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회장님의 카톡에서]
《아내를 황금(黃金)같이 보면 삶이 달라진다》
어느 커피숍에
‘Happy wife, happy life’라는 글이
담겨져 있는 액자(額子)가 걸려 있었다.
얼핏 보기에 커피숍에 무슨 wife라는 글이
적혀 있는 게 쌩뚱 맞다 의아(疑訝)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주 멋진 뜻이었다.
해석(解釋)해 본 즉,
“아내가 행복(幸福)해야 인생(人生)이 행복하다.” 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말로 인명재처(人命在妻)이네?
맞다.
아내가 행복해야 삶이 행복하고 남편(男便)이 편(便)하다.
남편의 운명(運命)은 아내의 손에 달려 있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 이러한 진리(眞理)는 두드러진다.
‘칸트’는
“남편 된 사람은 아내의 행복이
자신(自身)의 전부(全部)라는 것을
행동(行動)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고사(中國古史)에서도 아내의 역할(役割)은 출중(出衆)했다.
위(魏)나라 문후는
“가난한 사람은 좋은 아내를 얻고 싶어 하고,
나라가 혼란(混亂)스러우면
좋은 재상(宰相)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법이다.”고 했다.
북송(北宋)의 ‘구양수歐陽脩)’는
“내가 재력(財力)이나 지위(地位) 때문에 마음 고생하지 않고 지낸 것은 내 아내의 덕(德)이다.”고 말했다.
◎아내를 칭송(稱頌)하는 아름다운 말들이 많다◎
★ 01.
아내는 남편의 영원(永遠)한 누님이다.(팔만대장경)
★ 02.
좋은 아내를 갖는 것은 제 2의 어머니를 갖는 것과 같다.
★ 03.
좋은 아내는
남편이 탄 배의 돛이 되어
그 남편을 항해(航海)시킨다.(영국속담)
★ 04.
아내는
행복의 제조자(製造者) 겸
인도자(引導者)인 것이다.(피천득)
★ 05.
아내를 괴롭히지 마라.
하느님은 아내의 눈물방울을 세고 계신다.
(탈무드)
★ 06.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戀人)이고,
중년(中年) 남자에게는 반려자(伴侶者)이고,
늙은이에게는 간호사(看護士)다.
(베이컨)
★ 07.
아들은 아내를 맞을 때까지는 자식(子息)이다.
그러나 딸은
어머니에게 있어 평생(平生)의 딸이다.
(토마스 플러)
★ 08.
오늘부터
아내의 존재(存在)를
황금같이 보면 삶이 달라진다.
★ 09.
빈천지교 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가난하고 천할 때 사귄 벗은 잊을 수가 없고,
조강지처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
★10.
빈궁(貧窮)할 때
사귄 벗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고,
가난(家難)할 때
의지(依支)하며 살아온 아내는 버리지 않는다.
옛 벗이나 고락(苦樂)을 함께 했던 아내는
잊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 11.
이 세상(世上)에
아내라는 말처럼 정답고 마음이 놓이고
아늑하고 편안(便安)한 이름이 또 있을까?
천 년 전 영국(英國)에서는
아내를 ‘peace weaver(평화를 짜는 사람)’ 이라고 불렀다.
모든 남성 여러분!
부디 유념(留念)하셔서 노후(老後)를 보장받도록 합시다!
- 좋은 글 중에서 -
건강하고 행복한
즐거운 월요일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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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왜구, 토착왜구의 유래를 밝힌다.
일제강점기에 265만 일본인들이 한반도에 이주하여 살았다.
식민국가에 백만 단위의 상전국가 놈들이 와서 살았다. 1
945년 해방 직전, 남한에 187만, 북한에는 78만 일본인이 살았다.
북한에 상대적으로 이주자가 적었던 것은,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거리도 멀고 춥고 척박해서 그곳에서 살려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일본에 가까운 동해안의 청진과 함흥 원산 등지에만 좀 많이 살았다.
<소화국쇄연감>에 따르면, 해방 후에 일본에 돌아간 일본인들은 131만밖에 되지 않았다.
그나마 77만은 북한측 일본인들이다.그들은 북한이 해방 후 공산주의 사회가 되어 자기들 재산을 지킬 수가 없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남한에 거주했던 133만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질 않았다. 한국에 그대로 남아서 가짜 한국 이름 하나 짓고 그대로 눌러 앉았다.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만큼 한국말은 유창해서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들은 한국의 집, 땅, 공장 등 부동산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더구나 미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일본 땅에 그들은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남한 거주 133만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그대로 남았다. 그들은 남한이 북한과 달리 자본주의 국가여서 남한에 남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 주재 일본인 187만 중에 겨우 50만이 일본에 돌아갔다.
더구나 이승만은 '인적자원 확보'를 위해 잔류한 일본인들을 반기고 "일본인의 재산과 특권은 일제 때와 다름없이 다 보장하겠다"고 선언하고 일본인들을 붙잡았다.
이승만은 이들이 대한민국 전역에 사학을 세우도록 국가가 보장해 줌으로써, 이들에게 신분 세탁의 길을 열어주었고 이들이 사학을 재테크 수단으로 삼아, 한국인 친일 세뇌작업을 고착화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래서 이들 133만 일본인들이 한국에 남게 되었고, 이들은 70년간 자연 증가로 지금은 약 1천만에 이른다.
