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아우, 비 온다."
"그러게."
"수연아 우산 갖고왔어?"
"아니."
"에잇! 태평한 기집애 같으니... 히잉~ 오늘 머리감았는데 아까워!! 괜히 감았네."
"야야 네가 너 태평하잖아 이 인간아."
내가 꼬집어준 진실을 회피하며 책가방을 챙기는 미연이.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하아.
물기를 가득 머금은 회색 빛깔의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사정없이 비를 흩뿌렸고
내 곁에서 미처 우산을 갖고오지 않은 듯 친구들은 하나 둘 하교길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쏴아아-
지나가던 소나기인 줄만 알았던 비는 나와 친구들의 기대를 한몸에 저버리고 끝없이
땅을 흠벅 적셔갔다. 학교 중앙현관에서 미연이와 나란히 학교를 유유히 빠져나가는 우산
무리들을 허무하게 바라보았다.
"쟤들은 어떻게 알고 우산을 챙긴거지?"
"우리랑은 달리 일기예보가 재밌나보지 뭐."
"수연아 너 종이가방 있지?"
"왜?"
"쓰고가게. 종이가방 좀 주라."
"종이가방이 도움이 될까?"
"괜찮아, 머리만 안 젖으면 돼. 어차피 버스터미널 까진데, 뭐."
양손을 불쑥 내밀며 싱긋웃는 미연이를 향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었다.
"없는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등을 억척스럽게 내려치는 손 맵기로 소문난 황미연.
아우! 아프잖아. 내가 뭘 어쨌다는거야, 이 기집애가!
"죽을래? 왜 때려!!"
내가 죽일 기세로 노려보며 소리치면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어디로 전화를 걸고
있는 미연이가 보였고 기집애가 한 술 더떠 시끄럽다는 듯 인상까지 찌푸린다.
어의가 없어서 참.
"여보세요, 오빠?"
"나쁜 년, 내가 다신 너한테 숙제 베끼게 해주나 보자."
"응, 마쳤지. 근데 나 우산이 없어."
"나 없으면 친구도 없는 게. 흥!"
"아니 그럴필요는 없는데 헤헷. 고마워. 나 여기 중앙현관 앞이야. 응~ 응."
"누구냐?"
"우리 오빠다."
"데리러 온데?"
"응."
황미연이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말하면 난 조용히 미연이의 팔짱을 끼었다.
미연아, 난 너가 참 좋단다. 네가 좀 많이 싸가지 없고 비싼 브랜드 왕창 밝히고
3대 불치병 중 공주병과 도끼병에 쌍쌍으로 걸렸다해도 난 너가 참말로 좋단다.
"얘가 징그럽게 왜 이래? 아~ 찝찝하니까 떨어져!"
"우린 우저-엉!!!!"
"꼴깝이야!"
그렇게 미연이와 학생들의 반쯤 정신나간 듯 불쾌하게 전해져 오는 눈 빛들을 꿋꿋히
버티며 기다린지 10분 쯤 지났을까? 이제는 텅텅 비어버린 운동장을지나 빠르게 다가오는
새까만 차한대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와~ 멋지다.
"미연아, 타."
조수석 창문이 징- 내려가자 매우 특이한 얼굴이 우리를 향해있는 게 보였다.
그래. 더 이상의 감상따윈 필요없다. 그저 매우 특이한 얼굴의 소유자만이 등장했을 뿐이다.
미연이가 낼름 조수석에 올라탔고
나는 엉겹결에(처음부터 미리 계획 된…) 뒷 자리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아, 우리 미연이 친구?"
"네, 신세 좀 질게요."
"신세는 무슨, 이름은 뭐니?"
"정수연이요."
"그래? 우리 미연이랑 친하게 지내."
이건 그러니까 마치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자식 같은반 친구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부탁하는
학부영과 대화 나누는 기분...?
근데 목소리는 멋지구나. 목소리가 너무 아깝다.
