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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방서예[2624]退溪李滉-海東雜錄[五]전문
이황(李滉)
본관은 진성(眞城)으로 자는 경호(景浩)이며,
퇴계(退溪)라고 스스로 호를 지었다.
중종 때에 등제하였으며, 나면서부터 천성이 심히 높고 학문은 정밀하고 깊으며
고정(考亭 주자(朱子)의 호)을 높이 믿어 그의 학문을 깊이 체득하였다.
여러 번 임금의 부름을 받아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어 도의로써 진퇴를 결정하였고,
도산(陶山)에서 여러 제자들에게 도학을 강의하여 문인들이 많이 성취하여
동방 이학(理學)의 조종이 되었다.
벼슬이 좌찬성에 이르렀으며 특지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순(文純)이고, 《이학통록(理學通錄)》ㆍ《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ㆍ《계몽전의(啓蒙傳疑)》ㆍ《성학십도(聖學十圖)》를 찬술하여 세상에 전한다.
선생은 조금 자라서는 언어와 동작이 반드시 예법에 맞았으며
더욱더 돈독히 어버이를 사랑하였다.
닭이 울면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의대를 반드시 갖추고 모부인을 살폈다.
말소리는 부드러웠고 나지막하였으며 상냥스럽고 기쁜 안색으로
저녁에 부모를 위해 잠자리를 보아 드릴 때까지 이와 같이 하였다.
잠자리를 펴고 이부자리를 개 드리는 일도 반드시 몸소 하였다. 〈행적(行迹)〉
○ 무진년에 대제학을 제수받고 임금님의 부름에 나아가 6조목을 올리기를, “첫째 계통을 중히 하여 인효(仁孝)를 온전히 할 것입니다. 둘째, 참소하고 이간하는 것을 막아서 양궁(兩宮)을 친하게 할 것입니다. 셋째, 성학(聖學)을 독실히 하여서 정치의 근본을 세울 것입니다. 넷째, 도덕과 학술을 밝혀서 인심을 바르게 할 것입니다. 다섯째, 신하를 심복(心腹)처럼 아껴 이목(耳目)을 통할 것입니다. 여섯째, 성심으로 수신하고 살펴서 하늘의 사랑을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였다. 〈연보(年譜)〉
○ 선생의 저서에 《계몽전의》가 있는데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서로 틀린 점을 폭넓게 검토하여 조리 있게 밝혀서 의심쩍은 것을 말끔히 해소하였다. 〈행적〉
○ 선생께서 찬진(撰進)한 《성학십도》에는, 첫째, 태극도(太極圖), 둘째, 서명도(西銘圖), 셋째, 소학도(小學圖), 넷째, 대학도(大學圖), 다섯째, 백록동도(白鹿洞圖), 여섯째,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일곱째, 심학도(心學圖), 여덟째, 인설도(仁說圖), 아홉째, 경재잠도(敬齋箴圖), 열째,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다. 본집(本集)
○ 영지산(靈芝山)의 동쪽 기슭에 도산(陶山)이 있는데 선생이 일찍이 물러나 거처하면서 서당을 짓고 문생을 모아 도학을 강하는데 이어 〈도산기〉를 짓고 7언시 18절구를 지어 그 사실을 기록하였으며 또 도산잡영 26절구가 있다. 명종[明廟]께서는 송인(宋寅)을 명하여 도산을 그리고 〈도산기〉와 시편을 적어서 병풍과 족자를 만들어 들이도록 하여 침전에 항상 두었다. 본집
○ 선생은 도산 가운데에 서당을 세 칸 짓고 도산서당(陶山書堂)이라 편액하고
모두 18절구가 있다.
순임금은 질그릇을 구워도 즐거움이 있었고 / 大舜親陶樂且安
도연명은 밭 갈아도 즐거운 얼굴 / 淵明躬稼亦歡顔
성현의 심사를 내 어찌 체득하리 / 聖賢心事吾何得
늘그막에 돌아와 은거하리 / 白首歸來試考槃
암서헌(岩棲軒)
증자는 안자더러 실하면서 허한 듯이라고 일컬었는데 / 曾氏稱顔實若虛
이를 병산(유자휘(劉子翬)의 호)이 주회암에게 가르쳤네 / 屛山引發晦翁初
늘그막에야 바위에 사는 재미를 알았으니 / 暮年窺得岩棲意
박문약례ㆍ임연이빙 공부 허술할까 두렵노라 / 博約淵氷恐自疏
완락재(玩樂齋)
경을 주장해도 의를 모아야하니 / 主敬還須集義功
잊지 않고 조장하지 않아도 무르익어 통하리 / 非忘非助漸融通
주염계 태극의 묘리에 다다르면 / 恰臻太極濂溪妙
이 즐거움 천년 가도 같음을 믿노라 / 始信千年此樂同
유정문(幽貞門)
한공의 큰 거북을 빌리지 않더라도 / 不待韓公假大龜
새로운 기운이 사립문에 비치누나 / 新居縹緲映柴屝
띠가 산길을 메운다고 걱정 마소 / 未應山徑憂茅塞
유정한 데에 도가 있어 평탄함을 깨닫겠네 / 道在幽貞覺坦夷
정우당(淨友塘)
온갖 물건 모두 다 묘한 이치 품었는데 / 物物皆含妙一天
주염계는 어찌하여 연꽃만을 사랑했나 / 濂溪何事獨君憐
형덕을 생각하면 벗하기 어렵고 / 細思馨德眞難友
깨끗함만 칭한다면 치우칠까 걱정이네 / 一淨稱呼恐亦偏
절우사(節友社)
도연명의 동산은 솔ㆍ국화ㆍ대 세 가지라 / 松菊陶園與竹三
매화는 어찌하여 그 속에 못 끼었나 / 梅兄胡奈不同參
나는 매화를 넣어서 친구를 맺었노니 / 我今倂作風霜契
굳은 절개, 맑은 향기 너무도 잘 알았다오 / 苦節淸芬儘飽諳
농운정사(隴雲精舍)
○ 선생은 정사 8칸을 짓고 물러나 거처하였는데, 시습재(時習齋), 지숙료(止宿寮), 관란헌(觀瀾軒)이라 하였는데, 합하여 농운정사라고 편액하였다.
항상 사랑하노니 도공의 언덕 위의 구름은 / 常愛陶公隴上雲
오직 혼자서 기뻐할 만하지 임에게는 줄 수 없네 / 唯堪自悅未輸君
늘그막에 그 중간에 집을 짓고 누웠으니 / 晩來結屋中間臥
한가로운 정취는 들사슴과 나눠 가지네 / 一半閑情野鹿分
관란헌(觀瀾軒)
넓고도 양양하니 그 이치가 어떠한가 / 浩浩洋洋理若何
이와 같다고 성인이 탄식하였네 / 如斯曾發聖咨嗟
다행히 도체가 이것으로 인해 나타나니 / 幸然道體因玆見
공부도 이렇게 끊임없이 해야 하네 / 莫使工夫間斷多
시습재(時習齋)
날마다 명ㆍ성을 일삼기를 새가 자주 나는 것과 같이하니 / 日事明誠類數飛
거듭 생각하고 다시 실천하기를 때때로 하네 / 重思復踐趁時時
공부가 익숙하면 깊이 얻음이 있으리니 / 得深正在工夫熟
좋은 음식이 입을 기쁘게 함과 같을 뿐이랴 / 何啻珍烹悅口頤
지숙료(止宿寮)
부끄럽다. 닭고기와 기장도 없으면서 부질없이 그대를 머물게 하네 / 愧無鷄黍謾留君
나도 처음에는 역시 새와 짐승과 같이 살 수 없었네 / 我亦初非鳥獸群
원컨대 스승 따라 바다에 뗏목을 탈 뜻을 가지고서 / 願把從師浮海志
침상을 맞대어 밤새도록 자세히 이야기하세 / 聯床終夜細云云
곡구문(谷口門)
동으로 강대를 밟고 북쪽으론 구름에 들었으니 / 東躡江臺北入雲
곡구의 숲을 열어 산문으로 하련다 / 門荒谷口擬山門
이 이름이 우연히 옛 현인의 살던 땅과 합하나 / 此名偶似前賢地
밭 갈며 숨어 살던 높은 지조를 어찌 쉬 의론하리 / 耕隱風聲詎易論
천연대(天淵臺)
솔개는 날고 물고기는 뛰는 것 누가 시켰나 / 縱翼揚鱗孰使然
활발히 유행하는 묘한 이치 하늘과 못에서 보겠네 / 流行活潑妙天淵
강대에서 종일토록 마음과 눈이 열리니 / 江臺盡日開心眼
명성 큰 책을 세 번 되풀이 외우네 / 三復明誠一巨編
천운대(天雲臺) 혹은 천광운영대(天光雲影臺)라고도 한다.
거울 같은 활수에 하늘빛 구름 그림자 비추니 / 活水天雲鑑影光
책을 보다가 깊이 깨달음이 네모난 연못에 있었네 / 觀書深喩在方塘
나도 지금 맑은 못 위에서 뜻을 얻으니 / 我今得在淸潭上
주자의 당년에 감탄하던 것과 흡사하네 / 恰似當年感歎長
탁영담(濯纓潭)
어부가 당시에 혼자 술에 깬 이를 비웃었으니 / 漁父當年笑獨醒
공자께서 정녕히 경계하신 말씀과 어떠한고 / 何如孔聖戒丁寧
내가 와서 노를 두드리고 풍월을 읊으니 / 我來叩枻吟風月
맑은 못에 갓끈 씻을 수 있음이 기쁘도다 / 却喜淸潭可濯纓
반타석(盤陀石) ○ 그 형상이 편편하고 배를 매고 술잔을 나눌 만한데,
매양 장마에 큰 물이 나면 물속에 숨어 버린다.
도도하게 흐르는 탁한 물결에는 문득 형상을 숨겼다가 / 黃濁滔滔便隱形
잔잔한 물 흐를 때에 비로소 분명하네 / 安流帖帖始分明
어여쁘다 이렇게 세찬 물결에 부딪치면서도 / 可燐如許奔衝裏
천고에 편편하여 줄거나 기울지 않네 / 千古盤陀不轉傾
동취병산(東翠屛山)
옹기종기 뭇 봉우리는 왼쪽 푸른 병풍인데 / 簇簇群巒在翠屛
비 개인 뒤 산 아지랑이 때때로 흰 구름이 비꼈네 / 暗嵐時帶白雲橫
잠깐 동안에 변화하여 비를 날리니 / 斯須變化成飛雨
이영구의 붓끝에서 생긴 것인가 의심되네 / 疑是營丘筆下生
서취병산(西翠屛山)
우뚝우뚝 뭇 봉우리는 오른쪽 푸른 병풍인데 / 嶷嶷群峯右翠屛
가운데는 절이 있고 아래는 원정이네 / 中藏蘭若下園亭
높이 읊으면서 앉아 대하기는 참으로 늘그막이 마땅하니 / 高吟坐對眞宜晩
뜬 구름 한결같이 만고에 푸르네 / 一任浮雲萬古淸
부용봉(芙蓉峯) ○ 상사(上舍) 조사경(趙士敬)의 집이 봉우리 아래에 있다.
남으로 바라보매 부용봉이 구름에 반쯤 있는데 / 南望雲峯半隱形
부용이란 이름이 아름답구나 / 芙蓉曾見足嘉名
주인 또한 연하의 고질병이 있으나 / 主人亦有煙霞癖
초가집 지으려는 깊은 뜻 오랫동안 못이뤘네 / 茅棟深懹久未成
오언절구 26수제목마다 또 사언시(四言詩) 한 장씩 있다.
