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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11: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1: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11: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 주 해
1. 예수님의 주 사역지는 갈릴리였다.
1) 갈릴리에는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 있었고, 특히 가버나움은 예수님이 가장 많은 권능을 행하고, 복음을 가르친 마을이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하였다.
-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가르침과 권능을 행함으로 보여주셨다.
3)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본 자들은 회개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이 마땅하다.
4) 그러나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음으로 책망하신다.
마 11: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 예수님의 책망을 통하여 “권능의 목적이 회개” 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 예수님은 권능을 행하심으로 병든 자를 치유하며, 악한 영에 시달리는 자를 자유케 했다.
2)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여 주신 목적은 문제해결이나 삶의 질의 향상이 아니었다.
- 예수님이 권능을 행하여 주신 목적은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려 함이다.
3) 예수님의 권능을 통하여 질병이 치유되고, 악한 영이 떠났음에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도리어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고, 심판 날에 소돔보다 더한 심판을 받게 된다.
3.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에서 요한이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권능 행함)을 기록한 목적은 문제해결을 해주어서 삶의 질을 고양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 얻게 하는 것이 표적을 기록한 목적이다.
요 20: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 권능을 경험하고 표적을 경험하게 하시는 목적은 “회개하고 믿어 생명 얻는 것”이다.
- 표적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회개하여 믿게 하려는 수단이다.
4. 그러므로 우리는 권능과 표적 자체를 추구해서는 않된다.
1) 물론, 생명을 얻기 위하여 권능을 베풀어 주셔서 회개하여 달라고 간구할 수 있다.
2) 불신앙, 완악한 마음이 권능을 통하여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 회개한다면 좋은 일이다.
3)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회개가 중요하다.
5. 회개하지 않고 권능 자체에 주목하는 것은 예수님을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1) 그런데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
2) 예수님이 고라신과 벳새다에 행하신 권능을 이방 도시인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다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3)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심령의 상태가 이방인보다 더 완고하다. 그들은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보다 더 큰 화를 당할 것이다.
6.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 회개하기 보다는 도리어 교만해졌다.
1) 그들은 하늘에까지 높아졌으나 음부에까지 낮아질 것이다.
2) 예수님이 가버나움에서 행한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셨다면 그 성은 회개하여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판 날에 가버나움이 소돔 땅보다 더 큰 화를 당할 것이다.
3) 많은 권능을 보고 경험함으로 인하여 도리어 교만해졌다는 말씀은 큰 경고가 된다.
4) 오늘날에도 많은 권능으로 놀라운 사역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을 모은 사람들이 회개하기보다는 도리어 교만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 노릇하는 자들이 많다.
- 은사를 받아서 많은 권능을 행한 후에 회개하기 보다는 도리어 교만해지기 쉽다.
7. 권능을 행하거나 경험하면 자동적으로 회개하고 겸손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 도리어 교만하여져서 심판 날에 큰 화를 당할 수 있음을 알고 겸손해 져야 한다.
8. 기독교 신앙은 생명을 얻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이 핵심이다.
1) 하나님과의 교제는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는 것으로 시작한다(요일 1:5-10).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간다(히 10:19).
2) 권능의 목적이 자신의 비참함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임이 분명해야 한다.
9. 이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주재이신 아버지께 감사하며 말씀하신다.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11: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1) 예수님이 활동하신 가버나움에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 소위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있었다.
2) 하나님은 자칭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이들에게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영생을 숨기신다.
3) 이들은 자신의 지혜와 슬기로 인하여 교만한 자들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에게 하늘의 비밀,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숨기신다.
10. 하나님은 어린아이에게 생명 얻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신다.
1) 어린아이는 겸손하여서 영으로 증거 되는 말씀을 그대로 믿는 자다.
2) 세리와 죄인 중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겸손하여져서 복음을 믿는 자들이 있었다.
3) 하나님은 어린아이같이 겸손해진 자들에게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계시하신다.
- 그들은 복음을 들으면 회개하는 자이며, 권능 행함을 보고 회개하는 자들이다.
11.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요17:3)
1) 아들만이 아버지를 알며,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아버지를 안다.
- 계시는 커텐을 열어 보이면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것처럼 알게 되는 것이다.
2) 그러므로 영생은 우리의 이성과 노력과 관찰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다.
3) 자신의 비참함을 회개하고 십자가로 나아갈 때, 아들이 계시해 주시면 아버지와 아들을 알게 된다.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4)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아버지에 대한 계시의 절정이며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신실함이 충만히 나타나는 곳이다.
- 그러므로 회개하고 십자가로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계시로 생명을 얻게 하신다.