이윽고 차는 미끄러지듯 학교를 빠져 나왔고
시내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앞 자리의 닭살스러운 인간들 사이에 오고가는 짜증나는
멘트에 정신이 혼미해져 미처 몰랐었는데 내 옆자리에는 또 한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매우 둔한형)
그는 모자달린 옷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이상한 찰흙같은 것을 끊임없이 조물락 거렸다.
매우 모자라 보이는 남자는 힐끗대며 자신을 수상쩍게 바라보는 여고생을 발견하고
상황에 걸맞지 않게 천진난만하게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뭔가를 불쑥 내밀며 말했다.
"가질래?"
...끼익-
"여기 세워주면 되니?"
"네, 오늘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럼, 수연아 내일보자."
"응, 너도 잘가."
부릉-
차가 출발하고 뒷 자석에 앉은 (매우)모자라 보이는 남자는 차 뒷 창문을 통해
나에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못 볼 것을 본 사람마냥 서둘러 고개를 돌려버렸다.
약간의 까만색 매연을 남기고 그들이 탄 까만색 차는 빠르게 모습을 감춰버렸다.
무척 짧고 황당한 꿈을 꾼 기분이었지만 내 손에 쥐어진 새까만 찰흙은
그것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내가 수업시간에 친구들 지우개 뺏어서 만든거야, 엄청 크지?'
자랑하듯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웃는 것도 정말 어린애 같이 웃고 아무튼 희안한 사람이야.
"다녀왔어."
\ 수연이네 집.
현관문을 열고들어가자 노란색 윗돌이에 진홍색 촌스러운 체육복 차림으로
초록색 참소주 앞치마를 걸친 정승표가 비적비적 걸어나왔다. 정말 악몽이기도하지.
포근한 집에 귀가하자마자 이 인간의 끔찍한 모습을 봐야하다니...
게다가 길지도 않은 머리를 기쓰며 머리띠를 하는 이유도 아직까지 미스테리이다.
"어라? 너 꼴이 멀쩡하네?"
"불만이야?"
"호기심이지~"
"미연이가 아는 오빠차 얻어 타고 왔거든."
"그래? 걔 옛날에 나 좋다고 막 따라다녔던 그 애지?"
국자들고 잘난 듯 몸을 비비꼬아 봤자 소주방 알바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구.
"몰라 비켜."
"이 고릴라 같은 게 밀긴, 왜 밀어! 넌 오빠가 우습냐?!"
"...."
탁. 내 방의 문을 잠그고 축축해진 교복을 갈아 입었다.
저런 찰흙 따위 버리지 왜 책상위에 모셔 둔거야?
아아, 정수연 너 미친거냐? 그런 모자란 인간 왜 자꾸 생각하구 난리야!
심란한 마음에 서태지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침대에 얼굴을 푸욱 묻어버렸다.
"야! 이 정신없는 여자야, 소리 좀 줄여!! 시끄러워서 밥을 못 하겠잖아!"
여드름 하나 없는 피부에 남보기에 헤플 정도로 생긋생긋 웃지만 그 웃음이
참 보기 좋았던 그 사람과의 너무나 짧았던 만남도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이제는 흐릿해질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미연이가 사귀는 오빠의 친구라면 어쩌다 한 번 쯤은 만날 것도 같았는데 우리는
우연히 마주치는 일도 없었다.
"수연아, 너 우산 갖고 왔지?"
미연이.
"왠 일로 정승표 그 인간이 챙겨 주길래 갖고 왔어."
"승표오빠?"
"응."
"오빠는 잘 지내?"
"뭐 그럭저럭~"
"아, 그렇구나..."
시무룩해진 얼굴로 제 자리로 돌아가버리는 내 친구 미연이.
그나저나 우산얘기 하다가 왜 그 인간 이야기로 넘어간거지?..아, 나 때문이구나.
"자, 내일 급식비 미납자들은 제발 선생님 번거롭지 않게 제 때에 행정실로 갖다 내고
시내 하루종이 싸돌아 다니지 말고! 자, 집에 가라."