몽천(蒙泉)
산에서 샘물이 나는 괘가 몽이 되니 / 山泉卦爲蒙
그 상을 나는 늘 생각하는 바이다 / 厥義吾所服
어찌 감히 시중을 잊으랴 / 豈敢忘時中
더욱 마땅히 과육할 것을 생각하려네 / 尤當思果育
○ 서당의 동쪽에 / 書堂之東
샘이 있으니 몽천이라 한다 / 有泉曰蒙
어떻게 본받으랴 / 何以體之
바르게 기르는 공부로다 / 養正之功
열정(洌井)
돌 사이에 우물이 차디차니 / 石間井冽寒
저절로 있으니 어찌 마음에 슬프랴 / 自在寧心惻
한가로운 사람이 거처를 여기 정하였으니 / 幽人爲卜居
한 바가지 참으로 기쁘도다 / 一瓢眞相得
○ 서당의 남쪽에 / 書堂之南
돌우물이 달고도 차네 / 石井甘冽
천고에 연기 속에 잠겼더니 / 千古煙沈
이제부터는 엎지를 마소 / 從古仍冪
정초(庭草)
뜰의 풀과 나의 의사가 일반이라 하였는데 / 庭草思一般
뉘 능히 그 미묘한 뜻을 알랴 / 誰能契微志
도와 서가 천기를 드러냈으니 / 圖書露天機
다만 잠심하기에 있을 뿐 / 只在潛心耳
○ 한가한 뜰에 잔 풀은 / 閑庭細草
조화로 나고 나네 / 造化生生
눈에 부딪히자 도가 있으니 / 目擊道存
의사가 향기 같네 / 意思如馨
간류(磵柳)
무궁한 봄의 조화지만 / 無窮造化春
이것은 원래 풍류스러운 나무로세 / 自是風流樹
천고에 두 절옹이 / 千載兩節翁
이것을 읊으며 얼마나 흥취를 부쳤던가 / 長吟幾興寓
○ 시냇가에 수양버들 / 澗邊垂柳
깨끗한 풍도로다 / 濯濯風度
도연명과 소요부가 좋아하였으니 / 陶邵共賞
나의 사모하는 마음 일어나네 / 起我遐慕
채포(菜圃)
작은 채소밭이 구름 사이에 고요하니 / 小圃雲間靜
아름다운 채소들이 비 뒤에 자라나네 / 嘉蔬雨後滋
취미를 이루었으니 참으로 스스로 즐겁고 / 趣成眞自得
배우겠다는 것은 틀렸으나 아주 어리석은 것은 아니로세 / 學誤未全癡
○ 절우사의 남쪽 / 節右社南
남은 땅에 작은 채소밭 만들었네 / 隙地爲圃
장막 내리고도 틈이 많으니 / 下帷多暇
물독을 안음이 무엇이 괴로우리 / 抱甕何苦
화체(花砌)
화단 굽이에 사람 발자취 없고 / 曲砌無人跡
그윽한 꽃이 고운 자태 발하네 / 幽花發秀姿
낮에 시 읊는 곳에 바람이 가볍고 / 風輕午吟處
새벽에 볼 제 이슬이 무겁네 / 露重曉看時
○ 서당 뒤에 여러 꽃 / 堂後衆花
난만하게 섞어 심었네 / 雜植爛熳
천지의 정영이라 / 天地精英
아름다움 아닌 것 없네 / 莫非佳玩
서록(西麓)
집 서쪽에 푸른 산기슭이 비꼈으니 / 舍西橫翠麓
그윽히 은거할 만하네 / 蕭灑可幽貞
이중이야 어찌 없으랴마는 / 二仲豈無有
내가 장경 아님이 부끄럽네 / 愧余非蔣卿
○ 푸르른 서쪽 산기슭에 / 悄蒨西麓
초가집 한 채 지을 만하네 / 堪結其茅
학문에 전심할 수 있으니 / 以藏以修
구름 안개 어우러졌네 / 雲霞之交
남연(南淵)
이상한 돌이 산 어구에 있고 / 異石當山口
옆으로 시냇물이 강으로 들어가네 / 傍邊澗入江
때때로 내가 와서 세수하고 씻으니 / 我時來盥濯
맑은 숲 속에 흥취가 짝이 없도다 / 淸樾興難雙
○ 돌이 우뚝 / 石之揭揭
숲이 무성하다 / 樾之陰陰
강의 언덕에서 / 于江之沜
시원하게 납량하네 / 納涼蕭森
취미(翠微)
동쪽으로 취미에 오르니 / 東隴上翠微
구일에 술병을 들었네 / 九日携壺酒
도연명보다 낫구나 / 却勝陶淵明
술도 없이 국화만 손에 가득 땄던 것보다는 / 菊花空滿手
○ 취미 취미여 / 翠微翠微
서당의 동쪽이로다 / 書堂之東
9일의 고사가 / 九日故事
나의 마음을 감개하게 하네 / 感慨余衷
요랑(寥朗)
서쪽 언덕 공활하고 탁 트인 곳에 / 西隴上寥朗
머리를 들어 연기와 안개를 바라보도다 / 矯首望煙霞
어쩌면 우주에 높이 날아 / 安得凌八表
신선의 집을 찾으리 / 仍尋羽人家
○ 고요하고 트였음이여, 고요하고 트였음이여 / 寥朗寥朗
정사의 서쪽이로다 / 精舍之西
우러러보고 구부려 봄이여 / 仰眺俯瞰
누가 그 끝간 데를 알랴 / 孰知其斜
조기(釣磯)
늦도록 놀리니 낚싯대가 휘어졌고 / 弄晩竿仍裊
자주 오매 돌도 또한 따뜻하네 / 來多石亦溫
물고기는 푸른 버들가지로 꿰었고 / 魚穿靑柳線
도롱이는 푸른 연기 흔적을 띠었네 / 蓑帶綠煙痕
○ 강에 다다른 이끼 낀 돌에 / 臨江苔石
한 가닥 낚시 실이 바람에 나부끼네 / 一絲颺風
미끼를 탐하면 매달리고 / 貧餌則懸
이익을 취하려면 싸우느니 / 冒利則訌
월정(月艇)
차가운 못은 닦아 놓은 거울과 같으니 / 寒潭如拭鏡
달을 실은 조각배를 희롱하네 / 乘月弄扁舟
호로의 연파 읊음이요 / 湖老煙波詠
파선의 계수나무 돛대 가을이네 / 坡仙桂棹秋
○ 한 잎 작은 배에 / 一葉小艇
풍월을 가득 실었네 / 滿載風月
사람이 그리워도 볼 수 없으니 / 懷人不見
나의 시름 쉬지 않구나 / 我心靡歇
역천(櫟遷)
벼랑을 타고 오른 길을 천이라 부르니 / 緣崖路呼遷
그 위에 떡갈나무 많이 심었네 / 其上多樹櫟
울퉁불퉁 못생긴 것 무방하니 / 何妨抱離奇
수명이 벌써 수백 년 지냈네 / 壽已過數百
○ 떡갈나무 재목 안 되는 것이 / 櫟之不材
흔히 늙도록 오래 사네 / 多至壽老
혹시 면치 못하는 수가 있더라도 / 厥或不免
못난 것이 오래 사는 도리로세 / 乃壽之道
칠원(漆園)
옛 고을에 터만 남았는데 / 古縣但遺基
옻나무 숲은 관가에서 심은 것 / 漆林官所植
베임을 당한다는 깨우치는 말을 하였으니 / 見割有警言
장자도 또한 식견이 높구나 / 蒙莊亦高識
○ 칠이 세상에 쓰임이 되니 / 漆爲世用
베임을 당하지 않을 수 있으랴 / 其割焉保
혹시 베임을 면할지라도 / 厥或免割
베임을 당할 도리니라 / 乃割之道
어량(魚梁)
옥식(임금의 밥)에는 진미가 필요하니 / 玉食須珍異
은순어는 진상하기에 합당하네 / 銀唇合進供
높직하게 어량이 가로질렀고 / 峨峨梁截斷
겹겹으로 그물이 쳐 있네 / 濊濊罟施重
○ 병혈에서 공납하니 / 丙穴底貢
나무를 산더미처럼 엮었네 / 編木如山
매양 여름 가을 바뀔 때는 / 每夏秋交
나는 시내 한쪽으로 물러가네 / 我屛溪間
어촌(漁村)
벼랑 저쪽에 백성의 풍속이 예스럽고 / 隔崖民風古
강가에 즐거운 일이 많구나 / 臨江樂事多
그림 같은 석양에 / 斜陽如畫裏
그물을 거두어 은어를 얻네 / 收網得銀梭
○ 태평의 생활은 / 太平煙火
의인 마을일세 / 宜人之村
물고기 잡이로서 요역을 대신하니 / 漁以代徭
배부르고 등 따스하네 / 式飽且溫
연촌(煙村)
멀고 가까이 땅이 둘렀는데 / 遠近勢周造
까맣게 연기 낀 나무 아득하네 / 漠漠迷煙樹
머리 들어 바라보매 완상할 만한데 / 延望足玩心
변화하는 경치는 절로 아침이요 저녁일세 / 變態多朝暮
○ 읊조려도 흥취를 다할 수 없고 / 吟不盡興
그림으로 변화하는 경치를 다 그리지 못하겠네 / 興不盡變
봄이 짙을 제 비단무늬가 얽혔고 / 春濃繡錯
가을이 늦을 제 붉은 놀이 현란하네 / 秋老霞絢
설경(雪徑)
한 오솔길이 시냇가를 끼고 / 一徑傍溪潯
높았다 낮았다 끊겼다 다시 이어졌네 / 高低斷復逵
쌓인 눈에 사람의 자취 없는데 / 積雪無人蹤
흰구름 밖에서 중이 오네 / 僧來自雲表
○ 하얀 벼랑과 계곡 / 浩浩崖壑
아득한 비탈길이로다 / 迢迢磴逕
눈을 밟으매 옥의 자취가 되니 / 踏作瑤迹
누가 먼저 흥을 타려나 / 誰先乘興
구저(鷗渚)
넓은 물결에 뗬다가 다시 잠기고 / 浩蕩浮還沒
날개 털고서 햇볕 쬐다가 다시 조네 / 毰毸晒復眠
한가한 정취가 이러하니 / 閑情乃如許
기사는 결코 없으리 / 機事定無緣
○ 춤만 추며 내려오지 않으니 / 舞而不下
간섭할 수 없네 / 渠未可干
친압하여 맹세 있으니 / 狎而有盟
내 어찌 감히 저버리랴 / 吾何敢寒
학정(鶴汀)
물가의 학이 내 낀 하늘 아래 내려와 / 水鶴煙霄下
비 개인 뒤 모래밭 먼 물가에 섰네 / 晴沙立遠汀
어찌 먹지 않으리요마는 / 那堪無飮啄
먹은 곳에 오래 머물지 말라 / 得處莫留停
○ 구고(九臯)에서 울매 소리가 하늘에 들리고 / 鳴皐聞天
배에 스쳐 지나 꿈을 놀라게 하였네 / 掠舟驚夢
들판에 짝이 있으니 / 野田有侶
섞여서 희롱하기를 조심하라 / 盍愼媒弄
강사(江寺)
강언덕에 옛 절이 비어 있으니 / 古寺江崖空
신선의 놀던 것 삼신산에 아득하네 / 仙遊沓方丈
천도(복숭아) 심은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 蟠桃定何時
열매 맺으면 다시 와서 구경하리 / 結子重來賞
○ 강 위에 암자는 / 江上招提
신선의 옛 거처라네 / 老仙舊居
달은 차가운데 뜰은 묵었고 / 月寒庭蕪
바람은 슬픈데 방은 비었네 / 風悲室虛
관정(官亭)
작은 정자 경계가 절로 좋은데 / 小亭境自佳
뒤에는 강이요 앞에는 언덕이다 / 後江前皐濕
검정 일산 오지 않을 때에 / 皂蓋不來時
들새들이 스스로 날아드네 / 野禽自棲集
○ 관가에서 정자 지은 지 / 官作之亭
세월이 아득하네 / 歲月茫茫
호량에 즐거움을 아는 것도 못 되고 / 樂匪知濠
행동은 당에 가서 물고기 보던 것과도 같았네 / 擧似如棠
장교(長郊)
여름날에는 푸른 물결(푸른 보리) 가득 차고 / 炎天彌翠浪
가을철에는 누른 구름(누른 벼) 가득하네 / 商節滿黃雲
해질 무렵에 돌아가는 까마귀를 바라보니 / 薄暮歸雅望
먼 바람에 목동(牧童)의 피리소리 들려오네 / 遙風牧笛聞
○ 들은 평평한데 / 郊原膴膴
인가는 여기저기 / 籬落依依
별을 보고 나갔다가 / 戴星而出
달을 보고 돌아오네 / 帶月而歸
원수(遠岫)
아득하나 항상 자리에 마주 대한 듯 / 微茫常對席
아물거리니 어느 고을인가 / 縹緲定河洲
비 내려 침침할 제 시름해도 어쩔 수 없고 / 雨暗愁無奈
하늘이 트일 제 뜻이 더욱 길어라 / 天空意轉悠
○ 눈썹도 같고 잠과 같으며 / 如黛如簪
연기도 아니고 구름도 아니로다 / 非煙非雲
꿈에 들어오매 막을 길 없고 / 入夢靡遮
병풍에 그려두니 분별할 수 없네 / 上屛何分
토성
이 성을 쌓아 난을 막은 것이 어느 시대 사람인고 / 禦難何代人
문적이 없어 상고하지 못하겠네 / 古籍莽難考
세상에 태평하여 무너진 지 오래이니 / 時平久已頹
토끼굴에 풀들이 우거졌네 / 兎穴深蔓草
○ 저 남산에 / 維彼南山
산을 인해 성을 만들었네 / 因山作城
동해가 뽕나무 밭 되기도 하루아침인데 / 海桑一朝
만과 촉은 왜 싸우나 / 蠻觸何事
교동(校洞)
궁장은 시냇가 안개 속에 묻혔고 / 宮墻沒澗煙
글과 거문고 소리는 산새 소리로 변했구나 / 絃誦變山鳥
뉘 능히 폐해진 규모를 일으켜 / 誰能起廢規
어둡고 아득해진 도리를 밝혀낼꼬 / 張皇道幽眇
○ 옛 고을 향교가 / 古縣鄕學
남은 터가 완연하구나 / 遺址宛然
고려 말년 쇠할 때 일이라 / 麗季孱王
교화가 전함이 없구나 / 敎化無傳
오언절구 4수이하 네 곳은 모두 천연대(天淵臺)에서 바라보이는 곳이다.
