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문 소개 들어 가기 앞서서...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틴 제국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습니다.
워낙 오랜 역사와 방대한 지역을 통치하다 보니 연구자마다 관점이 상이합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연구계층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아서 주로 외국서적이나 그 번역에 의존하는 실정입니다.
저는 그저 유저 분들의 즐거움과 편의 도모에 조금의 도움을 주고자...
정말 간략하게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역사 윤곽이나 보시라고 하는 차원...
또한 가문 위주라서 이 짧은 글로 제국 역사 전체를 판단하는 데 무리가 있으니 이 점을 숙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견은 각설하고...
중세 비잔틴 제국의 중흥기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마케도니아 가문을 소개합니다.
이 가문은 189년 동안 제국을 통치했고 16명의 황제가 배출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 마케도니아 가문원 출신 황제는 9명이며 그 중 두 명은 여제입니다.
어느 여성분이 결혼을 마구마구 하는 통에... 여제 남편 신분으로 공동황제가 된 사람이 너무 많군요. 어떤 면에선 남편도 황제로 만들 정도로 강력한 권력의 포스를 이 가문이 발휘했다는 증명도 되는군요. 서슬 퍼런 군인황제들이 등장하던 시대인데 혈통에 의한 여인네도 무시 못하는 이 분위기...그 만큼 이 가문의 뒷 힘이 있었다는 반증도 되겠네요.
마케도니아 왕조(게임에서는 마케돈이라 부름)의 개창자는 바실레이오스 1세(Basileios I, 재위 867–886)입니다. 출세하기 시작 했을 때부터 별칭이 “the Macedonian”인데 811년 무렵에 그가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가족 관계를 살펴보면 그의 부친은 바르다스라는 인물로 아주 평범한 평민 출신의 농부였고 남동생으로 마리노스가 있었습니다.
처음 올드갓부터 시작할 때 등장하던 황제님이 바로 마케도니아 가문의 바실레이오스 1세더군요.
개인적으론 이 가문으로 플레이 한적이 없습니다. 왜냐면...
에드워드 기번 卿이 초창기부터 너무 안좋은 기억을 심어 주어서시리...ㅋㅋㅋ
조에를 너무 시러하더군요. 그런지 몰라도... 악평만 잔뜩...
참~ 첫 황후인 에우도키아는 바랑기안 대원 딸 인지라 고증을 적절히 잘한듯... 초상화 말입니다.
그의 출세는 아주 우연히 시작됩니다. 25살 무렵 풍운의 꿈을 안고 수도로 들어왔는데 황제 미카엘 3세의 숙부이자 섭정이었던 바르다스의 한 측근 눈에 들게 되면서 그 집 시종으로 발탁됩니다. 그리고 높은 귀족님들 모시다가 다시 아주 부유한 과부 귀족의 눈에 들게 되어 황제 앞에 나아가게 되었고 미카엘 3세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니다.
당시 황제는 전차광이었고 디스플레이가 화려한 놀이를 즐기는 완벽한 한량이었습니다. 타고난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바실레이오스는 전차 경기에서 승리하고 레슬링 불가리아 챔피온이랑 맞짱 떠서 이기는 등등... 신변잡기에 능한 그의 천부적인 재주에 미카엘 3세의 눈에 확 들어오게 됩니다. 황제가 곁에 두게 되는데... 이른바 황제의 새로운 딸랑이가 된 셈이죠.
이 시대의 역사는 대부분 문서나 그림이 다수 남아 있어서 논문이 많은 편이더군요.
이 그림도 고증자료 중 하나인데 미카엘 3세가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바탕으로 전차광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최고급 세단형 스포츠카로 도로를 질주하는 돈 많은 청년 쯤 되겠지요... 완전 제 생각...
놀자주의 황제 밑에서 온 힘을 다해 개인기를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이와같은 유흥
그가 완벽한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는 이유에는 그가 황제가 싫어하는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숨은 공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황제가 어리다고 섭정으로 그리고 카이사르로 제국의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 바르다스였는데 그를 제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바실레이오스가 도맡아합니다. 결국 황제권의 강화를 위한 정치적인 뒤처리를 통해 그가 성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황제가 좀 컷다고 잔소리하는 섭정을 시러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재빠른 행동으로 황제의 환심을 삽니다.
그래... 내가 출세하려면 너가 죽어줘야겠어...
정치적 반대자의 암살... 시전...
황제의 신임을 듬뿍듬뿍 받고 있던 어느날 갑자기...
황제가 바실레이오스를 불러 평민 출신의 아내랑 이혼하고 자신이 지명하는 여인과 결혼하라는 지시를 받게 됩니다. 미천할 때에 만난 아내 마리아는 가차 없이 버려집니다. 자식도 둘이나 낳은 상태였는데 말입니다. 출세를 위해선 황제에게 굽히는 것이 현명한 처사...
황제는 자신의 애첩을 바실레이오스에게 맡깁니다. 물론... 너 나의 뜻 잘 알지... 황제는 자신의 누이랑 밀애를 나누는 잘못을 덮어주는 조건이라고 단서를 붙이죠. 너는 내 동생이랑... 나는 너의 마누라랑...
