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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 지연의 일기 ◑
미..믿을수 없다.
분명 몇시간 전까지만해도 내 앞에서 환한 미소를 보내주던 선배였다.
나없으면 심심하다고 대충 소개만 시켜주고 빨리 달려오라던 선배였던것이다.
그 얼마 안되는 시간도 못견뎌 내가 있는 술자리로 오겠다고 연락까지 했던 선배였는데..
그런 선배가..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사이에..
...........
아니다.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윤아에게만큼은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던 선배였다.
오죽하면 나도 선배랑 윤아가 사귀는걸로 오해까지 했었는데..
..............
맞다.
저 둘이 저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게..
이상할건 없었다.
문제는..
왜..
나랑 사귀는 와중에도
저러고 있냐는 것이란 말이다.
저런 모습을 지켜봐야할 나는 뭐가 되는 거냐고..
병실에 앉아.. 10여분정도를 기다리니..
윤아는 집에 간건지.. 봉구선배 혼자 들어온다.
"어? 왔네?"
나를 보며 놀란듯 선배가 묻는다.
"..........."
"어떻게 됬냐? 둘이 잘됬어?"
...........
아무일 없었다는듯 은혁선배와 간호사 얘기를 꺼내는 선배를 보니
갑자기 화가 치민다.
"어디갔다 왔어요?"
최대한 침착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톡 쏘아붙히는 말투로 물어보고 말았다.
"아.. 그냥 바람좀 쐬고 왔어.."
...........
뭐야.. 윤아 얘긴 왜안해?
"혼자요?"
"어? 어.."
아..
이선배.. 이젠 거짓말까지 하네..
너무해.. 정말..
"............."
"둘은 어떻게 됬냐니까.. 잘 됐어?"
"몰라요.. 잘 됐겠죠 뭐.."
"너.. 표정 왜그러냐? 뭔일 있었어?"
............
아.. 선배님..
왜이래요..
그렇게 태연한척 하는거 보기 싫단말이에요..
차라리..
죄지은 사람처럼 벌벌 떨리라도 하든지요..
비밀같은거 없기로 해놓고..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잔 거냐구요..
"저.. 오늘 몸 안좋아서 집에 먼저 갈께요.."
"어? 어디 아프냐?"
.............
"머리 아파서 그래요. 미안해요.. 먼저 갈께요.."
"그.. 그래... 할수없지뭐.."
"가요 그럼.."
선배의 얼굴도 안마주친채.. 후다닥 병실문을 열고 나온다.
아..
나 왜이래..
이렇게 해결할일이 아니잖아.. 흑..
하지만..
지금 이순간은..
도저히.. 선배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선배의 입에서 나올 거짓말들을..
차마 들어줄 자신이 없었던것이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멍하니 집으로 향하는 버스들을 보내버린다.
이상하게도
저 버스를 타면..
선배와 영영 멀어질거같은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고 마는 나였다.
다시 병원으로 달려가..
선배에게 거짓말 하지 말라고..
윤아하고 어떤 관계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날 두고 윤아랑 그럴수 있냐고..
사귄지 몇일이나 됬는데 벌써 이러는거냐고 따져묻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선배의 거짓말 하는 모습..
정말이지 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을 하다보니..
마음이 바뀌고 만다.
..............
일단 얘기나 해보자..
내가 오해한 걸지도 모르잖아..
윤아 그 기집애가 선배는 싫다는데도 지맘대로 어깨에 기댄걸지도 모르고..
그리고 뭐..
인정하긴 싫지만.. 오빠 동생 관계라는데..
그정도 위로는 해줄수 있는거잖아..
그래.. 일단 얘기나 한번 들어보자.
들어보고..
그리고 그때가서 다시 생각해보는거야..
한시간만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으로 향한다.
힘든 몸을 이끌고 겨우 병실에 도착했다.
아직 불이 켜져있는걸 보니.. 자고있진 않은가보다.
조용히 병실문을 열려는 찰나..
"오빠는 그게 문제에요..호홍.."
"아냐.. 윤아 니가 몰라서 그렇지 나 그렇게 쪼잔한놈 아니라니까.. 하하"
................
내 귀를 의심했다..
분명.. 선배와 헤어지고 집에 갔어야할 윤아가..
지금 또 선배에게 와서 다정스런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는것이다.
............
아..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될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봐도
결국 한가지 생각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내가 없는 시간들을 이용해..
몰래 데이트를 하고..
내가 떠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듯 다시 만나 서로에 대한 마음을 나누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상상 말이다..
...............
충격에 휩싸인채..
병원앞 벤치에 앉아버린다.
집에 가버리고 싶었지만..
병실에 앉아있을 윤아가 신경쓰여
멀리 봉구선배의 병실이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멍하니 언제 꺼질지 모를 병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지연아.."
헛..
멀리서 민수선배가 나를 부른다.
허겁지겁 눈물을 닦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온 민수선배는.. 결국 알아차린듯 하다.
"너 왜울고 있어?"
"아.. 아니에요..."
"무슨일 있어?"
"아니에요. 그냥 집에 가야되는데 버스를 놓쳐서 그래요.."
...............
너무 당황해서..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버리는 나..
"그래? 그럼 가자.. 집에 데려다줄께.. 안그래도 나 집에 가는 길인데.."
.............
아.. 이게 아닌데..
"괜찮아요.. 전 그냥 택시타고 가면 되요. 먼저 가세요.."
"에이.. 택시비가 얼만데.. 그리고 밤에 혼자 택시타고 그러면 위험하잖아.. 가자 데려다줄께.."
"................"
어뜩하지?
웬지 여기서 더 거절하면.. 민수선배도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그렇다고..
저 안에서 봉구선배와 윤아가 밀회를 나누고 있다고..
그래서 집에 못가고 있다고 말하는것도 웃기고..
...............
"일어나.. 차 바로 저기 있으니까.."
"................"
결국 민수선배를 따라 나선다.
"근데 선배님은 여기 왜 오신거에요?"
차에 올라타며 묻는다.
아깐 경황이 없어서 못 물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밤늦게 병원에 들어가던 민수선배 였던것이다.
봉구선배 보러 온거였나?
"아.. 그게.. 뭐 그냥 이근처 있다가.. 봉구형이나 다시 볼까 했는데.. 나중에 다시와야겠네. 하하.."
맞구나..
..............
안가길 잘하셨어요.
가봐야.. 봉구선배도 별로 반기지도 않았을꺼에요 아마..
............
갑자기 또 화가 치미는 나였다.
"지연아.. 어디가서 술이나 한잔 할래?"
"그래요.."
"어? 진짜?"
"네.."
평소였다면..
거절했을 술자리..
하지만.. 오늘은..
먼저 술한잔 하자는 민수선배의 제안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
생각해보니..
난 이제껏..
내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친구한명 없었던거다.
이런 외롭고 힘든 시기에..
내 옆에서 함께 있어줄 소중한 사람이..
어떻게..
한명도 없었던걸까..
창밖을 내다보며
씁슬한 한숨을 내뱉는다..
"너 무슨일 있지?"
"................"
"아까부터 표정이 너무 어둡네.. 뭔데? 나한테 얘기하기 어려운 문제야?"
"별일 아니에요.. 우리 딴얘기 해요 그냥.."
................
뭔가 내 마음을 털어놓고 고민 상담이라도 할 심산에 온건데..
막상 마주보고 앉아있자니..
속내를 끄집어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직은.. 민수선배가.. 편하진 않은가보다.
띠리리리리링~~♬
민수선배에게 전화가 온다.
번호를 확인하는 선배..
띠리리리리리리링~~~♬
"안받아요?"
"어.. 안받아도 되는 전화야.."
"그래요?"
"근데.. 봉구형이랑은 어때? 재밌어?"
...............
아.. 왜 하필 이런걸 묻는거야..
"네.. 뭐.. 그렇죠.."
"아.. 봉구형은.. 좋겠네 진짜.."
"뭐가요?"
"너처럼 이쁘고 착한 여자친구 있어서.."
"그렇지두 않은가봐요.."
"응?"
"배가 불렀어 진짜.."
민수 선배의 존재도 잊은채.. 푸념을 해버리고 만다.
"................"
"아.. 미안해요.. 헛소리에요.."
"너.. 봉구형이랑 뭔일 있냐?"
".............."
"싸웠어?"
"몰라요.. 오늘은 봉구선배 얘기 하고싶지 않으니까.. 딴 얘기해요 우리.."
"그.. 그래.."
"선배님은 윤아랑은 어떤 관계에요?"
"응? 윤아?"
"네.. 엄청 친해보이시던데.."
"뭐.. 그냥 오빠 동생이지.. 윤아가 성격이 원래 좀 잘 따르고 그러잖아.. 하하.."