그러나 다 주인이 있으므로 도산(陶山)에 속하지 아니하고
뒤에다 따로 적으니
옛날 황산곡(黃山谷)이, “경치를 빌린다.” 하던 뜻이다.
○ 농암(聾岩) 서취병 동쪽에 있는데 고 지중추(故知中樞) 이 선생의
정관(亭館)이 곁에 있다.
서쪽으로 바위 벼랑 좋은 곳을 바라보니 / 西望岩崖勝
높은 정자가 형세가 날 듯하네 / 高亭勢欲飛
풍류를 어찌 다시 보랴 / 風流那復覩
높은 산처럼 우러러봄도 지금엔 드물었다 / 山仰只今稀
○ 분천(汾川)서취병 남쪽에 있는데 마을 이름이다.
지사(知事)의 아들 찰방 대성(大成)이 거처하던 곳인데 호는 벽오(碧梧)다.
분내가 다른 물이 아니라 / 汾川非異水
머리 돌이키니 오동나무 그늘 상상하네 / 回水想梧陰
성긴 비에 우수수 울리니 / 摵摵鳴疎雨
가을이 오매 임 그리움 깊어라 / 秋來戀主深
○ 하연(賀淵) 서취병 아래에 있는데 승지(承旨) 이공간(李公幹)의 정자가 그 위에 있다.
급한 물결이 떨어져 못이 되었는데 / 激湍下爲淵
깊은 곳은 몇 길이나 되는지 / 深處知幾丈
주인이 은대(승정원)에 있으니 / 主人在銀臺
강호가 자주 꿈에 들리 / 煙波頻夢想
○ 병암(屛庵)서취병 절벽 가운데 있는데 상사(上舍) 이대용(李大用)이 세운 것으로서 중을 시켜 지키게 했다. 전일에 깨끗한 방[淨室]이 있었더니 근자에 들으니 지키는 중이 그 방을 고쳐 만들어 전의 아름다운 풍치를 잃었다 한다.
높은 벼랑 위에 병암이 있으니 / 屛庵在懸崖
돌틈에서 나는 샘물 이가 시리다 / 石縫泉氷齒
전에는 깨끗한 방이 사랑스럽더니 / 舊愛一室明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고 / 如今定何似
산거 4시(山居四時) 각 4영(詠) 16절
봄 4영[春四詠]
안개 걷힌 봄산이 비단처럼 밝은데 / 霧捲春山錦繡明
진기한 새들은 서로 화답하며 온갖 소리로 우네 / 珍禽相和百般鳴
산집에 요즘은 찾는 손님이 없었으니 / 幽居更喜無來客
푸른 풀이 뜰 안에 마음껏 났다 / 碧草中庭滿意生 아침
뜰 앞에 비 갠 뒤 고운 볕이 더딘데 / 庭宇新晴麗景遲
꽃 향기는 무럭무럭 사람 옷에 풍기네 / 花香拍拍襲人衣
어찌하여 네 제자가 모두 제 뜻 말하는데 / 如何四子俱言志
성인께서는 읊고 돌아옴을 홀로 탄식하는고 / 聖發咨嗟獨詠歸 낮
동자가 산을 찾아 고사리를 캐니 / 童子尋山採蕨薇
반찬이 넉넉하여 요기가 되네 / 盤飱自足療人飢
비로소 알겠구나 당일 전원(田園)에 돌아온 손님 / 始知當日歸田客
저녁 이슬이 옷을 적셔도 피하지 않는 것을 / 夕露衣沾願不違 저녁
꽃빛이 저녁을 맞자 달은 동쪽에서 떠 오르니 / 花光迎暮月昇空
공(攻)이 내집(空內集)에는 동(東) 자로 되어 있다
꽃과 달이 맑은 밤에 이 뜻이 끝이 없네 / 花月淸宵意不窮
다만 달이 둥글고 꽃이 지지 않으면 / 但得月圓花未謝
꽃 밑에 술잔 빔을 걱정하지 말라 / 莫憂花下酒杯空 밤
여름 4영[夏四詠]
새벽에 일어나니 빈 뜰의 대 이슬이 맑은데 / 晨起虛庭竹露淸
헌함을 열면 멀리 푸른 여러 산을 대하네 / 開軒遙對衆山靑
작은 아이 빨리 물병을 가져오나니 / 小童慣捷提甁水
탕의 반명처럼 세수하네 / 澡頮湯盤日戒銘 아침
낮이 고요한 산당에 대낮이 밝은데 / 晝靜山堂白日明
우거진 아름다운 나무는 처마에 둘러 있다 / 葱瓏嘉樹繞簷楹
희황씨 이전의 사람으로 창문 아래 높이 누워 있으면 / 北窓高臥羲皇上
시원한 산들바람은 새 소리를 보내오네 / 風送微冷一鳥聲 낮
석양의 아름다운 빛 시내와 산을 흔들고 / 夕陽佳色動溪山
바람은 자고 구름은 한가한데 새는 스스로 돌아가네 / 風定雲閑鳥自還
홀로 앉은 그윽한 회포를 누구와 이야기하리 / 獨坐幽懷誰與語
바위 언덕은 고요하고 물은 졸졸 흐른다 / 岩阿寂寞水潺潺 저녁
서재는 고요하고 산은 비고 달은 절로 밝은데 / 院靜山空月自明
깨끗한 이불 속에 꿈도 맑도다 / 翛然衾席夢魂淸
깨어나 말하지 않은 것 무슨 일인고 / 寤言弗告知何事
누워서 한밤중 학의 소리를 듣는다 / 臥聽皐禽半夜聲 밤
가을 4영[秋四詠]
어젯밤 바람에 남은 더위가 모두 가고 / 殘暑全消昨夜風
아침에 일어나니 시원한 기운이 가슴에 스민다 / 嫩涼朝起洒衿胸
영균이 원래 도를 말할 줄 아는 이 아니라면 / 靈均不是能言道
어떻게 천 년 뒤에 회옹이 느끼도록 하는가 / 千載如何感晦翁 아침
서리는 내리고 하늘은 비고 매는 한참 힘찬데 / 霜落天空鷹隼豪
물가의 바위 끝에 한 당이 높다 / 水邊岩際一堂高
요즘 와서 삼경이 유난히 쓸쓸한데 / 近來三徑殊牢落
국화를 쥐고 앉아 도연명을 생각하네 / 手把黃花坐憶陶 낮
가을 당의 조망을 누구와 즐길꼬 / 秋堂睡望與誰娛
단풍 숲에 석양이 비치니 그림보다 낫더라 / 夕照楓林勝畫圖
갑자기 서쪽 바람이 불어 기러기 지나가니 / 忽有西風吟雁過
옛 친구는 편지를 보내오지 아니하나 / 故人千里寄書無 저녁
찬 못에 달이 비쳐 옥우(맑은 공중)가 맑은데 / 月映寒潭玉宇淸
사람의 그윽한 방이 하나 고요하고 맑다 / 幽人一室堪虛明
그 가운데 스스로 참된 소식이 있나니 / 箇中自由眞消息
선의 공도 아니요, 도가의 명도 아니네 / 不是禪空與道冥 밤
겨울 4영[冬四詠]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찬 하늘을 찌르고 / 群峯傑卓入霜空
뜰아래의 국화는 아직 떨기 남았는데 / 庭下黃花尙依叢
땅을 쓸고 향을 사르니 바깥 일 없고 / 掃地焚香無外事
종이창에 해가 비치니 밝기가 마음 같다 / 紙窓銜日曒如衷 아침
추운 철 그윽하게 사는 이 무슨 경영 있겠는가 / 寒事幽居有底營
꽃 가꾸고 대나무 돌보며 여윈 몸 건강을 조섭하네 / 藏花護竹攝羸形
찾아오는 손님을 은근히 사절하노니 / 慇懃寄謝來尋客
겨울 석 달 동안에 손님 영접 끊으려 하네 / 欲向三冬斷送迎 낮
나뭇잎은 모두 뿌리로 돌아가고 해는 짧은데 / 萬木歸根日易西
쓸쓸한 연기 낀 숲에 새는 깊이 깃들었네 / 煙林蕭索鳥深棲
옛날부터 저녁까지 조심함은 무슨 뜻일까 / 從來夕陽知何意
은미한 곳에서 미혹을 방지하려 함이었네 / 迨欲須防隱處迷 저녁
눈이 흐려져 잘 보이지 않으니 등불 가까이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 眼花尤怕近燈光
늙고 병드니 겨울밤 긴 것을 절실히 알겠네 / 老病偏知冬夜長
책 읽지 않아도 읽는 것보다 훨씬 나으니 / 不讀也應惟勝讀
앉아서 창문의 달을 바라보니 서리보다 차더라 / 坐看窓月冷如霜 밤
임거 4영(林居四詠)
납주 봄빛이 눈에 비쳐 새로우니 / 臘酒春光照眼新
따스한 기운에 처음으로 몸과 정신이 알맞은 줄 알겠네 / 陽和初覺適形新
비 갠 뒤 처마에 우는 새는 손님을 부르는 것 같고 / 晴簷鳥哢如呼我
눈 속 찬 매화는 은군자 같구나 / 雪磵寒梅似隱眞 이른봄[早春]
농가에서 보릿가을 잘 되었다고 서로 축하하는데 / 田家相賀麥秋天
닭ㆍ개ㆍ뽕나무ㆍ삼도 절로 자라도록 맡겨두네 / 雞犬桑麻任自然
비록 이 즈음에 궁하기가 뼈에 사무쳤어도 / 縱使年來窮到骨
우물가에 기어가서 벌레 먹은 오얏 열매 삼키는 것 면하리 / 免敎匍匐井螬邊
초여름[初夏]
벌레 울음소리 밤새도록 들으니 / 切切陰虫聽到明
무슨 일로 소리 소리 불평을 호소하나 / 不平何事訴聲聲
차가운 가을철 오는 건 어쩔 수 없으니 / 極知搖落來無奈
총죽을 위해 절조 있는 줄기를 보호해 주려네 / 深爲叢筠護節莖 이른가을[早秋]
농사 일 쉬고서 집안이 조용하니 / 役車休了靜門扃
빈풍에 나오는 대로 겨우살이 이러하네 / 卒歲豳風事爾馨
야윈 몸 방에 들면 따뜻해야 할 것이니 / 羸骨土床宜煖熨
아침저녁에 초청(樵靑)에게 물으리 / 却須朝夕問樵靑
초겨울[初冬]
○ 《성학십도》의 여섯째는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인데, 상ㆍ중ㆍ하 3도(圖)가 있다. 상(上) 1도(圖)는 임은(林隱) 정씨(程氏)가 지은 것이고, 중ㆍ하 2도는 선생께서 성현의 모범될 만한 말씀의 근본을 찾아 만들었다. 상도(上圖)는 설명이 본래 있었고 중도(中圖)는 기품(氣稟) 가운데에 나아가서 본연의 정(情)이 기품에 섞이지 아니한 것을 지적하여 말한 것이다. 자사(子思)의 이른바 천명의 성[天命之性]과 맹자의 이른바 성선의 성[性善之性]과 정자(程子)의 이른바 즉리의 성[卽理之性]이 곧 이것이다. 그것이 발(發)하여 정(情)이 됨에도 역시 모두 그 선한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하도(下圖)는 이(理)와 기(氣)가 합한 것으로써 말한 것이니, 정자의 이른바, “기(氣)가 곧 성(性)이요, 성은 곧 기이다.”는 성(性)과 장자(張子)의 기질의 성[氣質之性]이라는 성과 주자의 이른바, “기 가운데 있으나 기는 기요, 성은 성이니 서로 섞여지지 않는다.”는 성이 곧 이것이다. 그것이 발하여 정(情)이 됨에도 역시 이(理)와 기(氣)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방해하는 곳을 가지고 말하였다. 〈성학도설(聖學圖說)〉
○ 선생은 왕노재(王魯齋 이름은 백(柏))의 〈경재잠도(敬齋箴圖)〉를 모방하여 〈숙흥야매잡도(夙興夜寐箴圖)〉를 만들었는데 서로 상대가 된다. 〈경재잠〉에는 공부를 해야 할 방면을 많이 제시하였기 때문에, 그 공부를 해야 할 경우를 따라 배열하여 도식을 만들었고, 이 잠은 공부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그때를 따라 배열하여 도식을 만들었다. …… 공부해야 할 경우를 잊지 않아 조금이라도 차이가 없고, 방면을 잃지 않고 잠깐 동안이라도 차이가 없이 두 가지가 아울러 나아간다면 성인이 되는 요결이 그 안에 있지 않겠습니까. 동상
