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재문 | 날짜 : 18-01-10 00:37 조회 : 599 |
| | |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 교도관의 길
임 재 문
내 아버지께서는 육군 장교출신이시다. 아무 대책도 없이 군대를 전역하시고, 사업을 시작하시겠다고 하시더니 갑자기 하나님께 붙잡혀서 고향의 초가교회를 개척하시고, 전도사 일을 보게 되었다.
장교출신이신 아버지를 따라 경기도 동두천을 시작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내가 아버지를 따라 드디어 고향교회에 안착 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의 고향이고, 또 내 고향인 전남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모동마을의 "모동교회"가 내 아버지의 개척 교회다. 초가로 이엉을 한 초가교회였다. 뒤에는 대나무숲이 어머니 품속 같이 둘러싸여 있었고, 가을이면 커다란 감나무에 빨갛게 감이 익어가는 내 고향 초가교회 풍경이다.
육군장교 출신이셨던 아버지께서는 너무나 엄격하셨다. 나를 그냥 교회라는 태두리 안에 가두어 두고 교회와 생활을 함께 할 수밖에 없게 하셨다.
그렇게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던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하고, 드디어 도회지로 나가, 교회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온 세상이 내 세상 같았다. 이제 창공을 나르는 새처럼 그렇게 홀가분하게 내 삶을 누리기로 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나 자신의 삶을 갖기로 했다.
돈도 명예도 결혼도 나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다. 직장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대서나 하루하루 먹고 살기만 하면 되니까 오늘은 이거리로 내일을 저거리로 그렇게 방황의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어느덧 내 나이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바로 그 때부터 내 눈에 들어오는 세상이 있었다.
내주위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갖고 살아가는 것들을 지켜보며, 아 ! 나도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하겠구나 !
그런데 현실은 너무나 멀리 도망쳐나와 있었다.
화들짝 놀라서 바라보는 내 인생의 내면은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없이 무너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느누구에게도 구속되기 싫은 것이 내 운명이요 ! 내 삶의 본질이었던 것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후회와 갈등으로 기싸움을 벌리며,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나는 공무원 생활을 가장 싫어했다. 공무원은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교성도 없고, 또 윗사람에게 예속되는 것이 죽기보다도 더 싫은 것이 내 삶이 아니었던가 ?
그런데 멀리멀리 도망처 나와서 돌아갈 길은 공무원 사회라는 카다란 테두리라는 생각이 섬광처럼 내 머리속을 흔들어 놓았다.
그렇다 ! 그렇다면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은 공무원인데 기왕 구속 될 것이라면 교도관 생활을 해서 커다란 감옥속으로 내 삶을 묻어버리자 !
그래서 택한 것이 교도관의 길이요 !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사천리 시험준비를 하고 온 심혈을 다 기울여 9급 교정직 시험에 합격을 했다.
도망쳐 나온 거리가 너무나 멀고 멀어서 추격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9급 공무원인 교정직 말단 교도관으로 임용된지 4년만에 7급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함격을 하여 도망쳐 나온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꺼번에 2계급 승진을 한 셈이다.
법무부 연수원에서 감독자가 될 연수교육을 받고 감독자로서 내 인생의 제 2막을 장식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모른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교도관의 길 !
글 쓰는 것이 취미였던 내가 교도관 생활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으니 내 인생의 꽃을 피원냈다고 해야만 한다. 한국수필작가회 창립회원이 되고 초대 감사 초대 이사 11대 부회장 11대 한국수필작가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니 내 인생의 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도관의 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방황의 생활이 계속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폐인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저버릴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늦게나마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깨닫고 돌진하게 한 것은 아마도 어려서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활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을까 ? 아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오늘 지금 이 순간도 없었다고 확신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또 다시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강릉교도소 복지과장을 끝으로 정년퇴임 한 후 수필가로 또 제2종교개혁연구소 사무국장으로 인생 이모작을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
이제 나는 또 고향교회 내 아버지께서 개척하신 모동교회에 찾아가 머리숙여 기도드리며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쏟아 내야 하겠다. 남은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하겠다.
필자 약력
전남 해남 출생
강릉교도소 복지과장 정년퇴임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역임
수필집 "담너머 부는 바람" "사형수의 발을 씻기며" |
| 임병식 | 18-01-10 09:16 | | 실버 글방에 '내인생의 터닝 포인트' 가 있는데 거기에 올리신 글 같군요. 교도직을 무사히 마치시고 정년퇴임하신 것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저도 잠깐이지만 구치소 근무를 해봤습니다. 군 헌병대에 있으면서 군단 구치소에서 1여년간 근무를 했는데 반은 징역살이와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역겨운 냄새도 나고 했는데 차차로 적응이 되더군요. 사람이 네멸이나 죽인 흉악범도 대리고 있었는데 그가 비관자살하지 않도록 신경셨던 일이 많이 생각납니다. 인생 이막을 맞이하여 열심히 창작활동에 매진하신것을 보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
| | 임재문 | 18-01-10 23:27 | | 임병식 선생님 ! 언젠가 제가 그랬지요. 선생님의 살도 고향도 취미도 모든 것이 어쩌면 저랑 그렇게 닮아 있는 것이냐고요. 임병식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무사히 정년퇴임 하시고, 저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제가 부럽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권섭 | 18-01-16 13:51 | | 임재문선생님! 반갑습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 극적인 삶을 잘 살아오셨습니다. 남은 삶도 건강하고 평안하며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
| | 임재문 | 18-01-17 05:03 | | 김권섭 선생님 ! 요즈음 부쩍 더 그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세월이 너무 너무 빨리가는것만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
| | 김자인 | 18-01-18 13:51 | | 임재문 선생님, 인생의 터닝 포인트 참 잘하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
| | 임재문 | 18-01-19 02:19 | | 감사합니다. 글 실어주셔서 더욱 더 감사해요. 건강하세요. | |
| | 이방주 | 18-02-04 13:43 | | 임재문 선생님, 교도관하는 제자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들이느 교도관도 신분만 다르지 감옥에 있는ㄴ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같은 공무원이면서도 교도관들의 노고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직장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 그리고 퇴직 이후의 삶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선생님과 같은 성실성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성실을 주제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감동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임재문 | 18-02-14 03:07 | | 이방주 선생님 ! 정말이지 재임시에는 참으로 힘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나놓고 보니 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옛날이 그립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방주 선생님 ! | |
| | 일만성철용 | 18-02-08 13:55 | | 오랜만에 이 홈에 오니 반가운 사람들의 글이 가득하네요. 임작가님의 글은 솔직하고, 진실하고, 읽기에 편하고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있어요. 이번 글도 도란 도란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네요. | |
| | 임재문 | 18-02-14 03:09 | | 일만 성철용 선생님 항상 과분한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는 저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일만 성철용 선생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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