...............
"그래요? 사귈맘은 없어요?"
윤아가..
나와 봉구사이에 걸림돌이 될거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을까..
민수 선배를 상대로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나였다.
"윤아랑? 에이 그런거 아냐.."
"왜요.. 윤아 이쁘고 귀엽잖아요. 성격도 명랑하고.."
"................."
"내가 남자라면.. 윤아같은 여자랑 사귀고 싶을꺼 같은데.."
내맘..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민수 선배랑 윤아가 사귀길 바라는건지..
아니면..
나와 봉구선배 사이에 끼어들거 같은 윤아를 민수 선배보고 좀 해결해 달라는건지..
나..
너무 이기적인거 같다.
"솔직히.. 난.. 윤아보단... 아직 널..."
"선배님.."
"어.."
"그러지마요.."
"어?"
"앞으로 그런말 하면.. 선배님 얼굴 안볼꺼에요.."
"..............."
"미안해요.."
"아..아냐.. 내가 미안해.. 괜한말 꺼내서.."
".............."
".............."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결국.. 민수선배와는 30분만에 헤어져야 했다.
.............
술한잔 마시며 마음좀 정리해보려다가..
오히려 더 심난해져버렸네..
아.. 증말..
오늘 일진이 도대체 왜이런거야.. 흑...
화가나서 주체할수 없던 감정이 어느정도 사그라들 무렵..
멀리.. 봉구선배의 방이 보여온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저방에서..
선배 품에서...
............
아..
왜.. 이게..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져 오는거야 대체..
별일도 아닌건데..
역시.. 나혼자 너무 오바하는걸까?
그.그래..
침착해야돼..
이럴수록 ..
냉정할 필요가있어.
내일 선배 만나서..
확실하게 얘기해보는거야..
분명.. 내가 오해하는걸꺼야..
집으로 향하다 잠시 멈추곤..
다시 봉구 선배의 방을 쳐다보고 만다.
선배님..
아니죠?
제가 오해하는거죠?
그냥 윤아가 선배님 쫓아다녀서 할수없이 만나주는거죠?
선배님은 귀찮은데..
오빠 동생이니까.. 그냥 오빠 노릇한다고 그러는거..
맞는거죠?
그럴꺼라 믿어요..
아니 그래야 돼요..
전..
그냥 그렇게 믿을래요..
선배님은.. 저밖에 없다고..
저 말고 그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가지지 않을거라고..
믿을꺼에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저 멀리 선배 방으로 다정하게 들어가는
봉구선배와 윤아의 모습에..
난 또다시 무너져 내리고 만다.
◐ 봉구의 일기 ◑
"오빠.. 전 그럼 가볼께요.."
한참을 내 어깨에 기대어있던 윤아가 입을 열었다.
"아.. 그럴래?"
"네.. 오빠도 주무셔야죠.."
"그래.. 내려가자.."
윤아와 헤어진후 병실로 향했다.
병실로 돌아와 문을 여니.. 지연이가 와있다.
"어? 왔네?"
뭐야.. 더 놀다 올줄 알았더니..
"..........."
"어떻게 됬냐? 둘이 잘됐어?"
"어디갔다 왔어요?"
............
이거 뭐라고 해야되나..
당연히 지연이가 없을거란 생각에 별다른 핑계를 준비하지 않고 있던 나였다.
"아.. 그냥 바람좀 쐬고 왔어.."
그래..
뭐 괜히 윤아 얘기까지 해서 지연이 신경쓰이게 할 이유는 없지..
"혼자요?"
"어? 어.."
막상 거짓말을 해대려니..
두근거린다.
"............."
그나저나..
얘는 표정이 왜이렇게 어둡지?
밖에서 안좋은일 있었나?
"둘은 어떻게 됬냐니까.. 잘 됐어?"
"몰라요.. 잘 됐겠죠 뭐.."
"너.. 표정 왜그러냐? 뭔일 있었어?"
"저.. 오늘 몸 안좋아서 집에 먼저 갈께요.."
............
확실히 뭔가 안좋은 일이 있긴 있었구만..
이상하네..
아까 술집에서만해도 신나보였는데..
갑자기 왜이러지?
"어? 어디 아프냐?"
"머리 아파서 그래요. 미안해요.. 먼저 갈께요.."
"그.. 그래... 할수없지뭐.."
"가요 그럼.."
"지연아.."
문을 나서는 지연이를 부른다.
"왜요?"
"너.. 뭐 고민같은거 있으면.. 얘기해.. 내가 들어줄테니까.."
"..............."
"나한테도 말하기 힘든 문제냐?"
"그런거 아니에요. 그냥 몸이 안좋아서 그래요. 먼저 갈께요.."
"그..그래.."
..............
흠..
생각해보니.. 몸이 피곤한걸지도 모르겠네.
하긴뭐.. 몇일 집도 못가고 병원 오가느라 고생좀 했으니..
몸이 안좋을만도 하겠군.
별일 아니겠지?
창밖으로 병원밖을 빠져나가는 지연이를 확인한후.. 다시 침대에 눕는다.
똑똑~
"네.."
"오빠.. 저에요"
잉? 윤아?
왜 또왔지?
"어라? 너 왜 또왔어?"
"아.. 저 여기에 레포트 쓰던거 놓고 가서요.. 어머 저깄네.."
............
"잘좀 챙겨야지.. 하하.. 그래도 빨리 기억해서 다행이었네."
"그러게요.. 내일 제출해야 되는건데.. 하마터면 새벽부터 병원에 다시 올뻔 했어요 호홍.."
"하하.."
"근데 지연이는 아직도 안왔어요? 기집애.. 얼굴보기 힘드네.."
"아.. 방금 왔다가 집에 갔어.."
"어머.. 그래요? 오빠.. 저랑 방금 헤어졌잖아요.. 근데 그새 간거에요?"
"몸이 좀 안좋다고 먼저 갔어.."
띠리리리리리링~~~~♬
윤아에게 전화가 온다.
"여보세요? 아 오빠.. 네.. 저 지금 봉구선배 병실에 있어요. 네.. 어머 그래요? 아 잘됬다. 네.. 그래요.. 여기서 좀 기다리고 있죠뭐.. 네.. 알았어요.."
"누구?"
"아.. 민수 오빠요. 이 근처에 있다고.. 집에 갈때 태워다 준다네요.."
"그래? 하하.. 그럼 여기서 좀 기다리다가. 안그래도 나도 심심할거 같았는데 잘됬네.."
"네.. 호홍"
그러고는 가방을 내려놓는 윤아였다.
"왜이렇게 연락이 없냐?"
"그러게요.."
............
"전화한번 해봐.."
"네.."
민수에게 전화를 거는 윤아..
"............"
"안받아요.."
"그래? 어디 노래방 같은데라도 갔나?"
"................."
한시간이 지났다.
또다시 전화를 해보지만..
역시나 받지 않는지..
아무말없이 끊는 윤아였다.
"오빠.. 저 그냥 갈께요.."
"그럴래? 에구.. 민수 그놈은 괜히 전화해가지고 윤아만 기다리게 만들었네.."
".............."
"뭐 사정이 있나보지.. 너무 신경쓰지마.."
"괜찮아요.. 오빠도 언능 쉬세요.."
"그래.."
어깨가 축 처진채 가방을 챙겨들고 나가는 윤아였다.
...........
"윤아야.. 같이가자"
허겁지겁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윤아를 따라나선다.
"어? 어디 가세요?"
"아.. 그냥 집에좀 다녀오려구.."
"집에요?"
"어.. 핸드폰 밧데리가 다 닳아서 바꿔와야되.."
"그것땜에 가시는거에요? 어짜피 내일 퇴원한다면서요.."
지연이 보러가는거란다 윤아야..
아까 그냥 보낸게 자꾸 맘에 걸려..
"하하.. 내가 연락올데가 워낙 많잖니.. 하루라도 꺼져있으면 불안해서 일이 안돼.."
"호홍.. 지연이랑 전화못해서 그런건 아니구요?"
..............
"뭐.. 그것두 그렇구.. 하하.."
"암튼 가요.. 근데 택시비는 오빠가 내시는거죠?"
"응? 니가 쏘는거 아니냐? 난 얻어탈려고 일부러 너 쫓아나온건데.."
"치.. 알았어요. 가요.."
접수대에 얘기한후.. 윤아와 함께 병원을 나선다.
"무슨 레포트냐?"
택시에서 레포트를 점검하는 윤아를 보며 묻는다.
"아.. 윤리학 개론이요.. "
"박상웅 교수님?"
"네.. 오빠도 아세요?"
"어.. 나도 예전에 들었거든.. 하하.. 그 교수님 레포트 빡세게 내기로 유명하잖아.."