○ 임금이 된 이의 한 마음은 만 가지 정무가 연유하는 곳이고 백 가지 책임이 모이는 곳인데, 여러 욕심이 서로 침해하고 뭇 간사함이 서로 꿰뚫으니, 만약에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 방종이 따르게 되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과 같을 것이니 이것을 누가 막으리오. 동상
○ 선생은 왕매계(王梅溪)가 한시(韓詩)를 화답한 것을 읽고 느낌이 있어
그 운을 따서 〈추회시(秋懷詩)〉 11수를 지었다. 본집
○ 계산 잡영(溪山雜詠). ‘봄날 시내 위에서[春日溪上]’ 이르기를,
눈이 녹고 얼음 풀려 흐르는 물 푸릇푸릇 / 雪消氷泮綠生溪
살랑살랑 실바람에 버들가지 휘날리네 / 澹澹和風滿柳隄
앓다 일어나 보니 그윽한 흥 넉넉한데 / 病起來看幽興足
꽃다운 풀 싹트는 것 더욱더 어여뻐라 / 更憐芳草欲生荑
하였다. 본집
○ 근래 사문(斯文) 이문순(李文純)이 일찍이 수학에 힘을 기울여 《황극경세서주(皇極經世書註》를 지었는데, 선생께서 보시고 어떤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 아무개가 스스로 그 설에 능통하다 하여 주해를 지었지만 아직 과연 잘못이 없는지 모르겠다.” 하였다. 본집
○ 선생은 매화를 편애(偏愛)하여 매화 시첩 1질이 있다. 본집
○ 대개 선비가 의리를 말하는 것은 농부가 뽕나무와 삼, 장석(匠石 목수)이 먹줄 이야기 하는 것과 같아서 제각기 저의 하는 일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에게 나무라기를, “네가 참람되게 신농씨가 되려 한다.” 하고, 장석에게 나무라기를, “네가 망령되게 공수자(公輸子 이름은 반(班)), 옛날의 정교한 장인(匠人))가 되려 한다.” 하니, 무릇 신농씨와 공수자는 쉽사리 따라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 법을 내어 버리고 그 어떤 것을 배워서 농부나 장인이 되겠는가. 〈천명도설후서(天命圖說後敍)〉
○ 마침내 스스로 관직을 피하고 고서(古書)를 짊어지고 옛날 산으로 들어가 앞으로 매일 이르지 못한 대목을 연구하려 하였으나, 성은(聖恩)은 널리 포용해 주시고 쓸데없는 명예는 사람을 핍박하여 계묘년으로부터 임자년에 이르는 동안 모두 세 번 물러나 돌아갔다가 세 번 소환되었으니 이와 같이 하고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어렵지 않겠소.
남명(南溟)에게 준 편지
○ 선생은 처음 시냇가에 초옥을 짓고 이름하여 한서암(寒栖庵)이라 하였는데, 시에,
시냇가에 띠집을 옮겨 지었는데 / 茅茨移構澗庵中
때마침 산꽃이 어지럽게 피었네 / 正値岩花發亂紅
예와 지금이 가로막혀 때야 이미 늦었지만 / 古往今來時已晩
밭 갈고 글 읽으며 즐거움은 그지없네 / 朝耕夜讀樂無窮
하였다. 《잡영》
○ 늦봄 망일(望日)에 홀로 도신(陶山)에 이르니, 매화가 추워 아직 활짝 피지 않았다. 햇대[窨竹]도 역시 초췌한데 거기에 이날 풍우가 주야로 계속하여 지난 봄의 율시 운에 따라 이르기를,
아침이라 북녘 산을 거쳐 봄이 찾아오니 / 朝從山北訪春來
산꽃이 활짝 피어 비단인 양 화사하네 / 入眼山花爛錦堆
죽총은 어이하여 시들었는고 / 試發竹叢驚獨悴
매화꽃 상기도 덜 피었구려 / 旋攀梅樹歎遲開
매화꽃은 광풍에 시달린 탓 / 疎英更被風顚簸
대 폭은 모진 비에 쓰러졌다네 / 苦節重遭雨急摧
벗님도 시절 따라 소식 막히니 / 歲月同人今又阻
시름은 여전히 억제하기 어렵구나 / 淸愁依舊浩難裁
하였다. 동상
○ 선생이 병으로 귀향하여 산사(山舍)에서 매화를 찾으면서 〈방매(訪梅)〉라는 한 절구에,
여보소, 산중의 두 신선님[매화를 가리킴]네 / 爲問山中兩玉仙
이렇고서 모든 꽃을 앞서 피겠나 / 留春何到百花先
어째서 양양관서 만나던 그날처럼 / 相逢不似襄陽館
방실 웃고 날 맞아 주지 않나 / 一笑凌寒向我前
하였다.
매화가 답한 한 절구에,
나는 참 신선 아닌 환골선인데 / 我是逋仙換骨仙
임은 요양에서 내려온 학이로세 / 公如歸鶴下遼天
서로 만나 반갑게 웃을 날 있으리니 / 相看一笑天應許
양양관을 가져다 선후를 따지지 마소 / 莫把襄陽較後前
하였다. 얼마 후에 예천(醴泉)에서 매화가 피는 것을 보았는데 2월 그믐 경이었다. 그
런데 이제 산중에 오니 봄은 이미 저물고 매화는 이제야 피기 시작했다. 동상
○ 선생은 일찍이 산수(山水)가 좋은 군(郡)의 수령이 되기를 원했는데
뒤에 단양(丹陽) 군수로 나갔다. 시를 쓰기를,
푸른 솔에 흰 학은 비록 연분이 없으나 / 靑松白鶴雖無分
푸른 물과 붉은 산은 과연 인연이 있구나 / 碧水丹山信有緣
하였다. 일찍이 사문(斯文)이 있었는데, 청송(靑松) 부사가 되어 백학(白鶴)이라 자호하였는데, 드디어 단양 군수가 되자 이런 시를 쓰게 되었다. 연보(年譜)
○ 명종 3년 무신년에 선생은 외직을 원하여 단양 군수를 제수받았다. 형 대헌(大憲)이 당시 충청 감사가 되었는데 단양이 그 휘하에 있기 때문에 풍기 군수(豐基郡守)로 바꿔 제수받았다. 감사에게 글을 올려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의 편액과 서적을 청하자, 감사가 계문(啓聞)하여 하사 받았다. 병으로 세 번 감사에게 벼슬을 그만두려고 청하고 명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갔다.
○ 경술년에 비로소 퇴계의 서쪽에 자리를 잡고 한서암(寒棲庵)을 짓고
집 이름을 정습(靜習)이라 하고 그 안에서 독서하였다. 시에,
몸이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에 편안하나 / 身退安愚分
학문은 퇴보되어 만년에 근심되네 / 學退憂暮境
시냇가에 비로소 살 곳을 정하니 / 溪上始定居
흐르는 물에 임하여 날로 반성함이 있으리 / 臨流日有省
하였다. 이로부터 배우러 오는 선비가 날로 많아졌다. 동상
○ 계축년에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天命圖)〉를 개정하였다.
정지운의 자는 정이(靜而)요, 호는 추만(秋巒)이다.
〈천명도〉를 짓고 또 설명을 적었는데, 선생이 그를 위하여 정정해 주고
그 뒤에다 글을 썼으니, 그 대략에 이르기를, “내가 벼슬한 지 20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이웃에 사는 정정이(鄭靜而)와 서로 사귀어 왕래하지 못하였다. 하루는 〈천명도〉를 얻었는데 그 그림과 설명이 잘못된 것이 상당히 많기에 태극도와 그 학설을 인용, 증명하고 지적하여 말하기를, ‘어디는 잘못 되었으니 고쳐야 할 것이요, 어디는 필요 없으니 삭제해야 할 것이요, 어디는 부족하니 보충해야겠는데 어떠한가?’ 하니, 정이는 모두 승낙하고 노여워하거나 인색해 하는 빛이 없었다.” 하였다. 동상
○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순서에 따라 편찬하였다.
○ 정사년에 도산의 남쪽에 서당의 터를 얻었고 《계몽전의(啓蒙傳疑)》를 완성하였다. 동상
○ 무오년에 오택(鰲澤)에서 놀았다. 좨주(祭主) 우탁(禹倬)을 위해 서원을 못가에 짓고자 그 터를 둘러보았다. 동상
○ 기미년에 황중거(黃仲擧)의 《백록동규집해(白鹿洞規集解)》를 논한 편지에 회답하였다. 《집해》는 송당(松堂) 박영(朴英)이 지었는데, 잘못된 곳이 있어서 선생이 사리를 따져 분석하고 설명하였다. 이산서원(伊山書院)을 짓고 송 나라 말년에서 원 나라 명 나라의 《이학통록(理學通錄)》을 편찬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주자서(朱子書)》와 《어류(語類)》와 실기(實記)ㆍ《사기》 《일통지(一統志)》 등의 서적에 의거하여 언행과 사적을 채택 수집하여 각각 종류에 따라 분류하였다. 동상
○ 경신년에 기고봉(奇高峯)의 편지에 회답하여 사단칠정을 변론하였다.
○ 도산서당이 이루어졌다. 이로부터 호를 도옹(陶翁)이라 하였는데, 집은 모두 세 칸인데 헌(軒)은 암서(岩棲), 재(齋)를 완락(琓樂)이라 하고 정사는 7칸인데 이름하여 농운(隴雲)이라 하였다. 선생은 매일 도산에 가서 완락재에 거처하며 좌우의 도서를 두고 밤낮으로 읽고 생각하였다.
○ 신유년 3월에 절우사(節友社)를 지었다.
하루는 선생이 시내 위에서 도산으로 걸어 나와 매화를 찾아서 시를 지었는데,
꽃은 벼랑 위에 피었는데 봄은 적적하고 / 花發岩崖春寂寂
새는 시냇가 나무에서 우는데 물은 졸졸 흐른다 / 鳥鳴澗樹水潺潺
우연히 산 뒷길을 따라 아이들과 어른을 데리고 / 偶從山後携童冠
한가로이 산 앞에 이르러 고반(은사의 생활)을 보았네 / 閒到山前看考槃
하였다. 〈도산기(陶山記)〉를 지었다.
○ 임술년 3월에 배를 타고 청계(靑溪)에 이르러 대를 쌓고
이름하여 청계대(靑溪臺)라고 하였다.
○ 갑자년 9월에 정암(靜庵) 조 선생(趙先生)의 〈행장〉을 찬술하고,
〈심무체용변(心無體用辨)〉을 지었다.
