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은 강한 인공지능 바둑의 등장으로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토종 AI 한돌은 최정상권 프로기사 5명(사진)과 벌인 릴레이 대결에서 기존의 바둑 상식을 깨뜨리는 수들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인공지능이 바꾸는 바둑의 패러다임 한돌-프로 빅매치에
등장한 '이 수'
인간이 가르친 인공지능으로부터 인간이 배우는
시대다. 2016년 3월 이세돌-알파고의 대결로부터 인간 바둑계에 폭풍을 몰고온 인공지능 바둑은 빠른 속도로 바둑계의 '사부님'으로 자리했다.
최고를 자부해 왔던 인간 고수들은 인간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은 인공지능의 거대한 힘에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듯 약한 존재가 됐다.
인공지능의 수들은 바둑의 패러다임까지 바꿔놓았다. '알파고 리'가 보여준 5선의
어깨짚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기존의 상식과 사고관을 깨뜨리는 상상 초월의 수들은 인간 바둑의 질서를 파괴했다. 한동안 기피됐던 3ㆍ三침입은 이제
판마다 두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최신 트렌드가 됐다.
한게임바둑의 인공지능
'한돌'은 '프로기사 톱5'와 벌인 릴레이 대결에서 전승을 거둬 주목받았다. 전적에서도, 내용에서도 완승이었다. 매판 등장한 참신한(?) 수들은
프로 대국자와 관전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초반부터 처음 보는 수를
당해 당황스러웠다." (신민준) "패착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흔들기도 통하지 않아 갑갑했다."
(이동훈) "어디서 크게 실수했는지 잘 모르겠다. 예상한 수인 데에도 막상 두어 오니 갑갑하더라."
(김지석) "약점을 찾을 수 없어 답답했다. 정통파로 느껴졌다." (박정환) "형세판단 능력에서 차이가 컸다. 답답함을 많이 느낀 승부였다." (신진서)
직접 대국을 벌였던 프로들은 찬사 일색이었다. 공통적으로 밝힌 소감은 사람과의 대국이라면 불리해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 텐데 인공지능과 두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점이 있다는 것. 5명의 대국자들이 국후에 꼽은 '한돌의 이 한수'를 모아보았다.
▲ 제1국(vs.신민준) 백1로 씌웠을 때 한돌의 대응이 궁금했다. 한돌의 전략은 ▲ 한점을 가볍게 보는 것. 흑4로 알린 후 귀를 단속한
흑6이라는 '한돌의 스텝'에 모두가 놀랐다. 중계석에서는 "윷놀이의 '빽도' 느낌이 나는 수"라고
했다.
▲ 1-1도(상식) 흑1로 느는
게 상식. 이럴 경우 우상귀 흑진에 백이 먼저 손을 대는 것이 싫었을까. 백4에 흑A로 막으면 백5, 흑B, 백C로 역시 흑진이 무너진다.
▲ 1-2도(실전) 백3으로
몰았을 때 어떻게 받을지 궁금한 장면에서 한돌의 응수는 흑4. 발빠르게 우상귀를 마늘모로 지킨 데 이어 또 한 번의 마늘모가 기발했다.
실전진행은 흑이 귀도 지키고 상변도 최대한 확보한 모습이다.
▲ 제2국(vs.이동훈) 한돌의 백1이 기상천외. '마우스 미스'라는 소리가 자자했다. A에 두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마우스가 미끄러졌다는
얘기. 인공지능이 마우스 미스를 범할 리는 만무하고….
▲ 2-1도(실전1) "어..."
"야!" "와~"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중계석의 이현욱 8단은 "화점에 대해 △로 두는 경우는 마우스 미스 말고는 없다"면서 의미 파악에
골몰하더니 "우변 백진이 강하기 때문에 A보다 한 줄이라도 더 가서 집을 넓히는 게 일리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물론 사람은 못 둔다"는
말과 함께.
▲ 2-2(실전2) "턱밑에
다가온 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국후의 이동훈 9단. 흑1로 도발했지만 종국을 재촉한 진행으로 이어졌다.
▲ 제3국(vs.김지석) 김지석 9단이 꼽은 장면은 우하귀. 3으로 다가선 수는 당연한데 한돌은 백4ㆍ6. "두면서도 호구칠 것 같다고 생각은
했다. 둘 것 같은 수들을 막상 두어 오니까 너무 갑갑하더라."
▲ 3-1도(평범) 전체적으로
흑돌들이 중앙 지향적이기 때문에 백은 4로 머리를 내밀어 두는 것이 평범한 착상이랄 수 있다.
▲ 3-2도(실전) 김지석 9단은
우변 화점과 상변 날일자, 요처 두 곳을 차지했지만 한돌은 알기 쉬운 정리로 승률 70%를 넘겼다. "계산을 해보니 백은 탄탄하고, 흑은
발전성은 좋지만 집으로 바꾸기가 어려워 보이더라"는 중계석의 이영구 9단.
▲ 제4국(vs.박정환) 박정환은 한돌이 둔 백2 눈목자 행마에 대해 "정말 좋은 수 같다"면서 "흑의 응수여하에 따라 맞춰서 두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했다.
▲ 4-1도(보통) 백1ㆍ3이면
보통. 흑도 4로 지켜서 무난한 진행이다. 박정환 9단은 백A로 한칸 뛰어나가는 수를 예상했었다고 했다.
▲ 4-2도(실전) 흑1은
눈목자의 틈새. 백4가 맥점이다. 국후 박정환 9단은 "너무 어려워서 승부수로 무리하게 싸움을 걸어갔는데 정확히 응징당해 곤란해졌다"고
토로했다.
▲ 제5국(vs.신진서) 좌하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정석 진행. 흑6 때 백7이 낯선 한 수. 신진서 9단은 "엄청 많이 두었던 진행인데 처음
보는 수"라고 했다.
▲ 5-1도(추측) 배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백1이 가장 많이 두어지는 수. 한돌은 백2로 밀리는 것을 꺼려했을까. 그 후에 백3이면 흑이 석점을 살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추측하자면 그런 의도로 보인다"는 신진서 9단.
▲ 5-2도(실전) 지금이라면
흑1로 받을 수밖에 없다. 이하의 공중전에서 백이 우세를 잡았다. 신진서 9단은 "초반에 인공지능이 가장 헷갈릴 수 있는 변화를 두었는데 가장
쉬운 수로 응수해 왔다. 처음 본 수는 당연히 사용해볼 가치가 있는 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