"그러게요.. 전 자료도 재대로 못구해서 반밖에 못했어요.."
"자료 못구했어? 뭐길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대한 정리요.."
"아.. 하하.. 니들도 그거냐? 우리때도 그거 내주더니.."
"그래요?"
"어.. 근데 그 책 내가좀 빌려줘?"
"진짜요? 가지고 있어요?"
"어.. 방에 찾아보면 있을꺼야.. 엄마가 안버렸다면.."
"우와.. 그럼 지금 좀 빌려주세요.."
"하하.. 그래 그럼.. 대신 택시비는 니가 쏘는거지?"
"치.. 원래 제가 쏠려고 했어요.. 호홍.. 암튼 다행이다.."
"이상하네..."
"왜요? 없어요?"
"어.. 분명 이 박스안에 넣어놨는데.."
"그럼 됐어요.. 딴 선배한테 빌려볼께요.."
"아.. 아냐 잠깐만 기다려봐.."
"................"
뭐지?
몇일전에도 봤는데 어딜간거야..
지연이가 필요해서 가져겼나?
"근데 이건 웬 어항이에요?"
"아.. 그거 예전에 산거야.. 하하.."
"이쁘네요.."
"그래?"
"네.. 근데 얘는 왜 이렇게 힘이 없어보여요? 자는건가?"
...............
어항을 들여다보니..
유유히 헤엄쳐다니는 봉돌이와는 달리..
여니 녀석은.. 움직임이 없다.
헉.. 죽은건가?
혹시나 하는 맘에 어항을 툭 쳐본다.
슬쩍 움직이는 여니..
휴.. 죽은건 아니군..
놀래라..
근데 왜 이러지?
밥을 안줘서 그런가?
"밥을 안줘서 그런가보다.. 하하"
밥을 꺼내.. 한웅큼 뿌려준다.
..............
봉돌이 녀석만 신이 나서 여니 먹을 밥까지 몽땅 헤치워버리고..
여니는 그런 봉돌이 녀석에겐 관심도 없다는듯..
미동도 않고 제자리에 멈춰있을 뿐이다.
..............
뭐야.. 찝찝하게.. 왜이래..
자꾸 신경이 쓰이는 나였다.
"아.. 여깄다.."
"찾으셨어요?"
"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늦었는데 언능 가봐.."
"그래요.. 고마워요"
"데려다줘?"
"아뇨.. 혼자 갈수 있어요.."
"그래 그럼.."
".............."
윤아가 가는걸 확인하고
핸드폰 밧데리를 교체하여.. 전화기를 켠다.
그리곤..
혹시나 지연이에게 문자라도 와있을까.. 확인해 보지만..
...........
뭐야..
그냥 잠든거야?
...........
하긴.. 나 폰 밧데리 없다는거 알고 안보낸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할건 없었다.
...........
그래도 뭔가 영 개운칠않아..
뒤돌아서던 그녀의 표정.. 뭔가 우울해보였어..
분명.. 그 술집에서 뭔일이 있었던거야..
뭘까..
띵동~
헛.. 뒤늦게 문자가 뜬다.
* 봉구야 전화기 왜 꺼져있냐.. 너 입원했다며? 문자보면 전화좀 해라 *
.............
환수형의 문자..
통화 버튼을 눌러 형에게 전화를 건다.
* 아.. 형 저에요 봉구 *
* 어.. 그래 너 입원했다며? 몸은 괜찮냐?*
* 네.. 별거 아니었어요 *
* 그래? 내일 서연이랑 병문안 갈려고 했는데.. 그럼 안가도 되냐? *
* 네.. 일찍 퇴원할꺼에요. 오지 마세요. *
* 그래 그럼.. 학교 오면 얼굴이나 보자.. *
* 네.. 그래요.. *
* 아참.. 봉구야.. 아까 지연이 봤는데.. *
* 그래요? *
* 어.. 민수랑 술마시던데? *
* 네? 지연이가요? *
* 어.. 아는척 할까 하다가.. 진지한 얘기 하는거 같아서 그냥 나왔는데.. 넌 몰랐나보네? *
* 네.. 아까 몸 안좋다고 집에 간다길래 그런줄 알았는데.. 정말 지연이 맞아요? *
* 당연하지 임마.. 내가 지연이 얼굴도 모를까봐.. *
* .............. *
* 니들 싸운거냐 혹시? *
* 아뇨.. 그렇진 않은데.. *
* 잘 해줘라.. 지연이 걔는 워낙 인기가 많아서 좀만 방심하면.. 위험하다.. *
* 네.. 그래야죠.. 암튼 알았어요.. 낼 뵈요 그럼.. *
* 오냐.. 잘자라.. *
...............
뭐지?
분명 몸안좋다고 먼저 가서 쉰다고 했는데..
왜.. 민수랑 술을 마시고 있었던거야?
환수형의 뜻밖의 얘기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나였다.
아냐..
그럴리 없지..
지연이가 설마..
나한테 거짓말까지 하고.. 민수랑 몰래 술을 마시겠어?
그래.. 지연이가 먼저 마시자고 한건 아닐꺼야..
민수놈이 분명 지연이를 꼬득인거야..
착한 지연이는 민수의 호의를 거절 못해서 할수 없이 마셔준걸테고..
그래.. 그런거야..
..............
하지만..
낮에 술집에서 본 지연이와 민수의 환한 웃음들이 머리속을 떠나질 않는다.
너무 잘 어울려서 나를 잠시 우울하게 만들었던..
그 둘의 모습에..
자꾸 쓸데없는 걱정이 들기 시작하는 나였다.
...............
지연이에게 전화를 건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갑니다 *
................
전화기가 꺼져있다.
뭘까..
왜 꺼놨지?
다시 통화버튼을 눌러본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갑니다 *
역시나 꺼져있다..
............
지연아..
아니지?
폰이 꺼진줄도 모르고 자고있는거지?
설마..
민수랑 단둘이 있는데
일부러 폰을 꺼놓고 그런건 아닌거지?
그래..
그럴꺼야..
니가 그럴리 없잖아..
나땜에 병원에서 그 고생을 했던 너인데..
어떻게 그 사이에 그럴수가 있겠어..
맞아..
내가 널 괜히 오해한거 같아..
넌 그런애가 아닌데..
이 속좁은 선배가 괜한 의심을 해버렸구나..
미안해..
하지만.. 이런 나름의 위안도..
오래가진 않았다.
새벽 늦은 시간까지..
지연이와 민수의 관계를 의심해 보다가...
결국엔..
뒤늦게 민수의 매력에 빠진 지연이가
날 버리고 민수를 선택했을 거라는 끔찍한 결론에 이르러 버렸다.
처음엔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차근차근 초저녁부터 시작된 지연이의 모든 행동들을..
결론의 과정속에 대입해보니..
.............
안타깝게도..
너무 딱 맞아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을 해보려고..
끊어보려 했던 담배를 다시 물어보지만..
커져가는 불안감에..
불을 붙여야 하는것도 망각하고 있는 나였다.
지연아..
우리.. 설마..
이렇게 끝나는건 아니겠지?
번외 5화
"동아리 인기투표 나왔데.. 언능 가보자.." (태희)
"정말? 어머.. 궁금하당.. 아.. 나 한표도 없으면 어뜩해.." (경은)
"그러게.. 나도.. 무서워서 못보겠어" (선주)
- 동아리방 -
웅성웅성...
