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 플러킹
휘민
한밤중 인적 없는 빗속을 달리다가
무언가와 부딪쳤다
에어백이 터졌고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문을 열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룸미러에 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짐승이 스쳤다
어느새 빗줄기는 잦아들었지만
와이퍼는 최고 속도로 사고를 지우고 있었다
그날의 악몽 이후 같은 꿈이 반복되었다
미러 속에 갇힌 생
눈을 뜨면 더 독한 지옥일까 봐
눈을 감은 채 밤새도록 머리카락을 뽑았다
귀울음이 되어 달라붙는 불길한 기척들
그날처럼 ⸺에어백이 터지고, 와이퍼가 끽끽거리고, 무언가
뒤뚱거리고, 잉잉거리며 ⸺내 잠속을 찾아오는 짐승들
누군가 내 목을 비틀기 전에 내가 나를 죽일 수 있을까
마침내 죽음은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죽음을 연기하기 위해
심장을 속이는 법을 배워야 할 시간
새의 깃털을 덮고 잠이 들었다
이번 생은 누가 꾸고 있는 악몽일까
* 라이브 플러킹(Live Plucking) : 살아있는 동물의 가죽과 털을 마취 없이 마구잡이로 뜯어내는 것
휘민
충북 청원 출생. 200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시집 『생일 꽃바구니』 『온전히 나일 수도 당신일 수도』.