충실한 딸랑이였던 바실레이오스는 황제의 뜻을 알아차리고 알아서 행동합니다. 그 반대 급부는 엄청났습니다. 황제가 50세가 넘는 그를 후계자로 지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직 20대의 한창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미카엘 황제에겐 어떤 신변적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님 바실레이오스가 자신보다 먼저 죽을 것으로 예측했는지 속마음을 알 수는 없으나 이 후계지명은 의외의 일이었죠. 황제가 20대인데도 후계자는 50대였으니까요.
제위계승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어느날...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황제가 새로운 딸랑이를 데리고 오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바실리키아노스... 황제는 갑자기 바실레이오스에게 차갑게 굴죠.
너 내 말 안 들으면 저 넘을 내 후계자로 재지명할 거야...
당시 황제는 바실레이오스의 아내가 아들 레온(Leon, 영어로는 레오)를 낳자 너무 좋아서 기념 전차경주와 이벤트 파티까지 열어주었죠. 그런데... 반전...
뭐라고...? 날 내치고 다른 넘을 후계자로 앉히겠다고...?
내가 여태껏 참아준 것이 무엇 때문인데 감히....
결국 바실레이오스는 초초해졌고 아버지와 동생을 불러 일을 공모합니다.
그냥 싹 해치워버립시다... 황제가 딴 소리하기 전에... 다 된 밥에 콧물 떨어지면... 아오~
867년 9월의 가을 밤에 두 형제는 칼을 들고 황제의 침실로 들어가 술에 취해 골아 떨어진 황제를 죽인 후 태연히 공식 석상에 나타났고...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즉위하게 됩니다.
물론... 그의 개인적 인기가 더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역사서에 의하면 바실레이오스 1세의 성품은 무척 겸손했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았으며 전통과 격식을 지킬 줄 알았다고 합니다. 즉... 선대의 개망나니 황제랑은 성격이 정반대였다는 소리입니다. 개차반 보다는 적어도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인물이 황제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는 듯합니다. 당시 비잔틴 사람들 눈에는... 적어도... 암묵적인 동의?
제위에 오른 바실레이오스가 한 첫 작업은 황위 계승 순서를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869년 장남 콘스탄티누스를 공동황제로, 870년에 다시 차남 레온도 공동황제로의 지위에 보장합니다.
그의 유능함이 돋보이는 정책은 유스티니아 대제 이후 법전을 다시 만들어 반포를 하였고 교회의 환심을 얻기 위해 성대히 성당을 건축했다는 점이죠. 율령의 반포와 종교의 정비는 중앙집권적 국가 형성에 있어 기본적인 작업입니다. 평민 출신이었던 그가 수도에서의 생활에서 얼마나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9년을 통치했던 그의 치세는 빛을 발했지만 말년의 우울은 장남의 죽음으로부터 찾아옵니다. 879년 평민 출신의 첫 아내에게서 얻은 콘스탄티노스가 사망하자 황제는 당황해합니다. 분명 자신의 뒤를 이어줄 것으로 믿었는데...
미카엘 3세의 애첩 출신인 두 번째 아내이자 황후인 에우게니아는 황제의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만... 그러나 황제는 그녀를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행실이 신중했던 황제인지라... 자신의 정통성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참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을 키우면 나만 곤란해지지...
당시 차남 레온은 공부벌레로 유명했죠. 항상 독서에 열중했고 이런 모습을 황제는 무척 싫어했다고 합니다. 물론 대중들은 이런 레온를 무척 좋아했구요. 독서광인 황자의 모습을 보고 흐뭇흐뭇... 물론 당시 장남이 생존한터라 황제는 그냥 모르는 척 해줍니다.
저거 내 자식도 아닌데... 내가 미카엘 3세의 지명 덕분에 제위에 오른 터라 참고 있다. 어차피 진짜 내 아들인 장남이 있으니 넌 그냥 차남일 뿐... 너까진 궁물도 없다...
그렇지만 장남이 갑자기 죽자 황제는 미카엘 3세가 죽고 난 후 태어난 막내 알렉산드로스를 공동황제로 지명합니다. 황후 에우도키아는 866년 레오를, 867년 스테파노스를 낳았고, 870년에 알렉산드로스를 낳았습니다. 미카엘 3세가 867년 9월에 죽었기 때문에 적어도 위로 두 아들은 바실레이오스의 자식이 아니라는 셈이고 막내만이 황제의 친자식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말년의 황제는 레온에게 구타까지 자행했고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황제 살해 음모가 발각되자 그냥 레온까지 엮어서 감옥으로 보내버리려고 합니다. 너 죽어...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수도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난리도 아닌 난리...
결국 황제는 레오를 장님으로 만들겠다고 또 명령을 내리자 총대주교가 뛰어와서 쌍수 들고 말립니다. 그만두세요... 후계자인데 왜... 다 알면서... 이러시나...
두 부자간의 뜨거운 사이(?)를 보여주는 그림...
죽이겠다고 칼들고 설치고 있는 아들과 먼저 아들 죽이겠다고 명령 내리는 아버지...
자알~ 돌아가는 집구석이다...
아마도 황제는 레온이 진정한 후계자가 되면 자신의 생부 미카엘의 복수를 할까 두려웠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나의 생부를 죽이고 황제가 된 당신... 가만히 안두겠다... 초 신파적 복수극...
