였다. 잠시 뒤에 또 한 놈이 나타나서 눈치를 보다가 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 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구멍을 막아보려고 하니 문이 아예 닫치지가 않아서, 그냥 쥐 마음먹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 뒤 3박 4일 동안 이 쥐는 내가 외출할 때, 또는 내가 잠을 잘 때, 나의 배낭을 뒤져 사탕이며, 미수가루, 각종 약들을 조금씩 맛보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나는 내 나름으로 시골을 떠나온지 40년 만에, 쥐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진기한 경험을, 먼 이국 땅 인도에서 하게 되었다.
<우리가 3박 4일 동안 묵은 "망라 게스트 하우스">
다음 날 아침 일찍 혼자 갠지스강을 향해 떠났다. 숙소에서 갠지스 강까지는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었다. 문제는 골목이 하도 복잡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랐고, 골목 사방에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가 머리를 아프게 했으며, 도처에 서 있는 소들이 나의 길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호텔 문을 나오니 쓰레기 무더기가 여기저기 있었는데, 이런 일은 왜 그런지 여기 생활 하루가 지난 후 이해가 되었다. 여기 사람들은 일층이고 이층이고 아무데서나 골목을 향해 쓰레기를 집어 던진다. 그러면 하루에 한 번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와서 깨끗이 쓸어간다. 우리 같으면 "깨끗하니까 이제는 버리지 말아야지" 하는데, 이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이제 골목이 깨끗해 졌으니, 마음 놓고 버려야지"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몸에 배이면, 즉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세상 살기가 아주 편할 것이다.
얼마전 "생각대로 T"라는 광고가 있었다.
목이 마르면 냉장고 열면되고
나는 이런 생각이 떠 올랐다.
버리고 싶으면 그냥 버리면 되고, 못 참으면 떠나면 되고
음산하고 더러운 골목길을 지나고, 길을 막는 소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갠지스 강가로 나왔다. 아니, 이건은 또 무엇이여? 눈만 빠꼼하고, 나머지 온몸에 회색칠을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노란 두건에 목걸이를 걸치고, 팔과 손목에 팔찌를 차고, 가슴과 배에 시커먼 털이 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듯한 화성인이 걸어가고 있었다.
조금 걸어가니 수십년 머리를 자르지 않고 감지도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물만 마시고 사는 듯한 한 남자(혹시 도사)가 눈에 띄였다. 그의 팔은, 인도 경찰이 교통신호 보낼 때 쓰는 작대기처럼 가늘었으며, 그의 허벅지는 나의 팔뚝만도 못하게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그나마 구리빛 피부 덕분에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을 하는지, 사색을 하는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두 눈만은 예리한 투명함으로 번쩍거렸다.
강에는 각지에서 온 관광객이 넘쳐나고 있었다. 손님을 싣고 있는 배도 많았지만, 손님을 태우지 못해 손님을 부르는 배 주인들은 더욱 많았다. 한쪽으로 눈을 돌려보니 순례객들이 두손 모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서 한 동안 말 없이 서 있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인지, 너무 황당해서 인지, 아니면 넋이 빠져서 인지 그것은 나도 모른다. 간신히 정신을 차려 눈을 뜨니 해가 서서히 구름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해는 순례객들이 기도하는 *가트를 비추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 빛을 받아, 중심 가트인 다사와메드 가트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다사와메드 가트>
나는 이제 아내가 앓고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목적지로 가려면 박태환보다도 더 단련된 체력과 의지가 있어야 하고, 더러움을 이겨내야 하는 굳건함과 강건함이 남대문시장 환경미화원을 능가해야 했다. 감히 내가 돌아갈 수가 있을까?
그 때 한 소녀가 나를 보고 방긋이 웃었다. 아이의 밝은 표정을 본 순간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듯한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살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밝혀줄 미소를 나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래도 어른이 아니냐? 나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 아니더냐? 나는 힘들다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3년이나 잔밥을 먹고 살아 본 경험이 있지 않느냐? 철조망 아래 진흙 밭에서 포복 훈련을 받기도 하지 않았더냐? 줄을 타는 유격 훈련도 받지 않았더냐? 매일 빳다 20대씩 맞으며 피나는 훈련을 무사히 마친 대한민국 육군 의장병이 아니었더냐? "저 나무 잎을 먹어라"라는 신과 같은 존재인 고참의 말을 듣고, 미루나무 이파리도 뜯어먹지 않았더냐?
그대 뭘 두려워하랴. 그래, 맞아! 다시 암흑을 뚫고 목적지를 향해 가보는 거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두 발을 쿵쿵 밟아 그에서 오는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망라 게스트 하우스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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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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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떻게 쓰다보니 쓸데 없이 너무 길군요.
사진이나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시간이 나면 좀 줄여야 겠어요.
사진도 글도 훌륭 합니다...
부디 그만둬주지 마시기를...
인도는 우리의 상상이상으로 복잡하고 기묘한 나라 입니다...
어쩌면 신비롭다 표현 해야할지...
온갖 세상의 선과악이 공존 하는나라입죠...
저도 잠시 수박겉핥기식 으로 겉만보고온것에 불과한 여행을 한번 해본것에 불과 하니깐요...
3박4일..24시간.불을키고살았다니..아이거...켁/지는못가유~~~
길어도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연배는 비슷한것 같은데... 어학연수의 글 올린 때부터 팬입니다.ㅎㅎ
어부인께서 무척 고생하시듯 싶습니다. 저도 이런 스케쥴대로 가고 싶지만 집사람은 질색이니...
암튼 눈 동그랗게 뜨고 잘 보았습니다.
사모님께서 인도 입성을 기념하는 배탈과 설사의 통과의례를 치루신 것 같네요.
몇년전 제 집사람도 예외없이 이 신고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ㅎㅎ
선생님의 여행기를 통해 다시한번 인도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도 군 시절에, 의장대 군기가 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