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가 시작되기 전 과연 허영호가 결승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하지만 허영호가 예상을 깨고 결승에 올랐다.
새로운 신데렐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1월 3일 대전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막을 내린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준결승3번기 2국에서 허영호 7단과 구리 9단이 각각 박정환 8단과 김지석 7단을 물리치고 제1국 승리에 이어 2-0으로 나란히 결승진출을 확정지었다.
제1국을 승리로 이끌어 비교적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2국을 맞이한 허영호와 구리. 이에 반해 첫 판을 상대에게 내줌으로써 벼랑 끝에 몰리게 된 김지석과 박정환.
이날 대결은 승부를 조기에 결정지으려는 자와 어떻게든 막판까지 승부를 이끌어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자 간의 숨막히는 승부가 될 것으로 예측됐으나, 끝내 '여유'가 '위기'를 이겨낸 시리즈가 되고 말았다.
김지석-구리(아쉽다! 김지석, 다 따라갔는데…)
김지석에게는 두고두고 가슴 아픈 일국이 될 듯.
초반은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흑에게 중앙 거북빵따냄을 허용해서는 검토실 여기저기에서 일찌감치 끝났다는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구리의 낙관과 따라 붙으려는 김지석의 버티기가 맞물리면서 바둑은 묘하게 흘러갔다. 곳곳에 백의 실리가 발생하면서 중반 이후 역전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정도. 하지만 미세한 바둑에서 승리의 여신은 구리에게 미소를 던졌다.
마지막 반패 싸움에서 불리함을 느낀 김지석은 끝까지 패를 버텼지만, 좌상에서 다시 흑에게 큰 수를 허용하면서 절망적인 분위기로 흘렀다. 결과는 흑의 반집승으로 끝을 맺고 말았지만 구리의 여유있는 승리였다(288수끝, 흑반집승).
허영호-박정환(허영호, 박정환 다루는 방법을 알다?)
대국 전 예상은 박정환의 6-4 우세. 하지만 허영호는 예상을 비웃듯 보기 좋게 2-0 승리를 거두면서 결승에 뛰어올랐다.
역시 실력이 비슷비슷한 기사들끼리의 대국에서는 ‘기세’에서 판가름난다는 것을 일깨워준 한판 승부였다.
특히 허영호는 박정환에 대해 연구가 끝난 듯한 느낌을 줬다. 1국과 2국 모두 완승을 이끌어냈으며 상대에게 단 한 번의 찬스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히 박정환에게 충격이었다.
1국에 이어 2국도 흐름을 주도한 쪽은 허영호였다. 비세를 의식한 박정환이 상변 흑을 전부 잡자는 승부수를 던져 끝내 흑 일단을 생포했지만 그 대가로 좌변을 뚫은 흑은 계속 우세를 견지해나갈 수가 있었다.
마지막을 의식한듯 박정환은 최후까지 역전의 기회를 엿봤지만 끝내 반면 10집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허영호 개인으로서는 세계대회 첫 결승진출이라는 숙원을 이뤄낸 한판이었다(221수끝, 흑불계승).
허영호와 구리는 지금까지 통산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만남인 작년 비씨카드배에서는 구리의 승리. 하지만 이번 삼성화재배 32강에 같은 조에 속했던 허영호와 구리는 다시 대결을 펼쳐 허영호가 승리를 거뒀었다. 패자조로 밀려난 구리는 마지막 대국을 승리로 이끌며 16강에 몸을 실을 수 있었지만 더블일리미네이션 방식이 아닌 예전 방식이었다면 단칼에 탈락할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허영호 7단과 구리 9단의 결승3번기는 오는 12월 7일부터 10일까지 중국 베이징 한국문화원에서 속개될 예정이다.
별들의 제전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중앙일보와 한국방송공사(KBS)가 공동주최하고 삼성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가 후원한다. 각자 제한시간은 2시간, 초읽기는 1분 5회. 이번 대회의 우승 상금은 2억원(준우승 7000만원), 총상금 규모는 6억600만원이다.
■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대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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