황제는 노심초사했지만 인기가 짱이었던 레온을 실질적으로 손대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황제는 사슴 사냥을 나갔다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돌아옵니다. 자신의 벨트에 사슴의 뿔이 걸리면서 그만 말에서 넘어져 다쳤는데... 이걸 레온의 사주라고 하여 잡아오라고 명령을 내리죠. 이놈 죽여 버리겠다... 정말...
그러나 시간은 레온의 편...
황제는 부상에 의한 열병으로 먼저 죽어줍니다. 레온이 잡혀오기 전에...
867년 56세 때 즉위하여 19년을 통치하다 886년 75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 창시자의 말년은 의심과 의심 그리고 편히 못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 등등... 주변을 고달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쁜 짓하면 자신의 심장부터 아파요.
새로운 황제 레온 6세는 즉위하자마자 가장 먼저 미카엘 3세의 무덤에 찾아갑니다.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아마도 황제 자신도 진짜 생부가 누구인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마케도니아 왕조 2대 황제는 레온 6세(Leon VI, 재위 886-912)는 별명이 “the Wise” 즉 ‘현명한 자’라고 불렸죠. 또 다른 별칭이 있는데 “the Philosopher”... 즉 ‘철학자’였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놈팽이에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현명하고 철학적인 아들이 태어났으니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DNA가 배신을 했는지 안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직접 보지 않고서는 판단하기 힘들...
레온의 어머니 에우도키아는 바실레이오스 1세의 법적인 아내였지만... 뒤에선 미카엘 3세의 애첩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 당시 바실레이오스의 나이가 이미 50대 중반이 넘은 상태였기 때문에 미카엘 3세가 아주 편하게 애첩을 넘겨주고 뒤에서 호박씨를 깟던 것으로...
젊은 부인과 늙은 남편... 이런거 진짜 신파적인데 왜 이렇게 자주 나오는지 원... 덤으로 미카엘의 나이는 26세... 휴...
바실레이오스와 레온...
명목상 두 부자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
역사가들은 아마도 바실레이오스의 사냥터 사건은 레오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
한 여인네의 불륜 아닌 불륜이 사람 여럿 잡는군요.
마케도니아 왕조 초기 즉 9세기 중후반 경 비잔틴 제국의 영역입니다.
그때까지는 남 이탈리아의 지배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가리아가 여전히 제국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2대째 레온 6세의 통치는 아주 훌륭했습니다. 머리에 든 것이 많은지라 밑의 신하들도 감히 황제를 업신 여기지 못하고...
그들은 열심히 노력 봉사... 충성을 다했죠. 이에 중흥의 제국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착실햇던 선제의 착실한 통치에 부응하여 다음 대에서도 놀지 않고 일해 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합니다. 이게 정말 문제야... 문제...
레온 6세는 아내를 여럿 바꾸어야 했는데 바로 후계자가 태어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레온 6세는 26년간 통치했고 48세에 죽었습니다.
총 네 번 결혼해서 마지막 아내 조에가 콘스탄티노스를 낳아줍니다. 바라고 바라던 자줏빛출생 후계자...
소피아 사원에 남아있는 레온 황제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황제가 엎드려 있는데... 오해는 마시고... 예수님께 경배드리고 있음...
첫 부인이 딸... 두 번째 부인이 딸... 세 번째 부인이 아들 낳았는데 몇 일 못 살고 요절...
마지막 네 번째 부인이 된 조에가 딸을 낳고 다시 둘째를 가져 905년 드디어 아들을 낳게 됩니다.
황제가 죽기 7년 전에 태어났으니 아청황제의 등극은 당연지사...
레온 황제는 아들을 얻자 너무 기뻐서 별칭을 “Porphyrogennetos”라고 붙이죠. 바로 "the Purple-born"...
이거 덕분에... 게임 내 많은 중생들은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갑니다. 이거 안 달면 후계자가 못되니까... 흠...
비잔틴으로 플레이 하면 참으로 이거 너무 신경 쓰이군요.
오래 살면 그리고 재혼하면 다 된 밥 재 뿌려질 공산이 너무 커서... 아청황제는 정말 시러~~~
실은 이런 별칭이 붙은 내막이 있습니다. 황제의 재위연도에 태어난 황제들도 많은데 유독 이 레온 6세의 아들이 이런 별칭을 얻은 것은... 실은 사생아 신분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죠.
레온 6세는 세 번째 이혼을 단행하면서 총대주교랑 엄청난 알력을 빚어냅니다.
황후 갈아치우기가 마치 헨리 8세 전력을 보는 듯... 그러므로 종교단체는 격렬하게 저항합니다.
이건 신성모독... 무슨 황후를 애첩 갈아치우는 듯하냐...
황제가 네 번째 아내로 조에를 맞이하려고 하자 총대주교가 반대합니다. 이제 그만하세요... 진짜...
이에 황제는 총대주교를 갈아치워 버리기로 합니다. 니가 나가라... 내가 싫으면... 짜슥...
그러나 이 작업이 상당히 오래 걸리면서 아직 황후가 못된 조에의 출산날이 다가옵니다.