"우와.. 나 한표 있당.." (경은)
"힝.. 나도 한표 있어.. 다행이다.." (태희)
"............" (선주)
"그나저나 뭐야.. 지연이 23표? 몰표네 완전.." (경은)
"그러게.. 2등인 윤아랑도 15표가 넘게 차이난다.." (태희)
"............" (선주)
"우와.. 야.. 남자는 은혁선배가 1위야.." (경은)
"어머.. 진짜네.. 민수선배나 상민선배가 1등일줄 알았는데.." (태희)
"..........." (선주)
"그래도 박빙이었구나.. 2표차로 1등이네.. 민수선배 아깝겠다.." (경은)
"상민선배도 5표차이도 안나네.. 암튼 이 선배들 정말 우리 동아리 3대 킹카 맞긴 맞나봐.. 호홍" (태희)
"..........." (선주)
"그나저나 봉구선배도 2표나 있네? 우와.. 누구지?" (경은)
"그러게.. 한표는 지연일테고.. 나머지 한명은 누굴까?" (태희)
"윤아겠지뭐.. 흥.." (선주)
"윤아?" (경은)
"윤아.. 아직도 봉구선배한테 관심있는거야?" (태희)
"아.. 몰라.. 그나저나 이런건 왜하는거야 짜증나게.." (선주)
"..........." (경은.태희)
- 학교앞 호프집 -
"야.. 그만 잊어라.." (승철)
"쉽게 안되니까 그러죠.." (민성)
"그럼 둘이 사귀기 전에 대쉬라도 해보든가.." (승철)
"할려고 했어요.. 근데 봉구형이 미리 선수쳐서 그런거죠.." (민성)
"민성아.. 고백 안하길 잘했어 임마.. 지연이 걔는 봉구땜에 민수나 상민형도 거절한애야.. 어짜피 해도 퇴짜였어.." (운석)
"그.. 그렇겠죠? 아.. 진짜.. 짜증나네.." (민성)
"사는게 다 그런거지.. 하하.. 힘내라.." (승철)
"승철아.." (운석)
"네.." (승철)
"넌 잊었냐?" (운석)
"뭘요?" (승철)
"지연이.." (운석)
"............." (승철)
"어? 뭐야.. 승철이형도 그럼 지연이였어요?" (민성)
"............." (승철)
"설마 운석형도 지연이였던건 아니죠?" (민성)
"어? 어.. 난 아냐.. 하하.. 난 이상하게 윤아가 귀엽드라고.." (운석)
- 공주식당 -
"언니.. 나왔어.." (서연)
"어머.. 서연이 왔구나.. 오랫만이네.." (아줌마)
"응.. 잘 지냈지?" (서연)
"그럼.. 잘 지내지.. 넌 어때?" (아줌마)
"나도 잘 지내지뭐.." (서연)
"환수학생은 어쩌고 혼자온거야?" (아줌마)
"응.. 논문준비땜에 바쁘데.. 그나저나 뽕구랑 지연이는 자주와?" (서연)
"어.. 어제도 왔다갔어.. 애들이 돈들이 없는지 좋은데 가서 먹으라고 해도 자꾸 여기로 오네.." (아줌마)
"그래? 어째 우리 닮아가는거 같네.. 호홍" (서연)
"그러게 말이다.. 봉구학생 불쌍해서 어쩐다니.." (아줌마)
"응?" (서연)
"아.. 아냐.. 호홍" (아줌마)
- 학교 정문쪽 -
"윤아야.." (민수)
"아.. 안녕하세요 오빠.." (윤아)
"응.. 어디 가는길이야?" (민수)
"네.. 은혁 오빠랑 밥먹기로 해서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 (윤아)
"은혁이형? 아.. 그래?" (민수)
"네.." (윤아)
"하하.. 이거 서운한걸.." (민수)
"네? 왜요?" (윤아)
"윤아가 나말고 다른 남자랑 밥먹는다니까 괜히 질투나잖아 이거.." (민수)
"어머.. 그래요? 그럼 먹지 말까요?" (윤아)
"아냐.. 하하.. 농담이야.." (민수)
"..........." (윤아)
"가서 맛있는거 사달라고해.. 은혁이형 은근히 돈 많드라. 집 잘사나봐.. 하하.." (민수)
"............" (윤아)
"지난번에 술마시는데 양주값으로..." (민수)
"오빠.." (윤아)
"어.." (민수)
"저.. 먼저 가볼께요.. 약속 시간 다 되서요.." (윤아)
"어.. 그.. 그래라.." (민수)
"그럼 안녕히 계세요.." (윤아)
"어.." (민수)
- 분식집 -
"오빠는 연애 안해요?" (윤아)
"연애?" (은혁)
"네.. 맨날 혼자 다니시는거 같던데.." (윤아)
"여자가 생겨야 하지.." (은혁)
"오빠가 맘이 없어서 그런거 아니에요? 오빠 정도면 여자들 줄서겠는데.." (윤아)
"그런가? 하하.. 뭐 그럴지도 모르겠다.." (은혁)
"제 친구좀 소개시켜 줄까요?" (윤아)
"하하.. 아냐 괜찮아. 난 이제 연애같은거 관심없어.." (은혁)
"그래요? 흠.. 내 친구 진짜 괜찮은데.." (윤아)
띠리리리리링~~♬
"어.. 지연아.. 어.. 그래.. 그래? 아.. 알았어.. 당연히 해줘야지.. 그래.. 알았다.." (은혁)
"지연이에요?" (윤아)
"어.." (은혁)
"뭐래는데요?" (윤아)
"아.. 담주 씨네스터 모임 자료좀 구해달라고.." (은혁)
"지연이랑 친한가봐요?" (윤아)
"그렇지뭐.." (은혁)
"에휴.. 지연이는 진짜.." (윤아)
"응? 지연이가 왜?" (은혁)
"아..아니에요.." (윤아)
"............" (은혁)
"오빠.." (윤아)
"어.." (은혁)
"오빠도.. 혹시 지연이 좋아하는건 아니죠?" (윤아)
"어? 어.. 뭐.. 이젠.. 아.. 아니.." (은혁)
"뭐야.. 오빠도에요?" (윤아)
"응? 아니..그게.. 그러니까.. 옛날엔 살짝 관심도 생기긴 했는데.." (은혁)
"아.. 진짜.. 지연이 이 기집애.. 정말.. 아우.." (윤아)
".............." (은혁)
제 58화
◐ 지연의 일기 ◑
도무지 이해할수가 없는 광경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환하게 웃으며 선배의 방으로 들어가는 윤아..
그런 윤아를 거리낌없이 들여보내는 선배..
...........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어디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걸까...
떨리는 몸을 추스리기 위해..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
선배..
저.. 너무 떨려서 진정이 되질 않아요..
집에 가야되는데..
몸에 힘이 없어서 움직일수조차 없어요..
어떻게..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수가 있어요?
제맘 알면서..
선배님 밖에 없는 제 맘 잘 알고 계시면서..
어떻게 제가 아닌 윤아에게 마음을 주실수 있는거냐구요..
정말 이런 생각까진 하고 싶지 않은데..
혹시..
이제까지.. 제가..
윤아를 향한 선배님의 마음에..
방해가 되어왔던 존재였어요?
그런거에요?
그.. 그런거면..
저.. 정말 미쳐버릴꺼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은거죠?
제가 오해하는거죠?
잠시 주저앉아 기다려보지만..
방에 들어간 윤아는..
결코 나올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
저기서..
선배와 윤아는..
뭘하고 있을까..
끔찍한 상상들이..
나를 괴롭혀 온다.
계속 지켜볼까 하다가..
처량하고 서글프단 생각이 들어..
결국 집에 와버리고 말았다.
샤워를 하면 좀 나아지려나..
...........
하지만.. 그것조차도 귀찮아서
방 한구석에 가방을 집어 던지고..
이불을 뒤집어 써버린다..
싫은데..
정말.. 이런일로 울고 싶지 않은데..
영문도 모를 눈물들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
봉구선배가 싫어서 흘러내리는건지..
봉구선배가 떠날까 두려워 흘러내리는건지..
아니면..
내가 선배를 떠나야할지도 모른다는것 때문에 흘러내리는건지..
도대체가..
이유를 모르겠다.
눈물이 그칠때쯤이면..
그 해답을 찾을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리고 만다.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잠을 깬다.
속이 울렁이고.. 머리가 깨질듯 아프다.
몸은 불덩이처럼 뜨겁기만 하고..
얼굴은 식은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몸살이라도 난건가?
호흡조차도 힘겨울정도로.. 통증이 밀려온다.
아..
정말..
죽을거 같애...
가방에서 폰을 꺼낸다..
꺼져있는 핸드폰..
아...
힘들어 죽겠는데..
겨우겨우.. 밧데리를 교체한후.. 전원을 켠다.
하악~ 하악~
겨우 이정도 가지고도 숨을 헉헉 대다니..
나.. 무슨 큰병 걸린거 아냐?
걱정스런 마음에..
봉구선배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나..
...........
맘이 바껴버린다.
순간이었지만..
선배의 방에서 다정스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둘의 모습이
떠올라 버린것이다.
..............
떨리는 손으로.. 다시.. 태희에게 전화를 건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갑니다 *
............
아.. 안돼.. 흑..
핸드폰을 방바닥에 던져버리곤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쓴다.
그래.. 자고 일어나면 좀 괜찮아 지겠지..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
미칠듯한 오한이 다시한번 몸을 괴롭혀온다.
참을수 없는 고통에..
다시 전화기를 집어들고..
은혁선배에게 전화를 걸어버렸다..
............
"은혁 선배님.. 저... 저.. 지연인데요.. *
* 어.. 그래.. 밤늦게 무슨일이야? *
* 선배님.. 지.. 지금 좀 와주시면 안될까요? 저.. 지금.. 죽을거 .. 같아요.."
