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담는 길
오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틀 동안 한 공모전의 작품을 심사하느라 집 밖 외출을 하지 못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좀이 쑤시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마땅히 갈 곳도 없는지라 옛날 자주 올랐던 욱수골이 뇌리에 떠올라 그곳으로 갔다.
유건(儒巾)산에 올랐다. 그곳은 욱수골에 있는 산으로 옛사람들이 머리에 쓰던 두건(탕건)을 닮은 산이라 하여 그렇게 명명하였다. 오르는 길은 짧았지만, 경사가 심했다. 야간에도 산행할 수 있도록 오 미터에서 십 미터 간격으로 가슴팍 높이의 야간 등이 설치되어 있다. 또 가파른 곳은 나무 계단으로 되어 있다. 전망대에 올랐더니 시지는 물론 멀리 초례봉, 낙타봉, 환성산, 그 너머 팔공산까지 볼 수 있었다.
길이 가팔라 빨리 오를 수 없어 느릿느릿하게 걸으며 생각을 담았다. 전망대까지 90여 개의 등이 설치되어 야간에는 불을 밝혀준다. 또 험한 길은 쉽게 오르도록 계단도 곳곳에 놓여 있었다. 등불은 길을 밝혀 엇길로 가지 않도록 하는 이정표이다. 캄캄한 밤에 불이 없다면 어떻게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또 바위가 있고 험한 길에 계단이 없으면 얼마나 엎어지며 자빠질까.
우리의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그곳의 등불이나 계단처럼 삶의 길을 비추어주어 길을 잃지 않고 간다. 그 길은 배움의 길이다. 지식이나 지혜로 미지의 길을 개척하여 빛의 세계로 나간다. 사람은 서로에게 배움을 주고받는 상호의존적 관계의 존재이다. 좋은 관계로 공생의 평화로 나간다. 어떤 시인은 그 관계를 “서로 잊히지 않는 꽃”이라고 했으며, 어떤 이는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로 비유했다.
나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오르고 내리는 동안 세상사 까맣게 잊고 생각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낯선 길을 가다 보면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그 끝의 성취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며 기쁨이다. 언젠가 설악산 공룡능선을 외로이 혼자서 완주한 기쁨은 두고두고 마음 설레게 하며 나를 위로하였다.
또 생각을 더듬었다. 학생들의 ‘독후감’을 들여다보면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공통으로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을 깨닫고 닮으려 했다. 좋은 책은 우리의 길을 밝히는 스승이며 이정표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옛말처럼 책은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독서를 통해서 주인공의 삶과 경험을 간접적으로 얻어 삶의 길을 올바로 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담으며 유건산 정상에 올랐다. 나무에 주위가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재촉하여 진밭골 방향으로 가다가 욱수골 정상에서 욱수골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왔다. 오랜만에 걷는 오붓한 길이었다. 산속의 녹음과 생명의 활동에 몸과 마음이 동화되어 힐링하였다. 마음의 곳간에 좋은 생각을 많이 담고 하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