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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동인시집 [☆새터 제4집☆]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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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터 제 4집◎]
시터동인 제4집 / 현대시학사(2019.12.13)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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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용
그 길이 낯설지 않다 외 1편
강물에 향초 꽃불을 띄운다 아플 때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이마에 손을 얹어주던 어머니, 당신의 강물 앞에선 명치 밑바닥 숨겨진 우물도 열 수 있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강에 배를 띄운다
한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는 부레옥잠을 쫓아 짐을 싼다 고단해질 때까지 낯선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제 안에 출렁이는 물결이 뒤척일 때마다 색색의 빛을 쫓아서 몸을 혹사시킨다
소리 소문 없이 다가와 뒤퉁수 치는 죽음이기에 키 큰 빨간 포인세티아 앞에 서면 당신과 난 한 물상, 손발을 씻ㄱ고 젖을 먹여 키웠지만 사랑하되 믿지는 않기로 한다
털고 일어나야 강을 건널 수 있다는데 이름 한 번 부르지 못하고 심장이 멎어버린 당신, 비어내고 간 걸까 비구름의 습한 기척을 느꼈을까, 죽음은 어둠을 비집고 들어서는 빛살이었을까
나는 어떤 표정으로 손을 잡을까 밀물로 달려든다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 깨진 아스팔트 위를 어슬렁거리는 소와 개, 뒤섞여 걷는 공생의 거리, 낯설지 않다
소리의 탑
당신은 다가갈 수 없는 절벽, 그리움의 속살을 파랗게 키운 이끼가 다섯 발가락에 힘을 주고 한 움큼씩 기어오르지만 밤새워 쏟아지는 거대한 소리의 탑 앞에 물의 절벽 앞에 무릎 꿇고 만다
쉬지 않고 퍼붓는 아픈 사랑의 채찍, 그 아래 웅크린 바위는 실패자인가 수도자인가 성난 물살에 휩쓸려 내려오는 동안 못자국 박힌 발자국 지워내고 제 안의 상처를 둥글게 끌어안는 물방울들, 눈 동그랗게 뜨고 폭포 한가운데 무지개를 건다 절벽 끝에 선 나를 향해
노혜봉
꿈나라, 학춤을 부르는 소리 구음口音 외 1편
생짜기생 유금선은 끊어질 듯 오르막 소리로
하늘에 꽃너울 수놓아 나라릿 학춤이 날게 했다
‘팔자에 정해진 길’이라 입버릇처럼 말했다
권번과 집, 꽃담장 사이 소리동냥으로 익혔다
세 끼, 부자깽이로 아궁이 불꽃 재를 두들기며
밥주걱으로 콩, 닥,콩닥, 솥뚜껑에 장단을 넣었다
꽃담장 따라 열넷 나이 해어화 길에 들어섰다
‘평양 기생 치마폭은 벗어나도 동개 기생 금선이
치마폭엔 마냥 묻히고 만다’
소리길 따라 주름을 잡아도 목이 쉬는 법이 없었다
단가 토막소리 시조 육자배기 전통춤 유행가까지
소리가 물별 따라 반짝! 사랑 놀음이 눈독을 들였다
첫사랑 묘약은 첩살이, 남편은 죽음의 숨결을 남겼다
장구채 따닥, 딱, 딱, 노랑목 떨림이 있는 얄팍한 소리에
발발성 떨림이 있는 심한 소리 엇갈려 놀리면
동래에 노닐던 학이 부리 끝 짝을 찾아 먹이를 쪼았다
탁, 외다리 디딤새는 먼 하늘 외길을 찾아 우러렀다
혀는 입천장에 댄 채 소리는 꽉 차올라 동그랗게 벌렸다
춤꾼의 깃털 날개 도포 자락 가볍게 목을 트는 몸짓
입술을 오므리며 한껏 하늬바람 소리를 끌어올렸다
‘나는 돈이 없어 악기를 배운 적이 없다. 내가 징이다’’
꽃놀이 단풍놀이 장구를 치자 덩 둥둥 당 딩 징 울림
러루르 라로리 대금 소리, 끊고 맺는 향피리 시늉
슬기덩 슬기둥 슬기등 슬기딩 가야금 시늉 소리
그날, 그때, 춤사위를 보채며 새로운 입소리를 장만하는 흥
네루레니 느니나노흐나니나느니나노니나노노르니나
떨리는 음의 깃털을 털며 비상하는 학, 나리릿! 휘리릿!