이리하여 한국은 잔존 일본인의, 잔존 일본인을 위한, 잔존 일본인에 의한, 잔존 일본인들이 빨대 꽂은 나라가 됐다.
잔존 일본인들은 해방 직후 가진 것과 배운 것이 더 많은 '사뭇 다른 출발선상'에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천민자본주의는 처음부터 배운 거 가진 거 많은 일본 인들에게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대를 이어 한국에서 기득권층을 형성해 온 무리들을 토착왜구라 부른다.
이 토왜들의 조직이 일본의 동경올림픽 구호인 일본 <국민의 힘>을 대놓고 가져다 쓴 것이 지금의 매국적폐 <국민의 힘>이다.
지금 우리들 주변에 아는 사람 다섯 명 중 한 명이 임진왜란 때 저항력 없는 양민의 귀를 잘라 무덤처럼 쌓은 야만 토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변에 기업들 로고를 잘 살펴보라.
롯데, 유니클로, 남양, 도요타, 미쓰비시, 캐논... 이들의 로고는 모두 욱일기 색상과 같은 빨강색과 흰색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민족의 흰 의복에 한민족의 붉은 피를 뿌려 만든 욱일 깃발의 상징이다.
그들은 임진왜란 때와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용산에 일본군 사령부를 설치했다. 지금
그 용산에 누가 터를 잡고 있는가? 친일매국역적 윤석열이다. 우연이 아니다.
호적을 세탁하고 족보를 끼워넣기 하고 한국에 정착해 뿌리내린 잔존 일본인들이 1천만이다. 일본인 부모로부터 한반도에서 태어난 이들은 뿌리부터 일본인들이다. 그들에겐 자신들이 살고 있는 한국이 바로 일본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참조 : pentatonic 포 스팅 - 김원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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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그냥' 이다?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에 소개된 일화입니다.
"행복"이란 뭘까, 아주 보통의 행복?
류시화 시인이 배우 김혜자씨와 네팔로 여행을 갔다가 수도 카트만두 외곽에
있는 유적지를 방문했을 때 겪은 일이다.
김혜자가 한 노점상 앞에 걸음을 멈추더니 옆에 가 앉았다. 장신구를 펼쳐놓고 파는 여자였다. 유명한 관광지라 노점상이 많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나 했더니 아니었다. 장신구를 파는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눈물은 그가 파는 싸구려 장신구들 위에 뚝뚝 떨어졌다.
놀랍게도 김혜자는 그 여자 옆에 앉아 손을 잡더니 함께 울기 시작했다. 노점상 여인은 울면서 김혜자를 바라봤다.
얼마 뒤 그 눈물은 웃음 섞인 울음으로 바뀌었고 이내 미소로 변했다.
김혜자는 팔찌 하나를 고른 뒤 노점상 여자의 손에 300달러를 쥐어주고 일어났다. 300달러는 그에게 한달 동안 일해도 만져
보기 힘든 큰 돈이었을 것이다.
장신구를 팔던 여자는 깜짝 놀라 김혜자를 쳐다봤다.
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은 '아주 보통의 행복'을 읽고 이 감정이 "행복"임을 알았다.
김혜자씨의 일화 속에 담긴 행복의 의미를 최교수의 책으로 풀어 정리해 봤다.
첫째, 행복은 '그냥'이다.
류시화가 김혜자에게 왜 노점상 여인에게 그런 큰 돈을 줬냐고 물었다.
김혜자씨는 "누구나 한번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잖아요"라고 말했다.
최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
행복(幸福)이란 단어의 한자 풀이 자체가 '우연히 일어나는 좋은 일'이다.
따라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려면 아무 날도 아닐 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선물을 하면 된다.
노점상 여인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몹시 힘들어 울었겠지만...
김혜자가 사실상 '그냥' 준 300달러에 행복했을 것이다.
그럼 김혜자는 행복했을까? 행복했을 것이다. 이유없이 그냥 줄 때, 그래서 상대방이 행복해 할 때 그 행복은 준 사람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둘째, 행복은 관심을 갖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김혜자는 여인의 눈물에 관심을 갖고 함께 울었다. 하지만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런 질문은 실례가 될 수 있다. 관심을 갖고 함께 울어주는 것까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경계"다.
최교수는 행복한 사람은 남의 평가나 비교에 간섭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간섭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한다.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기를 꺾는 쓴소리를 하지 않고 어른으로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타인의 행복을 적극적
으로 응원하되 "경계를 지킨다."
셋째, 행복은 남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류시화가 훗날 네팔에서 일화를 꺼냈을 때 김혜자는 말했다.
"그 여자와 나는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녀도 나처럼 행복하기를 원하고 작은 기적들을 원하고, 잠시라도 위안받기를 원하잖아요. 우리는 다 같아요."
최교수는 이를 "타인의 정신세계도 깊다"는 말로 표현한다. 최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을 자신에 비해 정신적인 동기가 약한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게을러 보이는 자녀에게 "생각이란 것을 하고 사냐"고 말하는 것, 월급만 많이 주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노숙자는 먹을 것과 잘 곳만 해결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생각이 타인은 나보다 심미적 욕구, 자존적 욕구, 자기실현 욕구가 적을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타인을 나와 다른 존재, 더 나아가 나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이런 생각이 타인의 행복을 망가뜨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내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국 나의 행복도 무너지게 만듭니다.
"나도 너와 다르지 않아"라는 이해와 공감이 나와 너, 모두를 행복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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