"안녕히 게세요!"
미연이가 없는 하교길이라니. 그러고보면 미연이가 없으면 친구하나 없는 애는 나였던가?
비는 적잖게 하늘에서 내렸고 나는 오빠가 아침에 떠 맞기듯 안고 나온 우산을 펼쳐 들었다.
헉! 그 인간 취향이 정말 수상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왜 다 큰 남자애가 물방울에 레이스가 달린 키티 우산을 들고다니는 거지?!
"저 사람 누구 기다리는거지?"
"와, 우비입고 있네. 귀엽다, 킥킥."
교문앞에 웅성웅성 거리는 여학생들을 지나 나가려는 그 순간 날 부르는 목소리 하나.
"정수연아~"
한참 친오빠의 취향 문제에 심각해진 나는 몇몇 여학생의 호기심 가득한 눈길과 함께
내게로 빠르게 달려오는 샛노란 인간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 그 때 새까만 찰흙 준 모자란 남자. 그는 내 앞에 변함없이 방실방실 웃으며
내 우산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으악, 우비도 입은 주제에 우산 안에는 왜 들어 오는건데!
"같이쓰자."
"네."
미연이의 남자친구의 친구라면 나 보다 한 살은 더 많다는 얘기가 되었고 나는
곧바로 선배 대접모드로 바뀌어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었다.
도대체 우리 학교 앞에서 뭐 했던거지? 언제부터 여기있었던 거냐,
누구를 만나러 왔는데 내 우산에 불숙 끼어드는 것이냐 등등 여러가지 의문 점을
묻고 싶었지만 내 특이한 우산에 반한 듯 그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생긋생긋 웃기만 했고
나도 조용히 앞만보고 걸었다.
"찰흙 잘 갖고있어?"
"예? 아, 집에 있어요."
버린적은 없으니까....아마도?
"히히, 너 착하니까 내가 이거 보여줄까?"
"그건."
"응, 너네 학교 교문에 붙어서 기어가고 있길래 잡았어."
또 자랑하듯 내 앞에 손바닥 위의 작은 생명체를 들이대는 남자.
그것은 바로 달팽이였다. 이런 건 왜 줍는거냐구요, 당신이 초등학생입니까?
하지만 내 입은 머리와는 따로 놀았다.
"하하, 귀엽내요. 키우시게요?"
"그건 안돼. 왜 냐면 저번에도 달팽이 키웠는데 욕실에서 걔네 집 청소 해주다가
잊어 버렸거든?"
어느새 그 사람의 얘기에 휘말려든 정신없는 여자 정수연.
"걔도 날 잊고 나도 걔를 잊을 무렵 화장실에 우리 누나가 변기에 앉았는데 뭐가
툭 떨어진거야."
"네에."
"그런데 그게 주먹만한 대왕 달팽이였어. 바로 내가 잊어버린 내 애완 달팽이였던 거지."
"그,그래서요?"
"내가 고무장갑 끼고 그 녀석을 아파트 뒷 쪽 고추밭에 놔주고 왔지 뭐.
그 때부터 달팽이는 누나가 무서워해서 못 키우게 해."
이거이거. 듣고보니 이 모자란 남자 하나로인해 가족들도 골고루 피해는 보는 듯했다.
미끌미끌한 노란색 우비에 찰싹 붙어 기어가고 있는 달팽이를 보는 남자.
아, 그러고보니 나 아직 이사람 이름도 몰랐었구나.
"이재해."
"네?"
"내 이름이야. 나만 네 이름 알고있으면 억울하잖아."
억울할 것 까지야 없지만. 그보다 어떻게 안 거지? 혹시 초능력자인가?
"자, 그럼 난 여기서 떨어질게!"
"아, 안녕히 가세요."
"응~ 너도 잘 가세요."