황제는 결국 꼼수로 황후도 아닌 그녀를 궁전 내 자주빛 퍼플 룸으로 데리고 가서 출산케 합니다.
다행이 아들이 태어나자 환호... 나의 도박이 이겼도다...!!!
황자가 태어나자 서자 즉 사생아라는 꼬리표를 빨리 떼어내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총대주교 갈아치우고 정식으로 결혼하여 콘스탄티노스에게 이런 별칭을 하사했던 것입니다.
너 진짜 내 후계자야... 딴 넘 절대 안 된다구~!!!
콘스탄티노스는 보통 16세 이상이 되었을 때 이루어지는 공동황제 지명 관례를 깨고 2살 때 공동황제로 지명 받습니다. 레온의 마음이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당시 레온의 어린 아들을 위협하는 건 바로 막내 숙부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마케도니아 왕조의 창시자 바실레이오스 1세의 친아들이었던 알렉산드로스였습니다.
저 어린 놈... 서자니 당연 후계권이 없다. 왜 나를 제쳐두느냐...
나도 ‘본 인 더 퍼플’이라고!!! 알렉산드로스는 외치고 있었죠.
너 내 아버지를 골로 보낸 것 같은데... 이젠 너의 사생아 놈은 그냥 둘 수 없어...
내가 진정한 마케도니아 왕조의 후계자...
그러고 보니 가문원 소개도 하는 겸사겸사... 족보 구경하세요.
게임 속에서 아주 훌륭하게 구현해 놓은 황제들의 경우 한글로 표시해 놓았고...
족보 보시면서 글을 읽으시면 도움이 되실듯... 역설사 이거 하나는 잘 만든 듯... 칭찬 날린단~
중년의 레오 6세가 죽자 어린 콘스탄티노스가 당연 황제가 되겠지만...
진정한 황제라고 주장한 이는 알렉산드로스 2세(혹은 3세, 재위 912-913)였습니다.
어차피 조카가 어리니 자신이 수석 공동황제라 칭하고 대외적으로 선포하는 등 나름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려고 했습니다만... 이게 잘 안됩니다. 정치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님...
잘난 형도 간신히 막았던 압바스와 불가리아가 이의를 겁니다.
야... 왜 넌 너의 형처럼 공손하지 않니...??? 머리 치켜 들지 마~!!! 머리 까란 말이야....!!!!!
외침이 몰려오자 공포에 휩싸인 새 황제님은 찍 소리도 못하다 갑자기 죽습니다. 제위에 오른지 13개월만이었습니다.
죽음의 이유가 암살, 독살 이런 것은 아니고... 폴로 경기를 즐기다가 너무 힘들어서 죽었다고 하네요. 아마도 폴로광 이었던 모양입니다.
콘스탄티노스 7세(Constantinos VII, 905–959, 재위 913-945)는 레온 6세의 유일한 아들이었습니다. 너무 어려서 숙부가 공동황제가 되었지만 그가 갑자기 죽는 통에 7인의 섭정위원회가 구성됩니다.
문제는 젊은 어머니가 섭정이 되고 싶어 했고 또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합니다.
이 소년 황제는 무척 과묵했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죠.
호전적인 불가리아의 침공 속에서 억지로 총대주교의 강요에 의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불만 가득... 내 뜻이 아닌데...
결국 황제는 장인과 함께 통치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혼자선 결단할 수 없어... 왜? 난 자신이 없거든... 그 뒷감당을... 전쟁에서 지면 난 죽어...
그의 치세는 많은 공동 황제들로 가득 찼습니다.
총 네 명(혹은 두 명)의 공동황제가 옹립되었는데 모두 처가였던 레카페노스(Lekapenos) 가문 남정네들이었습니다.
먼저 장인이었던 로마노스 1세 Lekapenos (Romanos I, 재위 920–944) 그의 장남인 크리스토퍼(Christopher Lekapenos, 재위 921–931), 차남인 스테파노 1세(Stephen Lekapenos, 재위 924–945), 막내인 콘스탄티노스(Constantine Lekapenos, 재위 924–945) 순이었죠.
콘스탄티노스가 독단적인 황제가 된 시기는 처가의 공동황제들을 축출하는 945년이 되어서야 가능했습니다.
919년 콘스탄티노스 7세가 14살 되던 해에 로마노스 1세의 딸 헬레나(Helena Lekapene)와 결혼합니다. 왜냐면 당시 불가리아와의 알력으로 군사긴장이 조성되면서 이른바 ‘섭정 갈아치우기’ 음모가 발생합니다.
결국 섭정 자리를 두고 쿠테타가 발생하거든요.
수군제독이었던 로마노스(Romanos Lekapenos)가 섭정 자리를 차지하면서 황제 자리에 욕심을 내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딸을 황후로 만들고 그 사이에 비집고 들어옵니다.
사위... 내가 널 지켜줄게... 나 믿지...? 날 공동황제로...
결국 처가에서 공동황제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황제는 그냥 독서나 하고 무료하게 지냅니다. 결단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난 책이나 읽고 마눌님이랑 놀게...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는 7명의 자녀가 출생합니다. 3남 4녀가 출생했는데...