대략 이르기를, “고요한 것과 느끼는 것으로 체(體)와 용(用)을 삼는 것은 《주역》에 근본하였고, 움직임과 고요함으로 체와 용을 삼는 것은 《대기(戴記)》에 근본하였고, 미발(未發)과 이발(已發)로 체와 용을 삼는 것은 자사(子思)에 근본하였고, 성(性)과 정(情)으로 체와 용을 삼는 것은 맹자(孟子)에 근본하였는데, 모두 마음의 체와 용에 대한 것이다. 대저 사람의 한 마음이 비록 육합(六合)에 가득하고 고금에 뻗쳐 유명(幽明)을 꿰뚫고 모든 은미한 이치에 투철하다 하더라도, 그 요약한 것은 체와 용의 두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와 용의 이름이 비록 선진(先秦) 이전의 글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정자ㆍ주자 이래로 여러 선비들이 도리를 논하고 마음을 논한 것이 이것으로써 주장을 삼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 을축년에 〈경재잠도(敬齋箴圖)〉ㆍ〈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ㆍ〈명당실어(名堂室語)〉 를 써서 완락재(琬樂齋) 벽 위에 걸었다. 《경현록(景賢錄)》을 개정하였다. 구암(龜岩) 이정(李楨)이 기록한 것을 살펴보건대, “이정이 전에 한훤당 선생의 가범(家範)ㆍ행장ㆍ의(議) 등의 책을 편집해서 한 책을 만들었으나 견문이 좁고 얕아서 빠뜨린 것이 너무 많으므로 의심되는 것을 퇴계 선생에게 질문하니, 선생이 의흥(義興 고을 이름) 김입(金立)과 수재(秀才 벼슬하지 않은 젊은 사람) 정곤수(鄭崑壽) 등이 기록한 것을 모두 가져다가 참고하고 정정하여 정본(定本)을 만들었다.” 하였다.
○ 10월에 회재(晦齋) 이 선생의 행장을 지었다. 문집을 교정하고 〈심경후론(心經後論)〉을 지었다. 인중(仁仲)에게 편지하여 《몽구(蒙求)》를 논하였다.
○ 기사년 3월에 중추부사를 제수하므로 대궐에 들어가서 성은에 감사하고 야대청(夜對廳)에 입대하여 물러갈 것을 청하여 허락받았다. 정오 때에 하직하고 성으로 나와 동호(東湖)의 몽뢰정(夢賚亭)에서 자고 배를 타고 봉은사(奉恩寺)에서 잤다. 명사들이 온 조정을 비우다시피 하고 나와서 전송할 때 각각 시를 지어 이별의 뜻을 표하기 때문에 선생도 시를 짓기를,
큰 배에 벌려 앉은 분 모두 명사일세 / 列坐方舟盡勝流
돌아가고픈 마음 온 종일 끌리어 머물렀네 / 歸心終日爲牽留
원컨대, 한강물 가져다가 벼루에 부어서 / 願將漢水添行碩
작별할 때의 끝없는 수심 그려내소 / 寫出臨分無限愁
하였다.
○ 7월에 천곡서원(川谷書院 성주(星州)에 있다)의 두 선생 축문을 초하였다. 9월에 노이재(盧伊齋 노수신(盧守愼))가 상례(喪禮)를 논한 편지에 회답하였다.
경오년에 전문(箋文)을 올려 치사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3월, 4월에 연속 글을 올렸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5월에 여러 제자와 도산에 모여 《계몽(啓蒙)》을 강론하였다. 7월에 역동서원(易東書院)에서 《심경(心經)》을 강론하였다. 8월에 역동서원의 낙성식에 갔다. 10월에 기명언(奇明彦)에게 편지를 보내어 〈심성정도(心性情圖)〉를 논하였다. 11월에 병으로 피곤하다하여 여러 제자들을 돌려 보냈다. 유응견(柳應見)이 정사에 머무르면서 보낸 절구에 화답한 시 3수가 있으니, 그 하나에,
공자께서도 인후한 마을 고르셨고 / 孔聖猶箴擇里人
증자는 글로 벗을 모와 서로 도와 인을 이룬다 하였네 / 曾云文會輔成仁
늙어지면서 다시 학문하는 데 소홀함을 깨달았노라 / 老來更覺踈爲學
빈손으로 돌아와서 또 봄 기다리는 것 부끄럽네 / 慙愧空還又待春
하였다.
○ 가묘(家廟)에서 사시(四時)의 제향을 올렸다. 기명언의 편지에 회답하여 〈치지격물설(致知格物說)〉을 고쳤다.
○ 12월 병신일에 자제들에게 명하여 다른 사람들의 서적을 기록해서 돌려 보내게 하였다. 정유년에 형의 아들 영(甯)에게 명하여 유계(遺戒)를 쓰게 하기를, “첫째는 예장(禮葬)을 사양할 것이고, 둘째는 비석은 세우지 말고 단지 조그마한 돌에다 그 전면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 퇴도는 퇴계(退溪)와 도산(陶山)으로 지명임. 진성은 이황의 본관)’라고만 새기고 그 뒤에는 간략하게 향리와 조상의 내력과 지행(志行)과 출처를 쓰되 《가례》 중에 말한 것처럼 하라.” 하였다.
○ 정오에 여러 제자들을 보았다. 자제들이 그만두기를 권하자 선생은 말하기를, “죽고 사는 이때에 아니 볼 수 없다.” 하면서, 웃옷을 덮게 하고 여러 제자들을 불러서 영결하며 말하기를, “평소에 그릇된 식견을 가지고 제군과 같이 종일토록 강론한다는 것도 역시 쉽지 않았소.” 하였다.
○ 무술일에 수기(壽器 염습할 때 쓰는 제구)를 준비할 것을 명하고, 경자일에 문인 이덕홍(李德弘)에게 서적을 맡도록 하였다. 유시(酉時)에 침실에서 돌아갔다, 이날 아침에 모시고 있는 사람을 시켜서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 하고 유시 초에 드러누운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는 일어나 앉아서 편한 듯이 운명하였다. 신해일에 부고를 알리자 영의정으로 증직하게 명하였다.
○ 이보다 앞서 임금은 선생이 병환중이라는 말을 듣고 내의(內醫)에게 명하여 약을 가지고 역마로 달려가서 구원하도록 하였으나 도착하기도 전에 졸하였다. 감사가 장계를 올리니, 정원에 내리기를, “이황이 죽었다 하니, 매우 슬프고도 아깝도다. 영의정에 추증하게 하고 부의(賻儀)를 보내는 등 여러 일을 전례를 상고하여 올리라.” 하니, 이에 예관(禮官)이 아뢰어 상사와 장사의 은전은 모두 의정(議政)의 예를 쓰기로 청하였다. 따로 우부승지 이제민(李齊閔)을 보내어 조상하게 하고 또 우승지(右承旨) 유홍(兪泓)을 보내어 제사지내게 하니, 모두 특별한 예우였다.
○ 신미년 3월 임오일에 예안(禮安) 건지산(搴芝山)의 남쪽 자좌오향(子坐午向)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아들 준(寯)이 유언이라 하여 두 번이나 글을 올려 예장(禮葬)을 힘써 사양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처음 선생이 돌아가니 원근이 모두 포복하며 와서 조상하였으며, 비록 평소에 문하에 와 수업하지 못한 자들이라도 역시 동네에서 서로 조상하여 탄식하였고 우직한 백성이나 천한 사람들까지도 비통해 마지않았으며 여러 날 고기를 먹지 않는 이도 많이 있었다. 사대부와 유생으로 장례식에 모인 자는 3백여 명이었다.
만력 원력 계유 12월 1일생에 위패를 이산서원(伊山書院)에 봉안하고 석채례(釋菜禮)를 지냈다. 2년 갑술에 서원을 도산의 남쪽에 세우기로 하여 2년 을해 여름에 서원이 낙성되니, 도산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4년 병자 2월 정미일에 위패를 봉안하고 석채례를 거행하였다. 이날 여산서원(盧山書院)에서도 역시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냈다. 12월에 시호를 문순(文純)이라 추증하였다. 도와 덕이 있고 널리 들은 것을 문(文)이라 하고, 중정(中正)하고 순수한 것은 순(純)이다. 24년 병신 윤 8월 무인일에 지석(誌石)을 묻었다.
○ 묘갈명(墓碣銘)선생이 스스로 지은 명(銘) 에,
나서는 아주 어리석었고 / 生而大癡
좀 커서는 병이 났으니 / 長而嬰疾
중년에 어찌 배우기를 좋아하겠으며 / 中何嗜學
만년에는 어찌 벼슬을 탐하겠는가 / 晩何叨爵
배움을 구할수록 더욱 아득하고 / 學求猶邈
벼슬 사양함에 오히려 얽혀지네 / 爵辭猶嬰
나아가 행하니 난처하고 / 進行之跲
물러나 숨기를 굳게 하였다 / 退藏之貞
국은에 깊이 부끄러워하고 / 深慙國恩
임금님 말씀 진실로 두렵네 / 亶畏聖言
산은 높디높고 / 有山嶷嶷
물은 끊임 없는데 / 有水源源
처음 옷으로 한가히 거닐며 / 婆娑初服
여러 비방을 못 들은 척하네 / 脫略衆訕
나의 회포 막히니 / 我懷伊阻
나의 패(佩) 누가 구경할꺼나 / 我佩誰玩
고인 생각하니 / 我思古人
실로 나의 마음 얻었으니 / 實獲我心
어이 알리 오는 세상 / 寧知來世
지금 세상보다 못할 줄 / 不獲今兮
걱정 가운데 즐거움 있고 / 憂中有樂
즐거움 가운데 걱정 있으니 / 樂中有憂
자연의 조화 타고 다함으로 돌아가니 / 乘化歸盡
다시 무엇을 구할꺼나 / 復何求兮
하였다.
