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새벽에 주님의 응답을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하였습니다.
말씀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세상 속에서 잘 지냈으나 영혼은 오염되오니
깨끗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로 건너가자 하고 그의 아버지에게는 아뢰지 아니하였더라
2. 사울이 기브아 변두리 미그론에 있는 석류나무 아래에 머물렀고 함께 한 백성은 육백 명 가량이며
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4.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쪽에는 험한 바위가 있고 저쪽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5. 한 바위는 북쪽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쪽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6.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7. 무기를 든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 하여 따르리이다
8. 요나단이 이르되 보라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로 건너가서 그들에게 보이리니
9.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에게로 가기를 기다리라 하면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에게로 올라가지 말 것이요
10. 그들이 만일 말하기를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하면 우리가 올라갈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넘기셨음이니 이것이 우리에게 표징이 되리라 하고
11. 둘이 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이매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그들이 숨었던 구멍에서 나온다 하고
12. 그 부대 사람들이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우리에게로 올라오라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 있느니라 한지라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나를 따라 올라오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셨느니라 하고
13. 요나단이 손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 무기를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14. 요나단과 그 무기를 든 자가 반나절 갈이 땅 안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자가 이십 명 가량이라
15.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공포에 떨었고 부대와 노략꾼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16.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본즉 허다한 블레셋 사람들이 무너져 이리 저리 흩어지더라
17.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18. 사울이 아히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 하니 그 때에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있음이니라
19.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20.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21.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22.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본문 주해)
2~5절 : 병거 삼만과 마병 육천 명의 군사력을 가진 블레셋이 겨우 600명의 이스라엘 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블레셋의 진영과 이스라엘 진영 사이에는 두 절벽, 곧 보세스와 세네라는 거대한 바위가 서 있었다. 이는 두 군대가 거대한 바위 주변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는 말로, 그 전쟁은 평지 전투가 아니라 산지 전투를 암시한다. 즉 산지 전투에서 블레셋의 병거와 마병이 큰 힘을 쓰지 못함을 암시한다.
에봇을 착용한 제사장 아히야가 사울 왕 옆에 있었던 것은 왕의 자문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이다. 대제사장의 에봇의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 또 이 같은 것은 왕권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도 되었다.
1, 6~15절 : 요나단이 자신의 부관과 함께 블레셋을 선제 공격하는 내용이다.
요나단이 하나님의 표징을 구하며 적진으로 올라간다.
이와 같은 요나단의 행동은 여호와를 압박하거나 헛된 확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혹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사람의 수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요나단의 믿음이며, 할례받았다는 뜻인 것이다. 요나단의 부관도 마음을 같이하여 따른다.
‘올라오라’는 블레셋 군인들의 소리를 하나님께 구한 표징으로 삼아 요나단이 손발로 기어 올라간다. 블레셋이 그들이 올라오도록 기다린 것은 겨우 두 명이 수비대를 향하여 오기에 방심한 것이다.
그런데 요나단이 올라가자 말자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 엎드러지고 무기를 든 자가 따라가며 그들을 쳐죽인다.
이때에 블레셋의 군대와 백성들이 공포에 떨게 되었고 땅이 진동하였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진영에 큰 떨림을 일으키신 것이다.
16~23절 : 베냐민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파수꾼이 블레셋 진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하니 사울이 자기 진영에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게 한다.
요나단과 그의 무기 잡은 자가 나간 것을 알고 아히야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오게 한다. 이는 요나단의 안전과 전쟁의 승패를 알기 위해 에봇을 갖고 오라고 한 것이다.
그러는 중에 블레셋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하니 사울이 이제는 또 제사장에게 하나님께 여쭈는 일을 중단하라고 명령한다.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여호와의 구원이 요나단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기에 적진을 향하여 공격하여야 할 때 머뭇거리며 제사장에게 묻는 사울, 전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니 하나님께 묻는 것을 중단시키는 사울이다. 그의 모습은 믿음의 사람 요나단과 대비된다.
사울과 군사들이 블레셋 진영에 가보니 이미 적들은 자기들끼리 치므로 크게 혼란함이 일어났다. 이렇게 전세가 기울어지지 블레셋 진영에 속한 히브리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왔다가 이스라엘 편에 서게 되고, 또 블레셋 군대가 두려워 숨어있던 자들도 싸우러 나와서 적을 추격한다.
그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전쟁은 벳아웬 너머에까지 번졌다.
(나의 묵상)
요나단의 믿음은 굳건한 믿음인가 무모한 믿음인가?
성경을 통한 결말을 아니까 당연히 굳건한 믿음이다.
하지만 달랑 두 사람이, 그것도 몰래 살금살금이 아니라, 대놓고 몸을 보이면서 적진을 향해 기어올라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모한 행동인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나단을 인정하셨고, 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6b절)
“주님께서 도와 주시면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승리는 군대의 수가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새번역)
요나단의 굳건한 믿음은 주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로 나타난다. 주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서자 요나단은 거침없이 적진을 향한다.
주님이 도와주실지 아닐지 그것을 알 수 없지, 도와주신다면 당연히 승리인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주님이 도와주실지 아닐지는 어떻게 아는가?
요나단은 ‘올라오라’는 블레셋 군사의 소리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표징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내게는 무엇이 표징인가?
‘십자가에 연합되는 것’이다.
자기부인의 십자가에 연합되었다는 것은 내가 죽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나 사역도 죽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다만 내게는 반드시, 무조건 승리하시는 주님께 박수치고 환호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십자가에 연합되어 행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참 무모하고 대책 없다’는 말을 듣는다.
잠시나마 요나단의 믿음의 행동을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회개한다.
그것은 십자가에 연합된 내 삶이 절대 무모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이요, 십자가에 연합된 삶의 평강과 기쁨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유와 평강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병거와 마병으로 가득한 세상을 겁에 질려 바라보며 이랬다저랬다 마음이 복잡한 사울이 아니라, ‘올라오라’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표징으로 듣고 적진을 향해 진격하는 요나단이 되기를 기도한다.
십자가에 연합된 자, 두려움이 없이 세상을 향해 진격할 수 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묵상 기도)
주님,
십자가를 몰랐다면
요나단의 행동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입으로는 ‘굳건한 믿음’이라 말했겠지만
속으로는 ‘아니야, 너무 무모해’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십자가의 삶으로 저를 인도하심을 보면
그것이 무모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굳건한 믿음임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에 연합되는 삶이 세상의 시각으로는 너무도 무모하지만
사실 영적 분별력의 최고봉이요, 참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제가 아는 이 진리를 삶으로 살아낼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