* 뭐? 왜? 어디 아퍼? *
* 몸살인가봐요.. 힘들어 죽겠어요. 빨리좀 와주세요.. 흑.. *
* 그.. 그래.. 근데 집주소가 어떻게 되지? *
* XX동 77번지 XX 빌라 203호에요 *
* 그래 알았다.. 금방 갈께 기다려.. *
* 네.. 고마워요 선배님.. *
봉구선배가 아닌..
은혁선배를 불러버렸다.
이래도 되는걸까?
봉구선배도 아직 한번도 들어와보지 못한 방에
은혁선배를 허락해 버린것이다.
.............
아.. 안돼..
그럴순 없어.
이 방은..
봉구선배말곤.. 아무도..
허락하고 싶지 않아..
너무 힘든 나머지..
실수를 한거야..
그래..
이건 아냐 절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입는다..
그리곤..
문을 열고 나가..
계단에 앉아 은혁선배를 기다리기로 한다..
혼미한 정신과.. 떨리는 몸을 겨우겨우 지탱하며
1분.. 2분.. 이를 악물고 참아보지만..
결국 은혁선배도 오기전에..
정신을 잃어버리는 나였다..
나..
얼마나 잔걸까..
깨질듯한 머리가.. 조금은 가벼워 진듯하다.
슬쩍 눈을 떠본다.
............
여긴 어디지?
웬지 낯설지 않은데...
헉..
여..여긴..
봉구선배 병실이잖아..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
봉구선배가 옆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일어났니?"
잉?
유.. 윤아?
니가 왜 여길?
"너.. 너 웬일이야?"
"쉿.. 봉구오빠 깨겠다."
..........
뭐야.. 이젠 대놓고 봉구선배 병간호 한다는거야 지금?
"몸은 좀 괜찮아?"
윤아가 묻는다..
"어.. 좀.."
"그럼 나가서 커피한잔 할래?"
"그..그래.."
뭐지?
서.. 설마..
둘이 사귀겠다고 선전포고라도 하는거 아냐?
아니면 이런 이른 시간에 병원에 와있을 일이 없잖아..
걱정과 두려움을 한가득 안은채..
윤아를 따라나선다.
"자.. 마셔.."
윤아에게 커피를 건네 받는다.
"고마워.. 근데 아침부터 여긴 웬일이야?"
"아.. 그냥.. 너 쓰러져 있다길래.. 은혁오빠랑 같이 오는길이야"
"그래? 고마워.. 와줘서.."
"고맙긴뭘.."
"근데 은혁선배는 어디갔어?"
"어.. 수업있다고 다시 갔어.."
"그래? 에구.. 선배한테 신세 많이지네.."
"그러게.. 이젠 좀 조심좀 해줘.."
"어?"
"앞으로.. 은혁 오빠한테.. 부탁같은거.. 자제좀 해달라고.."
"뭐? 뭔소리야?"
"너 맨날 은혁오빠한테 이것저것 부탁하고 그런다며.."
"그..그거야.. 뭐 친하니까.."
"은혁 오빠 힘들잖니.. 오빠가 맘이 약해서 거절같은것도 잘 못하는데.. 니가 맨날 해달라니까.. 할수 없이 해주고 그러잖아.."
"................"
"주의좀 해줘.. 알았지?"
"어.. 그.. 그래.. 근데.. 누가 보면 둘이 사귀기라도 하는줄 알겠다얘~"
"사귈꺼야.."
"응?"
"이제 은혁오빠랑 사귈거라고.."
"지..진짜?"
"어.. 사실 나 오늘.."
"어.."
"은혁선배한테.. 고백받았지롱... 호호호호홍"
"그래? 우와.."
"나보고.. 한번 사겨보제.. 내가 귀엽다나 뭐래나.."
"그래서? 너도 사귄다고 했어?"
"아니.. 일단 생각해 본다고 했어.."
"..............."
"너무 바로 승낙하면 없어 보이잖아.. 저녁때 술마시면서 승낙할려구.."
"아.. 그.. 그런거야? 홍홍.. 기집애.. 여우네 완전.."
"너만 하겠니.. 호호홍.."
"그..그럼.. 봉구 선배는 어떡할건데?"
"봉구 오빠? 오빠가 왜?"
"어? 아.. 아니 그게.."
"너 혹시.. 내가 봉구 오빠 좋아한다고 생각하는거야?"
"아냐?"
"미쳤어? 내가 뭐가 아쉬워서.. 봉구오빠랑 사귀니?"
"이씨... 옛날엔 한번 대쉬해 본다며.."
"그거야.. 철없을때 얘기지.. 그리고 요즘 봉구 오빠 보면.. 맨날 니 생각밖에 안해서.. 만나도 재미가 없어.."
"그.. 그래?"
"어.. 어제도 나랑 있는 내내 니 얘기만 하드라.."
"..............."
"근데.. 봉구선배가.. 좀 자신이 없나봐.."
"뭐가?"
"너랑 사귀는거.."
"............"
"너한테.. 안어울리는 남자처럼 생각하는가봐.. 힘들어 보이더라.."
"............"
"아무래도.. 니가 성형수술이라도 해서.. 좀 못생겨져야 될거 같아.."
"..........."
"내가 좋은데 소개시켜줄까? 싸게 할수 있는데.."
"됐어.."
"치.. 암튼.. 맘에 안들어.."
"뭐가?"
"니 얼굴.."
"..........."
"나랑 바꿀래? 호홍"
"안돼.. 봉구선배가 싫어해.."
"뭐? 이 기집애가.."
"홍홍.. 농담이야.. 암튼 들어가자.."
"그래.."
잠들어 있는 봉구선배를 지켜보고 있다.
..............
선배님..
제가 오해했어요..
역시 선배님도..
저만 생각해주고 있었는데.
바보처럼.. 저혼자 이상한 생각하고..
에휴..
앞으론..
이런일 없을꺼에요.
그냥 믿을꺼에요..
선배님의.. 저에 대한 사랑..
절대 의심하지 않을꺼라구요..
그러니까 선배님도..
앞으로 영원히..
저만 바라봐주세요..
알겠죠?
살짝.. 선배의 입술에 입을 맞춘후..
조용히.. 시트를 덮어준다.
◐ 봉구의 일기 ◑
자정이 넘은 시간..
지연이에겐 아무런 연락도 없다.
아니.. 전화기를 켜지조차 않는다.
이젠 좌절을 넘어.. 걱정의 단계로 접어들어 버렸다.
뭔일 있는건가?
이런 생각이 들게 되니..
걱정이 물밀듯이 밀어닥쳤다.
후다닥.. 방을 나와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그래.. 자고 있어야돼..
폰 꺼놓고 잠들어 있어야 돼는거야..
알았니?
부디.. 집에 있어줘...
제발...
불이 꺼져있는 그녀의 방..
떨리는 맘으로 초인종을 누른다.
띵동~
.........
반응이 없다.
띵동~
다시 눌러본다..
..........
역시나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질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차례 눌러보지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녀는 지금..
민수와..
외박중인 것이다.
아..
젠장할...
아무래도..
최악의 가정이..
점점 현실화 되가는것 같다.
그래도 지금까진 그녀가 집에서 잠들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젠 그 희망조차 사라져 버렸다.
괴로움과 절망감이 엄습한다.
또다시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몸을 가누기조차 버겁다.
안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순 없어..
이렇게.. 일방적으로..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헤어질순 없는거라고..
낼 재대로 얘기해보자..
내가 뭐가 문젠지..
왜 그녀가 갑자기 이러는건지..
진지하게 얘기해보는거야..
그래.. 일단 집으로 가자..
...........
맨정신으론 잠을 이룰수 없을거 같아
결국 편의점을 들른다.
그리곤
3병의 소주와 간단한 안주를 사들고.. 방으로 향한다.
텅빈방..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불과 이틀전만해도..
지연이와 함께였기에..
너무 작았던 방인데..
오늘따라 태평양이 따로없다.
수십명은 뒹굴고 놀거 같군.. 젠장..
한숨을 내쉬며 방을 둘러보다가
어항으로 눈이 고정되어 버린다.
.............
어라?
뭐야 이놈들..
그새 사이가 좋아진거야?
다죽어가던 여니 녀석이..
언제 그랬냐는듯..
봉돌이의 뒤를 졸래졸래 쫓아다니고 있다.
하하..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너답지..
기운 빠져있는건 여니답지 않았어..
하하하하하하아아아아~
잠깐의 유쾌함도.. 이내 한숨으로 바껴버린다.
지연아..
여니는.. 이렇게..
봉돌이랑 잘 어울리고 있는데..
넌..
도대체
왜그러고 있는거니..
..............
뚜루루루루루루~~~♬
헉.. 지연인가?
한잔 들이키려는 찰나..
전화가 오기에 허겁지겁 발신자를 확인한다.
..............
