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 : 롬10장
- 제목 : 언제는 죄인 아니었던가
◇ 기도
자격이 없는 사람. 제 행위와 결심으로는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을 뿐더러 허물만 쌓을 뿐인 사람. 그런 저를 위하여 예수님의 희생이 공로가 되셨습니다. 아들의 피로 의롭다 여겨주신 사실이 제게 복음이 되어 오늘도 아버지의 말씀 앞에 나왔습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부어주소서.
◇ 본문살핌
이스라엘(당시 유대교인을 뜻함)은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을 숭상하며 열심있는 종교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올바른 지식이 없어 그릇 행하고 있다. 그들의 무지가 불러온 참사는,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쓴 탓에 되려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치 아니하게 된 것 이다. 자기 의란 옛 계명과 법례를 따라 살아가는 삶에 열심을 낸 것이며, 하나님의 의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를 의롭다 여기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일을 믿는 것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하나님의 의를 얻은 이들은 하나님의 의에 복종한 아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주시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10:14).
주석은 '율법의 마침'이라는 말이 '율법의 목표'라 번역될수 있다고 소개한다. 율법을 구원의 길로 곡해한 이들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 안에서 이러한 곡해에 마침표를 찍으셨다. 누구나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은, 하나님을 옳다고 시인하고 그 목표에 도달한다. 즉 그 사람은 하나님이 이루시고 선사하시는 의에 이른다(독일성서공회).
바울은 모세오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새로운 믿음의 도(道).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예수의 복음에 대해 설파한다(10:5이하). 율법을 지켜 행하므로 의를 얻고자 하는 이는 그 의를 빠짐없이 행해야 살겠지만(레18:5),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의야 말로 어렵지도, 먼 이야기도 아니다(신30:11). 그 법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따올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바다 멀리 있어서 가져올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 법(말씀)은 우리와 매우 가까워서, 우리 입에 있으며 우리 마음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행할 수 있다(신30:12-14).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구원, 즉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된다. 마음에 믿어 의로움에 이르고 이를 공히 시인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와 같이 믿는 자는 차별없이 하나님께서 주가 되어 주실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이처럼 주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10:5-13).
◇ 묵상
입으로 내뱉는다고 다 구원얻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순서가 있다. 먼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그 믿음을 밖으로 공표할때 구원을 얻는 것이다. 즉 마음에 믿는지 안 믿는지 알쏭달쏭한 채로 입 밖으로 시인해 봤자 이 말씀과는 큰 상관이 없는 사람이겠다. 사도 바울은 이 구원에 대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억지로 믿어지도록 어떤 월권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 믿어지는 이들(유대인들의 다수)을 위해 그는 끊이지 않는 눈물의 중보를 해왔다(롬9:1-3).
그러나 듣지 못하여 못 믿는 이들이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해 듣지 못한 이들이다. 물론 들었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니나, 듣도록 해야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다(10:14-17). 유대인들은 듣지 못했는가? 아니다 그들이 들었고(롬10:18), 그들은 알았으나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10:21). 이 일은 예전부터 약속된 일로써,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구원하시어 백성 삼으심으로 원래 먼저 백성되었던 이스라엘이 이를 시기하고 자각하게 하여 하나님의 법 아래 들어오게 하려 하셨다고 바울은 설명한다 (10:18-20). 즉 구원의 도는 여전히 히브리인이나 헬라인, 그외 모든 족속에게 동일하게 열려 있다. 먼저 되었던 이들에게도 기회가 여전하고, 아직 눈뜨지 못한 이들에게도 기회가 열려있다.
그 인자하시고 인내하시는 유일신의 성품 덕에 내가 오늘도 말씀 앞에 나와 이렇게 시간을 보낼수 있다. 대자대비, 불교에서 즐겨쓰는 단어지만 하나님께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긍휼은 놀랍다! 내가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믿는다. 나는 율법의 의에 부합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지혜로움과 인내와 자비로 인도하실 것이다. 내가 포기하지 않으면 방법은 늘 있다. 내가 귀를 닫지 않으면 말씀을 늘 열려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천년 넘는 하나님의 인내가 이를 똑똑히 증거한다. 그 인고의 세월조차 하나님께는 고작 하루이틀 참으신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풍성한 은혜가 주님께 있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껏 죄를 지으며 살아도 될까? 그럴 수 없다. 죄가 많은 곳에서 건져지고 용서받아 다른 이들보다 많은 은혜를 누렸다는 것은 감사의 조건이 상대적으로 풍성한 것일 뿐, 방종의 반복을 기대하는 어리석음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내 육신의 법이 날마다 나를 죄 가운데로 사로잡아오는 것을 목격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날마다 다시 놓임을 얻어 새롭게 시작하는 은혜도 실재다. 날마다 같은 날이 반복되는 어떤 영화처럼, 매일 같이 육신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서로 내 안에서 싸움을 반복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결국 그리스도의 의가 이기신다. 예수로 인하여 받은 의는 육신의 소욕을 온전히 정복하고 죽음에 이미 내어준 승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습이 멈추는 날, 육신의 호흡이 한번 멈추는 그날이 오면 다시는 죄의 법 아래서 번복되는 일이 없으리라!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죽음도 소망이 되며 기쁨이 된다. 오늘 새롭게 깨닫는다. 죽음도 새로운 기대와 소망의 게이트가 되니,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기쁨과 소망이 솟는다. 매일의 싸움이 찬탄할 지경이나 오늘도 힘을 얻는다. 아침에 말씀을 펴니 마음 속 음성이 들린다. "너 같은 죄인이 말씀을 오늘도 보겠다고?" 이에 성경을 집어들며 내 영혼이 나즈막히 뇌까렸다. "언제는 죄인이 아닌 적이 있었나.." 이 싸움, 계속한다. 점점 더 내 삶에, 주어진 시간에 주님의 법이 더 크게 작용하고 다스려질 수 있도록 반복한다. 그렇게 살 것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의가. 그것이 가능하다, 할 수 있다 하심으로.
◇ 기도
아버지... 매일 말씀 앞에 제 영혼과 삶을 씻겠습니다. 죄를 그치고 선을 힘쓰며, 또한 그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도록 제 삶의 습으로 만들겠습니다. 경건의 훈련으로 습이 되게 하겠습니다. 오늘도 그리 살겠습니다.
첫댓글 “언제는 죄인이 아닌 적이 있었나.." 이 싸움, 계속한다.”
포기하고 타협하고 싶은 싸움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또 어떤 마음으로 싸우고 있는 걸 확인하는 날,,,계속 싸워갈 힘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싸움을 하는 분들이 계심을 확인할 수 있어서 저도 힘이 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