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로보 이야기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
blog.naver.com/changss0312
우리 인간은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사유하는 능력에 자부심을 품는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범하는 자만이고 오류이지 않을까 한다.
눈, 귀, 코 등도 없는 지렁이도 비가 내린 후에는 습한 땅속이 싫어 밖으로 기어 나온다. 미물인 지렁이도 이럴진대 어찌 사람만이 사유하는 힘을 지녔다고 볼 수 있겠는가. 생각하는 수준 차이는 있을망정 모든 생명체는 삶을 유지하기 위해 다 나름 치열하게 궁리하고 헤아리는 존재다.
어느 마을에 로보라고 불리는 늑대가 있었다. 큰 체구에 하얀 털을 두른 이 멋지게 생긴 늑대가 어찌나 영리한지 사람들은 그를 잡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놓는 덫을 그 늑대는 보란 듯이 망가트리거나 그것에 오줌을 갈겼고, 독약을 놓아도 그 늑대는 까발리는 식으로 휘저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로보뿐만 아니라 로보가 이끄는 늑대 무리 중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마을의 주민들은 동물을 잘 다루는 시튼이라는 사람을 불러 로보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시튼이 그 마을에 와 유심히 관찰해보니, 로보 곁에는 사람들이 레베카라고 부르는 암놈 짝지가 있었다. 영리한 로보는 잡기 힘들었어도 시튼은 어떻게 어떻게 해 레베카를 생포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암놈인 레베카가 잡혀 우리에 갇히자, 로보는 그 주위를 사흘이나 맴돌며 울부짖었다. 마침내 로보는 자기 발로 걸어와 스스로 덫에 걸렸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짝지를 두고 달아날 수 없어 스스로 덫에 걸린 로보! 이러한 로보를 보고 어찌 생각이 없는 동물이라고 얕잡아보겠는가. 오히려 생각 없이 이기적이거나 안하무인 격으로 사는 사람보다 훌륭한 이 존재를.
아무튼 그렇게 하여 레베카와 로보를 잡아 죽게 했던 시튼이라는 사람은 그들을 잡았던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비록 동물이지만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기까지 한 그들이었기에.
나는 이런 실화인 이야기에 울컥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사랑에 목숨 바친 로보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대상을 위해 그렇게 자기를 버리는 것은 존재하고픈 갈애(渴愛)를 넘어서는 용기이고 의리다. 이런 점이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행위를 대상이나 사랑에 대한 집착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현상세계에서는 그것이 있어 살맛 나고 아름답다. 그러한 사랑 없이 산다는 것은 각박하다 못해 시시하게까지 여겨질 때가 있다.
눈만 뜨면 억울하고 우울하다며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었는데 그런 것을 받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화가 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찝찝함을 금하기 어렵다. 그렇게 속상한 바라면 자기가 먼저 그렇게 상대를 사랑해주는 본보기를 보이면 안 되는가 해서다. 이런 바람이 너무 이상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이 세상살이라는 것은 저쪽에서 정 무심하면 이쪽에서 내가 먼저 해주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해도 되돌아오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더라도 자기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떳떳함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런데도 고집불통으로 푸념, 불만, 분노에만 머무르려 하니 보기가 딱하다.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고집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한 모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서 그래서 우리가 한 치도 물러서지 못해 고통을 이어가는 중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절로 할 때가 있다.
언젠가 재미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문을 열기 위해 계속 밖으로 밀어붙이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열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와서 문을 안으로 잡아당겨 열고서는 유유히 나갔다.
그렇다, 매사에 한두 차례 하다가 안 되면 다른 식으로 시도하는 게 합리적이다. 밖으로 밀어서 안 되면 옆으로 밀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안으로도 당겨 보고….
그런데 우리 인간은 동물보다 좋은 머리를 가졌고, 그래서 사유하는 존재라고 우쭐대면서도 도무지 머리를 쓰려 하지 않는다. 본성적 사고, 즉 한 번 생각한 고정적인 틀에 갇혀 사는 것 같다. 그리하여 고통을 자초하면서도 큰소리를 있는 대로 쳐대니, 이런 어리석음을 어떻게 해야 깨고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첫댓글 장성숙 선생님!
본받을 말씀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늘 격려의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봄날의 향연을 한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 시이튼의 동물기는 파블의 곤충기와 함께 초중생들에게 널리 읽히던 책들이었습니다.
시이튼의 동물기를 보면 레베카는 잡혀서 죽었지요.그리고 로보는 그 레베카의 체취를 이용한 덫에 걸려 잡혔지만 그후 주는 먹이도 마다하고 스스로 굶어죽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시이튼은 동물들의 일대기를 쓰면서 다소 자신의 덧 손질을 가미했던 것 같습니다. 파블의 곤충기가 순수한 과학자적인 입장에서 쓴 책이라면 시이튼은 동물들을 사람의 마음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똑똑할 수록 사악해지고 그래서 인간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라선 것은 맞습니다.
오래간만에 로보의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어릴 적 생각이 나네요.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추천 한번 누르고 갑니다.:)
아, 제가 읽은 것은 좀 각색이 된 것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바로 잡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멀리 타국에서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장성숙 시이튼의 동물기에는 여우" 빅센"의 이야기도 있는데 여우는 정말 "여우"같은가 봅니다.
사람들이 빅센을 잡으려고 놓은 독약 묻힌 고기에 속기는 커녕 도리어 이것을 물어다가 평소 자기를 괴롭히던 오소리(아니면 너구리?) 굴 앞에 던져놓습니다. 결국 그 밉쌀스럽던 오소리는 다시는 세상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쫓아오는 사냥개들을 철로변으로 유인해서 기차에 치어죽게 하기도 합니다. 나중에 빅센의 새끼 한마리를 사람들이 잡아다 묶어놓았더니 몇번 구출을 시도하다가 안되니까 독약을 물어다가 새끼를 죽여버리고 자기는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나가 버립니다. (슬픈 엔딩)
감동적인 이야기네요.
저도 전원주택으로 이사해서 청계를 키워보았는데, 동물의 세계에도 인간보다 나은 데가 있더군요.
수탉이 사나운듯 보여도 꽤 너그러운 신사라는 사실을 알았지요. 가령 닭장안에 맛있는 달팽이나 벌레들을 제앞에 던져주면 암탉이 와서 잽싸게 가로채가도
암탉에게 너그럽게 양보하고, 맛있는 먹이가 있으면 구구구 암닭을 불러 먹이고 구경만 하고 있는 걸 보면 좋은 건 자기 혼자 먹어치우는 욕심 많은 남정네보다 훨씬 낫다는 겁니다.
수탉이 그렇게 대견하군요. 잘 알았습니다.
전원주택에서 게절의 변화를 만끽하며 지내시는 것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