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문학 작품 중에 얼핏 떠오르는 것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마지막>,
헐버트 셀비 Jr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출구>,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부인 젤다 피츠제럴드의 자서전적 소설 <마지막 춤을 나와 함께>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은 아마 오헨리(O Henry,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 1862~ 1910)의 마지막 잎새 The Last Leaf, 1907>일것이다.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사는 화가 지망생 존시는 폐렴에 걸려 나날이 병세가 악화되지만 삶을 포기한 채 창밖 담쟁이의 잎만 세며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때 자신도 함께 죽게 될 거라고 말한다.
친구 수는 존시의 살려는 의지를 돋워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허지만 소용이 없다.
그들의 아래층에 사는 화가 베어먼 노인은 필생의 걸작을 꿈꿔 보지만 싸구려 광고물이나 그리며 근근히 살아간다.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불던 다음 날 아침 수가 창문을 열어 보니, 벽돌 담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붙어 있다.
이틀째 마지막 잎새가 여전히 붙어 있자 존시는 생명을 포기하려던 마음을 고쳐먹고 살려는 의지를 가진다.
의사가 존시의 완쾌를 알려 주던 날, 수는 존시에게 그 마지막 잎새는 베어먼 노인이 비바람 몰아치던 밤 담장에 그려 놓은 것이었으며, 노인은 그날 밤 얻은 폐렴으로 죽었다고 말해 준다.
단 한 권의 장편소설도 쓰지 않은 채 300여 편의 단편만 남긴 오 헨리의 작품은 예외 없이 기발한 착상과 페이소스로 알려져 있지만 그 중 압권은 '놀라운 결말', 즉 마지막에 스토리가 반전을 이루면서 예기치 않은 귀결을 맺는 구성의 묘미이다.
그의 단편들은 무엇보다도 삶의 아이러니를 그리고 있는데, 긴 머리를 잘라 남편의 시계줄을 산 아내와 아끼던 시계를 팔아 사랑하는 아내의 머리핀을 산 가난한 남편 이야기인 <크리스마스 선물>(원제: 동방박사의 선물)이 그렇고 20년 후에 한 명은 형사로, 또 한 명은 수배되어 도망 다니는 범죄자로 만나는 두 친구의 이야기인 <20년 후>라는 이야기 또한 예외가 아니다.
그리고 자주 인용되지는 않지만 오 헨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경찰관의 찬송가>라는 단편이 있다.
뉴욕의 부랑자 소피는 겨울이 되어 날씨가 노숙하기에 부적합해지자 사생활을 간섭하는 자선기관에 의탁하기보다는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서 숙식이 보장되는 교도소로 들어가 겨울을 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가게의 창을 깨도, 일부러 여성을 희롱해도, 난동을 부려도, 물건을 훔쳐도 도무지 체포되지 않는다.
소피는 우울해진 마음으로 노숙을 하던 공원으로 돌아가다가 우연히 길모퉁이의 한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어린 시절 들었던 찬송가를 듣게 된다.
소피는 비로소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비해 타락해 버린 현재의 자신을 깨닫는다.
앞으로 직업도 구하고 진실된 삶을 살아 보겠다고 새롭게 마음먹는 순간 경관이 나타나 그를 부랑아라고 체포하고 소피는 금고 3개월을 선고 받는다.
이제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지도 한참 되고 오 헨리의 작품들에 담긴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자꾸 우리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곳으로 줄달음치는 아이러니로 가득 찼던 한 해의 삶도 과거로 보내고 있다.
전기 작가 로버트 데이비드는 "오 헨리는 미국 단편을 다욱 인간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우울할 때마다 오 헨리를 읽는다." 면서그의 작품에는 늘 방황하는 영혼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고, 슬프고 우울해도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늘 '혹시'가 '역시'가 되고, 번번히 실망하게 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나도 다시 한 번 새로운 꿈을 꾸며 새해를 시작한다.
믿는 것은 단 한 가지, 나도 오 헨리처럼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을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