발바닥을 치면 허공, 넓은 소매 자락 하늘이 햐아! 높다
곡진하게 눈물로 매듭을
옥방의 찬 자리, 귀곡성만 들렸다
꽃이 피는 방울목 굴리던 소리는 숨을 죽였다
사뿐 발등 즈려밟는 ‘업고 놀자’ 발림은
멀리 한양 님 따라 바람소리에 묻혔다
썩은 새 같은 쑥대머리 손가락 빗질을
엮어서 잘라 내린다 여린 그믐달빛, 감감
무소식 도련님은 얼음방석에 무릎을 꿇릴까
장독 오른 등짝 피고름을 손가락에 묻혀
속적삼 소매에 꿈 몽夢자 자국을 덧없이 찍는다
한 소매엔 눈물로 덧칠한 도련님 서늘한 눈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신새벽 보일 듯 보일 듯
적막한 밤하늘엔 박쥐들 날갯짓 소리
홀로 안고 태워도, 짝 마음 찾아 그늘지는 소리
정둔 님께, 발을 벋자 풀뿌리는 상사화 꽃무릇이지
방울목 울음 굴리며 날개짓 활짝 날아서 가리
소원을 쌓던 돌멩이는 극진하게 돌무덤 무덤덤
옥방 눈물 진자리엔 꼭두서니 빛이 흠빡 물든다
꽃무릇 입귀마다 스치는 ‘업고 놀자’ 님의 목소리
청띠제비나비 비늘무늬는 꽃술 속으로 팔락팔락 팔랑!
꿈결 속 꽃구름 타고 둥 둥 둥 어화둥둥은 내 사랑
노혜봉
방문 외 1편
집 앞의 수락산 등줄기를 따라
요란하게 흔들리는 숲
수직을 내리 꽂히는 빗줄기에
목마른 땅이 젖어드는 날
푸시시 솟아오르는 아내의 부추전
그토록 오래 기다리게 하더니
밖에선 요란하게 비 떨어지고
안에는 노릇노릇 피어오르는 고요
시가 찾아오던 어느 날
두 무덤
방학동 산길 해 잘 드는 언덕
세종임금의 둘째 딸이 잠들어 있고
길 건너 아래쪽 그늘진 곳에 연산군이 누워 있다
해동성군의 총명하던 딸과
해동패륜 혼군이
지척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왕궁은 금빛 가시 울타리
구석구석에서 차가운 눈길을 받았던 연산과
아버지의 사랑에 싸여
만인의 따뜻한 눈길을 받았던 공주
양지바른 언덕을 차지한 할머니 공주와
죽어서도 손가락질 받는 패군
오늘도 인자한 할머니가 버릇없는 손자를 달래는 소리
불뚝 툭툭!
오냐 오냐 그래!
무덤 위 잔디가 파랗다
이 명
맛이 가다 외 1편
도시를 떠나 산중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별식이 생각나
전기밥솥에 완두콩과 표고버섯, 고구마를 팥과 찹쌀과 함께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르니
-잠시 후 뜸들이기를 시작합니다
뜸들이기를 원하시면 1588-7982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멀쩡하던 솥의 말에 놀라 창을 들여다보니
잔여시간이 표시되어야 할 곳에 현재시각이 나타나 있다
너무 멀리 왔나 보다
뼈를 읽다
농암고택 능구당 정자 기둥에서
나무의 뼈를 보았다
검게 그을린 듯 굴곡진 온몸의 뼈
살은 풍화되어 사라지고 근육도 녹아내린
뼈는 나이테를 따라 드러나 있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에서도 뼈는 골이 깊었다
조상의 얼을 길이길이 이어받으라 이르시는
편액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집의 품격을 유지하느라 골기와 사이사이 풀이 자랐다
마루 틈으로 글 읽는 소리인 듯
바람 소리 청아하게 새록새록 올라오고
뼈는 어느 것 하나 단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침 이슬과 청풍명월로 공궤를 올리는
만질수록 따뜻하고
들여다볼수록 온기가 느껴지는
귀거래, 귀거래 하던 행간을 일정하게 고르고 윤이 났다
돋을새김무늬가 집을 지탱하고 있는 적선지가積善之家
읽을수록 굳은 심지가 돋보였다
정영숙
맛이 가다시월은 시작이다 외 1편
사각형 창문 안으로 시월이 떨어진다
빨강이 떨어진다
노랑이 구른다
