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가든파이브 라이프동. 추운 날씨만큼이나 분위기가 썰렁했다. 생활용품 매장 30여 곳이 들어선 리빙관 지하 1층은 대여섯 곳만 장사를 하고 있었다. 물건을 찾는 손님의 발길도 드물었다. 일부 점포 앞에는 "더 이상 귀곡산장으로 방치하지 말라" "은행 융자 및 이자 관리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상인 하모(55)씨는 "상권이 살아나기엔 글렀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1조3000억원을 들여 조성한 가든파이브. 개장 4년차를 앞두고도 이렇다 할 활로를 찾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아시아 최대 유통단지를 표방한 도입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당초 가든파이브는 청계천 상인들의 이주단지로 계획됐다. 2003년 7월 청계천 복원공사로 삶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을 위한 새로운 일터로 마련된 곳이다. 그러나 출발부터 삐걱댔다. 서울시는 청계천 상인들에게 점포 1개(전용 23㎡ 기준)당 7000만원에 분양할 예정이었지만, 실제론 1억7000만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늘어난 건설 비용이 상인들에게 얹어진 것이다. 결국 상인 6097명 중 약 40%만 이주했다. 높은 분양가와 낮은 분양률로 개장은 네 차례나 연기됐고 2010년 6월에야 문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계약률은 81.9%에 불과하다. 전체 8360개 상가 중 1510곳이 비어있는 셈이다. 계약 물량 중 64%는 분양, 36%는 임대로 소진됐다. 분양만 받아 놓고 입주 안 된 곳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가 운영률은 훨씬 저조하다는 게 인근 중개업계의 설명이다. 문정동 서울부동산 관계자는 "갈수록 상가가 텅텅 비어서 난리"라며 "그나마 자릴 지키고 있던 상인들도 망연자실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상권이 살아나지 않자 피해는 고스란히 점포 상인들이 떠안았다. 손님이 없어 대출금을 갚지 못하거나 상가 임대료·관리비 등을 체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공구점을 운영하는 박모(58)씨는 "하루에 한 푼도 못 벌 때가 허다한데 대출 이자는 한 달에 70만원 넘게 물고 있다"고 말했다.
비싼 관리비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 문정동 롯데공인 장영신 사장은 "전용 23㎡ 점포의 관리비가 20만~25만원 정도로 일반점포에 비해 세 배 정도 많다"고 전했다.
급기야 일부 상가는 경매시장으로 내몰렸다.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들어 경매로 나온 가든파이브 상가는 14개로, 지난해(3개)보다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 대부분 2009~2010년 개인이 분양 받은 1억~3억원 정도의 소점포다.
지지옥션 하유정 연구원은 "우리은행 청계지점과 가든파이브지점에서 대출받은 경우가 많다"며 "대출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변 개발 완료되면 살아날 것이란 기대도
전문가들은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상권 활성화 실패의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자체 공급량은 많은데 청계천 상인들을 끌어오지 못한 데다 유동인구도 적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하철 8호선 장지역과 붙어 있는 역세권이긴 하지만, 설계 특성상 몰 형태로 만들어놔 소비자들이 '찾아가야만' 상가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집합쇼핑몰 방식 자체가 맞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 소장은 "상가를 소규모로 쪼개 팔다 보니 분양이 잘 되지 않을 경우 이 빠진 것처럼 돼 있어 상권이 살아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마트 같은 키테넌트(핵심상가)가 들어오지 않는 한 문제가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SH공사는 최근 라이프동 내 리빙·테크노관 지하 1층~지상 5층 1052개 상가에 대해 일괄 매각을 추진 중이다. 대형 유통업체를 입점시켜 분위기 반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매각 예정가격은 2608억원 수준이다. 다만 이 또한 점포수와 금액 규모가 커서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 전언이다. SH공사 관계자는 "이번에도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일괄 임대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론 입지여건 덕분에 상권이 조금씩 살아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주변에 개발호재가 풍부하고 업무시설도 속속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2015년 KTX 수서역이 개통 예정이고 2017년에는 문정동 법조단지가 인근에 자리잡게 된다.
최근 문정지구에 한화 오벨리스크(1533실)·송파푸르지오시티(1249실) 등 오피스텔 입주가 잇따르는 것도 호재다. 여기다 위례신도시와도 가까워 앞으로 배후수요가 넉넉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가뉴스레이다 선종필 대표는 "위례신도시 등이 주변에 들어오는 것은 상권 활성화에 분명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면서도 "(SH공사·상인 등) 이해관계자들 간 불협화음이 합리적으로 조정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자료원:중앙일보 2013.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