아직도 제 정신이 아닌 날 뒤로한 채 이재해 오빠는 빠르게 사람들 틈사이로 깡총깡총
빨간색 보도블럭만 골라 밟으면서 사라졌다.
그런데 저 사람 정말 우리학교는 왜 왔던 걸까? 설마...
...
"달팽이 채집하려고?"
왜인지 모르게 이게 [정답]일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내 심장 무섭게 뜀박질해대고 있다. 설마라고 생각했었다.
정말 친구 지우개 뺏어서 찰흙만들고 노란색 우비차림으로 남의 교문앞에서
달팽이 채집하는 그런 남자에게 반했다고 한다면 정말 너무 웃기잖아!
하지만 이미 난 '이재해'라는 외계인 같은 남자에게 반해버린 뒤였다.
딱 두번 밖에 만나지 않았고 그 만남은 라면 한 개를 삶을 정도 짧은 것인데도 말이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두 달 뒤 꾸준하지만 여전히 불쑥불쑥 나타나 라면 한개 삶은 정도로
짧은 만남뒤에
"수연아 난 잘 뭉쳐지는 지우개 백개보다 작은 달팽이 열 마리보다 딸기 우유보다
엄마가 구워준 목살 보다 니가 좋아."
'딱 재해오빠 다운 고백이다'라고 생각되는 짖궃은 고백에도 정말 행복해지는
기분이들었다. 혼자만 좋아하고 혼자만 바라보는 사랑은 너무나 힘들고 지루하지만
눈을 뗄 수없이 강하게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에.
활짝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던걸로 기억 된다.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에게서 선뜻 고백받은 황당한 날이지만 정말정말 잊고싶지 않은
날 중 #1이기도 했으니까.
"사귀는 사이에는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짓이 뭐게?"
캄캄해진 밤하늘 반 쯤 기운 달이 어렴풋이 보이는 날 재해 오빠는 오늘도 뜬 구름 잡는
수수께기같은 말을 건내오면 이제는 익숙해진 내가 싱긋 웃으며 그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한 눈파는 거."
"그러면 사귀는 사이에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단어는?"
"그건 범위가 너무 넓잖아."
"모르겠지?"
"....."
"'안녕'."
"뭐?"
"안녕이라는 단어는 사귀는 사이에 절대로 하면 안돼."
그 날 밤.
재해 오빠가 왜 그런 아리송한 말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 봤지만 이렇다 할 명확한
해답은 찾아 낼 수 없었다.
그리고 학교의 지옥같은 날 중 하나인 중간고사가 성큼 다가옴에 따라
나와 오빠가 만나는 날은 찾아 볼 수도 없었다.
다만 문자로 얘기하거나 통화를 하더라도 아주 짧게하는 정도?
일주일의 끔찍한 중간고사도 끝이났다. 반아이들의 헬쓱했던 얼굴은 다시 생기를 찾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재해오빠를 볼 수 있어. 중간고사 종료문자를 재해오빠에게 날리고 책가방을 챙겼다.
평소 때 같았다면 곧바로 문자가 날라왔을 텐데, 교문을 나서고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문자는 오지않았고 전화도 불통이였다. 무슨일이라도 생겼는 건가?
불안했다. 집에 도착해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재해오빠의 문자는 단 한통도 없었다.
"내가 싫어진걸까?"
별별 생각 끝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 올리며 눈을 감았다.
얕은 잠을 자고 있을 무렵 베개옆에 놓아둔 핸드폰에 불이 들어오며 드르륵- 진동 소리를
내었고 나는 서둘러 핸드폰 폴더를 열고 문자를 확인했다. 확인 했는데....
[수연아, 그 동안 미안. 연락 안해서 오빠 많이 미웠지?]
"당연하지 이 바보야."
미지근한 무언가가 눈에서 부터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얼마 전 까지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못 했을 행동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방향키를 두번정도 더 내렸을까?
[...수연아 수연아. 안녕.]
'안녕이라는 단어는 사귀는 사이에 절대로 하면 안돼.'