당신과 나의 시간도 노랗게 떨어진다
당신과 내가 걷던 거리도 어디론가 날아간다
시월하늘, 시월공기는 파랑빛 밑바탕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데
네모에 갇힌 눈동자는 빛을 잃고
빨강으로 떨어진다
따듯하던 손가락은 빈혈 일듯
노랑으로 비틀거리며 창틀을 메운다
‘떨어진다’는 소리를 창밖으로 내던지자
네모난 창을 검정 물감으로 지워버리자
하늘과 땅, 공기를 손 안에 모아 다시 펼친다
한 점, 티없는 최초의 순간
유리알, 맑은 당신 눈빛이 창호문을 뚫고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파들거린다
빨강이 떠오른다
노랑이 날아오른다
파랑빛 사랑이
시월 하늘로 둥글게 둥글게 굴러간다
다시 시작이다
벽암록 흉내내기
언 땅에 머리를 박고 거꾸로 선다
머리에 신발을 신고
발에는 장갑을 낀다
물에 빠져 보이지 않던
해와 달이 하늘에 걸리고
사람사다리에 치여
찌푸리던 얼굴들이 웃음을 띤다
위로 치켜떴던 눈썹이 내려오고
아래로 쳐졌던 입꼬리가 올라간다
보이지 않던 개미새끼도 보이고
발밑에서 숨죽이던 작은 민들레꽃 향기
코끝을 스친다
사람사다리 속, 뜨거운 머리통들과 부딪치지 않고
물구나무로 서 있으니
머리는 움 속 무처럼 차갑다
처마 밑에 거꾸로 매달린 고드름처럼
맑고 투명한 눈을 갖는다
겨우내 물속에 잠겨있던 그대
연둣빛 버드나무로 물가에 서고
멀리 있는 별, 더 가까이서 빤짝인다
최금녀
멈추다 외 1편
계단에 눈이 쌓이고
신문을 주우러 나갔던 그가
알프스의 소방울을 흔들면서 들어온다
새벽은 멈추지 않아도 훤하다
밤새 계단에 눈이 쌓이면
시를 멈추고
컴퓨터를 멈추고
읽던 『호밀밭의 파수꾼』을 멈추고
약속을 멈추고
헛웃음을 멈추고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는
그와 나 사이를 멈춘다
부러진 목련가지도
흰 눈 위에서
얼어붙고 있는 마당을 멈춘다
계단에 쌓였던 눈이 녹을 때까지
신문을 멈추고
먼 길 떠나간 아무개 이야기도 멈춘다
그와 내가
한 곳으로 밀려가는 것도 잠시 멈추고
계단에 눈이 없는 집은 무엇들을 멈출까?
어떤 약속
어떤 약속은 그의 숟가락 위에 얹히고
어떤 약속은 나의 숟가락 위에서 미끄러졌다
날마다 숟가락질을 했다
연희동에서는
머리카락 수만큼 숟가락질을 했다
닦아도 닦아도
나의 몫은 그의 숟가락 위에서 위태로웠다
위험할 때마다 숟가락을 다시 닦았다
돌풍 같은 슬픔이 몰려와
혼자 숟가락질을 할 때
숟가락이 허공에 닿을 때
뒤집히던 안과 밖
냅킨을 깔고
숟가락을 나란히 눕힌다
그의 가슴과 나의 가슴 사이에
최도선
꼬리연 외 1편
1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나갈 때
여름방학에 일직근무를 하고 있었다
아침나절, 우악스런 남자가 남녀 두 아이의 멱살을
잡아끌고 들어와 내 앞에 확 풀어 놓는다
독한 술을 마신 것처럼 붉어진 아이들
맥없이 바닥에 엎어져 문어처럼 찰딱 달라붙어 우는지 웃는지
두 아이 서로 쳐다보고 키득거린다
남자의 입에서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쏟아졌다
내가 이 학교 1회 졸업생이다 저 아이들이 교문에 앉아
담배 피우는 것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학교가 뭐하는 것이냐
2
아이 둘은 밭 가운데 허물어진 비닐하우스에서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다
컵라면 용기들이 굴러다니고
구원의 빛이 달빛을 가리는 밤
웅크린 아이들 옆구리에서 늑대의 울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 불결한 지상의 수태들
3
꼬리연, 너 이 지상에서 무슨 완전한 것을 보았느냐?