〈도산기(陶山記)〉
영지산(靈芝山)의 한 줄기가 동쪽으로 나와 도산(陶山)이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이 산이 두 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산이라 이름하였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옛날 이 산중에 도기굴[陶竈]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의거하여 도산이라 하였다.” 하였다. 이 산은 그리 높거나 크지 않으며 그 골짜기가 넓고 형세가 뛰어나고 치우침이 없이 높이 솟아, 주변의 산봉우리와 계곡들이 모두 이 산에 절하면서 사방으로 둘러 안은 것 같다. 왼쪽에 있는 산을 동취병(東翠屛)이라 하고, 오른쪽에 있는 것을 서취병(西翠屛)이라 한다. 동병(東屛)은 청량산(淸涼山)에서 나와, 이 산 동쪽에 이르러서 벌려 선 봉우리가 아련히 트였고, 서병(西屛)은 영지산에서 나와 이 산 서쪽에 이르러 봉우리들이 우뚝우뚝 높이 솟았다. 그 동병ㆍ서병이 마주 바라보면 서남쪽으로 꾸불꾸불 8, 9리쯤 뻗어 내려가다가, 동병은 서쪽으로 달리고 서병은 동쪽으로 달려서 남쪽의 넓고 넓은 들판의 아득한 밖에서 합세하였다. 산 뒤에 있는 물을 퇴계라 하고, 산 남쪽에 있는 것을 낙천(洛川)이라 한다. 퇴계는 산 북쪽을 돌아 낙천에 들어 산 동쪽으로 흐르고, 낙천은 동병에서 나와 서쪽으로 산기슭 아래에 이르러 넓어지고 물이 깊어졌다. 여기서 몇 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이 깊어 배가 다닐 만한데, 금싸라기 같은 모래와 옥 같은 조약돌이 맑게 빛나며, 검푸르고 차디차다. 여기가 이른바 탁영담(濯纓潭)이다. 서쪽으로 서병의 벼랑을 지나서 그 아래의 물까지 합하고, 남쪽으로 큰 뜰을 지나 부용봉(芙蓉峯) 밑으로 들어가는데, 그 봉이 바로 서병이 동병으로 와서 합세한 곳이다. 처음에 내가 퇴계에 자리를 잡고, 시내 옆에 두어 칸 집을 얽어 짓고, 책을 보관하고 옹졸한 성품을 기르는 처소로 삼으려 하였더니, 벌써 3번이나 자리를 옮겼으나 번번이 비바람에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시냇가는 너무 한적하여 가슴을 넓히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옮기기로 작정하고 산 남쪽에 땅을 얻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골짜기가 있는데 앞으로는 강과 들이 내려다보이고, 깊숙하고 아늑하면서도 멀리 트였으며, 산기슭과 바위들은 선명하며 돌 우물은 물맛이 달고 차서 이른바 비돈(肥遯)할 곳으로 적당하였다. 어떤 농부가 그 안에 밭을 일구고 사는 것을 내가 돈을 써서 그 땅을 샀다. 거기에 집 짓는 일을 법련(法蓮)이란 중이 맡았다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죽었으므로, 정일(淨一)이란 중이 그 일을 이어 행하였다. 정사년에서 신유년까지 5년 만에 당사(堂舍) 두 채가 되어 겨우 거처할 만하였다. 당사는 3칸인데, 중간 한 칸은 완락재(玩樂齋)라 하였으니, 이는 주선생(朱先生)의 〈명당실기(名堂室記)〉에,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라고 하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동쪽 한 칸은 암서헌(岩棲軒)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주자 운곡(雲谷)의,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했더니 바위에 깃들여[巖棲] 조그만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시의 내용을 따온 것이다. 그리고 합해서 도산서당(陶山書堂)이라고 현판을 달았다. 당사는 모두 여덟 칸이니, 시습재(時習齋)ㆍ지숙료(止宿寮)ㆍ관란헌(觀瀾軒)이라고 하였는데, 모두 합해서 농운정사(隴雲精舍)라고 현판을 달았다. 당사의 동쪽 구석에 조그만 못을 파고, 거기에 연(蓮)을 심어 정우당(淨友塘)이라 하고, 또 그 동쪽에 몽천(蒙泉)이란 샘을 만들고, 샘 위의 산기슭을 따서 추녀와 맞대고 평평하게 쌓아 단(壇)을 만들고는, 그 위에 매화ㆍ대나무ㆍ소나무ㆍ국화를 심어 절우사(節友社)라 불렀다. 당 앞 출입하는 곳을 막아서 사립문을 만들고 유정문(幽貞門)이라고 이름을 하였는데, 문 밖의 오솔길은 시내를 따라 내려가 마을 어귀에 이르면, 양쪽 산기슭이 마주 대하여 있다. 그 동쪽 기슭 옆에 바위를 터서 터를 쌓으면 조그만 정자를 지을 만한데, 힘이 모자라서 만들지 못하고 다만 그 자리만 남겨 두었다. 마치 산문(山門)과 같아 이름을 곡구암(谷口岩)이라 하였다. 여기서 동쪽으로 몇 걸음 나가면 산기슭이 끊어지고 탁영암에 이르는데, 그 위에는 큰 돌이 마치 깎아 세운 듯 서있어 여러 층으로 포개진 것이 10여 길은 될 것이다. 그 위를 쌓아 대(臺)를 만들고 우거진 소나무는 해를 가리며, 위로 하늘과 밑으로 물에는 새와 고기가 날고 뛰며, 좌우 취병산의 물에 비친 그림자가 흔들거려, 강산의 훌륭한 경치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으니, 이름을 천연대(天淵臺)라 한다. 그 서쪽 기슭 역시 이것을 본떠서 대를 쌓고 이름을 천광운영(天光雲影)이라 하였으니, 그 훌륭한 경치는 천연대에 못지않다. 반타석(盤陀石)은 탁영담 가운데 있다. 그 모양이 반타(盤陀 평평한 것)하여 배를 매어두고 술잔을 서로 권할 만하며, 큰 홍수를 만날 때면 물속에 파묻혔다가 물이 빠지고 물결이 맑은 뒤에야 비로소 드러난다.
나는 항상 오랜 병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비록 산에서 살더라도 마음을 다해 책을 읽지 못한다. 깊은 시름에 잠겼다가 조식(調息)한 뒤 때로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상쾌하여, 우주(宇宙)를 굽어보고 우러러보아 감개한 마음이 생기면 책을 덮고 지팡이를 짚고 뜰 마루에 나가 연못을 구경하기도 하고 단에 올라 사(社 절우사)를 찾기도 하며 밭을 돌면서 약초를 심기도 하고 숲을 헤치며 꽃을 따기도 한다. 또 혹은 바위에 앉아 샘물을 구경도 하고 대에 올라 구름을 바라보며, 여울에서 고기를 구경하고 배에서 갈매기와 친하면서 마음대로 시름없이 노닐다가, 좋은 경치 만나면 흥취가 절로 일어, 한껏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고요한 방 안에 쌓인 책이 가득하다. 책상을 마주하여 잠자코 앉아 삼가 마음을 잡고 이치를 궁구할 때, 간혹 마음에 얻는 것이 있으면 흐뭇하여 밥 먹기도 잊어버린다. 생각하다가 통하지 못한 것이 있을 때는 좋은 벗을 찾아 물어보며, 그래도 알지 못할 때는 혼자서 분비(憤悱)한다. 그러나 감히 억지로 통하려 하지 않고 우선 한 쪽에 밀쳐 두었다가, 가끔 다시 그 문제를 끄집어내어 마음에 어떤 사념도 없애고 곰곰이 생각하면서 스스로 깨달아지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렇게 한다. 또 봄에는 산새가 즐거이 서로 울고 여름에는 초목이 우거져 무성하며, 가을에는 바람과 서리가 차갑고, 겨울에는 눈과 물이 서로 얼어 빛나며 사철의 경치가 서로 틀리니 흥취 또한 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춥거나 덥거나, 또는 큰바람이 불거나 큰비가 올 때가 아니면, 어느날이나 어느때나 나가지 않는 날이 없고 나갈 때나 돌아올 때나 이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곧 한가로이 지내면서 병을 조섭하기 위한 쓸데없는 일은, 비록 옛사람의 집 앞뜰도 엿보지 못했지만 스스로 마음속에 즐거움을 얻음이 얕지 않으니, 아무리 말이 없고자 하나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 곳곳에 따라 칠언 한 수씩으로 그 일을 적어 보았더니, 모두 18절이 되었다. 또 오언 잡영 등 26수가 있으니, 이것은 앞의 시에서 다하지 못한 뜻을 말한 것이다.
아! 나는 불행히도 먼 시골에 태어나서 투박하고 고루하여 들은 것이 없으면서도, 산림 중에 즐거움이 있다는 것은 일찍 알았다. 그러나 중년에 들어 망령되이 세상길에 나아가 바람과 티끌이 뒤엎는 속에서 여러 해를 보내면서, 스스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거의 죽을 뻔하였다. 그 뒤에 나이는 더욱 늙고 병은 더욱 깊어지며 처세는 더욱 곤란하니, 세상은 나를 버리지 않지만 내가 부득이 세상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번롱(樊籠)을 벗어나 전원(田園)에 몸을 던지니, 앞에서 말한 산림의 즐거움이 뜻밖에 내 앞으로 닥쳤던 것이다. 그러면 내가 지금 오랜 병을 고치고 깊은 시름을 풀면서, 늘그막을 편히 할 곳은 여기를 버리고 또 어디 가서 구할 것인가. 그러나 옛날 산림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거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현허(玄虛)를 사모하여 고상(高尙)함을 일삼아 즐기는 사람이요, 둘째는 도의(道義)를 즐기며 심성(心性) 기르기를 즐기는 사람이다. 첫째의 경우로 말하면, 몸을 더럽힐까 두려워함으로써 세상과 인연을 끊고, 심한 경우는 새나 짐승같이 살면서 그것을 그르다고 생각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둘째의 경우로 말하면, 즐기는 것이 조박(糟粕)뿐이어서 전할 수 없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구할수록 더욱 즐거움을 얻지 못할 수가 있다. 그러나 차라리 둘째 것을 위하여 힘쓸지언정 첫째 것을 위하여 스스로 속이지는 않아야 할 것이니 어느 여가에 이른바 세속의 번거로움이 내 영대(靈臺 마음)에 들어오겠는가. 어떤 이가 말하기를, “옛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명산(名山)을 얻어 자기 자신을 의탁하였거늘, 그대는 왜 청량산에 살지 않고 여기 사는가?” 하였다. 그래서 나는, “청량산은 만길이나 높은 절벽이 위태롭게 깊은 골짜기에 다달아 있기 때문에, 늙고 병든 사람의 편안히 살 곳은 못된다. 또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기려면 그 하나가 없어도 안 되는데, 지금 낙천(洛川)은 비록 청량산을 흘러 지나기는 하지마는, 그 산 가운데 물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나도 청량산에서 살기를 진실로 원한다. 그러면서 청량산을 뒤로 하고 이곳을 우선으로 하는 것은, 여기는 산과 물을 겸하고 또 늙고 병든 이에게 편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즐거움을 마음속에서 얻고 바깥 사물을 빌리지 않는다. 대개 안연(顔淵)의 누항(陋巷)과 원헌(原憲)의 옹유(甕牖)에 무슨 산과 물이 있었던가. 그러므로 바깥 물건에 기다림이 있으면 그것은 다 참다운 즐거움이 아니리라.” 하였다. 나는 또, “그렇지 않다. 안연이나 원헌이 처신한 것은 특히 그 형편이 그래서 그러한 것으로서, 거기에 맞게 편안해 한 것을 우리가 귀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이 이런 경지를 만났더라면 그 즐거워함이 어찌 우리들보다 깊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공자나 맹자께서 일찍이 산수를 자주 칭찬하였고 아주 좋아하였던 것이다. 만일 그대 말대로 한다면, 증점(曾點)을 허여한다는 탄식이 왜 하필 기수(沂水)의 가에서 나왔으며 해를 마치겠다는 소원은 왜 하필 노봉(蘆峯) 꼭대기에서 읊조렸겠는가. 거기에는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느니라.”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렇겠다.” 하고, 물러갔다. 가정(嘉靖) 신유년 어느날 남지(南至 동지)에 늙고 병든 산주(山主)는 적는다.