* 밤늦게 왜 전화해 임마... *
은혁이 놈이었다.
* 야.. 너 어디냐? *
* 왜? *
* 지연이 쓰러져서 병원 데려왔다.. 빨리와 *
뭐?
지..지연이가?
* 뭐? 왜? *
* 몸살인가봐.. 니 병실에 입원해 있으니까.. 언능 와라.. *
뭐..뭐지?
갑자기 이게 무슨일이야?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고.. 병원으로 향한다.
"아저씨.. XX병원이요"
서둘러 택시를 잡아탄다.
그리곤.. 은혁이놈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 야.. 지연이 상태는 어때? *
아까 정신이 없어서 미쳐 묻지 못한 지연이의 상태를 확인한다.
* 주사맞고 잠들었어.. 근데 넌 환자가 어딜 그렇게 쏘다니냐? *
* 아.. 그럴일이 있다. 암튼 지연인 괜찮은거지? *
* 어.. 잠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진다니까.. 언능 오기나해라.. *
* 알았다 *
.............
분명 저녁때까지만해도 멀쩡...
아.. 아니다.
몸이 안좋다고 했던 지연이의 말..
사실이었나보다.
그.. 그래..
일단은.. 민수랑 같이 있던건 아니었구나..
아.. 다행이야..
정말..
정말 다행이야..
병실문을 열자..
먼저 은혁이놈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리고 그 너머로 내 옆 침대에.. 누워있는 지연이가 보인다.
아... 지연아..
갑자기 왜 아프고 그러니..
맘 찢어지게..
"왔냐?"
"어..."
"잠좀 자야된다고 하니까.. 어디 나가있자.."
"그.. 그래.."
은혁이 녀석이랑 조용히 병실을 나와 옥상으로 향했다.
"하나 줘?"
은혁이 녀석이 담배를 건낸다.
"어.. 줘봐.."
담배를 건내 받곤.. 불을 붙인다.
"야.. 니들 싸웠냐?"
"신경 꺼라.."
"싸웠구만.."
"싸우긴 무슨.."
"잘해줘 임마.. 너한텐 미친듯이 과분한 애야.."
"시끄러"
".........."
"근데 어째서 니가 지연일 데려온거냐?"
"몰라.. 지연이한테 전화 오길래 받았더니.. 자기 죽겠다고 좀 와달라고 해서.."
".............."
"근데 왜 나한테 했지? 너 전화 꺼놨었냐?"
"아니.."
"싸운거 맞구만뭐.."
"............"
"담배 하나 더줘봐.."
"자..."
"..............."
"................"
"야.. 내가 고민이 좀 하나 있는데.. 들어 줄꺼냐?"
"아니.. 하지마.."
"............."
"심각한거냐?"
"어.."
"지연이 문제?"
"어..."
"해봐.."
"지연이 문제라 듣는거냐 혹시?"
"어..."
"이자식이 근데.."
"하하.. 농담이야.. 빨리 해봐.. 맘 바뀌기 전에.."
"그.. 그게.."
"어.."
"지연이가.. 웬지 나말고 딴 남자한테 관심이 있을거 같은 예감이 드는데.."
"어? 지연이가? 에이 설마.."
"나도 아니라고 믿고 싶은데.. 이상하게 자꾸 그런 생각이 드네.."
"그래? 누군데?"
"............."
"혹시 나냐?"
"지랄.."
"누군데 그럼?"
"민수..."
"뭐? 민수?"
"어.."
"하하.. 뭔소리야.. 지연이가 무슨.."
"아냐.. 아까도.. 둘이 나 몰래 술마셨데.."
"어.. 나도 들었다.."
"그래?"
"어.. 좀전까지 민수 녀석이랑 술마시다 온거야.."
"지연이 얘기도 했냐 혹시?"
"어.."
"뭐래는데?"
"지연이 이젠 접는다더라.. 도저히 안넘어온데.."
"어?"
"뭔소린지 모르겠냐?"
"어.. 다시 말해봐.."
"과톱이라는 놈이 왜 이렇게 머리가 안돌아가.."
"지금.. 민수랑.. 지연이가 아무사이도 아니란 얘기.. 맞는거냐?"
"어.."
"진짜?"
"너.. 귀 막혔냐?"
"아.. 아니.. 그.. 그냥.."
"이제 안심좀 돼?"
"어.. 그.. 그래.."
"근데 너.. 그렇게 소심해서 어쩔라구 그러냐?"
"뭐가?"
"앞으로 지연이가 딴남자랑 같이 있을때마다 이렇게 심각해지면 힘들어서 어찌 살라구.. 쯔쯧"
"............."
"보니까.. 지연이는 완전 일편단심이더만.. 괜히 이상한 생각하지말고 잘해줘 임마.."
"..............."
"담배 하나 더줘?"
"아.. 아냐.. 나 어제부로 담배 끊었어.."
"뭔소리야?"
"너도 끊어 임마.. 몸에 안좋아...."
"뭐래.."
"야.. 우리 기분도 좋은데.. 어디가서 술이나 한잔 할까? 내가 쏜다.."
"됐다.. 하루종일 마셨어.. 그리고 너 환자 아니냐?"
"..............."
"야.. 근데.."
"어.."
"니가 봐도.. 나랑 지연이랑 좀 안어울려 보이냐?"
"그건 왜?"
"대답이나 해 임마.."
"글쎄다.. 생각해본적 없는데.."
"그럼 지금 생각해봐.. 니가 볼땐 어때?"
"솔직히 말해도 돼냐?"
".............."
"왜.. 하지마?"
"너.. 윤아랑 짰냐? 어째 말투가 딱 윤아 말툰데?"
"어?"
"아.. 아냐.. 암튼 말해봐.."
"솔직히.. 너보단 내가 잘 어울릴거 같다."
"삽질하네.."
".............."
"됐다..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지.."
"뭐.. 너도 안 어울리진 않으니까.. 그렇게 풀죽어 있진 마라.."
"너나 잘해 임마.."
"............"
"근데.. 진짜로 안어울리진 않는거냐?"
"어.. 첨엔 지연이가 뭐 너같은 놈따위랑 어울리나 했는데.. 자꾸보니까 그냥 좀.. 어울리는거 같긴 하다."
"뭐? 너같은 놈따위? 우씨.. 죽을라구.."
"............"
"암튼.. 고맙다.."
"너 오늘 왜이러냐.. 느끼하게.."
".............."
"그나저나 이상하네.."
"뭐가.."
"지연이가 민수랑 아무관계도 아닌거고 나에 대한 맘이 그대로라면.."
"어.."
"왜 내가 아닌 너한테 전화를 한거지?"
"그러게.. 지연이 진짜 나한테 맘있나?"
"죽을래?"
"하하.. 농담이다 농담.. 정색하기는..짜슥.."
"..............."
"보니까 니가 뭔가 잘못한게 있나보네.."
"그러게.. 웬지 그런거 같은데.. 그게 뭔질 모르겠단 말이지.."
"언제부터 삐졌었는데?"
"너랑 수진씨 술자리 다녀오고 나서부터.."
"그래? 술자리에선 기분 엄청 좋아보이던데.. 니 자랑도 막 하고 그러더만.."
"그래?"
"그럼.. 그 이후네.. 병실에서 뭔일 있었냐?"
"아냐.. 나 옥상에서 내려오니까.. 그때부터.. 표정이 별로더니.. 자.. 잠깐.."
"어.. 왜?"
"혹시.. 나랑 윤아가 옥상에 있는거 정말 본건가?"
"윤아? 윤아 왔었냐?"
"어.. 면회 왔길래 그냥 바람이나 쐬려고 옥상에서 얘기좀 하고 있었지.."
"그래? 근데 둘이 얘기하는거 가지고 그렇게 삐지나? 딴것땜에 그런거 같은데.."
"그.. 그게.."
"어.."
"윤아가.. 내 어깨에.. 한참 기대고 있었는데.."
"................"
"그걸 본건가봐.."
"화낼만 하구만.."
"그치?"
"나같으면 싸다구를 날렸을텐데.. 지연인 역시 착하네.."
".............."
"어쩌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여기까지 들어줬으니까.. 해결책도 좀 제시해줘봐.."
"해결책은 무슨.. 그냥 가서 무릎꿇고 빌어 임마.."
"................"
"별것도 아닌거가지고 난리네.. 쯧쯧.."
"................"
"야.."
"어.."
"너 연애좀 할생각 없냐?"
"없어.."
"한번 해봐라.."
"오늘 애들 왜이래... 아깐 지연이가 난리더니.."
"어?"
"너 모르냐? 아까 지연이가 나랑 그 간호사랑 막 엮어주려고 용쓰던데.."
".............."