얇은 종이에 긴 꼬리를 달아 너를 떠나보내며 소원을 빌지만
아이들 이빨에 밴 니코틴 사이로 비웃음만 새어나올 뿐
가출한 엄마의 속옷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와
매일 술 취해 모두를 때려 부수는 아빠를 아빠라 부를 수 있는지 묻는
눈썹 짙은 아이의 창백한 얼굴 어쩌지 못해
내 안에 자리한 울음주머니를 떼어내려다 말고
꼬리를 흔들며 날아가는 꼬리연을 바라만 보고 있다
고양이에 관하여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이기주의자들이
대체로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장 그르니에
너를 이삿짐 속에 넣어 오지 못했을 때
까불대던 재롱까지 밀어 던지고 왔을 때
난 애타주의가 되었다
요즈음 장안 쓰레기통마다 고야이들이
머릴 박고 들끓는다
애타주의자인 주인을 위해
쓰레기통이나 몰래 뒤지는 고양이는
도둑고양이가 되어 버렸다
한이나
아득한 묘법 외 1편
허공 한지에 고백처럼 선 하나 내리그었네
거친 생각이 무심한 듯 허공에
빗발치는 선
수도승처럼 수천수만 번 반복해 붓질하던
얻어질 반야의 저 색채요법
눈 감고 저를 비울수록 색이 깊네
내 안의 말을 줄이고
들끓는 색을 지우고
한밤내 긋고 또 긋는 붓질
자신의 모든 걸 바치는
패랭이꽃 치자꽃 자연을 닮은 묘법의
한 획
나 절필해도 좋으리
흰 그림자
겨울 자작나무 숲은 집필실이다
감았던 눈 번쩍 뜨게 하는 흰 그림자
나무 한 그루가 한 문장이다
수백 그루의 문장을 잇대어 썼다가 또 지우며
백지 속으로 가는 길
나무 껍데기 종잇장에 새기는 영혼의 글자들이다
우랄산맥 오지로 숨어든 유리 지바고
눈보라 치는 설원에서 눈꽃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지던 이별 마차다
라라를 사랑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혁명가의 차가운 열정
서른다섯에 죽은 유리 지바고의 흰 그림자다
겨울 숲속 자작나무로 가는 길은 라라의 울음소리에 닿아 있다
자작나무는 그 사랑의 혹한을 한 겹 새하얀 껍질로 버틴다
황상순
상수리나무의 비밀 외 1편
물고기는 그냥 물고기다
원숭이는 그저 원숭이고 나무는 본시부터 나무였다
물고기가 땅에 올라 원숭이가 되지 않고
원숭이가 사람으로
사람이 나무가 될 턱도 없는데
그렇게 각자 스스로 존재하는데
어떤 이는 일체유심조, 세상 모든 게 다
마음이 지어낸 거라고 얘길한다
오늘 상수리나무로 회귀한 한 사람 곁을 지난다
팻말 걸어두지 않았으면
이 은밀한 진화를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리라
효자동의 아침
애야, 흰 봉다리 하나 다오
아버님 봉다리가 뭐예요?
봉지, 하얀 비닐봉지 하나 달라니깐
까만 건 안 되어요?
에이, 꺼먼 봉다리를 어떻게 들고 가누
백 봉지를 달라니깐
아침목욕 댕겨 오시려는 상구할아버지와
부엌의 며느리 목소리가
두부장수 방울소리마냥 쟁쟁 울리는
골목 안쪽 끝 푸른 대문 집
허어, 언능 줘 시간 없어
아침부터 하얀 봉지며 꺼먼 봉다리며
좀 거시기하게 들리는지
마루 밑 누렁이는 데룩데룩 눈만 굴리는데
마루문 드르륵 열며 할머니 손을 휘젓는다
옛쑤, 백 봉지
꺼먼 거믄 어떻구 흰 거믄 어떻구 노인네가
허어, 할망구 저, 저 말뽄새-
손끝을 떠난 하얀 봉다리가
날개를 펴고 훨훨 마당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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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제4집
네번째『시터』동인지를 자축하며
시를 쓰는 일은 고독한 작업이다. 그 힘든 일을 오롯이 혼자 해내야 하는 것이 시 뿐 아니라 모든 창작의 숙명이다. 음악계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그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최고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모차르트는 빚쟁이들에게 붙잡혀 창고에 갇힌 채 그의 최고 걸작들을 작곡해냈고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 음악가로서는 저주에 가까운 상태에서 9번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도스토에프스키는 도박벽 때문에 빚을 갚느라고 밤새워 원고를 써댔는데 그것이 최고의 걸작들이었다. 미술의 고흐는 또 어떠한가? 미치광이가 된 상태에서 그려댄 그림들이 모조리 최고의 걸작들이었다. 프랑스의 보들레르도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는 절대 고독과 만신창이가 된 건강 상태에서 주옥같은 시들을 엮어내었다. 지독히 가난했던 에드가 앨런포는 부인이 추위 속에서 떨며 결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불멸의 <애너벨리>를 엮어냈다.