12. 28-30절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계시 즉 영생의 사귐으로의 초청이다.
1) 아들의 초청을 받는 자는 회개한 자, 어린아이 같아서 계시를 받은 자, 짐 진 자이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13.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안식으로 초대하신다.
1) 쉼을 얻는 비결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아들의 멍에를 메고 그에게 배우는 것이다.
2) 예수님은 자신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신다.
3) 그러므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란 생명 주는 복음을 전하는 것일 것이다.
4) 마태복음 10장에서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머리털까지 세신다고 하셨다.
14.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에게 배운다는 것은 “복음을 통하여 생명의 교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1) 아들은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를 계시함으로, 아들에게 배우는 자는 아버지를 안다.
2) 아들에게 배운 자, 생명을 얻는 자는 예수님의 멍에를 멘다. 즉 복음을 전한다.
3) 그럴 때, 아들 안에 거하여, 아버지의 품 안에서 안식하게 된다.
15. 오늘 본문에서 “회개하는 자” “어린 아이 같아서 계시로 아버지를 아는 자”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자”는 같은 사람이다.
1) 그는 단순히 나의 문제와 무거운 짐을 예수님에게 해결해 달라는 자가 아니다.
2) 회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다. 그가 안식을 누린다.
◈ 나의 묵상
회개: 말씀의 빛이 비추인 비참한 존재
권능을 행하여 주신 목적은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 새롭게 들린다. 질병이 치유되고 악한 영이 떠나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한 후에 회개하고 온유하고 겸손하여 생명의 교제로 나아가는 자는 거의 못 봤다. 그 중에는 나도 있다. 방언을 하고, 성령체험을 하고, 임재를 느꼈을 때 나는 회개하지 않았다. 악한 영들을 쫓아내는 사역을 한 후에도 회개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감사는 했으나 회개함으로 낮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버나움처럼 하늘에까지 높아졌다. 교만해졌다. 복음을 가르치는 사역부터 축사 사역까지 다 한다는 교만에 빠져 있었다. 담당한 청년부에서 청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헌신하는 일로 인하여서도 감사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나는 회개하고 겸손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성장한다고 교만하고 자만하였다.
예수님은 그런 나보다 두로와 시돈이 더 낫다고 하신다. 오히려 소돔이 나보다 더 낫다고 하신다. 예수님은 왜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지 않았느냐”고 물으신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은혜를 받을 때마다 회개하고, 상담해 준 후에 회개하고, 축사한 후에 회개하였다면 예수생명이 더욱 충만하여 온유하고 겸손해졌을 것이다. 하늘의 계시가 풍성하게 열림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그 영광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예수님의 책망과 심판은 합당하다. 권능으로 교만해 졌음을 인정하고 회개한다.
2. 생명을 조명하는 복음(구속의 은총으로 존귀한 자 되어 아버지 품에 안기다).
권능을 행함으로 교만해진 자,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게 여김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되었다. 사역은 예전처럼 성장하지 않는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삶이 변하는 사람도 소수다. 권능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교회성장이 아니라 회개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배우는 것이다. 실패를 통하여 회개한다면 그것도 유익이다. 실패를 통하여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된다면, 겸손하게 된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교만하고 완악하다. 그러기에 십자가로 나아간다. 나의 옛사람과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의지한다. 나의 어둠을 드러내시는 생명의 빛이 생명이 된다. 어둠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셨다. 구속의 은총과 십자가의 용납으로 아들안에 거하게 되었다. 주권적인 은혜로 아들은 나를 영접하였다. 아무리 묵상해도 주님의 계시가 아니면 아버지를 알 수 없다. 그러기에 날마다 계시로 아버지와 아들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한다. 조급하고 불안한 내 영혼을 주님께 맡기며 아들을 힘입어 생명 길로 나아간다. 두 다리를 저는 자를 왕의 식탁에 초대하신 자비로의 초대에 감사함으로 나아간다.
◈ 묵상 기도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였으나 회개하지 않은 자가 이제야 회개합니다. 주님이 행하신 일을 내가 했다며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한자가 회개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더욱 겸손해 져야 했는데, 주님의 도움으로 인하여 도리어 교만해졌습니다. 그리하여 계시는 닫히고,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 앞에서 항상 회개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완악한 마음이 부드러워 져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는 은총을 주시옵소서. 아버지와 아들을 알기 원합니다. 계시로 알게 하시고,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워 쉼을 얻게 하옵소서. 국내외 선교사들과 사역자들에게 참된 안식과 쉼을 주십시오. 주님과의 생명의 교제 안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권능을 행하며 회개하게 하옵소서.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