ⓒ 한국고전번역원 | 권덕주 (역) | 1971
海東雜錄[五] 權鼈 / 本朝[五]
李滉
眞城人。字景浩。自號退溪。我中廟朝登第。天分甚高。學問精深。尊信考亭。深得蘊奧。累下徵召。進退以義。與諸子講道陶山。門人多有成就。爲東方理學之宗。官至左贊成。特贈領議政。謚文純。所撰理學通錄朱子書節要啓蒙傳疑聖學十圖。行于世。先生稍長。言語動止。必以禮法。而尤篤愛親。鷄鳴盥漱。衣帶必飭。以省母夫人。怡聲下氣。婉容愉色。至昏定亦如之。枕席之設。衣衾之斂。必身親爲之。行迹 戊辰拜大提學赴召。上六條。一曰。重繼統以全仁孝。二曰。杜讒間以親兩宮。三曰。敦聖學以立治本。四曰。明道術以正人心。五曰。推腹心以通耳目。六曰誠修省以承天愛。年譜 啓蒙傳疑先生所著。有啓蒙傳疑。而諸家之分合異同者。旁通曲暢。更無餘蘊。行迹 先生撰進聖學十圖。一曰太極圖。二曰西銘圖。三曰小學圖。四曰大學圖。五曰白鹿洞規圖。六曰心統性情圖。七曰心學圖。八曰仁說圖。九曰敬齋箴圖。十曰夙興夜寐箴圖。本集 靈芝山東支有陶山。先生嘗退居。構書堂聚門生講道。因著陶山記。作七言詩十八絶。以記其事。又有陶山雜詠二十六絶。我明廟命宋寅。使畫陶山。又書陶山記及詩篇。作屛簇而進。常置寢殿中。本集 先生於陶山中。構書堂凡三間。扁之曰陶山書堂。凡十八絶。大舜親陶樂且安。淵明躬稼亦歡顏。聖賢心事吾何得。白首歸來試考槃。岩棲軒 曾氏稱顏實若虛。屛山引水晦翁初。暮年窺得岩棲意。博約淵氷恐自疏。玩樂齋 主敬還須集義功。非忘非助漸融通。恰臻太極濂溪妙。始信千年此樂同。幽貞門 不待韓公假大龜。新居縹緲映柴扉。未應山徑憂茅塞。道在幽貞覺坦夷。凈友塘 物物皆含妙一天。濂溪何事獨君憐。細思馨德眞難友。一凈稱呼恐亦偏。節友社 松菊陶園與竹三。梅兄胡奈不同參。我今倂作風霜契。苦節淸芬儘飽諳。隴雲精舍○先生退居構精舍八間齋曰時習寮曰止宿軒曰觀瀾合而扁之曰隴雲精舍 常愛陶公隴上雲。唯堪自悅未輸君。晩來結屋中間臥。一半閑情野鹿分。觀瀾軒 浩浩洋洋理若何。如斯曾發聖咨嗟。幸然道體因玆見。莫使工夫間斷多。時習齋 日事明誠類數飛。重思復踐趁時時。得深正在工夫熟。何啻珍烹悅口頤。止宿寮 愧無鷄黍謾留君。我亦初非鳥獸羣。願把從師浮海志。聯床終夜細云云。谷口門 東躡江臺北入雲。門荒谷口擬山門。此名偶似前賢地。耕隱風聲詎易論。天淵臺 縱翼揚鱗孰使然。流行活潑妙天淵。江臺盡日開心眼。三復明誠一巨編。天雲臺○或云天光雲影臺 活水天雲鑑影光。觀書深喩在方塘。我今得在淸潭上。恰似當年感歎長。濯纓潭 漁父當年笑獨醒。何如孔聖戒丁寧。我來叩枻吟風月。却喜淸潭可濯纓。盤陀石○其狀盤陀可以係舟傳觴每遇潦漲則與齋俱入 黃濁滔滔便隱形。安流帖帖始分明。可憐如許奔衝裏。千古盤陀不轉傾。東翠屛山 簇簇羣巒在翠屛。暗嵐時帶白雲橫。斯須變化成飛雨。疑是營丘筆下生。西翠屛山 嶷嶷群峯右翠屛。中藏蘭若下園亭。高吟坐對眞宜晩。一任浮雲萬古靑。芙蓉峰○趙上舍士敬家在峰下 南望雲峯半隱形。芙蓉曾見足嘉名。主人亦有烟霞癖。茅棟深懷久未成。○五言絶句二十六首。逐題又有四言詩一章○蒙泉 山泉卦爲蒙。厥義吾所服。豈敢忘時中。尤當思果育。○書堂之東。有泉曰蒙。何以軆之。養正之功。洌井 石間井洌寒。自在寧心惻。幽人爲卜居。一瓢眞相得。○書堂之南。石井甘冽。千古烟沈。從古仍羃。庭草 庭草思一般。誰能契微志。圖書露天機。只在潛心耳。○閑庭細草。造化生生。目擊道存。意思如馨。磵柳 無窮造化春。自是風流樹。千載兩節翁。長吟幾興寓。○磵邊垂柳。濯濯風度。陶邵共賞▣。起我遐慕。菜圃 小圃雲間靜。嘉蔬雨後滋。趣成眞自得。學誤未全癡。○節友社南。隙地爲圃。下帷多暇。抱甕何苦。花砌 曲砌無人跡。幽花發秀姿。風輕午吟處。露重曉看時。○堂後衆花。雜植爛漫。天地精英。莫非佳玩。西麓 舍西橫翠麓。蕭灑可幽貞。二仲豈無有。愧余非蔣卿。○悄蒨西麓。堪結其茅。以藏以修。雲霞之交。南淵 異石當山口。傍邊澗入江。我時來盥濯。淸樾興難雙。○石之揭揭。樾之陰陰。于江之淵。納涼蕭森。翠微 東隴上翠微。九日携壺酒。却勝陶淵明。菊花空滿手。○翠微翠微。書堂之東。九日故事。感慨余衷。寥朗西隴上寥朗。矯首望烟霞。安得凌八表。仍尋羽人家。○寥朗寥朗。精舍之西。仰眺俯瞰。孰知其斜。釣磯 弄晩竿仍裊。來多石亦溫。魚穿靑柳線。蓑帶綠烟痕。○臨江苔石。一絲颺風。貪餌則懸。冒利則訌。月艇 寒潭如拭鏡。乘月弄扁舟。湖老烟波詠。坡仙桂棹秋。○一葉小艇。滿載風月。懷人不見。我心靡歇。櫟遷 緣崖▣▣遷。其上多樹櫟。何妨抱離奇。壽已過數百。○櫟之不材。多至壽老。▣▣不免。乃壽之道。漆園 古縣但遺基。漆林誰所植。見割有警言。蒙莊亦高識。○漆爲世用。其割焉保。厥或免割。乃割之道。魚梁 玉食須珍異。銀唇合進供。峨峨梁截斷。濊濊罟施重。○丙穴底貢。編木如山。每夏秋交。我屛溪間。漁 隔崖民風古。臨江樂事多。斜陽如畫裡。收網得銀梭。○太平烟火。宜仁之村。漁以代徭。式飽且溫。烟村 遠近勢周造。漠漠▣迷樹。延望足玩心。變態多朝暮。○吟不盡興。興不盡變。春濃繡錯。秋老霞絢。雲徑 一徑傍溪潯。高低斷復逵。積雪無人蹤。僧來自雲表。○浩浩崖壑。迢迢磴逕。踏作瑤迹。誰先乘興。鷗渚 浩蕩浮還沒。毰毸▣復眠。閑情乃如許。機事定無緣。○舞而不下。渠未可干。狎而有盟。吾何敢寒。鶴汀 水鶴烟霄下。晴沙立遠汀。那堪無飮啄。得處莫留停。○鳴皐聞天。掠舟驚夢。野田有侶。盍愼媒弄。江寺 古寺江崖空。仙遊杳方丈。蟠桃定何時。結子重來賞。○江上招提。老仙舊居。月寒庭舞。風悲室虛。官亭 小亭境自佳。後江前皐濕。皁蓋不來時。野禽自棲集。○官作之亭。歲月茫茫。樂匪知濠。擧似如棠。長郊 炎天彌翠浪。商節滿黃雲。薄暮歸雅望。遙風牧笛聞。○郊原膴膴。籬落依依。戴星而出。帶月而歸。遠岫 微茫常對席。縹緲定河洲。雨暗愁無奈。天空意轉悠。○如黛如簪。非烟非雲。入夢靡遮。上屛何分。土城 禦難何代人。古籍莽難考。時平久已頹。兔穴深蔓草。○維彼南山。因山作城。海桑一朝。蠻觸何事。校洞 宮墻沒澗烟。絃誦變山鳥。誰能起廢規。張皇道幽眇。○古縣鄕學。遺址宛然。麗季孱王。敎化無傳。○又五言絶句四首。以下四處皆天淵所望然皆有主故不係陶山而別錄于後亦山谷借景之喩 聾巖在西翠屛東故知中樞李先生亭館所在 西望巖崖勝。高亭勢欲飛。風流那復覩。山仰只今稀。○汾川 在西翠屛南▣里名也知事之胤察訪李大成所居大成號碧梧 汾川作異水。回水想梧陰。摵摵鳴疎雨。秋來戀主深。○賀淵。在西翠屛下承旨李公幹亭舍在其上 激湍下爲淵。深處知幾丈。主人在銀臺。烟波頻夢想。○屛庵。在西翠屛崖壁中上舍李大用所構舊有淨室近聞守僧改置其室頗失佳趣云 屛庵在懸崖。石縫泉氷齒。舊愛一室明。如今定何似。○ 山居四時各四詠十六絶春四咏。霧捲春山錦繡明。珍禽相和百般鳴。幽居更喜無來客。碧草中庭滿意生。朝 庭宇新晴麗景遲。花香拍拍襲人衣。如何四子俱言志。聖發咨嗟獨詠歸。晝 童子尋山採蕨薇。盤飧自足療人飢。始知當日歸田客。夕露衣沾不願違。暮 花光迎暮月昇空 空內集作東字。花月淸宵意不窮。但得月圓花未謝。莫憂花▣▣盃空。夜 夏四詠。晨起虛庭竹露淸。開軒遙對衆山靑。小童慣捷提甁水。澡頮湯盤日戒銘。朝 晝靜山堂白日明。蔥瓏嘉樹繞簷楹。北窓高臥羲皇上。風送微冷一鳥聲。晝 夕陽佳色動溪山。風定雲閑鳥自還。獨坐幽懷誰與語。岩阿寂寞水潺潺。暮 院靜山空月自明。翛然衾席夢魂淸。窹言弗告知何事。臥聽皐禽半夜聲。夜 秋四詠。殘暑全消昨夜風。嫩涼朝起洒衿胷。靈均不是能言道。千載如何感晦翁。朝 霜前天高▣隼豪。水邊岩際一堂高。近來三徑殊牢落。手把黃花坐憶陶。晝 秋堂睡望與誰娛。夕照楓林勝畫圖。忽有西風吹鴈過。故人千里寄書無。暮 月映寒潭玉宇淸。幽人一室堪虛明。箇中自有眞消息。不是禪空與道冥。夜 冬四詠。群峯傑卓入霜空。庭下黃花尙依叢。掃地焚香無外事。紙窓銜日皦如衷。朝寒事幽居有底營。藏花護竹攝羸形。慇懃寄謝來尋客。欲向三冬斷送迎。晝 萬木歸根日易西。烟林蕭索鳥深棲。從來夕陽知何意。迨欲須防隱處迷。暮 眼花尤怕近燈光。老病偏知冬夜長。不讀也應惟勝讀。坐看窓月冷如霜。夜 林居四詠。臘酒春光照眼新。陽和初覺適形新。晴簷鳥哢如呼我。雪磵寒梅似隱眞。早春 田家相賀麥秋天。雞犬桑麻任自然。縱使年▣窮到骨。免敎匍匐井螬邊。初夏 切切陰蟲聽到明。不平何事訴聲聲。極知搖落▣無奈。深爲叢筠護節莖。早秋 役車休了靜門扃。卒歲豳風事爾馨。羸骨土床宜煖熨。却須朝夕問樵靑。初冬 聖學十圖第六曰心統性情。有上中下三圖。上一圖林隱程氏作。其中下二圖先生推原聖賢立言垂敎之意作。上圖自有其說。其中圖就氣稟中。指出本然之情。不雜乎氣稟而言。子思天命之性。孟子性善之性。程子卽理之性是也。其發而爲情。亦皆指其善者而言。其下圖以理與氣合而言之。程子氣卽性。性卽氣之性。張子氣質之性。朱子雖有氣中。氣自氣性自性。不雜夾雜之性是也。其發而爲情。亦以理氣之相須。▣▣害處而言。聖學圖說 先生倣王魯齋敬齋箴圖。作夙興夜寐箴圖。與彼圖相對。蓋敬齋箴有許多用工地頭。故隨其地頭而排列爲圖。此箴有許多用工時分。故隨其時分而排列爲圖云云。不遺地頭而無毫釐之差。不失時分而無須臾之間。二者並進。作聖之要。其在斯乎。同上 人主一心。萬機所由。百責所萃。衆欲互攻。羣邪迭鑽。一有怠忽。而放縱隨之。則如山之崩。如海之蕩。誰得而禦之。同上 先生讀王梅溪和韓詩有感。仍用其韵。著秋懷詩十一首 本集 溪山雜詠春日溪上云。雪消氷泮綠生溪。▣澹和風滿柳隄。病起來看幽興足。更憐芳草欲生荑。本集 近有李斯文文純。嘗致力於數學。著皇極經世書註。先生見而語人曰。李某自謂能通其說。而作爲註解。亦未知其果無謬也。本 先生偏愛梅花。所著有梅花詩帖一帙。本集 夫士之論義理。如農夫之說桑麻。匠石之議繩墨。各其常事也。尤農夫曰。是僭擬爲神農。尤匠石曰。是妄擬爲公輸子。夫神農公輸誠不易及。舍是又安從學爲農工也。天命圖說後敍 乞身避位。抱負典墳。來投故山之中。將以日求其所未至。