장남 레오가 요절해서 차남 로마노스가 후계자로 선임되죠.
황제의 장인으로 공동황제로 지명된 로마노스 1세는 자신의 아들들을 또한 공동황제로 지명합니다. 여러 자식 중 실질적으로 인정 받은 인물은 아마로 차남인 스테파노스 1세인 모양입니다. 장남은 일찍 죽었고 차남은 훗날 공동황제로 인정 받았고... 셋째는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다 나중에 둘째 형이랑 섬으로 유배당하게 됩니다.
사위님 위협 및 어르고 달래고 딸 주고 해서 공동황제가 된 로마노스 1세 가문의 족보입니다.
황제가 두 명 배출되었네요... 확실히 외손자가 황제가 된터라 외가로써 잘 먹고 잘 살아다는.... 결론은 아닌...
처가가 한창 권력을 독점할 때... 이른바 황제의 친위쿠테타가 발생합니다.
주도 인물은 바르다스 포카스(훗날 니케포루스 2세 포카스의 아버지임)... 장군님입니다.
그는 황제의 처남이자 공동황제였던 스테파노스와 그의 동생 콘스탄티노스를 잡아다 섬으로 유배 보냅니다.
수도로 돌아오지 마라... 절대... 오면 죽는다...
결국 처남들은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눈 뽑거나 아래를 요절냈다는 기록은 없는 걸로 보아서
그냥...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차기 황제 외숙부들이니 너무 심하게는...
아무튼 레카페노스 가문의 24년간 공동황제 놀이는 이렇게 막을 내립니다.
엄청난 결단 장애를 앓고 있었던 콘스탄티노스 황제는 단독 황제가 되었어도...
이미 정무는 아랫것들에게 맡기고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놀자... 중년에 놀아야 된다고... 더 늙으면 놀기도 힘들어...
이런 황제의 모습을 본 아들은 눈을 번뜩입니다.
저 아버지 정말 안 되겠네... 손 좀...
959년 11월 9일 황제는 독살되었다는 소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소문에는 배후가 아들과 며느리라고 알려집니다. 워낙 황제가 무능하게 보인 탓에...
자식이 아버지를 골로 보냅니다. 아들... 아버지를 계승 중입니다... 이런 식이었을까요...?
이렇게 3대 콘스타니노스의 치세가 막을 내립니다. 8살 때 즉위하여 46년을 황제 자리에 있다가 마침내 아들과 며느리 손에 독살되어 사라지는군요. 흠...
4대 황제가 된 로마노스 2세(Romanos II, 재위 959-963)는 외할아버지였던 로마노스 1세 레카페노스의 이름을 따 지어졌습니다. 그도 아버지처럼 별명이 "the Purple-born"이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아무래도 이 무렵부터 자주빛출생이라는 문제가 정통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 것으로 보입니다. 굳이 이런 별칭을 달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요.
그는 아주 어렸을 때 결혼을 하게 되는데 상대는 이탈리아 왕 위그의 사생녀였던 베르타였습니다. 아버지가 동맹을 위해 마련한 정략결혼이었는데...
956년 로마노스는 이탈리아 출신 마눌님을 버리고 술집 여인을 사랑하여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엉...??? 이게 무슨 반전...???
당연 아버지의 반대는 뻔한 레파토리 전개...
뭐라? 술집 여자??? 이 수 많은 여인네가 있거늘 어찌 후계자가 이런 여인을...
역사서에 의하면 로마노스의 아내가 된 테오파노는 상당히 겸손하고 지능적인 여성이었습니다.
신분은 비록 천하지만 엄청 똑똑하고 상냥하고 남자들을 사로잡을 줄 아는 매력이 넘치고 흘렀죠.
그래서 수도의 엘리트 남정네들에게 인기가 짱이었다는...
그런데 알 수 없는 열병에 시달리다 갑작스럽게 황제 콘스탄티노스가 사망하자 온 도시는 황제가 독살되었다고 소문이 퍼집니다.
이거... 웬지 모를 독살 분위기... 그녀가 정말 황후가 되고 싶어서...?
뭐 이런저런 사건을 거쳐... 그녀는 최고의 여인이 차지하는 황후가 되었고 황제 후계자도 낳았습니다.
로마노스 2세와 테오파노 사이에는 2남 1녀가 출생하였는데 장남이 바실레이오스 2세, 차남이 콘스탄티노스 8세, 딸은 아나 였습니다.
문제는... 아버지를 독살하고 즉위했다는 로마노스 2세가 정말 오래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위에 오른 지 불과 4년 만에 26세의 나이로 급사합니다.
후세 역사가들은 황제의 급사에 대해 아마도 너무 몰입한 성생활(?)과 과음 그리고 황후의 뭐 그런 닦달 같은(?)...
뭐 이런 식으로 체력을 너무 소진하는 바람에 죽음에 이르렀다고 해석을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알 수 없는 병으로 병사한 듯 한데 당시 황실의 유일한 남자인지라 후계문제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꼬꼬마들인터라... 야망있는 누군가에게 딱 죽음당하기 십상이었죠.
저 서슬 퍼런 비잔틴 제국에서 애들 한 둘 죽이는데 무슨 양심이고 가책이고 있었을까요...?