라는 그의 말에 나는 왜냐고 물었지만 그는 평소처럼 생긋 웃어보이기만 했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다급하게 단축번호를 눌러 재해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낮익은 여자의 목소리.
'지금거신 전화는 꺼져있..'
끔찍했다. 미연이에게 물어서 재해오빠의 학교까지 찾아가 봤지만 그는 없었다.
어디를 찾아가봐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몇일 전 까지만 해도 그는
내 곁에서 생긋 웃으며 걸었는데...
그게 다 거짓말인 것 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화도 났지만 머지않아 그 화는 다시 눈물로 바뀌었다.
....눈물이 마를 때 까지 울다가 눈물이 마르면 머리가 아팠고 다시 눈물은 흘렀다.
이유도 없어. 그 안녕이란 말이 정말 끝이었어.
그런데 정말 끔찍한 건 아픈만큼 눈물을 흘린 뒤의 나야.
오빠를 하나하나 지워가고 있는 나야...정수연 바로 나.
..
..........
"야, 정수연!! 너 그 소문 들었어?!"
"뭐. 또 누가 급식소 두번 줄서서 밥먹었다냐?"
"아니, 그런거 말구! 이재해 그 사람말이야!"
그 후 이주일이 조금 지난 어느 날,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들은 오빠의 소식.
이제는 상처조차 무뎌진 내 심장이 다시 쿵쾅대며 숨통을 조여오면 숨 넘어 갈 듯
내 앞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한 미연.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시야가 넓어지는 나.
"네가 하두 그 오빠 못 잊는 것 같아서 내가 조사해봤는데 글쎄 그 사람 이주 전에
새벽에 교통사고로 죽어버렸데... 구급차 오고 난리났었는데
그 땐 이미 숨을 쉬지 않았대나 봐."
이주 전이라면...
마치 잘 짜여진 각본대로 연기한 것 같은 기분이들었다.
누군가의 손에 놀아난 기분이었다.
해가 떳는지 달이 떳는지 비가오는지도 모른 채, 내 방의 문을 걸어 잠궜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마치 떠나게 될
자신의 미래를 먼저 내다봤다는 듯 그는 내게 선뜻 안녕해버렸다.
너무나 그리워서 어떻게든 만나고 싶어서 수면제를 먹고 일주일 내내 잠을 자보기도 했지만
그는 내 꿈에 나타나 주질 않았다.
언제나 내 꿈 속은 캄캄한 어둠에 뒤덮혀 있었고 나는 그 텅빈 공간에
어항 속 살찐 금붕어 마냥 늘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아주 가끔씩.. 주위 풍경들이 왜 이리 아름다운가 생각했다.
아주 가끔씩.. 숨을 쉬는 이 몸이 왜이리 소중한가 생각했다.
언젠가 끝이 나는 이야기라도...
.........
.............
'여긴 어디지?'
모든게 거짓말 같이 하얗게 물든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노인분들에서부터 갓난아이까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새하얀 옷을 입고 잔득 모여 있었습니다.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내 앞을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한 남자를 나는 서둘러 뒤쫓았습니다.
'잠깐만!'
'......'
새하얀 얼굴 다갈색 머리카락과 짙은 밤색 눈동자. 당신이었습니다.
너무나 그리워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당신이 날 내려다 보고 있네요.
'오빠.'
'니가 여기엔 왜 온거야?'
그는 평소와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모든게 전과 똑같았는데 그는 너무나 다른 사람같았어요.
차갑게 식어버린 얼굴 냉정하게 돌아서는 뒷 모습.
내가 알던, 그토록 보고 싶던 그랑 너무나 달라요.
'보고싶었어. 그래서 난.'
'돌아가,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넌 여기 있으면 안 돼.'
'싫어! 나도 여기 있을래. 나도 여기에 오빠랑 같이 있을거라구.'
'돌아 가란말 안들려? 제발 돌아 가란 말이야!!'