이것은 천재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러한 천재들을 부러워하면서 창작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러나 이 천재들을 멀리서 부러워할 수는 있지만 만약 우리에게 직접 그 일을 겪어내라는 운명이 주어진다면 나부터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범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창작에 임해야 한다. 홀로 글을 쓰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또 표현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필요한 것이 동인활동이다. 머리를 딱딱 치면서도 혼자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바로 동료들의 조언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말에 울력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은 힘든 일을 할 때 혼자 하지 않고 모여서 같이 하는 것, 특히 농사철에 모심기나 추수를 할 때 함께 모여 같이 떠들고 잡담도 하고 막걸리도 마셔가면서 일을 하던 풍습을 말한다. 만약 모심기나 벼베기와 같은 작업을 온전히 혼자만 한다고 생각해보자, 정말 따분하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함께 모여서 웃으며 하면 어느덧 일은 마치고 긴긴 하루해는 저무는 것이다.
시터 동인은 그러한 면에서 아주 잘 해나가고 있다. 총10명의 동인들(이번에는 이정원 동인이 사정이 있어서 빠졌다)은 제각각 장점들을 가지고 있어서 토론을 하다보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시의 틀은 잘 세우지만 세세한 표현법이나 기발한 발상에서는 부족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시행마다 훌륭한 표현들이 반짝이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이 허술한 경우도 있다. 이것들이 모두 토론을 통해서 보완되는 것이다. 우리 동인 중에는 시를 참 재미있게 쓰는 분이 있다. 이 분의 시를 읽으면 어쩌면 이리도 세상을 재미있게 보면서 예리하게 풍자하시는지 감탄할 때가 많다. 또 머나먼 동해안에 스스로를 유배하여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를 쓰는 분도 있다. 이분의 시는 좀 명상적이다. 동인들은 문단활동에도 각기 열심이다. 그것음 모두들 적극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제각기 장점을 가진 회원들은 상부상조하며 동반 상승을 즐기고 있다.
우리 동인들은 연령대가 높다. 소위 젊은 시를 좋아하는 현재 한국시단에서 등단 몇 십 년, 시집 발간 수권에 이르는 우리는 늙은 시인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이와 세월을 통한 무르익음이 우리의 무기이며 그렇다고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번은 내가 어디서 릴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정보를 동인들께 청한 경험이 있다. 보통 릴케를 잘 모르지만 우리 동인들은 금방 릴케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이었다. 모두 소싯적 독서를 통해 릴케를 꿰고 있었던 것이다. 영미권의 시인들만 알던 필자에게는 좋은 도움이었다. 곧 릴케 전집을 사서 여가를 이용해 읽었는데 최근에야 『두이노의 비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긍정적인 만남을 통해 얻게 되는 이득일 것이다. 우리 동인들의 오랜 모임 장소는 운현궁 옆이다. 모임을 갖고 종로3가 쪽으로 골목길을 걸어 나오면 익선동이다. 최근 이 동네의 술집 골목이나 찻집 골목을 순례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이곳은 젊은이들의 거리가 되었다. 와글와글 떠들며 모여 앉은 그들을 보노라면 우리의 젊은 시절이 연상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젊다. 최근 우리 동인들은 잇달아 개인 시집들을 발간하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 에너지가 뻗칠 것인지 궁금하고 경탄스럽다. 우리 모두의 변함없는 마음과 정신의 젊음을 위하여…………브라보!
2019년 겨울 동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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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총10명의 동인들(이번에는 이정원 동인이 사정이 있어서 빠졌다)은 제각각 장점들을 가지고 있어서 토론을 하다보면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예를 들어 시의 틀은 잘 세우지만 세세한 표현법이나 기발한 발상에서는 부족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시행마다 훌륭한 표현들이 반짝이지만 전체적으로 구성이 허술한 경우도 있다. 이것들이 모두 토론을 통해서 보완되는 것이다. 우리 동인 중에는 시를 참 재미있게 쓰는 분이 있다. 이 분의 시를 읽으면 어쩌면 이리도 세상을 재미있게 보면서 예리하게 풍자하시는지 감탄할 때가 많다. 또 머나먼 동해안에 스스로를 유배하여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를 쓰는 분도 있다. 이분의 시는 좀 명상적이다. 동인들은 문단활동에도 각기 열심이다. 그것음 모두들 적극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제각기 장점을 가진 회원들은 상부상조하며 동반 상승을 즐기고 있다.
― 「발간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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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바이올린 소나타 제21번 마단조 K 304
Violin Sonata No21 E minor K.304 [Allegro]
*출처: 관악산의 추억(http://cafe.daum.net/e8853/MUEz/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