"너도 혹시 알고 있던거냐?"
"어.."
"쓸데없는짓 하지마라.."
"미안했다.."
"은혁아..."
"어.."
"윤아 귀엽지 않냐?"
"이자식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
"귀엽지?"
"너 미쳤냐?"
"..............."
"아.. 진짜 지연이 불쌍하네.. 이런 빙신같은놈이 뭐가 좋다고.."
"넌 윤아 어떠냐니까.."
"뭔소리야 대체.."
"윤아는 여자로 안보이냐?"
"너.. 지금 혹시.. 나랑 윤아랑.."
"어.. 맞어.."
"꿈깨라.."
"에이.. 한번 해봐.."
"뭘해 임마.."
"윤아 귀엽잖아.. 착하고.."
"근데 어쩌라고.."
"너밖에 없다.. 지금 윤아를 잡아줄껀.."
"뭐?"
"방황하는 윤아를 잡아줄게.. 아무리 생각해도 너뿐이야.."
"................"
"내가 할순 없잖냐.."
"신경 쓰지 마라.. 너 아니어도 민수가 신경 많이 써주니까.."
"그렇지도 않은가 보더라.."
"..............."
"아까 민수가 윤아 데리러 병원에 온다고 했는데.. 그 후로 연락이 끊겨버렸어.."
"그래?"
"어.. 그래서 한참 기다리다 갔다. 알고보니까 윤아 바람맞추고 지연이랑 술마시고 있던거였더라.."
"................"
"안불쌍하냐?"
"누구? 민수?"
"장난해?"
"흠.. 좀 불쌍하긴 하네.. 근데 어쩌냐.. 사람 사는게 원래 다 그런거지.."
"난 이제 지연이가 신경쓰일 일은 하기 싫어서.. 윤아를 좀 멀리해야 되는데.."
"근데?"
"그냥 불쌍해서 그래.. 나한테라도 의지해 보려고 왔던앤데.. 앞으로 모르는척 할려니까.."
"그래서.. 지금 그걸 내가 대신 해줘라.. 뭐 이런거?"
"뭐.. 맘에 안내키면 말고.."
"안내켜.."
"............"
"야.. 그거 아냐?"
"뭐?"
"지금 보니까.. 윤아보다 지연이가 더 불쌍해 보인다.."
"뭔소리야?"
"딴여자 문제로 이렇게 심각해하는 놈을.. 남친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지연이가.. 에휴.. 진짜.."
"..............."
"야.. 그나저나 우리 이렇게 오래 얘기한거 첨 아니냐?"
"그러게.."
"적응 돼냐?"
"아니.."
"..........."
"............"
"내려갈까?"
"그러자.."
은혁이 녀석을 배웅한후
병실에 들어와..
지연이 앞에 걸터 앉는다.
땀으로 흥건한 얼굴..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지연아..
아프지마..
너 아프면..
이 선배맘 찢어져..
내가 이렇게 옆에 있어줄 테니까..
힘들어 하지마..
알았니?
조용히 물수건을 가져와..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한다.
한참을 그녀 옆에 앉아있다보니..
슬슬 나도 잠이 오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
자야돼는데..
지연이는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는지
마냥 평온한 얼굴이다.
그래.. 나도 좀 자자..
자고 일어나서..
지연이랑 얘기해보는거야.
오해도 풀고..
다시.. 아무일없던것처럼 시작하면 돼..
그래..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닌거였어.
..........
조용히 눈을 뜨자..
대낮이다.
............
지.. 지연이는?
옆을 돌아본다.
헛..
나를 뻔히 쳐다보고 있는 지연이..
"일어났어요?"
"어.."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
뭐지?
나한테 화났을텐데..
"어.. 나야 괜찮지.. 근데 넌 어때?"
"저도 괜찮아요.."
웬지..
평소 지연이의 말투가 느껴진다.
나 자고있던 사이에 은혁이 놈이 오해라도 풀어줬나?
"그래? 하하.. 그럼 다행이고.."
"웃음이 나와요 지금?"
...........
다시 표정이 날카로워진 지연이..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군..
"어?"
"우리 아직 얘기할꺼 남았잖아요.."
"아.. 그.. 그렇지.."
"어제 있었던일.. 다 얘기해봐요. 하나도 숨기지 말고.."
뭐야..
누구한테 얘기 들은 모양인데..
............
분명 지금 지연이 표정은..
다 알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다 이실직고 하라는 표정이었다.
"어.. 그..그래.."
"거짓말만 해봐.. 진짜.."
"알았어.. 그러니까.. 그게.. 근데 어디서 부터 해야돼냐?"
"윤아랑 옥상에서부터...."
"어.. 그래.. 그러니까.. 어제 윤아가 면회를 왔는데.. 옥상가서.. 얘기나 할까하구.. 데려갔거든.. 난 진짜 담배나 하나 필려고 간거야.."
"담배? 안끊었어요 아직?"
"어? 아.. 그게.. 끊으려고 하긴 했는데.."
"근데요?"
"그냥 갑자기 땡기더라구.."
"............"
"그래서.. 그냥 옥상에서 얘기하는데.. 갑자기 윤아가 어깨를 기대오잖냐.. 근데 애가 어제 하도 불쌍해보여서.. 그냥 좀 놔뒀어. 위로라도 해줄려고.."
"그래서요?"
"그렇게 한참 있다가.. 헤어졌는데.. 그때 병실에서 너랑 만나고.. 너 집에 갔잖냐.. 근데 그 후에 윤아가 레포트자료 놓고갔다고 다시 오더라고.."
"계속해봐요.."
"근데 때마침 민수가 윤아한테 전화해서.. 태워주겠다고 그랬는데.. 그놈이 갑자기 연락이 안돼버렸잖아. 윤아는 한시간이나 기다리고.."
"민수선배가요? 그..그럼 그때 병원에 온게.."
"어?"
"아.. 아니에요.. 암튼 그래서요?"
"결국 윤아 간다길래.. 보내려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도 괜히 너가 보고 싶어서.. 그리고 핸드폰 밧데리도 좀 교체할겸 집에 가고 싶더라고.. 그래서 윤아 가는길에 좀 얻어탔지.."
"................"
"근데 윤아가 레포트자료가 없다는데 때마침 내 집에 있길래 빌려준다고 그랬거든. 그래서 빌려주고 보냈어.."
"그게 다에요?"
"어.. 그게 다야.."
"근데 윤아는 왜 선배님방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던거에요?"
"응? 너.. 어떻게 알어?"
"이씨.. 다 봤으니까 알죠.."
"............."
"자료를 만들어서 준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오래 방에 있었냐구요.."
"오래 있었나? 책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랬긴 했는데.. 10분도 안돼서 보낸거 같은데.."
"진짜에요?"
"어.. 진짜야.. 너 못봤어?"
"네.. 좀 지켜보다 승질나서 집에 가버렸어요.."
".............."
"그러게 왜 자료를 빌려준다고 난리에요..."
"에이.. 그럼 있는 자료를 어찌 안빌려주냐.."
"이씨.. 다음날 빌려줘도 돼잖아요.."
"오전에 제출한다는거라.. 밤중에 빌렸어야 했데.."
"그.. 그래도.."
"이제.. 됐지?"
"아뇨.."
"어?"
"궁금한거 있어요.."
"뭔데?"
"왜 저한테 전화 한통도 안했어요?"
"전화? 폰 꺼져있던데뭘.."
"아참.."
"좀 켜놔라.. 답답해 죽는줄 알았다.."
"실수였어요.."
"실수할게 따로있지.."
"이씨.. 선배님땜에 우느라 정신 없어가지고.. 웁.."
쫑알쫑알 대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무작정 키스를 해버리는 나였다.
이젠..
더이상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변명도.. 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냥.. 나의 사랑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녀도 이것을 원했을 것이고....
나또한.. 이것만이 가장 그녀를 위한 방법임을..
두 팔로 내 목을 감싸오기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다.
똑똑~
달콤한 시간을 미쳐 즐기기도 전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10분있다가 오세요.."
.............
"하하.. 의사선생님이면 어쩔려구.."
"다시 들어오라고 할까요?"
"아니.."
다시 나의 목을 감싸며 키스를 시작하는 그녀..
10분간의.. 달콤한 스릴을 누린다...
"어머.. 오셨어요?"
서연누님과 환수형이 면회를 왔다.
"니들 뭐했길래 10분이나 기다리게 만드냐?"
"그러게.. 얼굴들은 또 왜그래? 쥐잡아 먹었어?"
.............
"좋을때지.. 하하.. 서연아.. 우리 그냥 가야겄다. 애들 표정이.. 우리가 영 안반가운가봐.."
