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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신 구주시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직접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보지도 않은 예수를 믿고 의지할 수 있나요?
도마는 부활한 예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부활한 주님을 만났는데, 마침 그 자리에 없던 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요 20:25)
주님은 의심많은 도마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친히 나타나셔서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7-28)
그 다음에 주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우리 처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을 주님은 염두에 두셨습니다.
보지 못하고 어떻게 주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바로 그 내용에 대한 설명이 누가복음 24장 엠마오 마을로 가는 이야기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두 제자는 주님이 돌아가셨다고 크게 낙심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 곁에 부활한 예수님이 함께 걷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같으면 날 봐라. 내가 부활한 예수다. 이렇게 말했을 것을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5-27)
구약성경이 어떻게 메시야를 가르키고 있고, 그 예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생애에 성취되었는지를 일일이 알려주셨습니다. 말씀을 바로 이해할 때 그들의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알아보지 못할 때는 곁에 계시다가 알아보니 왜 사라지셨나요? 그 이유를 다음 성경절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 24:32)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4-45)
오늘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예수님은 구약성경은 3부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 즉, 유대인들이 구약 성경을 타나크(TANAKH)라고 부르며, 이는 성경을 구성하는 세 부분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토라 (Torah, 율법서 - 5권):모세오경(창세기~신명기)을 뜻합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인 기원전 5세기경(에스라 시대)에 가장 먼저 유대 공동체의 절대적인 신앙과 삶의 기준으로 정경화되었습니다.
네비임 (Nevi'im, 예언서 - 8권/개신교 분류 21권):전기 예언서(여호수아~열왕기)와 후기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12소예언서)입니다. 기원전 3~2세기경에 그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케투빔 (Ketuvim, 성문서 - 11권/개신교 분류 13권):시편, 잠언, 욥기, 다니엘, 역대기 등 문학 및 역사서입니다. 마카베오 가문의 독립 전쟁 등을 거치며 기원전 2~1세기경에 점진적으로 정경의 지위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기원전 1세기~기원후 1세기)에는 '율법과 예언자와 시편(누가복음 24:44)'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이미 39권의 구약 내용이 확고한 성경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이를 공 공식적으로 매듭지은 역사적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얌니아 회의 (서기 90년경):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유대교 랍비들은 얌니아(Jamnia)에 모여 어떤 책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지 논의했습니다. 이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페르시아 시대(에스라·느헤미야) 이전에 쓰인 책"만을 기준으로 삼아 외경을 제외한 24권(내용상 개신교 구약 39권과 동일)을 유대교 정경으로 재확인했습니다.
종교개혁기 (16세기):루터 등 종교개혁자들은 가톨릭이 70인역 전통을 따라 정경에 포함시켰던 외경들을 제외하고,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본래 편집했던 '히브리어 구약 성경(39권)'체제로 돌아갈 것을 선언하며 오늘날 개신교의 구약 정경이 완결되었습니다.
구약의 정경화는 특정 회의가 단번에 결정한 사건이 아닙니다. 모세 시대로부터 시작해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히고, 검증되고, 살아남은 책들이 역사 속에서 자연스럽게 공인된 과정입니다.
'정경'이란 무슨 뜻일까요? 정경(正經)은 바를 정(正) 자에 글 경(經) 자를 써서 '바른 글'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캐논(Canon)'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나 헬라어에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카나'라고 하는데, 이는 '갈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헬라어로는 '카논'이라고 합니다. 이 두 말 모두 '막대기' 또는 '갈대 자(尺)'를 뜻합니다. 무엇을 재는 척도, 더 나아가 무엇을 판단하는 기준 또는 표준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바로 캐논입니다. 그래서 기준이 되고 표준이 될 만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경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에 상대되는 말이 바로 '외경'과 '위경'입니다. 단어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외경(外經)은 정경 밖에 있는 글을 뜻하고, 위경(僞經)은 거짓 위(僞) 자를 써서 가짜 경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개신교)가 외경을 정경(성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외경이 가진 역사적·교리적 한계가 명확하여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무오한 말씀"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구체적인 기준과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과 사도들의 인정이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정경성을 판단하는 가장 권위 있는 기준은 "예수님과 신약 성경 저자들이 그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용했는가"입니다.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을 수백 번 가량 인용하지만, 외경의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위 있게 인용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외경을 문학이나 역사서로만 보았을 뿐, 하나님의 성경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2. 교리적인 오류와 모순이 있습니다
외경의 내용 중 일부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진리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행위 구원과 면죄 사상:"구제는 죽음에서 건져내고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준다"(토빗기 12:9)라는 구절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성경의 핵심 교리와 모순됩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마카베오하(2서) 12장에는 죽은 자의 죄를 사하기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치고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며, 살아있는 동안의 신앙이 구원을 결정한다는 성경적 내세관과 다릅니다.