而聖恩舍垢。虛名迫人。自癸卯至壬子。凡三退去而三招還。如是而欲望其有成。不亦難乎。與南溟書 先生初構草屋於溪上。名曰寒棲庵。有詩云。茅茨移構澗庵中。正値巖花發亂紅。古往今來時已晩。朝耕夜讀樂無窮。雜詠 暮春望日。獨至陶山。梅爲寒損。尙未芬葩。窨竹亦悴。加之是雨風雨連宵。追去春律詩韻。朝從山北訪▣來。入眼山花爛錦堆。試發竹叢驚獨悴。旋攀梅樹歎遲開。疎英更被風顚簸。苦節重遭雨急摧。歲月同人今又阻。淸愁依舊浩難裁。同上 先生病歸。訪梅于山舍。有訪梅一絶云。爲問山中兩玉仙。留春何到百花先。相逢不似襄陽館。一笑凌寒向我前。梅花答一絶云。我是逋仙換骨仙。公如歸鶴下遼天。相看一笑天應許。莫把襄陽較後前。頃於醴泉見梅發。二月晦間也。及來山中。春已暮矣。而梅始發。同上 先生嘗求山水郡。後出守丹陽。有詩云。靑松白鶴雖無分。碧水丹山信有緣。昔有一▣▣文。爲靑松府使。自號靑松白鶴。先生求靑松。而反授丹陽。故有此句。年譜 我明宗三年戊申。先生求外補。拜丹陽郡守。以兄大憲時爲忠淸監司。丹在部下。換授豐基郡。上監司書。請白雲洞書院扁額書籍。啓聞頒降。以病三辭于監司請解官。不待報而歸。○庚戌始卜居于退溪之西。構寒棲庵。堂曰靜習。讀書其中。有詩曰。身安▣愚分。學退憂暮境。溪上始定居。臨流日有省。自是從遊之士日衆。同上 癸丑改訂鄭之雲天命圖。之雲字靜而。號秋巒。作天命圖且有說。先生爲之改訂。而敍其後。略曰。滉自筮仕前後二十年。而尙未與隣居鄭靜而相識往來也。一日得所謂天命圖者。其圖與說。頗有舛訛。遂引證太極圖及說。而指點曰。某誤不可不改。某剩不可不去。某欠不可不補如何。靜而皆言下頷肯。無咈吝之色。同上 編次朱子書節要。○丁巳得書堂地於陶山之南。啓蒙傳疑成。同上 戊午遊鰲澤。爲禹祭酒倬。欲建書院於潭上。相其地。同上 己未答黃仲擧書。論白鹿洞規集解。集解朴松堂英所著。有差誤處。先生爲之卞釋。作伊山書院。始編宋季元明理學通錄。先生據朱子書及語類實記史記一統志等書。采摭其言行事跡。各以類附焉。同上 庚申答奇高峯書。卞四端七情。○陶山書堂成。自是又號陶翁。堂凡三間。軒曰岩棲齋。曰玩樂。精舍七間。名曰隴雲。先生每至陶山。常居玩樂齋。左右圖書。俯讀仰思。夜以繼日。○辛酉三月。築節友社。一日先生自溪上步出陶山訪梅。有詩曰。花發岩崖春寂寂。鳥鳴澗樹水潺潺。偶從山後携童冠。閒到山前看考槃。作陶山記。○壬戌三月。乘舟抵靑溪。築臺曰靑溪臺。○甲子九月。撰靜庵趙先生行狀。作心無軆用辨。畧曰。以寂感爲軆用。本於大易。以動靜爲軆用。本於戴記。以未發已▣爲軆用。本於子思。以性情爲軆用。本於孟子。皆心之軆用也。蓋人之一心。雖彌六合亘古今貫幽明徹萬微。而其要不出乎此二字。故軆用之名。雖未見於先秦之書。而程朱以來。諸儒所以論道論心。莫不以此爲主。○乙丑書敬齋箴圖白鹿洞規圖。名堂室語。揭諸玩樂齋壁上。改定景賢錄。按龜巖李公識曰楨。曾得寒暄先生家範及行狀議等書。編爲一錄。而聞見淺狹。疎漏太甚。謹以所疑。稟質于退溪先生。先生幷取金義興立鄭秀才崑壽等所錄。參證爲定本云。○十月撰晦齋李先生行狀。且校正文集。▣作心經後論。與仁仲書。論▣蒙求。○己巳三月。拜判中樞府事。詣闕謝恩。入對夜對廳。乞退許之。午漏下拜辭出城。宿東湖夢賚亭。乘船宿奉恩寺。名士傾朝出餞。各賦詩敍別。先生有詩。列坐▣方盡勝流。歸心終日爲牽留。願將漢水添行硯。寫出臨分無限愁。○七月草川谷書院二先生祝文。九月答盧伊齋議喪禮書。庚午正月上箋乞致仕不許。三月四月連辭不許。五月與諸生會陶山講啓蒙。七月易東書院講心經。八月易東書院落成往赴。十月與奇明彥書。論心性情圖。十一月以病倦謝見諸生。有和柳應見寓精舍見投三絶。其一云。孔聖猶箴擇里人。曾云文會輔成仁。老來更覺疏爲學。慚愧空還又待春。○待時祀於家廟。答奇明彥改致知格物說○十二月丙申。命子弟錄還他人書籍。丁酉命兄子甯書遺戒。一令辭禮葬。二勿用碑石。只以小石書其前面云。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其後畧敍鄕貫世系志行出處。如家禮中所云。○午見諸生。子弟勸止。先生曰。生死之際。不可不見。命加上衣。招諸生與訣曰。平日以謬見。與諸君終日講論。亦不易乎。○戊戌命治壽器。庚子命門人李德弘司書籍。時終于寢。是日朝。令侍人灌盆梅。酉初命整臥席。扶起而坐。恬然而逝。辛亥訃聞。命贈領議政。○先是上聞先生有病。命內醫。齎藥。驛往救。未至而先生已卒。監司狀聞。下政院曰。李滉卒逝。予甚痛悼。可追贈領議政。致賻諸事。速考前例以啓。於是禮官啓請。凡喪葬恩奠。皆用議政禮。別遣右副承旨李齊閔致弔。又遣右承旨兪泓祭之。皆異數也。○辛未三月壬午。葬于禮安搴芝山南子坐午向之原。子寯以遺戒再上章力辭禮葬。不許。初先生旣卒。遠近匍匐往弔。雖平日未嘗及門者。亦皆巷弔咨嗟。愚氓賤隷無不悲痛。多有累日不食肉者。至是士大夫及儒生會葬者。三百餘人。○萬曆元年癸酉十二月朔。奉位版於伊山書院。行釋菜禮。二年甲戌。建書院於陶山之南。三年乙亥夏。書院成。賜額陶山書院。四年丙子二月丁未。奉安位版。行釋菜禮。是日廬山書院亦奉安位版行祭。十二月。贈謚曰文純。道德博文曰文中正精粹曰純 二十四年丙申閏八月戊寅。埋誌石。○墓碣銘。先生自銘 生而大癡。壯而嬰疾。中何嗜學。晩何叨爵。學求猶邈。爵辭猶嬰。進行之跲。退藏之貞。深慚國恩。亶畏聖言。有山嶷嶷。有水源源。婆娑初服。脫畧衆訕。我懷伊阻。我佩誰玩。我思古人。實獲我心。寧知來世。不獲今兮。憂中有樂。樂中有憂。乘化歸盡。復何求兮。陶山記。靈芝之一支。東出而爲陶山。或曰。以其山之再成。而命之曰陶山也。或云。山中舊有陶竈。故名之以其實也。爲山不甚高大。宅曠而勢絶。占方位不偏。故其傍之峯巒溪壑。皆若挹環抱於此山然也。山之在左。曰東翠屛。在右曰西翠屛。東屛來自淸涼。至山之東。而列岫縹緲。西屛來自靈芝。至山之西。而聳峯巍峩。兩屛相望。南行迤邐盤旋八九里許。則東者西。西者東。而合勢於南野莽蒼之外。在山後曰退溪。在山南曰洛川。溪循山北而入洛川於山之東川。自東屛而西趨。至山之趾。則演漾泓渟。沿泝數里間。深可行舟。金沙玉礫。淸瑩▣寒。卽所謂濯纓潭也。西觸于西屛之崖。遂幷其下。南過大野。而入于芙蓉峯下。峰卽西者東而合勢之處也。始余卜居溪上。臨溪縛屋數間。以爲藏書養拙之所。蓋已三遷其地。而輒爲風雨所壞。且以溪上偏於闃寂。而不稱於曠懷。乃更謀而得山於山之南也。爰有小洞。前俯江郊。幽敻遼廓。巖麓悄蒨。石井甘冽。允宜肥遯之所。野人田其中。以資易之。有浮屠法蓮者幹其事。俄而蓮死。凈一者繼之。自丁巳至于辛酉五年。而堂舍兩屋粗成。可棲息也。堂凡三間。中一間曰玩樂齋。取朱先生名堂室記。樂而玩之。足以終吾身而不厭之語也。東一間曰巖棲軒。取雲谷自信久未能巖棲冀效之語也。又合而扁之。曰陶山書堂。舍凡八間。齋曰時習。寮曰止宿。軒曰見瀾。合而扁之曰隴雲精舍。堂之東偏。鑿小方塘。種蓮其中。曰凈友塘。又其東爲蒙泉。泉上山脚鑿合。與軒對平。築之爲壇。而植其上梅竹松菊。曰節友。▣堂前出入處。掩以柴扉。曰幽貞門。門外小徑緣澗而下。至于洞口。兩麓相對。其東麓之脅。開巖築址可作小亭。而力不及。只存其處。▣▣山門者曰谷口巖。自此東轉數步。山麓斗▣正空濯纓潭上。巨石削立層累。可十餘丈。築其上爲臺。松棚翳日。上天下水。羽鱗飛躍。左右翠屛。動影涵碧。江山之勝。一覽盡得。曰天淵臺。西麓亦擬築臺。而名之曰天光雲影。其勝槩當不減於天淵也。盤陀石在濯纓潭中。其狀盤陀。可以係舟傳觴。每遇潦漲。則與齊俱入。至水落波淸。然後呈露也。余恒苦積病纏繞。雖山居不能極意讀書。幽憂調息之餘。有時身軆輕安。心神洒醒。俛仰宇宙感慨係之。則投書携筇而出。臨輕玩塘。步壇尋社。巡圃蒔藥。搜林擷芳。或坐石弄泉。或登臺望▣。或磯上觀魚。舟中狎鷗。隨意所適。逍遙徜徉。觸目發興。遇景成趣。至興極而返。一室岑寂。圖書滿壁。對案默坐。兢存硏索。往往有會于心。輒復欣然忘有。其有不合者。資於麗澤。又不得則發於憤悱。猶不敢强而通之。且置一邊。時復拈出。虛心思繹。以俟其自解。今日如是。明日又如是。若夫山鳥嚶鳴。時物暢茂。風雪刻厲。雪月凝輝四時之景不同。趣亦無窮。自非大寒大暑大風大雨。無時無日而不出。出如是。返亦如是。是則閑居養病。無用之功業。▣不能窺古人之門庭。而其所以自娛悅於中者不淺。雖欲無言。而不可得也。於是逐處。各以七言一首紀其事。凡得十八絶。又有五言雜咏二十六絶。所以道前詩不盡之餘意也。嗚呼余之不幸。晩生遐裔。樸陋無聞。而顧於山林之間。夙知有可樂也。中年妄出世路。風埃塡倒。逆旅推遷。幾不復自返而死也。其後年益老。病益深。行益躓。則世不我棄。而我不得不棄於世。乃始脫身樊籠。投分農畝。而向之所謂山林之樂者。不期而當我之前矣。然則余乃今所以消積病豁幽憂。而晏然於窮老之域者。舍是將何求矣。雖然觀古之有樂於山林者。亦有二焉。有慕玄虛事高尙而樂者。有悅道義頤心性而樂者。由前之說。則恐或流於潔身亂倫。而其甚則與鳥獸同群。不以爲非矣。由後之說。則所嗜者糟粕耳。至其不可傳之妙。則愈求而愈不得於樂者有。雖然寧爲此而自勉。不爲彼以自誣矣。又何暇知有所謂世俗之營營者而入我之靈臺乎。或曰。古之愛山者。必得名山以自托。子之不居淸涼而居此何也。曰淸涼壁立萬仞。而危臨絶壑。老病所不能安。且樂山樂水。缺一不可。今洛川雖過。淸涼山中不知有水焉。余固有淸涼之願矣。然舍彼而先此者。凡以兼山水而逸老病也。曰古人得。得之心。而不假於外物。夫顏淵之陋巷。原憲之甕牖。何有於山水。故凡有待於外物者。皆非眞樂也。曰不然。彼顏憲之所處者特其適。然而能安之爲貴爾。使斯人遇斯境。則其爲樂豈不有深於吾徒者乎。故孔孟之於山水。未嘗不亟稱而深喩之。若信如吾子之言。則與點之歎。何以特發於沂水之上。卒歲之願。何以獨詠於蘆峯之嶺乎。是必有其故矣。或人唯唯而退。嘉靖辛酉日南至。山主老病畸人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