"요녀석들.. 때와 장소도 안가리고.. 호홍.. 오빠 우리도 나중에 병원에서 한번 놀아보자.. 재밌을거 같애.."
"하하.. 그럴까?"
"..............."
"..............."
"그나저나 지연이는 몸좀 어때? 괜찮아?"
"네.. 좀 어지럽긴 한데.. 참을만 해요.."
"퇴원은 언제하는데?"
"저녁때요.. 봉구선배랑 같이 퇴원할꺼 같애요.."
"그래? 봉구 넌 멀쩡해보이는데.. 왜 아직도 이러고 있냐?"
"그러게요.. 의사가 오늘까지 누워있으라고 해서요.."
"아.. 그래? 하하.. 하긴.. 의사들도 벌어먹곤 살아야하니까.. 하하.."
"............."
"선배님 그거 알아요?"
환수선배와 서연누님을 배웅하고 병실로 돌아오자.. 그녀가 묻는다.
"뭐?"
"은혁선배님이 윤아한테 고백했데요.."
"그래?"
헐.. 뭐야 그놈..
진짜로 사겨주는거야?
............
아닌데..
분명 관심 없다고 했는데..
왜지?
"홍홍.. 둘이 은근 잘어울릴거 같드라니.. 너무 잘됐어요.. 그쵸?"
"별루.."
"별루? 왜요?"
"윤아가 아까워.."
"이씨.. 또.."
"하하.. 농담이야.. 웬지 잘어울릴거 같긴 하다.."
"그러게요.. 윤아가 맨날 애교떨어주면.. 은혁선배는.. 한번씩 꽃미소 날려주고.. 우왕.. 로맨틱하다.."
".............."
"선배님도 제가 애교 떨면 꽃미소 한번씩 날려줄래요?"
"................."
"아~잉.. 선~배님~~~"
"하지마.."
"이씨.."
"그냥.. 우린.. 우리식대로 놀자..."
"............"
퇴원을 한후.. 그녀를 집에 데려다 준다.
"조심해서 들어가.."
"서..선배님.. 잠깐만요"
"어? 왜?"
"들어가서 커피나 한잔 하고 갈래요?"
"니방에서?"
"네.."
"진짜?"
"네.."
"무슨 의미냐?"
"뭐가요?"
"아.. 아냐..."
"이씨.. 됐어요.. 그냥 가요...."
"하하..농담이었어.. 농담.."
"그냥 제방 한번도 안보여줘서.. 미안해서 그런거니까.. 얌전히 커피만 마시구 가요.. 알았어요?"
"당연하지.. 하하.."
"언능 들어와요 그럼.."
"오케이.."
"방을 미쳐 못치워서 좀 더러워요.. 선배님이 이해해요"
"이게? 뭐야 엄청 깨끗하구만.. 너.. 어제밤에 혹시 청소하다 몸살난거 아냐?"
"홍홍.. 뭐 이정갖구.. 암튼 앉아요.."
"어.."
"녹차 좋아해요?"
"커피 마시자며?"
"커피 떨어졌어요.. 녹차 마셔요 그냥.."
".............."
"자.. 여기.."
"어 땡큐.."
"저건 뭐냐?"
"뭐요? 저거?"
"어.."
"앨범이잖아요.."
"봐도 돼?"
"안돼요.."
"왜?"
"부끄러워요.."
"부끄럽긴뭘.. 어짜피 어렸을때도 이뻤겠구만.."
"이쁘기야 했죠.. 근데.. 그냥 좀.."
"괜찮아.. 난 여자 과거같은거 크게 신경 안쓰는 남자야.. 하하"
"실망할텐데요.."
"걱정말라니까 그러네.. 언능 줘봐.."
"............."
"뭐 어떻다고.. 하하.. 어디 보자..."
"............."
"야.. 얘 누구냐?"
"............."
"혹시 너냐?"
"네.."
"이게 너라고?"
"왜요?"
"아.. 아니.. 뭐.."
"실망했어요?"
"아니.. 실망이라기 보단.. 근데 몇살땐데?"
"중3"
"중3?"
"네.."
"............"
"이상하죠?"
"그.. 그냥 좀.. 뭐랄까.. 근데 너 원래 이렇게 놀았냐?"
"그땐 좀 그랬어요.."
"와.. 이건뭐.. 지나다니면서 애들 삥 뜯어내는 포스네..하하...."
"이씨.. 그런짓은 안했어요.."
"하하.. 그래.. 당연하지.. 니가 설마.."
"그냥 친구들이 그렇게 놀아가지고 저도 휩쓸렸던 거에요. 오해하지 마요.."
"알았어..하하.. 그나저나.. 노랑머리가 귀엽네..."
".............."
"너 염색한번 해봐라.. 금발로.. 뭔가 색다를거 같다.."
"싫어요.."
"왜?"
"날라리스럽잖아요.. 전 이제 그런 유치한 생활 안하기로 했어요."
"에이.. 그냥 머리만 염색하는건데뭐.."
"싫어요.. 안해요.."
"하하.. 알았어.. 그나저나.. 이건 너희 부모님?"
"네.."
"역시.. 두분다 인물들이 훤하시구나.."
"제가 괜히 이렇게 태어난게 아니죠.."
".............."
"뭐에요 그표정은?"
"아냐.. 하하.. 어디.. 다음장을 넘겨 볼까나... 흠.. 이건 고딩때?"
"네.. 수학여행가서 찍은거..친구랑 찍은거에요.."
"오.. 그래도 이건 제법 범생티좀 난다.."
"그쵸? 이게 원래 제 모습이에요.. 아까 중딩때껀 그냥 잠시 방황하던거고.."
"그러게.. 너한텐 이모습이 더 잘어울리는거 같어.. 안경을 써서 그런가.. 뭔가 지적인 느낌도 나고.."
"..............."
"왜?"
"그 옆에 있는게 저에요.. 안경낀건 친구고.."
".............."
"이씨.. 제얼굴도 못알아봐요?"
"................."
"됐어요.. 흥!!!"
"하하.. 미안해.. 사진이 너무 작아서 몰랐어.. 암튼.. 자.. 다음장 넘겨보자.."
"자.. 잠깐요.."
"왜?"
"그만봐요 이제.."
"어? 왜?"
"그만 보고 딴거해요.. 뒤엔 더 볼거 없어요.."
"에이.. 왜그래.. 어짜피 몇장 안남은거... 어? 뭐..뭐야 이거.."
"................"
"이.. 이걸 왜 니가 가지고 있냐?"
"윤경언니가 놓고간 거에요.."
"............"
"과외하다가 놓고갔는데.. 못전해줬어요.."
"그.. 그렇구나.."
"미안해요.."
"아.. 아냐.. 니가 미안할게 뭐..있어.."
"선배님 드렸어야 했는데.."
"아냐.. 괜찮아.."
"미안해요 정말로.."
"괜찮다니까.. 하하.. 그나저나.. 윤경이 오..랫..만에 보..네.. 하하"
"............."
"나 괘..괜찮..아.. 시..신경쓰지마.. 하하"
"잠깐 이해해 드릴테니까.. 울든가 말든가.."
"괜찮다니까 그러네.. 나 이제 윤경이 다 잊었어.. 알잖아.. 지금은 너밖에 없는거.."
"................."
".................."
"이 사진 가져갈래요?"
"아냐.. 필요없어. 그건 그냥 니가 가지고 있어라.."
"진짜요?"
"어.. 대신 난 딴거줘.."
"뭐요?"
"아까 그 중딩때 사진.."
"이씨.. 싫어요.."
"왜? 난 그게 귀엽든데.."
"안돼요 그건.. 챙피해요.."
"에이.. 난 그게 맘에 들어.. 나혼자만 볼테니까.. 줘라..응?"
"안돼요.. 절대 싫어요~~"
"..........."
다음날..
"잉? 너 뭐..뭐냐?"
"............."
"언제 한거야?"
"새벽에.. 약사다가 했어요. 이상해요?"
"아.. 아니.. 뭐.. 하하.. 갑자기 바뀌니까 신기해서.."
"이씨.. 괜히했어 진짜.."
"아냐아냐.. 캬.. 이거 완전 니콜키드만 저리가란데? 완전 이뻐.. 하하.."
"진짜요?"
"어.. 진짜야.. 너 앞으로 이렇게 금발로 하고 다녀라.. 최고야 최고.."
"진짜죠?"
"진짜라니까.."
"근데.. 저 사람들은 왜자꾸 쳐다보고 웃는거죠?"
"그러게.."
"진짜 이쁜거 맞아요?"
"................"
"이씨.. 저 집에좀 다녀올께요.."
"왜?"
"다시 바꾸고 올래요.."
"어이.. 괜찮다니까.."
"싫어요.. 좀있다 전화할테니까.. 그때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