당시 장남이 5살, 차남이 3살 이었으니 말입니다. 칼 한 방에...
지능적인 황후 테오파노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이제 나의 선택이 아이들의 운명과 황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녀는 확실하게 자신의 몸값을 직시하여 유능한 인물을 한 명 찾아갑니다.
그의 이름은 니케포로스 포카스(Nikephoros Phokas, 912-969)...
제국 내 최고위 장군이며 실력으로도 단연 으뜸이었죠.
그의 군사적인 재능은 이미 중동의 여러 전투에서 입증된 상태였습니다. 특히 압바스랑 맞짱 뜨는데 혁혁한 공로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엄청난 구혼자들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스테파노는 자신과 아이들을 확실히 지켜줄 유능한 인물로 그를 지목했고 결혼과 동시에 황제 자리를 보장합니다. 당시 51세의 중년 나이였던 니케포로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전 황후와 결혼하면서 포카스 가문의 황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당시 제국의 상황은 아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963년 3월 15일 황제 로마노스 2세가 급사하자 제위는 공백기에 들어갔고 황후는 침착하게 여러 구혼자들 속에서 니케포로스 포카스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8월 14일 궁정 내 환관들의 우두머리였던 조세푸스 브린가스(Joseph Bringas)를 굴복시킨 니케포로스는 8월 16일 테오파노와 결혼하는 동시에 의붓아들이 된 바실레이오스 2세와 공동황제로 선포하게 됩니다.
이가 바로 니케포로스 2세(Nikephoros II Phokas, 재위 963-969)입니다.
가문의 내력을 보면 유명한 장군 가문이었습니다. 니케포로스 2세의 아버지는 바르다스로 전 황제 콘스탄티노스의 친위쿠테다를 일으켜 처가 출신의 황제를 몰아내는 1등 공신 이었습니다.
가문 자체가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고 더구나 중동지역 군단장으로 혁혁한 무공들을 세운 터라 그의 즉위에 토를 다는 인간은 드물었습니다.
또한 워낙 강력한 무력이 뒷 배경으로 있었고 또 나이도 나이인 만큼... 잘 될 것으로... 다들 믿었겠죠.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가 위대한 장군이었다는 것을 묘사해 주고 있는 그림...
알레포 공성전에 관한 그림입니다. 척 보시면...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 하지요.
이런 고증 덕분에 유능한 인물로 역사서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기록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적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요. 첫 번째 적은 내부에 있었습니다.
환관님들... 인생의 즐거움 하나를 버렸으니 다른 곳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권력...
당시 환관들의 우두머리였던 조세푸스 브린가스(Joseph Bringas)는 로마노스 황제의 최고 카운셀러였는데 여전히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테오파노 황후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국정을 운영해 나갈 수 없었죠. 그들의 도움 없이는...
그래서 니케포루스는 정치적 상황을 살핀 후 그를 먼저 제압하고 나서 군대의 열광적인 지지 속에서 공동황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적은 외부에서 등장합니다. 이슬람의 침공으로 변경의 중심 알레포가 철저히 파괴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급히 군대를 거느리고 친정합니다.
이걸 막아야 내가 황제노릇 잘 할 수가 있어...
그런데 파티마도 침공... 심지어 서쪽의 이탈리아에서도 침공...
정말 황제의 몸이 하나인데 전선은 여러 군데로 갈라져서 난리도 아닙니다.
결국 황제는 군대 위주의 예산을 짜게 됩니다. 모든 재화는 군대로 돌려라...
군대 없인 내가 없다!!!
모든 것이 군대로 흘러들어가자... 다른 곳엔 예산이 배정 안 됩니다. 특히 성직자에 대한 면세 조치를 해제했을 때... 세금 내라고 하니 교회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뭐야??? 나더러 세금을 내라고... 감히 누굴...
더구나 새로운 수도원 신축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아까운 돈 쓰지마...
더구나 국가재정을 충당하려고 값싼 주화의 남발로 비잔틴 경제가 갑작스럽게 신용등급이 하락합니다.
돈 찍어내는 거... 이거 진짜 무서운 일입니다. 경제가 갑작스럽게 골로 갈수가 있어요. 이러자 수도에선 난리가 아닙니다.
진짜 황제가 미쳤어... 군대를 위해 우리더러 희생하라고 강요하다니...
후방에 있는 도시민들이 전방의 급박함을 알리가 없죠.
나만 잘 살면 되지... 내가 딴 넘까지 생각해야 되나...? 이런 분위기...? 폭동까지 일으킵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그런데 문제는 또 마눌님에게서 발생합니다.
어린 자식 살려달라고 가랑이 붙잡던 그녀가 내가 전선 돌아다닌다고 바쁘니 그 사이에 애인을 만듭니다.
꽃다운 나를 50세 중년에게 바치긴 시러... 테오파노의 입장은 이러했죠.
젊은 애인이 널려 있는데 왜 내가 군빠에게 매달리냐...
황후가 이렇게 만든 애인이 바로 이오아네스 치미스케스(Ioannes Tzimiskes, 925-976)란 인물이었습니다.
969년 11월 11일 시리아 원정에 따라 피곤에 지친 황제는 잠을 자고 있었죠.