오빠는 자신의 품에 안겨있던 날 거칠게 떠밀어 냈습니다. 코끝을 맴도는 이 향기.
오빠 냄새예요. 잠깐의 재회에 조금이라도 반겨주면 고마울텐데 오히려 그는 냉정히
나를 뿌리치며 돌아가라고 소리칩니다.
'정수연.....정수연! 정수연!!'
고개를 푹 숙인 채, 제 이름을 불러주던 그는 약간 붉게 충혈 된 눈으로 나를 내려다 보며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내 손목을 아프게 움켜 잡고는 어떤 문 밖으로 거칠게
밀어버렸습니다. 다시는 찾아 오지 말라는 듯, 넌 아니라는 듯 말이예요.
'행복..해야 된다.'
'''''''''''
"오빠...?"
눈을 떠 보니 온통 새하얀 천장이 보였다. 코끝을 맴도는 건 그리웠던 오빠의 냄새도
익숙한 집 냄새도 아닌 기분 나쁜 약냄새.
"엄마, 수연이 깨어났어!"
호들갑 떨며 소리치는 우리오빠 정승표의 강아지 같은 눈이 보이고.
"야, 이기집애야! 너 정신이 있는거니 없는거니? 수면제를 그렇게 먹어대면 네 몸이
버틸 것 같았니? 응?!"
눈물을 흘리며 내 등을 때리는 엄마.
".....미안해."
"흠흠, 그래도 깨어나서 다행이구나."
무뚝뚝한 아빠까지..
모든 게 다 꿈이였던거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나는데.... 모든 게 다 꿈이였던 거야?
"왜 울어? 아, 맞다. 너 배고프지? 엄마가 가서 먹을 것 좀 사올게. 가자 승표야."
"왜? 난 수연이 옆에 있을래."
"나오라면 순순히 나와 이 놈아!"
"아아, 엄마 귀는 놓고! 귀는!"
시끄러운 모자가 나가자 연신 헛기침만 하시던 아빠는 조용히 내 머리를 쓸어주시더니
병실문을 닫고는 나가셨다. 창밖으로 내다 본 오늘의 하늘은 정말 맑았고 이제는 정말
떠나버린 그 사람을 추억하는 일도 어쩌면 내겐 너무나 힘들것 같아.
"오빠...재해 오빠."
잠시 후.
엄마와 아빠는 직장에서 급히 달려오신 듯 다시 서둘러 직장으로 가셨고 지금은 친오빠
승표만이 내 곁에 앉아있었다.
"정말 안 먹을거냐? 쩝쩝쩝. 맛있는데."
"오빠나 많이 먹어."
"그나저나 너 손목에 그 자국은 뭐냐? 대체 어떤 놈이 남의 귀한 여동생 손목을 그 따위
자국이 남을 정도로 거칠게 잡아? 누구야, 누구!"
떡볶이를 하나가득 문 입으로 흥분한 오빠가 말하면 나는 믿을 수 없는 자국을 가만히
내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누군가가 거칠게 잡아 끌어 생긴 듯한 손 자국 하나.
이재해. 재해 오빠.
아주 가끔씩.. 주위 풍경들이 왜 이리 아름다운가 생각했다.
아주 가끔씩.. 숨을 쉬는 이 몸이 왜이리 소중한가 생각했다.
언젠가 끝이 나는 이야기라도…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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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글 하나 올립니다.
지금 까지 올린 글 들 중 가장 긴 것 같네요. 하하하.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하지만 더더욱 노력해야겠죠?^^
그럼 즐거운 토요일 보내세요.(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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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소닷단편소설
[단편]
[mj。하루 ] 그의 이유있는 이별
mj。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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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14 14:07
댓글 5
다음검색
첫댓글 느낌이 신선한 소설이랄까요? 잘봤습니다. 건필하세요:D.
감사합니다^^
안녕...그 이야기 채연씨 야심만만 에서 했던 이야기와 비슷해요^^ 어쨌든 재밌어요~~우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보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