3. 역사적·지리적 오류가 발견됩니다
성경은 실제 역사와 지리를 정확히 바탕으로 하지만, 외경에는 명백한 사실적 오류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유딧서 1장 1절에는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이 아시리아의 수도인 '니느웨'에서 통치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실제 역사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에는 이러한 인위적인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4. 저자들 스스로 "신의 영감"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외경의 저자들은 성경의 예언자들처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같은 영적 권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카베오하의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만일 이 글이 잘 짜여졌다면 내가 원하던 바이고,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내가 최선을 다한 결과이다"(마카베오하 15:38)라며 인간적인 저작물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정경·외경·위경의 비교:
정경(正經): 역사성 있음, 영감성 있음, 저자 확실함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종결).
외경(外經): 역사성은 상당 부분 인정되나 영감성이 부족하여 정경에서 제외된 글 (예: 마카베오서, 솔로몬의 지혜서 등 / 공동번역 성서 등에서 참고 가능).
위경(僞經): 성경 인물의 이름을 도용하여 가짜로 지어낸 글로, 역사성과 영감성이 모두 없음 (예: 모세 묵시록 등).
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서기 313년) 이후, 교회는 마침내 전 세계 교회가 함께 따를 공식적인 성경 목록을 확정 짓게 됩니다.
아타나시우스의 부활절 편지 (서기 367년):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늘날 우리가 가진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신약 27권'의 목록을 최초로 제시하며 "이 책들 외에는 정경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카르타고 공의회 (서기 397년):서방 교회의 대표들이 모인 이 회의에서 신약 성경 27권을 정경으로 최종 공식 결의하였고, 이로써 오늘날의 성경 체제가 완결되었습니다.
신약의 정경화 과정 역시 교회의 어떤 지도자나 회의가 권력으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들이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성도의 예배와 삶 속에서 '영적 생명력을 가진 진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남아 스스로 그 권위를 증명한 역사적 과정입니다.
신약을 정경으로 정할 때 적용된 원칙과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는 '사도성(Apostolicity)'입니다. 그 책이 과연 12사도나 바울 사도 등 검증된 사도에 의해 직접 기록되었는지, 혹은 사도들의 증언과 인정을 받았는지가 기준이었습니다. 사도성이 있어야만 정경으로 선택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영감성(Inspiration)'입니다. 최고의 저자이신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객관적인 증거와 흔적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셋째는 '골자(내용)의 일치성과 조화성'입니다. 내용이 영적이어야 하며 이미 존재하는 다른 성경이나 구약의 말씀과 조화를 이루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기존 성경과 상충되면 정경으로 택할 수 없었으므로 내용의 통일성이 중요했습니다.