그런데 갑작스럽게 달려든 괴한들은 황제를 향해 칼을 휘두릅니다. 결국 황제는 자다가 죽음을 당합니다. 어이없는 죽음...
포카스 가문의 족보입니다. 니케포로스가 유일한 황제이고... 형의 아들이 바르다스입니다.
이 모든 배후에는 황후와 그의 애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애인 넘의 절친이 바로 황제의 조카 바르다스 포카스였습니다. 그는 니케포로스 2세의 형 레온의 사생아였는데 황제가 조카라고 해서 돌봐주고 있었죠. 그런데 그는 숙부를 죽인다고 음모 꾸미는 숙모의 애인이랑 황제 암살을 공모합니다. 결국 황제는 이들의 음모 속에서 생을 마치게 됩니다. 무인다운 최후가 아닌 것이 불만입니다. 아쉽군요... 궁정음모로 죽다니...
음모의 결과... 로마노스 2세의 황후 테오파노는 세 번째 남편을 아들과 공동황제로 올려놓습니다. 포카스에서 갈아타기... 이제 아들도 좀 성장했으니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고...
이렇게 애인 신분에서 황제로 승격된 이오아네스 1세(영어로는 존John 입니다)는 의붓아들과 공동황제가 됩니다.
그럼 음모의 공신인 바르다스 포카스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그는 황제가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됩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 니케포로스 포카스도 대를 이어 노력합니다만...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통에 제위는 더욱 멀어져 갑니다. 그냥 숙부가 잘 해먹다가 넘겨줄 수도 있는데 괜히 이상한 넘 꼬임에 빠져서... 결국 포카스 가문은 한 명의 황제 배출로 막을 내리는 군요.
45세 나이로 즉위한 이오아네스 1세는 아르메니아에서 출생하였고 명문인 쿠르쿠아스(Kourkouas) 가문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족보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아버지는 로마노스였고 여동생으로 아나가 있었다고는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외숙부가 바로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였다는 사실입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군대에 입대해서 상당히 수완 좋은 군인으로 출세를 합니다.
25세 때 한 첫 결혼을 잘해서 처가 덕에 엄청난 초고속 승진을 이루게 되죠.
어떤 역사가의 고증에 의하면...
외모는 붉은 빛이 도는 금발과 수염 그리고 푸른 눈동자를 가졌던... 키는 약간 작지만 호남형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인척이었던 바르다스 포카스와 친했는데 둘은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군빠인 니케포로스 2세를 제거하고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자고...
결국 황제는 암살되었고 황후의 애인이었던 그는 그녀의 도움으로 황제가 됩니다. 그러자 바르다스 포카스는 깜놀합니다. 저게 지 혼자 황제 해 먹으려고... 나를 이용한거야???
바르다스 포카스는 가문의 군대를 동원해 이오아네스를 공격하지만 봉기는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너... 내가 황후의 숨겨진 애인인 줄 몰랐지롱~
새로이 즉위한 황제의 제일 목표는 외부의 침략을 막아 제위를 공고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키예프랑 싸워서 이기고 유리한 협정을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불가리아를 죽사발 내 놓고 병합시킵니다. 또 동쪽으로 진격하여 제국의 국경 진지를 구축합니다.
엄청난 진출 속도... 돈은 어디서??? 니케포로스 포카스가 이노무 돈 때문에 죽었는데...
테오파노의 나이가 많아서 자식 태어날 확률이 적으니 남편들 모두 가문의 단독 황제로 끝나네요...
972년부터 황제는 압바스 왕조에 대해 친정을 단행합니다. 예루살렘의 탈환을 위하여...
두 번에 걸친 원정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 제국의 위엄을 떨치고 있었는데...
잘 나가던 황제는 976년 1월 10일에 갑작스럽게 독살 당합니다.
배후는 또 누구야 누구... 도대체... 얼마나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냐...
범인은 바로 전 황제 로마노스 1세 레카페노스의 사생아였던 바실레이오스 레카페노스의 소행이었습니다.
그는 이복형들처럼 섬으로 유배되지 않고 제국 내 머물면서 행정관리로 봉직했고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였죠.
또한 황제의 암살 동업자였던 바르다스 포카스를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황제 암살이 발각되자 그는 모든 재산을 잃고 추방된 후 곧 죽었습니다.
황후 테오도라의 남편들이 모두 비명에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녀도 늙었고... 우선 진정한 황제가 나이가 들어서 어머니라도 함부로 못하겠죠.
이제 성년이 된 바실레이오스 2세의 본격적인 통치가 시작되게 됩니다.
여태까지 소개한 황제들의 연대기라고... 봐 주세요. 나름 자료 손질 좀 했는데...
보시기 편하다면 다행입니다. 연구하다 보니 각 가문 문장만 봐도 구분이 가네요... 쩝...
서술된 글이 너무 길어서 여기서 나뉘겠습니다.
가문 내 황제가 몇 명 없다고 얕보다가 된통 당한 이 느낌...
내가 공동황제를 생각하지 못하고 일을 벌렸네요... 쩝
탈도 많고 사건도 많고...
벌써 A4 10장이 되어버리네요. 너무 길면 정독이 안 되어서요. 진짜 양해 구합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다시 이어지겠습니다.
첫댓글 오오... 맛깔나는 마케도니와 왕조의 일대기를 잘 정리해주셨군요...
저도 전에 한번 이 글보다는 좀 가벼운 유머 글로 오늘 적어주신 부분이랑 바실레이오스 2세에 해당하는 부분을 적은 적이 있었습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9495&s_no=19495&kind=search&search_table_name=history&page=1&keyfield=subject&keyword=%ED%99%A9%EC%A0%9C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history&no=19524&s_no=19524&kind=search&search_table_name=history&page=1&keyfield=subject&keyword=%ED%99%A9%EC%A0%9C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여기 마케도니아 왕조 시대만큼 궁중 암투와 흥미진진한 왕실의 모험이 넘쳐나고, 소위 판타지에서 나올법한...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다 일어서는 왕자들과 이교도와의 투쟁에서 부각되는 영웅들이 넘쳐나는 시대도 드물거라 생각이 들더군요.
정말이지 콤네누스와 마케도니아는 비잔틴의 중흥 뿐만 아니라 일부러 소설로 만들기도 힘든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으로서 최고의 가문들이라 생각됩니다.
위의 글에 제 사견을 좀 붙이자면...
저는 왠지 레오의 친부는 바실레이오스가 맞다고 생각됩니다.
언급하신 특유의 정치적 행보나 언론 플레이가 판박이 수준으로 닮았고...
위에서 인용하신 기록화에서도 상당히 두 사람의 용모가 닮았더라구요.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에 얽힌 어처구니 없는 일화는 생략하신 듯 하네요.
뭐... 그건 확실히 야화 수준으로 언급되는 내용이니 품격있는 글에는 빼심이 맞을지도...
니케포루스 포카스의 테오도라 사랑은 그래도 좀 언급을 해주셨음 좋았으련만...
저 양반, 의외로 순정 넘치는 분이란걸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해요. 사라센의 저승사자로만
알려졌지 순정남인건 아무도 몰라
레온 6세가 바실레이오스의 친자가 아니라면, 왜 마케도니아 왕조가 되는건가요...;;; 왕조 시작부터 꼬인 계보를 가지고 있네요..
공식적으로야 그 모친이 바실리우스 1세의 아내인 만큼, 요즘으로 치면 호적상으론 누가 뭐래도 바실리우스의 아들이니까요. 다만 오늘날 많은 역사가들은 여러 기록이나 정황을 볼 때 실은 레온의 친부가 미카엘 3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뭐 그런 거죠 ㅋ
법적인 아버지 따라가는 것이 정통성으로 보면 유리하니까요... 뻐꾸기라는 것을 알아도 유리하면 그냥 모른척 하고 살면 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러고 보니 삼치님의 얼마전 연대기에도 등장하던데요... 뻐꾸...기...라고...
이래서 웨이오브마이라이프가 문제입니다!
그렇네요... 다들 그러고 살았다니 역설사 탓할수도...
콘스탄티누스 7세와 로마누스 2세 간의 얘기는 처음 보네요. 전 테오파노와 로마누스는 7세가 관대하게 허락해준걸로 알고 있었는데 암살까지 ㄷㄷ
개인적으로 콘스탄티누스가 아무것도 안했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지만, 정말 흥미진진하네요 ㄷㄷㄷ
관대하게 허락한 것 보단 이미 데리고 살고 하니 어쩔수 없이... 암살했다고 보더군요. 정황상... 오래 병석에 누웠는데 아마도 서서히 독을 주입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언빌리버블!!! 기번 책을 때려친게 몇번이던가 이게 정독이되다니!!!잘 읽었습니다.
기번의 것은 왕조 흐름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되지 다른 건 영... 새로나온 책 보세요.
아오 쫌.... 무슨 뻐꾹이에 죽이고, 고자 만들고 눈알 뽑고;;;;;;;;
게임에서 되는 것은... 여기서 기인한 것입니다. 아마도...
삭제된 댓글 입니다.
스크롤바 내리는 것도 귀찮아져서요. 그림 넣으려니 너무 길면 넣기 힘들어서요, 곧...
정독잘되요 더 써주세요ㅎㅎ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뭐 당대에 비대해지는 교회와 수도원은 비잔티움이 망할 때까지 따라붙는 족쇄가 되죠. 정치와 세상 일에 염증을 느끼신 높으신 분들이 명상적인 삶을 찾아 수도원으로 가는 것도 좋고, 자기 신심을 위해 돈을 막 갖다 바치는 것도 좋은데, 그걸 걍 돈만 바치는 게 아니라 자꾸 땅을 갖다주니 문제. 교회 및 수도원이 면세인 상태에서 재산과 토지가 증식될수록 나라 살림이 힘들어지니...
어딜가나 종교가 멸망의 원인 한축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고려의 멸망도 불교에서... 원나라의 멸망도 라마교에서... 역사는 되풀이되는 터라...
재미지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드디어 전역하셨군요... 우선 축하드리고... 방문 감사합니다.
완전 재밌고 흥미진진해요 +_+ 드디어 담편엔 바실레이오스2세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건가요!! 시간 내서 이렇게 맛깔스럽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당. ^^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