넷째는 '보편성(Catholicity)'입니다. 이미 교회 공동체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 널리 읽고 있고 그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가 하는, 즉 보편적인 인정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네 가지 기준에 따라 어떤 것은 정경으로 선택되었고 어떤 것은 선택되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선택되지 못한 책을 우리는 외경 또는 위경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발견 당시 우리나라 말로도 번역되어 많은 이들이 연구했던 '도마 복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과연 진짜 복음이고 정경에 포함될 수 있을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다. '여자들은 우리에게서 멀리 가게 하소서. 여자는 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내가 그녀를 인도하여 남자가 되게 하리니, 그러면 그녀도 너희 남자들과 같이 살아있는 영이 되리라. 남자가 되는 여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 하고 말씀하셨다." 도마 복음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자를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 멀리하라 하고, 예수님은 여자를 남자로 만들어 천국에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정말 얼토당토않은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은 외경의 가치도 없는 가짜인 위경입니다. 베드로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고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을 리 없습니다. 성경의 어떤 원칙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정경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약에서 제외된 외경과 위경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복음서 형태를 취한 것으로 야고보 복음(마리아의 출생부터 헤롯 왕의 유아 살해 명령까지의 이야기로 꽤 흥미롭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했을 때의 두려움과 정혼자 요셉의 고민 등을 담았으나 너무 사적인 내용이 많아 제외됨), 도마 복음, 예수님의 5세부터 12세까지의 행적을 기록한 유년기 복음서, 니고데모 복음(빌라도 행적이라고도 하며 예수를 놓아줄지 고민하는 빌라도의 심리가 담김), 바르톨로메오 복음(예수님이 음부에 내려갔을 때의 경험을 묘사함), 애굽인 복음(예수와 살로메의 공상적인 대화 내용), 베드로 복음, 히브리인 복음 등이 있습니다.
둘째, 행전 형태로는 베드로 행전, 바울 행전, 도마 행전, 빌립 행전, 안드레와 마티아 행전, 요한 행전 등이 있으나 모두 사도들이 직접 쓴 행전이 아닌 가짜입니다.
셋째, 편지서 형태로는 라오디게아인들에게 보내는 바울의 편지(정경에는 없음), 고린도삼서, 베드로가 야고보에게 보낸 편지(바울의 믿음 강조를 공격하는 내용) 등이 있습니다.
넷째, 묵시록 형태로는 베드로 묵시록, 바울 묵시록, 도마 묵시록, 스데반 묵시록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외경과 위경은 신약의 형식을 모방한 것인데, 마지막 사도인 요한이 100년경에 죽은 이후인 제2세기부터 제8~9세기 사이에 본인이 직접 쓰지 않고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한 가명이나 차명으로 기록된 것들입니다.
정경, 외경, 위경을 역사성, 영감성, 저자성 세 가지 측면에서 비교해 보면 이렇습니다. 정경은 역사성이 확실하고, 영감된 글이며, 저자도 확실합니다(예를 들어 베드로전서는 베드로가 썼습니다). 반면 위경은 역사성도 의심스럽고, 영감이 없으며, 저자명도 가명이나 차명을 쓴 엉터리입니다. 그 중간에 있는 외경은 역사성은 어느 정도 인정되지만 영감성이 없고 저자 역시 불확실합니다.
오늘의 결론이자 우리의 믿음입니다.
첫째, 모든 성경의 기록 과정에 성령님의 영감이 작용했음을 믿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처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우리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습니다. 간혹 구약의 오바댜처럼 아주 짧은 책은 영감이 덜 되었고, 이사야처럼 제일 긴 책은 영감이 더 잘 되었다고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성경은 똑같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습니다(전체 성경, Tota Scriptura). 다만 중요성에 있어서 메시아 예언이 많은 이사야서가 오바댜서보다 비중이 더 크다고 볼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영감된 오직 성경(Sola Scriptura) 66권만이 우리 교리의 기초이자 신앙의 기본이 됨을 받아들이며, 그 외의 것은 영감된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째, 모든 정경화 과정에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가 있었음을 믿습니다. 역사를 보면 성령의 인도가 분명히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완전히 완결되었습니다. 만약 정경이 아직도 열려 있어서 새로운 것이 들어오거나 기존 것이 나갈 수 있다면 신앙에 큰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닫힌 정경(Closed Canon)'을 믿습니다. 이 외에 다른 문서를 성경에 포함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영적인 교훈이나 참고서로 다른 글을 읽는 것은 좋으나, 이를 성경에 가입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한번 기록된 말씀의 최종확정을 발견하게 됩니다.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오직 성경, 성경의 절대권위속에서 다시 한번 말씀으로 돌아가는 거룩한 신앙운동이 일어나야합니다.
제2의 종교개혁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기대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